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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017 vote 0 2008.12.29 (13:00:45)

 사물의 구조

자동차의 구조

자동차 계기판에는 연료계≫수온계≫엔진회전계≫속도계≫주행거리계가 있다. 각각 질≫입자≫힘≫운동≫량을 나타낸다. 자동차 내부에 저울이 다섯 개 있으므로 다섯 가지 정보를 보내오는 것이다.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5단계로 구성된다. 이는 내적 정합성에 따른 필연적인 구성이다. 이 다섯 저울들 중의 하나가 부실하면 그만큼 소설의 문학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 질 - 연료계 (주유기로 통제)

◎ 입자-수온계 (시동키로 통제)

◎ 힘 - 회전계 (변속기로 통제)

◎ 운동-속도계 (가속페달 통제)

◎ 량 - 거리계 (브레이크 통제)

자동차의 운행은 다섯 가지 일의 지시로 구성된다. 중요한 점은 이 다섯은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 물리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어떻게든 인간의 손과 발이 직접 접촉해야만 한다.

자전거라 해도 타고(질)≫핸들잡고(입자)≫페달밟고(힘)≫페달돌리고(운동)≫브레이크로 멈추는(양) 다섯 가지 통제가 있다. 연필이라도 쥐고≫세우고≫힘주고≫긋고≫멈추는 통제가 다섯 가지 있다.

활이라도 마찬가지다. 활 쥐고≫화살 메기고≫표적 겨냥하고≫시위 당기고≫시위를 놓는 다섯 가지 통제가 있다. 활은 화살을 쏘고, 연필은 정보를 쏘고, 자동차는 동력을 쏜다는 점에서 구조가 같다.

연필은 글자를 쏘는 활, 자동차는 동력을 쏘는 활, 소설은 이야기를 쏘는 활, 피리는 가락을 쏘는 활, 사랑은 마음을 쏘는 활, 깨달음은 지혜를 쏘는 활이다. 본질은 같다. 세상 모든 구조는 같다.

각별한 점은 요소들이 한 극점에 물려 세팅된다는 데 있다. 좁은 장소에 빼곡하게 물렸다.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안테나처럼 민감하다. 방아쇠처럼 예민하다. 첫 키스처럼 격정적이다. 스위치처럼 반응한다.

건드리면 소리가 난다. 반응을 보인다. 화살이 날고 총알이 튄다. 바르르 떤다. 김기덕 영화 ‘활’이 이야기하듯이. 만유를 보되 거기서 숨은 활의 긴장을, 그 긴장의 밀도를 보아내기에 성공한다면 깨달음이다.   

해시계의 구조

하나의 물체는 ‘광원≫빛≫바늘≫스크린≫그림자’를 가진다. 이는 구조의 기본적인 형태다. 중요한 점은 하늘에 태양만 있다면 막대기든 손가락이든 돌멩이든 뭐든 해시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거다.

해시계가 없어도 해시계는 있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가 해시계다. 우리는 지구라는 이름의 해시계 위에 살고 있다. 마음에도 있다. 태양이 하루에 360도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해시계다.

해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인간의 뇌에 해시계가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정보를 뇌로 들여올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정보를 뇌가 그대로 복제하기 때문이다.

종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귓속에 있는 고막이라는 종이 자연의 종소리를 복제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자연에서 유도되어 온다. 자연에 있는 것은 반드시 대칭되는 짝이 인간의 내부에 하나씩 있다.   

● 자연의 해시계 - 광원≫빛≫바늘≫스크린≫그림자

● 인공의 해시계 - 물체≫수평구조≫수직구조≫눈금영역≫특정눈금

● 마음의 해시계 - 태양≫지구≫지구와 태양의 각≫지구의 자전≫시각

구조가 다섯인 이유는 바탕을 자연에서 가져오기 때문이다. 가져오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도구든 그렇다. 무에서 유가 생겨날 수는 없다. 도장이 정보를 복제하여 옮기듯이 자연의 결을 복제하여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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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컵을 만들더라도 지구라는 컵이 바닷물을 담은 모양을 복제한 것이다. 컵에 물이 든 것은 바닷물이 낮은 곳에 머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력이라는 빛이 멀리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도구는 그릇이다. 해시계이고 활이다. 정교한 장치라 해도 컵 속의 컵이고, 활 속의 활이고, 해시계 속의 해시계다. 구조가 진보하여 저울이 되고 엔진이 되고 컴퓨터가 되어도 본질은 같다.

컴퓨터의 구조

컴퓨터는 처음 전자계산기로 알려졌다. 컴퓨터가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서 지금은 전자계산이라는 좁은 개념의 울타리에 가둘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는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처리한다. 핵심은 처리다.

컴퓨터는 처리한다. 처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외부작용에 맞서 판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한다는 것이다. 일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란 무엇일까? 정보의 정확도다. 정확한 것이 힘이다.

두 배 정확하게 때리거나 두 배 세게 때리거나 결과는 같다. 정확하게 때리지 못하므로 타깃에 정보가 전달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세게 때리는 것이다. 에너지의 강도는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일은 자연에서 주어진다. 집을 짓거나 땅을 파거나 자연에 일이 있다. 자연의 일은 복제될 수 있다. 구조의 핵심을 복제하여 컴퓨터로 넘겨서 일을 처리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린다.

● 복제 - 자연에서 가져오기

● 처리 - 데이터를 판정하기

● 증폭 - 자연으로 되돌리기

일은 3단계 과정을 거친다. 라디오가 방송을 하더라도 처음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기가 복제하고 이를 전파에 실어 안테나로 전송하고 다시 라디오의 스피커로 증폭하여 인간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곡괭이로 땅을 파더라도 그러하다. 곡괭이로 땅을 찍으면 흙의 굳고 무른 정보가 뇌로 전송된다. 뇌 속에 작은 곡괭이가 있다. 뇌 속의 작은 곡괭이질이 팔과 근육의 힘으로 증폭되어 농부의 큰 곡괭이질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컴퓨터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장치다. 데이터는 값이다. 값은 시스템≫구조체≫평형계≫포지션≫값의 전개로 얻어진다. 시스템은 환경과 맞서 저울을 이루고 구조체는 대상을 특정하여 축을 정한다.

평형계가 저울의 두 팔 위치를 잡아주면, 포지션의 팔을 움직여서 판정된 값을 나타낸다. 데이터는 작용반작용에 따른 편차 값이다. 대상이 50인데 작용이 60이면 남는 10이 판정되어 데이터로 표시된다.

● 시스템 - 입력 (받기)

● 구조체 - 저장 (쌓기)

● 평형계 - 제어 (틀기)

● 포지션 - 연산 (풀기)

● 데이터 - 출력 (주기)

데이터를 처리한다는 것은 편차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음식은 입으로 입력되어 편차만큼 항문으로 배설된다. 투수의 공이 타자의 방망이에 입력되면 그 편차만큼 공은 날아간다. 편차가 크면 홈런이다.

인생의 구조

인간은 일한다. 몸으로 드는 중력을 처리하여 운동하고, 입으로 드는 음식을 처리하여 에너지를 조달하고, 코로 드는 숨을 처리하여 열량을 운반하고, 눈으로 드는 빛을 처리하여 사물을 인식한다.

또 마음에 드는 사랑을 처리하여 자식을 낳는다. 작은 일들이 모여 큰 인생을 이룬다. 인생은 무수한 일들의 집합이다. 인생은 활과 같다. 삶이라는 화살을 사랑이라는 과녁에 쏘아보낸다. 명중인가?

● 질은 결합한다 - 궁수와 활의 결합이 활과 화살의 결합으로 복제된다. 이는 다시 화살과 과녁의 결합으로 복제된다. 연속적인 복제가 일어난다.

● 입자는 독립한다 - 독립은 일어섬이다. 궁수가 사선에 서면, 느슨하던 활이 팽팽하게 당겨져 일어서고, 화살도 과녁을 향해 자세를 세운다.

● 힘은 교섭한다 - 궁수와 활의 교섭이, 활과 화살의 교섭을 낳고, 다시 화살과 과녁의 교섭을 낳는다. 역시 연속적으로 복제된다.

● 운동은 변화한다 - 궁수가 팔을 뒤로 당겨 움직인 만큼, 시위도 뒤로 당겨져 움직이고, 화살은 과녁으로 움직여서 진행한다.

● 양은 침투한다 - 궁수의 힘은 활에 침투하고, 활의 힘은 화살에 침투하고, 화살의 힘은 과녁에 침투한다.

첫째 질의 결합은 남녀의 결합과 같다. 둘째 입자의 독립은 남성의 발기와 같다. 셋째 힘의 교섭은 남성의 삽입과 같다. 넷째 운동의 변화는 남성의 사정과 같다. 다섯째 양의 침투는 정자의 침투와 같다.

이런 현상이 모든 구조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수정란의 세포분열은 남녀의 결합을 복제하고, 새끼의 탄생은 수정란의 세포분열을 복제한다. 인간의 삶은 아기의 탄생을 복제한다. 우주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 질은 결합하고  → 아기는 엄마와 결합한다.

◎ 입자는 독립하고→ 소년은 엄마로부터 독립한다.

◎ 힘은 교섭하고  → 청년은 사랑하는 파트너와 교섭한다.

◎ 운동은 변화하고→ 장년은 식구의 수를 늘려간다.

◎ 양은 침투하고  → 주검은 무덤속으로 침투한다.

인생은 화살과 같다. 최초 남녀의 결합에서 난자를 향해 정자를 쏘듯이, 그 과정을 복제하여 수정란의 세포분열로 쏘고, 아기의 탄생으로 쏘고, 소년의 성장으로 쏘고, 청년의 결혼으로 쏜다. 인생은 부단히 쏜다.

구조론 사전

구조는 마음에도 있다. 마음의 구조는 자연의 구조를 복제한다. 이때 뒤집힌다. 자연이 존재론적인 전개를 가지는 데 비해 마음의 구조는 인식론적 전개를 가진다. 그러므로 혼선의 여지가 있다.

추상의 구조는 생각의 구조다. 인간은 언어의 도구로 생각한다. 언어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행동이 나오고, 행동에서 생활이 나오며, 생활이 축적되어 삶을 이룬다. 언어와 생각과 삶의 구조는 일치다.

이에 구조론 사전 개념이 제시된다. 무엇인가? 마음은 자연의 복제본이므로 원본인 자연에 의존한다. 언어의 구조를 규명해 보면 개별 단어에 독립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라고 말해도 누구의 명령인가에 따라 가라는 뜻일 수도 있고 가지말라는 뜻일 수도 있다. 언어의 구조는 액면 그대로 보아서 안 되고 절대적으로 포지션에 따라 재해석해야 한다. 눈치가 있어야 한다.

원본은 진리에 닿아 있다. 거기에 의미의 시스템이 세팅되어 있다. 그 시스템에 개별 단어라는 칼라를 입혀 필요한 만큼 인간이 뽑아 쓴다. 그러므로 개별단어의 의미를 설명한 국어사전은 합리적이지 않다.

빛의 3원색과 같다. 3원색이 원본이다. 3원색을 조합하여 컴퓨터 모니터가 수 백만 색상을 만들어내듯이 언어는 자연에 원본으로 존재하는 의미의 시스템에 사실이라는 칼라를 입혀 온갖 표현을 끌어낸다.

인간의 눈은 간상세포와 원추세포가 세 가지 칼라와 두 가지 명암을 판정한다. 나머지 모든 색깔들은 뇌에 의해 조합된 것이다. 마찬가지다. 언어에도 그 간상세포와 원추세포 역할을 하는 원본이 있다.

모든 의미와 표현의 자궁 역할을 하는 추상 시스템이 있다. 개별 단어에서 합당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포기되어야 한다. 사랑의 의미는 60억 인간에게 60억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진짜가 아니다.

의미는 상수도와 같다. 단어는 컵과 같다. 컵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수도의 물을 컵이 담아내는 것이다. 컵의 색깔을 바꾸면 물빛도 바뀐다. 컵의 형태가 바뀌면 물의 형태도 바뀐다.

그러나 컵에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 체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단어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국어사전의 노력은 컵이 물을 결정한다는 헛된 믿음과 같다. 물은 샘에서 나온다. 샘을 장악하는 것이 구조론 사전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개별적인 삶의 포즈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높은 곳에 진리의 완전성이 있고, 그 완전성에서 유도된 인간의 존엄성이 있고, 거기에 칼라를 입혀 개인다운 삶의 광채를 유도한다.

원본이 있고 복제본이 있다. 진리에 세팅되어 있는 원리≫개념≫가치≫의미≫사실의 입체적 모형이 원본이다. 그 광원에서 나온 빛이 현재의 포지션인 바늘과 반응하여 스크린에 만들어낸 그림자가 언어다.

● 원리≫개념≫가치≫의미≫사실

의미는 원본에서 찾아야 한다. 원본은 공유된다. 사전의 수 만 단어가 하나의 원본을 공유한다. 구조론 사전은 입체적 모형으로 세팅된 원본이다. 샘물과 같다. 인간은 거기서 억만개의 단어를 뽑아 쓸 수 있다.

추상의 구조

하나의 언어는 하나의 판단이다. 문장구조 안에 판정을 내리는 구조의 저울이 숨어 있다. 문장이 주부+술부로 구성된다면 주어가 판정할 대상을 지목하고 술어가 판정된 내용을 표시한다.

하나의 단어 안에도 판정이 있고, 단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문장 안에도 판정이 있다. 언어는 다의성과 함축성을 가지므로 한 단어로 말해도 실제로는 한 문장의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라고 한 단어로 말해도 ‘너는 저리로 가라’의 의미가 있다. 반대로 긴 문장으로 친절하게 말해도 핵심은 ‘가!’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가!’는 동사다. 저울의 판정을 액션으로 나타낸다.

영어와 우리말의 어순은 다르지만 핵심이 저울의 판정을 액션으로 나타내는 동사라는 점은 같다. 동사의 동작은 포지션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나머지 단어들은 동사의 포지션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영어는 주어와 동사를 대칭시킨 다음 동사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동심원을 그리면서 점차 관계의 거리가 멀어지는 형태로 전개되고 우리말은 동심원 중심에 있는 동사를 찾아가는 형태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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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원들은 동사와 관계가 밀접한 정도를 나타낸다. 족보의 촌수와 같다. 어순은 동사와 촌수가 멀고 가까운 정도를 포지션으로 나타내며 언어의 의미는 동사와의 촌수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한국인들이 외국어에 서투른 이유는 그림과 같은 입체적 모형을 머리 속에 세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의미가 단어 내부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동사의 포지셔닝을 잡아주는데 있음을 안다면 쉽다.

언어는 단어에서 문장으로 발전하면서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의 전개에 따라 포지셔닝의 수준을 심화시킨다. 더 정밀하게 포지셔닝 한다. 문장이 지시하는 액션의 주소지를 정확하게 나타낸다.

단어와 문장

언어는 단어에서 문장으로 발전한다. 동사, 주어가 단어라면 진술과 명제와 담론은 문장이다. 동사가 단지 액션이 지시하는 사실만을 나타내는데 비해 주어는 그 액션이 진행하는 경로지정의 의미까지 담아낸다.

● 단어 : 동사≫주어

● 문장 : 진술≫명제≫담론

거기에 더하여 진술은 가치를 담아내고, 명제는 개념을 담아내고, 담론은 원리까지 담아낸다. 액션이 편지의 배달이라면 그 편지의 수신인과 목적지와 주소지까지 한꺼번에 담아내는 것이다.

● 동사 : 사랑해. (동사구-술어)

● 주어 : 사랑은. (명사구-주어)

● 진술 : 사랑은 ~이다.

(명사구+동사구로 이루어진 문장)  

● 명제 : [~가 ~이면][사랑은 ~이다.]

(전제+진술로 이루어진 논리적 문장)

● 담론 : <사랑은 ~이다.><왜냐하면 ~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가 된다.>

(진술≫검증≫사례의 이야기 구조를 갖춘 문장)

언어는 동사≫주어≫진술≫명제≫담론으로 발전하며,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를 반영한다. 그런데 실제로 자연의 액션은 이러한 인식론적 전개와는 반대순서로 일어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 동사 : 자연의 액션을 나타낸다.

*** 주어 : 그 액션의 포지셔닝을 잡아준다.

*** 진술 : 액션이 성립하는 작용 반작용의 대칭구조를 잡아준다.

*** 명제 : 작용반작용에 따라 전제와 진술의 대칭구조로 이루어진 논리구조를 갖춤으로써 외부에서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한 형태의 진술을 명제로 본다.

*** 담론 : 명제에 더하여 검증하고 또 이를 실제의 사례로 재현하여 보임으로써 독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 완결된 형태의 이야기 구조를 담론으로 본다.

사랑의 주소지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쓰되 연대기와 열전을 썼다. 일어난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자 선생의 춘추필법에 따라 적극적인 가치판단을 한다. 열전이 있어야 그러한 담론의 형식이 완성된다.

안다는 것은 표면의 사실≫에서 나아가 이면의 숨겨진 의미≫가치≫개념≫원리를 안다는 것이다. 앎은 판정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판정에 이르는 경로가 있고 판정대상이 있고 목적지와 주소지가 있다.

앎은 액션이다. 내가 때렸다면 주먹이 날아간 경로, 두들겨 맞은 대상, 맞은 장소, 맞게된 배경이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라는 논리의 주소지 안에서 기능하는 것이다.

● 동사≫주어≫진술≫명제≫담론

    ┃    ┃    ┃    ┃    ┃

●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

그러나 국어사전은 표면의 사실을 기록할 뿐이다. 백과사전이 있지만 고유명사와 보통명사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언어들 상호간의 관계를 나타내지 않는다. 동사를 중심으로 구조화된 포지션들을 나타내지 않는다.

언어는 편지다. 겉봉에 주소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말과 영어가 동사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면서 그 동사의 주소를 나타내듯이, 이러한 언어의 구조에 맞게 기술된 사전이 필요하다. 구조론 사전이다.

백과사전은 사랑(love)을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사랑이 인간에게만 있겠는가?

국어사전은 사랑을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설명하지만 관계의 촌수를 나타내지 않으므로 도움이 안 된다. 사랑은 존엄≫자유≫평등≫사랑≫행복의 논리구조 안에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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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지가 있다. 족보가 있고 혈통이 있다. 자궁이 있고 어미가 있다. 원본이 있고 출처가 있다. 행복의 주소지가 사랑이라면 사랑의 주소지는 평등이다. 평등해야 짝지을 수 있고 짝지어야 사랑할 수 있다.

평등의 어미가 자유면 자유의 어미는 존엄이다. 이러한 포지션 구조 안에서 사랑을 이해해야 바르다. 사랑을 안다는 것은 사랑의 포지션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안다는 것은 포지션을 안다는 것이다.

존엄을 모르고, 자유를 모르고, 평등을 모르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존엄은 외부와의 소통을 통한 낳음이다. 자유는 개인의 독립적인 완성이다. 평등은 내적인 소통을 통한 짝짓기다.

인간은 널리 외부와 소통하여 문명을 낳으므로 존엄하고, 그 문명은 개인의 자유에 의해 보존되고, 그 자유로운 개인의 독립이 평등한 짝짓기를 성공시키고, 그렇게 짝지어야 비로소 사랑할 수 있다.

평면적인 사랑이 아니라 입체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그 사랑의 토대를 알고, 그 사랑의 접근경로를 알아야 한다. 국어사전은 평면적인 기술을 위주로 할 뿐, 사랑의 입체적 모형을 제시하지 못한다.

언어는 판정한다. 판정하는 저울이 있다. 저울의 작동을 중심으로 기술해야 바르다. 사랑은 하나의 판정이다. 저울의 눈금이 기울어 ‘사랑한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누가 왜 어떻게 이러한 판정을 내렸을까?

사랑은 액션이다. 사랑이 화살이라면 누가 그 화살을 쏘았을까? 화살이 맞히려는 표적은 무엇인가? 존엄이라는 사수가, 자유라는 활에, 평등이라는 시위를 당겨, 행복이라는 표적을 향해, 사랑의 화살을 쏜 것이다.

동사가 중심이다. 사랑이 중심이다. 행복은 사랑이라는 액션의 결과다. 평등과 자유와 존엄은 추상이다. 추상은 구상의 포지션을 잡아준다. 사랑을 중심으로 동심원들의 포지션 구조 속에서 관계를 이해해야 바르다.

      ≪ 추상 - ●  - 구상 ≫

●   질≫입자≫ 힘≫ 운동≫ 량 (운동이 액션이다.)

● 존엄≫자유≫평등≫사랑≫행복 (사랑이 액션이다.)

국어사전이 연대기라면 구조론 사전은 열전이다. 모든 인물의 열전을 쓸 수는 없으므로 몇몇 대표어의 열전을 쓴다. 나머지 단어들은 구조론 사전의 샘터에서 의미와 가치, 개념과 원리를 얼마든지 뽑아 쓸 수 있다.

언술의 전개

추상의 구조는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다. 사실은 겉으로 드러나고, 의미는 연결하고, 가치는 짝짓고, 개념은 통합하고, 원리는 낳는다. 원리가 자궁이다. 단어, 구, 명제, 진술, 담론은 이 순서로 발전한다.

● 개념의 발전 -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                   

문제는 순서다. 인식에 반영되는 집적순서와 자연의 작동하는 전개순서는 상반된다. 자연에서는 낳음이 먼저다. 자궁이고 모태다. 원리에서 개념이 나오고 뒤이어 가치, 의미, 사실 순으로 전개된다.

● 개념의 작동 - 원리≫개념≫가치≫의미≫사실

그러나 인간은 눈, 귀, 코, 입, 몸으로 사실을 수집한다. 사실을 연결하여 의미를 찾고, 의미를 짝지어 가치를 얻고, 가치를 통합하여 개념을 잡고, 개념의 자궁을 추적하여 원리를 발견한다.

● 인간의 지식 - 수집하기≫연결하기≫짝짓기≫통합하기≫자궁찾기

원리에 도달해야 완전하다. 원리를 찾아가는 길이 구조다. 원리의 세팅을 통한 미학적 재현이 깨달음이다. 과학은 표면의 사실을 구하고, 철학은 이면의 원리를 구하고, 미학은 현장의 실천으로 재현한다.   

담론의 형식은 진술≫검증≫사례다. 과학의 사실에서 진술을 얻고, 철학의 원리에서 주소지를 찾아 검증하고, 미학의 실천에 의해 사례가 재현된다. 깨달음은 과학과 철학과 미학을 하나의 논리구조로 통합한다.  

● 과학의 사실 - 드러난 사실을 확보한다.

● 철학의 검증 - 드러난 사실의 주소지를 확인한다.  

● 미학의 실천 - 이를 현장에서 사례로 재현하여 보인다.

아는 것은 검증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과학을 철학화하고, 철학을 미학화하여 인식의 사이클을 완성한다. 완성될 때 전파된다. 공명한다. 응용된다. 낳는다.

깨달음의 공유

보이는 것은 모두 복제본이고 원본은 따로 있다. ‘아! 그렇구나’ 하고 사실을 알아채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원본이 되는 모형의 입체적 모델링과 시스템의 유기적 시뮬레이션을 내 안에서 완성해야 깨달음이다.

어떤 사실을 깨닫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보편진리 안에서 개별적 사실의 주소를 찾아 절대경로를 완성할 때,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미학적 실천을 통한 상대경로의 짝짓기를 성공할 때 깨달음은 완성된다.

깨달음은 소통의 언어를 공유함이다. 모니터의 수백만 색상이 빛의 3원색을 공유하듯이, 수만 단어가 구조론 사전의 입체적 모형을 원본으로 삼아 공유하듯이 깨달음은 인류의 집단지능으로 공유된다.

나의 깨달음이 너의 깨달음과 공명하여 공동체적인 삶의 모럴을 완성하고, 더 나아가 문화의 양식을 완성시켜 널리 세상과 소통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실천이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은 그 세계로 가는 단서를 얻었다는 정도의 의미 뿐이다. 그 세계의 출입문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초발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문 안쪽으로 성큼 내딛어야 한다.

무엇보다 깨달음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깨달음에 토대를 둔 공동체적인 삶의 모럴과 문화양식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본을 건설하고 복제본을 낳아내기다. 커다란 낳음의 자궁을 건설하기다.  

언어는 그림자다. 상황이 진짜다. 언어는 자연의 상황을 복제한다. 상황에서 의미가 유도된다. 언어는 보조수단이다. 깨달음은 상황에서 동심원들의 포지션을 꿰는 그 자체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깨달음은 실천이다. 상황은 움직일 때만 포지션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미학이다. 미학은 양식이고, 양식은 작용과 반작용, 주인과 손님의 대칭성을 반영한다. 그 대칭성이 상황의 포지션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언어에는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의 포지션이 있다. 사실은 배워야 하지만 그 사실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의미, 가치, 개념, 원리는 상황을 읽고 포지션을 꿰는 깨달음에 의해 도달된다. 직관되고 통찰된다.

아기는 문법을 배우지 않는다. 상황을 읽고 그 안에서 포지션을 꿰어 그냥 안다. 한 번 패턴을 완성하면 어디에나 적용된다. 언어 안에 전부 갖추어져 있다. 언어를 완성할 때 깨달음에 도달된다.

깨달음은 언어를 버려서 그 언어의 본래를 회복한다. 인간은 언어로 소통하지만 실제로는 상황으로 소통한다. 언어는 상황을 끌어내는 도구다. 상황의 동심원들이 연출하는 포지션에서 소통은 완성되어 있다.

언어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의미에 단어를 입힌 것이다. 언어는 옷과 같다. 얼마든지 갈아입을 수 있다. 의미는 몸과 같다. 자연의 일부로서 원래부터 존재한다. 의미는 불변한다. 원본이니까.

구상과 추상이 있다. 구상이 사실이면 추상은 의미다. 의미에서 가치로 개념으로 원리로 나아갈수록 추상성은 심화된다. 흔히 구상이 확실하고 추상은 불확실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그 반대다.

단어에는 의미가 없다. 의미는 추상구조 안에 세팅되어 있다. 추상의 추(抽)는 뽑아낸다는 뜻이다. 핵심만 뽑았기 때문에 확실하다. 빛의 3원색처럼 확실하다. 복제본이 아니라 원본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구상이 오히려 불확실하다. 같은 빛깔이라도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구상은 양이고, 양은 침투하며, 구상은 침투대상에 따라 상대성을 나타내므로 불확실하다. 빨간 것도 밤에 보면 까맣게 보인다.  

현대미술의 한 가지 경향은 개념미술이다. 어렵다고 한다. 사실에서 의미로, 가치로, 개념으로, 원리로 갈수록 어렵다고 여겨진다. 착각이다.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단순해진 것이다. 근본으로 갈수록 단순해진다.

단순해져야 판정하는 저울이 보인다. 개념미술은 계에 밀도가 걸렸을 때 부분이 바뀌면 전부 바뀌는 스타일의 본질을 드러낸다. 선수 한 명이 빠지면 포지션이 전부 바뀌는 것이다. 그 밸런스의 포착이 중요하다.

추상성은 구체성의 주소지다. 구체적 사실이 깃들어 사는 집이다. 그것은 포지션이며, 작용반작용의 대칭구조이며, 내적 정합성을 이루는 상호관계다. 선수는 없어도 포지션은 존재하듯이 추상은 불변한다.  

   

원리의 바다에 개념의 배가 뜨면, 가치의 방향타를 잡고 의미의 돛을 펼쳐 사실의 항해를 한다. 거기에 이름을 부여하면 언어다. 어떤 이름을 부여하든 그 바다와 배와 방향타와 돛과 항해는 엄연하게 존재한다.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바다는 움직이지 않아도 배는 움직인다. 배는 움직이지 않아도 방향타는 움직인다. 방향타는 움직이지 않아도 돛은 펄럭인다. 돛은 움직이지 않아도 관성에 따라 항해는 계속된다.

추상은 바다처럼 확실하고 구상은 매일 갈아입는 옷처럼 변한다. 구상을 확실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구상이 인체와 직접 접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접촉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수상한 것이다.

마술사가 관객을 속인다. 눈으로 보기 때문에 속는다. 직접 접촉하므로 속일 수 있다. 추상은 원본이 따로있기 때문에 속일 수 없다. 지갑의 현찰로 속일 수 있어도 은행의 계좌로는 속이지 못하듯이.

인간은 추상에 약한 존재다. 머릿 속에 입체적 모형을 그리지 못하니까. 패턴을 읽지 못하고, 로직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메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하고, 패러다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 팩트≫패턴≫로직≫메커니즘≫패러다임

           구상≪-≫추상

구상이 팩트면 추상은 패턴이고 로직이고 메커니즘이고 패러다임이다. 팩트로 갈수록 구체적이고 패러다임으로 갈수록 고도화된 추상이다. 추상이 주소처럼 확실한데도 추상을 어렵게 여긴다면 인문학의 실패다.

◎ 패러다임.. 원리의 바다 (하나가 변하면 전체가 변한다)

◎ 메커니즘.. 개념의 배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

◎     로직.. 가치의 방향타(한 지점에 여러 선택지가 물려있다.)

◎     패턴.. 의미의 돛   (공통되는 요소가 있다.)

◎     팩트.. 사실의 항해 (겉으로 드러난다.)

바다는 단순하다. 단순함 안에 질서가 있다. 그 질서를 포착하는 재미가 있다.  하나가 바뀌면 전체가 다 바뀌도록 세팅된 것이 패러다임이다. 개념미술에는 그러한 패러다임의 성질이 반영되어 있다.

존재의 주소지

국어사전은 [많다]를 ‘수효나 분량, 정도 따위가 일정한 기준을 넘다.’로 설명한다. 이래서는 ‘많다’의 포지션을 알 수 없다. 촌수를 알 수 없고 족보를 알 수 없다. 뿌리를 알 수 없다.

많다는 길다, 넓다, 크다, 무겁다 사이에서 인식되어야 바르다. ‘많다’는 궁극적으로 질량을 해체한 것이다. 무게를 자르면 크기가 나온다. 크기를 자르면 너비가, 너비를 자르면 길이가, 길이를 자르면 수량이 많아진다.

● 물질 -  질 ≫입자≫ 힘 ≫운동≫ 량

           ┃    ┃    ┃    ┃    ┃

● 해석 - 무게≫크기≫너비≫길이≫수량

      

‘많다’는 존재를 해석하는 경로 중 하나다. 존재의 경로는 질≫입자≫힘≫운동≫량에 따라 질량의 무겁다≫입자의 크다≫힘의 넓다≫운동의 길다≫양의 많다 순서로 차례대로 해석된다.

존재의 해석방법은 다양하다. 운동이라면 시간개념을 대입시켜 ‘빠르다’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빠르기 역시 움직여간 거리를 측정하여 확보되므로 ‘길다’의 세부적인 해석에 속한다.

이 원리가 중요한 이유는 힘의 ‘넓다’로 힘의 작동원리를 알기 때문이다. 넓다는 ‘면적이 넓다’가 아니라 흔히 ‘저변이 넓다’는 표현을 쓰듯이 하나의 지점에 동시에 맞물려 있는 변수의 수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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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골반에는 두 다리가 맞물려 있다. 하나의 삼각뿔에는 세 각이 맞물려 있다. 하나가 변하면 딸린 식구들이 연동되어 함께 변한다. 동시에 맞물려 있는 변수의 수가 많을 때 큰 힘이 유도된다.

많이 거느린다는 것은 많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부하가 많을수록 권력이 강하다. 식구가 많을수록 가장의 힘은 크다. 돈만 많은 사람과, 많은 인맥과 많은 경험에 많은 지혜를 더한 사람 중 누가 셀까?

하나의 지점에 동시에 물린 변수의 차이에서 힘의 낙차가 유도된다. 정육면체의 모서리는 세 각이 동시에 한 지점에 물려 있다. 그러므로 힘이 크다. 그것이 넓이다. 이러한 본질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 원리-패러다임-4차원 - 밀도 - 질량

● 개념-메커니즘-3차원 - 입체 - 부피

● 가치 - 로직 - 2차원 -  각  - 접점

● 의미 - 패턴 - 1차원 -  선  - 길이

● 사실 - 팩트 - 0차원 -  점  - 갯수

많이 물려 있다는 것은 많은 역할을 가지는 것이며 외부로 통하는 많은 창구를 가지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세력이 크다. 활동 무대가 넓고 저변이 넓다. 그냥 서 있는 사람보다 기둥을 잡고 버티는 사람이 세다.  

구조론 사전은 동사를 중심으로 동심원 구조를 이루는 포지션들로 존재의 주소지를 나타낸다. 우편주소는 도≫시≫동≫번지≫사람이다. 언어의 주소는 원리≫개념≫가치≫의미≫사실이다.

● 원리 - 낳기   (주소지 - 자궁이 낳는다.)

● 개념 - 합치기 (타이틀 -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

● 가치 - 짝짓기 (메뉴   - 다양한 외부 변수와 맞물린다.)

● 의미 - 잇기   (링크   - 떨어져 있는 둘을 잇는다.)

● 사실 - 나타내기(이미지- 자연의 사실로 나타난다.)

우편물이 사람을 찾아가듯이 언어는 사실을 찾아간다. 구조론 사전은 국어사전이 포착하지 못하는 단어들의 도≫시≫동≫번지≫사람을 구분한다. 그러나 사전의 모든 단어에 일일이 주소를 찍어줄 필요는 없다.

원본 하나만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으면서 필요한 때 뽑아쓰면 된다. 모든 단어에 주소지가 있고, 타이틀이 있고, 메뉴가 있고, 링크가 있고, 이미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기만 하면 그만이다.

익스플로러라도 그렇다. 구조론이 존재의 경로를 해석한다면 익스프롤러는 웹의 경로를 해석한다. www로 시작되는 주소가 있고 타이틀이 있고 메뉴가 있고 링크가 있다. 텍스트도 낱낱의 글자는 이미지다.

국어사전이 모든 웹사이트의 웹문서를 낱낱이 모아놓은 것이라면 구조론 사전은 검색어만 치면 그때 그때 찾아서 모니터에 뿌려주는 방식이다. 하나의 원본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만유는 저울이다. 원리는 저울의 물체에 질량을 주는 중력이다. 개념은 그 중력을 대표하는 저울의 받침대다. 가치는 짝지은 천칭의 두 접시다. 의미는 접시가 기울어 움직이는 거리다. 사실은 그 접시에 놓인 물체다.  

만유는 저울이므로 존재는 판정한다. 판정하는 저울의 동작이 원본이면 그 저울이 만들어내는 정보의 동작은 복제본이다. 존재론이 원본이고 인식론은 복제본이다. 둘의 순서는 상반된다.

● 존재론 - 자연의 저울이 작동하는 순서다. 큰 동심원에서 작은 동심원으로 범위가 좁혀지며 점점 구체화된다. 도≫시≫동≫번지≫사람으로 범위를 좁히며 수신자를 찾아간다.

◎ 배경.. 낳기    - 아기를 낳는다.

◎ 실체.. 하나되기- 엄마로부터 독립한다.

◎ 연관.. 짝짓기  - 자라서 결혼, 취업, 진학, 교제한다.  

◎ 이행.. 잇기    - 다양한 형태로 세상과 나를 잇는 라인을 건설한다.

◎ 귀결.. 나타나기- 세상앞에서 뾰족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 인식론 - 저울이 생산한 정보가 전달되는 순서다. 작은 동심원에서 큰 동심원으로 범위가 넓어지며 추상화된다. 사람≫번지≫동≫시≫도로 점점 범위를 넓히며 포지션을 잡는다.

◎ 지각.. 나타나기- 이성을 발견

◎ 수용.. 잇기    - 이성과 데이트

◎ 분석.. 짝짓기  - 이성과의 결혼

◎ 종합.. 하나되기- 이성과의 섹스

◎ 응용.. 낳기    - 가족의 탄생

존재론은 사건의 주체를 보고 인식론은 복제된 관계를 본다. 존재론은 하나를 보고 인식론은 둘 사이를 본다. 존재론은 빛을 보고 인식론은 그림자를 본다. 존재론이 원본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삶의 주소지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생활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면 인생도 달라진다.’ 장미란 선수가 강연에서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행동≫습관≫생활≫인생의 전개가 돋보인다. 이는 구조론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생각 다음에 행동이고, 행동이 쌓여 습관이고, 습관이 모여 생활이고, 생활이 통일되어 인생이다.

그냥 단어들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순서가 있다. 언어들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 부자관계도 있고 부부관계도 있다. 붙어다니는 짝도, 멀리하는 원수도 있다. 촌수가 있다. 1촌도 있고 2촌도 있다.

생각≫행동≫습관≫생활≫인생의 전개에서 보듯이 인간의 삶은 일정한 모형을 가지고 있다. 입체적 모형 안에 여러 포지션들이 있다. 그 포지션들 중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게 세팅되어 있다.

투수나 포수 중에서 하나를 빼고 시합을 할 수는 없다. 감독도 심판도 관객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종교는 확실히 비과학이지만 인간의 삶에 종교의 포지션이 존재하는 이상 종교의 기능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확실한 대체재 없이 부정하면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종교를 반대한다는 마르크스주의가 대신 종교 행세를 하는 예가 그러하다. 그 경우는 더욱 위험하다. 확실한 미학의 대안이 필요하다.

언어는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의 전개를 가진다. 이에 따라 인간의 삶은 경험≫인식≫판단≫행동≫생활로 대응한다. 이는 사회에서 과학≫철학≫사상≫이념≫미학(종교)로 나타난다.

●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

● 경험≫인식≫판단≫행동≫생활

● 과학≫철학≫사상≫이념≫미학(종교)

왜 종교(미학)인가? 인간의 삶이 일관성을 원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무수한 사건들의 집합이다. 그 사건들에 대응하여 역할한다. 주어진 배역에 따라 연기한다. 신사의 역할, 시민의 역할, 가부장의 역할이 있다.

개별 사건들이 서로 모순될 때 위화감을 느낀다. 어색해진다. 부자연스럽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막걸리를 먹는데 갑자기 양주를 들이대면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술이 바꾸면 안주도 바뀌어야 한다.

삶은 되도록 조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문화가 있고 양식이 있다. 양식을 낳는 미학이 있다. 미학이 발달하여 있지 못하므로 종교가 미학을 대신한다. 모든 종교에는 얼마간 미학이 반영되어 있다.

불교에는 불교미학, 기독교에는 기독교 미학으로 양식화되어 있다. 그러나 종교의 미학들은 불완전하다. 시대가 변하고 인간의 삶이 바뀌므로 불완전하다. 미학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깨달음이다.  

종교는 믿음에 기반을 둔다. 믿음은 앎에 대해서 믿음이다. 앎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믿음이다. 무엇인가? 인식은 판단을 낳고 판단은 행동을 낳는다. 그런데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과 행동을 해야할 때가 많다.

아기는 엄마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른다. 어떻든 엄마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갓난 아기가 엄마에게 ‘내게 젖을 주려는 거야 독을 주려는 거야?’하고 의심하는 일은 없다.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행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을 종교가 제공하고 있다. 이를 깨달음에 기반한 미학적 생활양식으로 대체해야 한다.

● 사실은 - 경험과 과학을 따르고

● 의미는 - 인식과 철학을 따르고

● 가치는 - 판단과 사상을 따르고

● 개념은 - 행동과 이념을 따르고

● 원리는 - 생활과 미학(종교)을 따른다.

왜 이 점이 문제가 되는가? 인간은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지만 이는 인식론의 전개일 뿐, 실생활에서 인간은 반대로 행동한다. 인간은 먼저 생활한다. 그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 행동을 실천하기 위해 판단한다. 그 판단을 옳게 하기 위해 인식한다. 그 인식을 위해 경험한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먹다보니 사는 것이다. 삶이 먼저다. 행동이 먼저다.

인간은 알고 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행하기 위해 알려고 하는 존재다. 인간은 어떤 목표만 던져주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알아보지도 않고 우르르 몰려가는 존재다. 역할만 던져주면 달려든다.

고양이는 놀이개를 흔들면 달려들고, 개는 뼈다귀를 던져주면 달려가고, 인간은 목표를 주면 덤벼든다. ‘저 여자가 마녀다.’ 고 외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몰려간다. 행함이 먼저다. 그러므로 종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상과 이념은 비슷하게 쓰이지만, 여기서는 과학≫철학≫사상≫이념≫미학의 순서로 포지션을 구분한다. 사상은 판단이고 이념은 행동이다. 판단은 혼자 할 수 있지만, 행동은 혼자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행동에는 항상 상대가 있고 그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판단과 행동은 일어난 특정 사건에 한정되지만 생활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생활은 하루 24시간 내내 문제가 되고 탄생부터 죽음까지 계속 문제가 된다. 그런데 사상과 이념은 인간을 24시간 통제하지 않는다. 만약 24시간 통제하려 든다면 그게 종교다. 마르크스교가 그러하다.

종교를 대체하려면 깨달음이 필요하고, 삶의 양식이 필요하고, 미학이 필요하다. 그것은 경험≫인식≫판단≫행동≫생활의 사이클을 통일하는 것이다. 하나의 기준에 맞추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간다.

그래야 어색하지 않다. 불안하지 않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완전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신(神)에 대한 개념으로 나타난다.

당신이 신의 존재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상관없이 진리의 완전성 그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경험을 인식의 동그라미 안에 가둘 수 있고, 인식을 판단의 영역 안에 갈무리할 수 있다.

판단을 행동에 옮길 수 있고, 그 행동이 생활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 허둥대지 않고 일관될 수 있다. 미학적인 삶의 양식을 완성할 때 존엄에 이른다. 모든 것은 그 안에서 가능하다.

구조론 사전의 의미

구조론은 많은 단어들을 새롭게 정의하여 쓴다. 단어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려 하면 실패다. 단어에는 고유한 의미가 없다. 의미는 추상의 구조 안에 세팅되어 있고 거기서 필요한 만큼 뽑아 쓴다.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없다. 사랑은 원리≫개념≫가치≫의미≫사실로 전개되는 추상구조 안에서, 인간의 생활≫행동≫판단≫인식≫경험에 따라, 존엄≫자유≫평등≫사랑≫행복으로 펼쳐진다.

● 원리-     입체적 모형은 존엄 : 생활은 미학적 삶의 양식.

● 개념-모듈화된 타이틀은 자유  : 행동은 독립적인 일의 1 단위.

● 가치-   짝짓기의 메뉴는 평등 : 판단은 다각적인 접촉면 확보.

● 의미-   링크의 포지션은 사랑 : 인식은 서로 다른 둘을 연결.

● 사실-       추출된 값은 행복 : 경험은 사람마다 다른 칼라.

사랑의 의미는 이러한 구조 안에서 나타난다. 존엄 - 생활에 삶의 미학이 없는, 자유 - 행동에 독립성이 없는, 평등 - 세상과 맞서는 다각적인 접촉면이 없는 사람의 사랑은 엷은 것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생활이 신(神)의 완전성에 기반한 미학적 양식을 얻어, 입체적 모형을 이루므로 존엄하다. 존엄은 낳음이다. 그 입체적 모형이 창조의 자궁을 이루어 무수한 삶의 국면들을 낳으므로 존엄하다.

그리고 삶 안에서 개별적 행동은, 여러 동기가 모듈화되어 독립적인 일의 단위를 이루므로 자유가 소중한 것이다. 자유 없이는 모듈화에 실패하여 삶이 파편화되므로 인간에게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 행동을 위한 짝짓기의 판단은, 직업의 선택이든, 배우자의 선택이든, 진학의 선택이든, 여러 경우의 수가 평등한 하나의 지점에 물려 다양한 접촉면을 가지므로 널리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랑은 너와 나를 잇는다. 그 연결은 그러한 다각적인 접촉을 실현시키는 평등한 사랑이어야 진짜다. 행복은 그 사랑의 실천에 따르는 보상일 뿐이다. 이러한 추상의 구조 안에서 사랑을 이해해야 바르다.

● 존엄의 무거운 밀도≫ 진리가 배달한 내 안의 완전성을 찾는다.

● 자유의 커다란 입체≫ 대등한 눈높이에서 독립적인 나를 완성한다.

● 평등의 너른 접촉면≫ 내 다양한 가능성으로 네 가능성의 전부와 만난다.

● 사랑의  긴 선 (線)≫ 나의 최선을 다하여 너의 최선을 끌어낸다.

● 행복의 많은 점(點)≫ 사랑의 실천에 의하여 보상되는 결과다.

면은 인식론의 상대경로 개념이고 각이 정확하다. 평등한 짝짓기를 위해서는 세상과의 다각(角)적인 접촉면(面)이 필요하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너와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야 한다.

사랑은 나의 최선으로 너의 최선을 끌어내기다. 너와 나의 다각적인 짝짓기, 다면적인 소통에 의해서 가능하다. 일면의 소통에 치우친다면 진정한 사랑은 불가. 독립적인 너와 나의 완성으로 가능하다. 그것이 자유다.

부모로부터, 환경의 모든 제약으로 부터 독립하여 자유로워야만 다각적인 짝짓기의 접점 확보는 가능하다. 그것은 존엄에 의해 얻어지며, 깨달음에 기반한 미학적 삶의 양식의 완성에 의해 존엄은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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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표현된 사랑, 평등, 자유 등의 의미는 구조론 사전의 논리공식 안에서 유의미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국어사전의 어휘들도 이러한 논리구조 안에서 새롭게 그 포지션과 의미가 정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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