● 입론

  1) 해제

비반복성의 이해

일치와 연동의 법칙

구조란 무엇인가?

구조론의 가치

구조주의 세계관

  2) 개론

개념정립

존재론과 인식론

 

 

 

 

1) 해제

비반복성의 이해

구조론은 새로운 학문이다. 수학이 수(數)에 관한 학문이듯이 구조론은 구조(構造)에 관한 학문이다. 수는 셀 수 있고 구조는 셀 수 없다. 셀 수 있는 것은 반복되고 셀 수 없는 것은 반복되지 않는다.

수학이 자연의 반복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구조론은 자연의 비반복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구조론은 수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학의 반대편에서 대칭된다. 구조론은 수학의 자궁이다. 수학을 낳는다.

비반복성은 대칭성에서 비롯된다. 하늘과 땅은 대칭된다. 여자와 남자, 음과 양, 낮과 밤, 앞과 뒤, 겉과 속은 대칭된다. 모든 대칭되는 것은 짝을 가지며 둘이 어울려 쌍을 이루고 더 높은 차원의 동그라미로 비약한다.

하늘과 땅의 대칭은 지구로 상승하고, 여자와 남자의 대칭은 인간으로 상승하고, 낮과 밤의 대칭은 하루로 상승한다. 질적인 비약을 이루어 더 높은 단계의 동그라미로 상승한다. 세상은 무수한 동그라미의 집적이다.

┣┣는 수학의 반복이고 ┣┫는 구조론의 비반복이다. ┣┣가 반복인 이유는 붙어 있기 때문이고 ┣┫가 비반복인 이유는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은 떨어져 있다. 산과 강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떨어져 있는 이유는 일하기 위해서다. 젓가락 두 짝이 떨어져 있는 이유는 그 사이에 반찬을 집기 위해서다. 떨어져서 마주 보고 일하며 그것으로 독립적인 하나의 단위를 이룬다. 동그라미를 이룬다.

수학은 집합에 대해 원소로 설명하고 구조론은 날에 대해 심으로 설명한다. 집합과 원소에서 반복되는 것은 원소다. 기존의 수학은 원소의 반복성에 주목할 뿐 집합의 비반복성을 해명하지 못한다.

● 구조의 대칭성 - 반복되는 날에서 반복되지 않는 심을 본다.

● 수학의 집합론 - 반복되지 않는 집합에서 반복되는 원소를 본다.

집합론이야말로 수학의 출발점이다. 수학의 첫 단추가 된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 기존의 수학은 집합에서 원소를 바라볼 뿐 원소에서 집합을 바라보지 않는다. 비반복성을 포착하지 못한다.

대칭구조 ┻는 날 2가 심 1을 공유하는 형태다. 구조에 일이 주어지면 날은 무한히 복제되어 숫자가 증가한다. 그러나 심은 여전히 하나다. 식구가 늘어나도 부부는 하나다. 바퀴의 톱니가 늘어나도 바퀴축은 하나다.

우리는 원이 둥글다고 믿지만 피상적인 관찰이다. 구조로 보면 원은 컴퍼스다. center 하나에 arm이 둘이다. 컴퍼스를 회전시키면 무수히 많은 점의 집합이 만들어진다. 외부의 작용에 대응하여 일하기 때문이다.

일을 시켜서 그러할 뿐 원의 본질은 ┻다. 구조로 보면 원은 거리가 같은 점들의 집합이 아니다. 집합은 원소를 모은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조로 보면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거꾸로 쪼개놓은 것이다.

지렛대는 축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날이 있다. 하나는 손잡이고 하나는 물체를 들어 올린다. 천칭 저울이 축의 좌우에 두 접시를 거느린 바와 같다. 원은 지렛대를 일 시켜서 날의 숫자를 늘려놓은 것이다.

날의 숫자가 늘어나도 애초에 심이 정한 바운더리를 넘어 증가하지 못한다. 집합이면 모은 것이다. 모으면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늘어날 수 없다면 모순이다. 그러므로 늘어난 것이 아니라 쪼개진 것이다.

수정란의 세포분열과 같다. 명목상으로 세포의 숫자가 증가했지만 실제로는 증가하지 않았다. 원은 점들의 집합이 아니라 날들의 분할이다. 없는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 복제된 것이다.

반복성과 비반복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산은 반복된다. 산 너머에 또 산이 있다. 강도 반복된다. 강 건너 또 강을 만난다. 그러나 대칭은 반복되지 않는다. 산은 강과 대칭되어 산하를 이룬다. 산하는 반복되지 않는다.

진리는 불변한다. 왜 불변하는가? 구조론의 비반복성 때문이다. 복제되어 증가한 날들은 결코 원본의 곁을 떠날 수 없다. 내부에 독립적인 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이 정한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의 빛이 온갖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지만 빛이 사라지면 무수한 그림자도 홀연히 사라진다. 그림자는 빛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날은 심에 붙잡혀 있으므로 심에 의해 통제된다. 그러므로 진리는 불변한다.

쪼개지는 것과 쪼개지지 않는 것

어원으로 보면 구조의 구(構)는 목재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켜켜이 쌓아올린 것이고, 조(造)는 감독이 노동자들에게 알려서(告) 일을 진행한다(辶)는 뜻이다. 구조는 켜켜이 쌓는 것이며 그 쌓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구조(構造)는 쌓기와 일하기다. 재료를 쌓아 일을 진행한다. 여기서 과연 진행할 수 있느냐가 문제로 된다. 쌓을 수 있어야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모래성은 쌓을 수 없다. 쌓으려 해도 진행이 안 된다.

물로 쌓을 수 없고 바람으로도 쌓을 수 없다. 빛으로 쌓을 수 없고 냄새로도 쌓을 수 없다. 만약 지구 중력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돌이나 나무로도 쌓을 수 없다. 오직 구조로만 쌓을 수 있다.

원자론에서 원자의 의미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왜 쪼갠다는 개념이 문제로 되는가? 원자론의 쪼갠다는 개념과 구조론의 얽힌다는 개념이 정확히 대칭된다는 데 주목할 일이다.

만약 쪼개진다면 쌓을 수 없다. 물은 쪼개져서 쌓을 수 없고 바람도 쪼개져서 쌓을 수 없다. 쌓아올린 건축이 무너지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은 거기에 쪼개지지 않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宇宙)는 큰 집이다. 집은 쌓여서 이루어졌다. 지구도 쌓여서 이루어졌다. 나무는 가지가 쌓여서 이루어졌고 인간은 세포가 쌓여서 이루어졌다. 원자가 쪼개지면 쌓이지 않으니 우주의 건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전혀 쪼개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역시 쌓을 수 없다. 큰 바위 덩어리를 정으로 쪼아서 작은 벽돌로 쪼개야 쌓을 수 있다. 큰 통나무를 톱으로 켜고 대패로 깎아서 작은 목재로 쪼개야 쌓을 수 있다.

쪼개져도 쌓을 수 없고 쪼개지지 않아도 쌓을 수 없다. 원자는 작다. 잘게 쪼개져 있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자는 쪼개지는 성질과 쪼개지지 않는 성질을 동시에 가진 듯하다. 쌓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원자를 쌓을 수 있을까? 원자는 구슬과 같다. 구슬을 쌓아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쓴다. 꿰려면 뚫어야 하는데 원자는 뚫을 수 없으니 꿸 수 없다. 쌓을 수 없다.

벽돌을 쌓아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중력이 없으면 쌓을 수 없다. 모래성과 같다. 그 집은 무너진다. 원자론으로 우주를 건축할 수 없다. 원자론으로는 세포를 건축할 수 없고 생명을 건축할 수도 없다.

구조란 쪼개지면서 쪼개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쌓을 수 있다. 그렇다. 세상은, 우주는, 존재는, 만유는 쪼개지면서도 동시에 쪼개지지 않는 것으로 건축되어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구조다.

날은 쪼개지고 심은 합쳐진다. 대칭은 쪼개진 둘의 만남이요 평형은 그 대칭의 얽힘이다. 점≫선≫각≫입체≫밀도로 집적된다. 선은 점으로 쪼개지고 각으로 합쳐진다. 각은 선으로 쪼개지고 입체로 합쳐진다.  

구조는 반복성에 의해 쪼개지고 비반복성에 의해 합쳐진다. 수(數)는 구조가 쪼개진 것이요 집합은 원소가 합쳐진 것이다. 구조는 자유자재로 쪼갤 수 있고 다시 합쳐질 수도 있다. 쪼개지면 양이고 합쳐지면 질이다.

쪼개지는데 쪼개지지 않는다? 그것은 제어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구조다. 구조는 제어다. 어떤 대상을 장악하고 통제하여 마침내 쪼개짐과 쪼개지지 않음을 자유자재로 지시하고 결정하는 그것이 구조다.

수(數)는 자연의 반복성에서 쪼개짐을 탐구하고 구조(構造)는 자연의 비반복성에서 쪼개지지 않음을 탐구한다. 쪼개지지 않는 성질은 자연의 비반복성, 불연속성, 비가역성, 비분할성, 비순환성이다.

쪼개지지 않으므로 얽혀서 구조를 이룬다. 비로소 존재의 뼈대가 된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내부에 뼈대가 있다. 쪼개지지 않는 심이 있다. 그리고 그 뼈에 붙은 살이 있다. 쪼개지는 날이 있다.

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쪼개지지 않는 심 1과 쪼개지는 날 2다. 심은 원본이고 날은 복제된 것이다. 원본은 쪼개지지 않으니 뼈를 이루고 복제본은 쪼개지니 살을 이루어 비로소 세상은 크게 이룩되었다.   

● 질서의 수(數).. 반복성, 연속성, 가역성, 분할성, 순환성.

● 무질서의 구조.. 비반복, 불연속, 비가역, 비분할, 비순환.

쪼개지는 날의 성질은 반복성, 연속성, 가역성, 분할성, 순환성이다. 집합에 대해 원소의 성질이다. 쪼개지지 않는 심의 성질은 비반복, 불연속, 비가역, 비분할, 비순환성이다. 평형계의 날에 대해 심의 성질이다.

각각 질량보존의 법칙과 엔트로피의 법칙을 성립시킨다. 존재는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다. 전자는 변하는 성질을, 후자는 변하지 않는 성질을 나타낸다. 변하지 않음에 의해 변하고 변함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질량보존의 변하지 않음에 의해 만유는 변하면서도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다. 엔트로피 증가의 변함에 의해 만유는 보존되면서도 성장한다. 나무처럼 자라고 문명처럼 진보한다. 비로소 우주는 건축된다.

사건이 알맹이다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상은 딱딱한 하드웨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무른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졌다. 물질이 아니라 정보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일(work)이다. 그리고 사건(event)이다.

일은 값≫포지션≫평형계≫구조체≫시스템으로 고도화된다. 앞의 값이나 포지션은 무른 편이고 뒤의 구조체나 시스템은 단단한 편이다. 그러나 내부에 무른 값과 포지션을 품었으므로 역시 무르다.

원자론은 요소가 원래 단단하다는 입장이다. 틀렸다. 원래 무른데 얽혀서 단단해진 것이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내부에 무른 성질을 품는다. 일찍이 노자는 유(柔)가 강(剛)을 이긴다고 했다. 존재는 무르다.

어떤 것이 반복될 때 그 반복의 1단위를 ‘사건(event)’이라 한다. 그 사건 안에서 반복되지 않는 다섯 성질을 구조(structure)라 한다. 에너지 순환 1 사이클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사건 내부에 다섯 구조가 있다.

구조는 사건 안에서 반복되지 않는다. 어떤 반복되는 것 하나에는 반드시 반복되지 않는 다섯이 들어 있다. 이러한 반복성과 비반복성의 조합이 자연의 패턴을 낳는다. 그 패턴을 관찰하여 인간은 인식한다.

백 미터 달리기 경주를 예로 들 수 있다. 하나의 사건 속에는 반드시 다섯 개의 대칭이 비반복성을 이루고 있다. 다섯 가지 대칭은 순환≫분할≫가역≫연속≫반복의 가부(可否)를 결정하는 판별점이다.

             [ YES↑ NO↓]

● 반복성(선수출발) - 선수의 발걸음은 반복된다.

● 연속성(선수질주) - 백 미터 거리는 연결되어 있다.

● 가역성(주로전개) - 선두와 후미는 양방향으로 전개된다.

● 분할성(승부결정) - 골인지점에서 분할되어 등수대로 들어온다.

● 순환성(경주종결) - 트랙을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대칭구조가 평형이탈이면 반복성이 YES로 판정되며 한 단계 위로 이동하여 다시 판정된다. 대칭구조가 평형이면 NO로 판정되며 한 단계 아래로 이동하여 다시 판정된다. 구조의 이해는 이 순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위 반복≫연속≫가역≫분할≫순환은 인식론적 전개다. 자연의 질서는 그 반대다. 여기에 혼선과 착각의 여지가 있다. 강조하는 바 구조의 비반복성이란 위 다섯 단계가 NO로 판정되는 경우다.

그 경우 대칭과 평형으로 얽혀서 구조화된다. 위의 달리기 경주는 구조의 작동이고 구조의 건축은 그 반대다. NO로 판정되어 구조는 얽힌다. 자연의 순서는 비순환≫비분할≫비가역≫불연속≫비반복이다.

● 비순환성(중력) - 건물을 지탱하는 중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 비분할성( 집 ) - 한 채의 건물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다.

● 비가역성( 방 ) - 하나의 방은 벽으로 막혀 있다.

● 불연속성(복도) - 복도는 방에서 끝난다.

● 비반복성(벽돌) - 벽돌 숫자는 한정된다.

손에 비유할 수 있다. 엄지 다음에 또 검지가 나오는 것이 반복,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연속, 손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손가락이 손을 움직이는 것이 가역, 손가락과 손이 따로 노는 것이 분할,

손이 손가락을 통제하고 다시 원위치 되는 것이 순환이다. 다섯은 그 반대편의 짝인 비반복≫불연속≫비가역≫비분할≫비순환을 가진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손가락에서 손, 팔, 어깨, 몸으로 구조가 상승한다.

비반복-새끼손가락 다음 손가락 없고, 불연속-손가락과 손목은 떨어져 있고, 비가역-손가락은 손목을 움직일 수 없고, 비분할-손가락과 손은 뗄 수 없고, 비순환-손으로 던진 물건은 돌아오지 않는다.

● 반복 - 왼발 다음 오른발 나온다.

● 연속 - 왼발과 오른발은 잇달아 나온다.

● 가역 - 왼발이 뒤로 가면 오른발은 앞으로 간다.

● 분할 - 왼발과 오른발의 분할된 밸런스는 몸이 바로잡는다.

● 순환 - 발걸음의 밸런스는 다시 처음 상태로 되돌아온다.

피스톤의 반복적 운동은 비반복성을 만나 연속되는 엔진의 회전 속에 숨는다. 같은 원리로 비가역의 바퀴, 비분할의 자동차에 차례로 숨는다. 순환에 의해 부산 찍고 서울로 돌아오면 비순환에 의해 차주를 만난다.

여기에 완성형이 있다. 세상은 원자 알갱이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event)과 그 사건의 완성형으로 되어 있다. 세상은 알맹이와 껍데기가 아니라 완전성과 불완전성이다. 완전성의 이해가 구조론의 핵심이다.

일치와 연동의 법칙

구조론은 1의 정의와 같다. 2나 3의 의미는 ‘1의 정의’로부터 연역된다. 1이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거기에 연동되어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다른 모든 수도 마찬가지다. 자연수는 1뿐이다. 나머지는 복제다.

구조론 이해의 출발점은 1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다. 1은 ‘가장 작은 것’이 아니라 ‘일치하는 것’이다. 대칭되는 것이다. 짝 짓는 것이다. 사과 하나와 숫자 하나를 짝지어 일치할 때 1이다.

1이 작다고 여긴다면 2나 3과 비교한 것이다. 순서가 틀렸다. 2와 3은 1의 복제다. 1이 2에 선행한다. 2가 탄생하기 전에 1이 있었다. 애초에 짝지어 1을 탄생시키던 지점에서는 그 비교될 2나 3이 없다.

반복/비반복을 판정하는 단위가 되는 자연의 대칭성이 있다. 자연계의 모든 원리는 작용반작용의 짝짓기 법칙에서 출발한다. 작용반작용에 의해 자연은 대칭성을 가지며 숫자 1은 그 대칭의 일치다.

  

모든 크기는 인간의 몸과 비교한 크기다. 아기 때는 마을의 고샅길이 넓어 보이고 어른이 되면 좁아 보인다. 모든 크기는 상대적인 크기다. 절대적인 크기는 없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수는 없다.

가장 작은 원자는 없다. 원자가 없으므로 만유의 출발점은 가장 작은 것이 아니라 ‘일치하는 것’이다. 원자의 ‘작다, 쪼갤 수 없다’는 개념을 구조론의 짝짓기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만유는 짝짓기다.

세상은 작은 것이 모여서 크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본으로부터 무한복제되어 이루어졌다. 존재의 출발점은 원본이다. 원본은 1이고 2나 3은 복제된 것이며 복제는 무한된다. 자연수는 무한대다.

복제본은 원본과의 접점을 유지한다. 원본과 동떨어진 채로 있을 수 없다. 2는 1과 붙고 3은 2와 붙는다. 그렇게 접점을 유지함으로써 우주는 지탱된다. 복제본이 원본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일치와 연동으로 조직된다. 일치는 자연의 대칭성이 하나의 쌍을 이루는 것이다. 젓가락 두 짝의 일치다. 짝짓기 성공이다. 일치가 원본을 만든다. 연동은 복제본이 그 원본을 좇음이다.

두 점의 일치는 선, 두 선의 일치는 각, 두 각의 일치는 입체, 두 입체의 일치는 밀도다. 각각 원본을 구성한다. 반면 긴 선, 넓은 각, 큰 입체, 높은 밀도는 그 원본의 일치에 연동된 복제본이다.  

● 점    ◎ (일치의 원점, 자기규정 못한다.)

● 선  ◎◎ (두 점의 일치, 포지션은 있고 길이는 없다.)

● 각    ∠ (두 선의 일치, 밸런스는 있고 너비는 없다.)

● 입체  × (두 각의 일치, 심과 날은 있고 부피는 없다.)

● 밀도↔↔ (두 입체 일치, 닫힌계는 있고 질량은 없다.)

구조론의 점≫선≫각≫입체≫밀도는 기존의 점, 선, 면, 입체와 다르다. 기존의 점, 선, 면, 입체 개념은 크기가 있다. 크기는 원본으로부터 복제된 정도를 나타낸다. 값(data)이 지정된 것이며 그만큼 일한 것이다.

원본은 크기가 없다. 포지션이 지정될 뿐 값은 지정되지 않는다. 일하지 않았으므로 크기가 없다. 선은 길이가 없고, 면은 너비가 없고, 입체는 부피가 없고, 밀도는 질량이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조는 일치와 연동의 교차점이다. 이곳에서 반복/비반복의 판정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로 존재는 제어된다. 그 제어로 하여 세상은 통제되니 그것이 우주의 질서다. 그 질서의 불변성이 진리다.

하나의 존재에는 다섯 일치점이 있다. 다섯은 인과율에 의해 연동된다. 그러므로 연역할 수 있다. 전체를 한 줄에 꿸 수 있다. 밀도≫입체≫각≫선≫점의 순으로 꿰어지며 후자가 전자에 연동된다.

구조론의 연동법칙으로 보면 점이 모여 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이 해체되어 점이 된다. 밀도가 모든 것의 자궁이다. 밀도의 복제과정에서 입체, 각, 선, 점들이 연동되어 줄줄이 딸려나오는 것이다.

수학의 기초는 정의다. 점과 선과 각이 별도로 정의될 수 없다. 밀도를 정의하면 이에 연동되어 입체가 정의되고, 입체를 정의하면 각이 연동되어 정의된다. 각의 정의에 선이, 선의 정의로부터 점이 유도된다.

각각의 내부에는 대칭의 짝이 있다. 짝짓기를 성공시켜 쌍을 이루면 대칭구조의 평형이다. 두 바퀴의 대칭이 하나의 축으로 고도화되고, 두 바퀴축의 대칭은 하나의 차체로 고도화된다.

보디와 섀시의 대칭이 하나의 자동차로 고도화되고 자동차와 운전자의 대칭은 그 자동차의 운행으로 고도화된다. 구조는 대칭과 평형원리에 따른 짝짓기의 단계적인 고도화로 일의 1사이클을 완성한다.

운전자≫자동차≫엔진≫바퀴축≫바퀴로 내려가는 것이 연동이다. 언제라도 엔진이 바퀴를 굴리지 바퀴가 엔진을 굴리지는 않는다. 비가역성이다. 항상 밀도≫입체≫각≫선≫점의 순서대로다.

데카르트는 ‘믿고 싶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했고 오스카 와일드는 ‘의심은 믿음의 시작’이라고 했다. 의심은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상의 정확한 포지션을 찾으려는 것이다.

하나의 명제는 전제와 진술의 결합으로 구조화된다. 그렇게 짝지어져 있다. 포지션이 세팅되어 있다. 의심은 전제를 의심하는 것이다. 명제의 출발점 찾기다. 만유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제1철학, 제1이론, 제1원인, 제1출발점은 1이다. 일치와 연동의 교차다. 작용과 반작용의 일치다. 대칭과 평형의 1, 짝과 쌍의 1, 일과 사건의 1이다. 만유는 거기에 연동되어 한꺼번에 주르륵 풀려나온다.

구글 검색은 일치와 연동의 원리를 활용한다. 구글은 검색어와 일치하는 단어를 찾은 다음 그 페이지에 딸린 하위 링크를 검색한다. 여기에 우선순위가 있다. 선 일치 후 연동이다. 그것이 알고리즘이다.  

존재는 알고리즘을 가진다. 우선순위다. 컴퓨터는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연산을 수행한다. 알고리즘은 항상 입력에서 출력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성립하며 예외는 없다. 항상 일치가 먼저고 연동은 나중이다.

미터자와 피트자를 비교하자. 센티와 인치의 눈금은 맞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눈금 중 하나는 우연히 일치한다. 만약 다음 눈금도 잇달아 일치한다면 두 자가 같은 눈금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눈금들 중 하나의 일치가 두 번째 눈금의 일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눈금의 연속된 일치는 세 번째 눈금의 일치를 보장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새로운 지식을 줄줄이 창출할 수 있다. 연동의 법칙이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 열은 하나에 연동된다. 자연에서 지식을 구하는 방법은 패턴찾기다. 무작정 비교하다가 색, 냄새, 소리, 크기, 맛 중에서 일치점을 찾으면 이에 연동시켜 지식을 대량생산한다.

###

서구의 노멀(normal)과 같은 개념으로 동양의 규구(規矩)가 있다. 규구는 목수의 상징물인데 컴퍼스 규(規)와 곱자 구(矩)를 합친 말이다. normal은 규구 중에서 구에(矩) 해당하는 곱자를 의미한다.  

중국의 창조신화에 등장하는 여왜(女媧)씨와 복희(伏羲)씨가 들고 있는 물건이 규구다. 여왜씨는 규를 들었고 복희씨는 구를 들었다. 곧 천하의 질서다. 규는 규칙이다. 규범이고 규율이고 규정이고 규제다.

 

37.jpg

왜 컴퍼스가 규칙이나 규율을 의미하는가? 컴퍼스는 원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다. 컴퍼스는 같은 거리의 점들을 복제하는 수단이다. 같은 크기의 간격을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다. 존재의 반복성이다. 연동이다.

원은 같은 거리 점들의 집합이다. 무수한 점이 같은 거리로 반복하여 복제된 것이 원이다. 원은 컴퍼스를 사용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컴퍼스의 진정한 의미는 존재의 반복성을 나타내는 데 있다.

조상들은 규구로 천하의 질서를 해명했다. 컴퍼스의 반복성과 곱자의 비반복성으로 우주의 질서를 설명한다. 반복성과 비반복성을 교차시켜 하나로 담아낸 것이 구조다. 하나의 반복에는 다섯 비반복이 있다.

● 일치 - 존재의 비반복성(기준이 되는 패턴찾기)

● 연동 - 존재의 반복성  (기준에 따라 대량복제)

운동장에 흩어진 사람을 모으려면 먼저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한 명을 지목하여 팔을 높이 들고 ‘기준!’을 외치게 한 후, 그 기준에 연동시켜 양팔간격으로 정렬시킨다. 기준이 일치, 기준에 맞추기가 연동이다.

곱자 구(矩)는 ┓자 모양으로 꺾여 있다. 존재의 비반복성, 불연속성, 비가역성, 비분할성, 비순환성이다. 꺾이는 지점이 기준점이다. 하나의 사건에는 다섯 기준점, 일치점이 있다. 이에 연동시킬 수 있다.  

● 배경 ┳ 응용

● 실체 ┳ 종합

● 연관 ┳ 분석

● 이행 ┳ 수용

● 귀결 ┳ 지각

왼쪽 존재론과 오른쪽 인식론 사이의 구조 ┳가 일치와 연동을 판정한다. 하나의 사건에는 판정하는 지점 다섯이 있다. 가로선 ━와 ━는 일치(→←)를 나타내고, 세로선 ┃는 연동( ↓ )을 나타낸다.

www.drkimz.com.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5 구조주의 양자론(추가) 김동렬 2009-01-02 4385
24 응용 5-5 구조주의 양자론 image 김동렬 2009-01-02 4651
23 구조론의 응용 6 - 교육론, 경제학, 미학, 진화론 김동렬 2009-01-02 4034
22 총괄 1-1 목차, 구조론을 말한다 image 김동렬 2008-12-29 6208
21 총괄 1-2 개념도, 총괄이론, 다섯가지 패턴 image 김동렬 2008-12-29 5686
20 총괄 1-3 상식의 오류들, 구조주의 역사 김동렬 2008-12-29 4153
19 총괄 1-4 구조론을 얻다, 깨달음과 구조론 image 김동렬 2008-12-29 5063
» 입론 2-1 비반복성의 이해, 일치와 연동의 법칙 image 김동렬 2008-12-29 4723
17 입론 2-2 구조란 무엇인가? image 김동렬 2008-12-29 3784
16 입론 2-3 구조론의 가치, 구조론의 세계관 김동렬 2008-12-29 3831
15 입론 2-4 개념정립, 존재론과 인식론 image 김동렬 2008-12-29 5674
14 정립 3-1 구조체의 얼개 image 김동렬 2008-12-29 5794
13 정립 3-2 평형계의 작동 image 김동렬 2008-12-29 5201
12 정립 3-3 다섯가지 세부이론 image 김동렬 2008-12-29 4762
11 정립 3-4 유도이론, 집적이론 image 김동렬 2008-12-29 4477
10 정립 3-5 보편이론, 일반이론, 분류이론 image 김동렬 2008-12-29 6723
9 발전 4-1 극한의 법칙, 자연의 구조 image 김동렬 2008-12-29 5406
8 발전 4-2 사물의 구조, 구조론 사전 image 김동렬 2008-12-29 5017
7 발전 4-3 구조주의 철학, 구조주의 세계관 image 김동렬 2008-12-29 5843
6 발전 4-4 (계속) image 김동렬 2008-12-29 4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