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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013 vote 0 2008.12.29 (12:58:06)

결정론에서 구조론으로

뉴턴 이래의 기계론, 결정론적 사고방식은 세상을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로 본다. 데카르트 이래 근대철학 및 과학적 방법론의 기본바탕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환원주의 세계관이 이를 뒷받침한다.

요소환원주의는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라는 전제로 전체를 부분으로 환원시킬 수 있고, 결과를 원인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시각이다. 자동차를 분해하여 부품들의 집합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견해다.

이는 불능이다. 부품들을 조립하는 과정에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조립된 자동차는 부품들의 질서에 관한 정보를 가진다. 부품 하나하나가 자기 포지션을 가진다. 이는 부품들의 집합에는 없었던 것이다.

자동차를 분해하면 조립과정에 소비된 에너지가 회수되지 않는다. 부품들의 포지션에 관한 정보가 폐기되어 사라진다. 에너지와 정보의 손실분을 감안하면 부분의 합은 항상 전체보다 작다.

요소환원주의 관념은 폐기되어야 한다. 이에 연동된 기계-결정론 및 근대철학과 과학의 방법론은 통째로 부정되어야 한다. 세상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 인과율≫요소환원주의≫원자론≫기계-결정론≫근대 과학의 방법론

존재는 고착된 기계가 아니라 성장하는 생명이다. 성장판이 열려 있다. 열린 성장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작용반작용이 성립한다. 존재는 작용측 정보뿐 아니라 반작용측 정보에 의해서도 통제된다.

확률개념이 필요하다. 인과율은 작용측의 정보만 본다. 주사위의 무게나 각도가 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공기입자의 움직임이 주사위의 눈을 결정한다. 반작용측의 정보를 고려하는 것이 확률이다.

시계는 태엽에서 바늘까지 톱니바퀴들이 일직선으로 배치된다. 세상이 시계와 같다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의 값을 계산하여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미래의 값을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예측할 수도 있다.

구조론은 기계적 맞물림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장판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시계 속에 진자가 있다. 진자는 맞물려 있지 않기 때문에 환원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미래는 전혀 결정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언제 결정되는가다. 결정론이 과거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견해인데 반해 구조론은 매 단위에서 새로이 결정한다는 견해다. 그러므로 환원시킬 수 없다. 결정과정에서 일부 정보가 폐기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조립하면서 즉석에서 부품을 깎아서 쓰기 때문에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 구조의 성장판은 열려 있고 현장에서 즉결처분이 일어난다. 프로그래밍 된 대로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오류를 시정한다.

왜인가? 정보의 증폭 때문이다. 거대한 행성이 충돌하더라도 핵심적 결정은 작은 분자단위에서 일어난다. 전축의 바늘처럼 미세한 범위에서 진로를 판단한다. 그다음 주변 환경과 맞추기 위해 스피커로 증폭한다.

작은 파도가 모여 큰 너울을 만들듯이, 하나의 방송국이 수천만 개의 라디오를 통제하듯이 구조는 진로를 결정한 다음 환경과 조화되게 증폭시킨다. 증폭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맞물리지 않아야 한다.

귀가 소리를 듣고 눈이 칼라를 보는 것은, 소리나 빛이 뇌로 침투하기 때문이 아니라 얻은 정보를 뇌 안에서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뇌가 정보를 해석하면서 모자라는 자투리를 보완하므로 착시가 일어난다.

구조원리는 대칭원리다. 대칭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대칭되지 않을 때 보완한다. 보완과정에서 정보가 폐기되거나 추가된다. 정보가 중간에서 폐기되므로 결정론의 사전결정은 불능이다.

구조론에서 수학으로

자궁이 없이 태어난 아기는 없다. 모든 존재는 유도된 존재이며 그 유도과정에서 성립한 자신의 주소지를 가진다. 측량사가 토지를 측량하듯이 수학은 그 사물들의 주소를 계측해낸다.

구조론은 존재의 주소지가 결정되는 원리다. 모든 존재는 자기 포지션을 가진다. 발생과정에서의 족보를 따라 정해진 절대경로가 있고, 현재위치에서 짝짓기에 의해 정해진 상대경로가 있다.

주소가 불확실하면 오류다. 한의학이나 연금술 혹은 여타의 비과학적인 견해들이 그러하다. 주소가 없거나 불명하다. 과학은 주소를 묻는다. 정체를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 이름이나 배우자 이름을 대서 정체를 밝힐 수 있다. 부모 이름을 대는 것이 절대경로이고 배우자 이름을 대는 것은 상대경로다. 한의학이나 연금술, 미신, 종교 따위는 부모와 배우자의 이름을 댈 수 없다.

주소를 말할 수 없고 신분을 밝힐 수 없다. 과학의 부모는 수학이다. 수학의 부모는 구조론이다. 구조론의 부모는 자연이다. 자연이 구조를 낳고 구조가 기하를 낳고 기하가 대수를 낳고 대수가 과학을 낳는다.

어떻게 낳아졌는가? 산은 솟아서 낳아지고 물은 흘러서 탄생하였다.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간적 사건이다. 모든 존재는 어떤 구조적 결정과정을 거쳐서 존재한다. 그냥 존재하는 것은 원래 없다.

공간적 대칭에서 복제가 결정되고 시간적 진행에서 증폭이 결정되어 존재를 구축한다. 아기의 탄생과 같다. 수정란의 복제는 공간의 결정이다. 아기가 열 달 동안 자궁에 머무름은 시간의 증폭이다.

● 절대경로(공간복제)-지렛대 각도는 구조의 대칭성을 복제한다.

● 상대경로(시간증폭)-지렛대 길이는 주변환경과 짝지어 크기를 맞춘다.  

바위는 용암이 굳어서 형태가 결정되고 흙은 바위가 부서져서 형태가 결정된다. 구조론은 그러한 결정과정을 해명한다. 절대경로와 상대경로의 성립과정을 해명한다. 수학은 그렇게 확정된 포지션을 계측한다.

구조론은 기하의 기본원리인 등방성-대칭성이 자연의 작용반작용에 의해 유도되는 과정을 해명한다. 구조론은 대수의 1이 작용반작용의 평형에 의해 얻어지는 과정을 해명한다. 대수학은 그 결정된 1로 연산한다.

구조론은 대수와 기하의 무정의요소들인 ‘0, 1, (+,-), (*,/), =’와 ‘점, 선, 각, 입체, 밀도’를 해명한다. 자연이 심고, 구조가 잉태하고, 기하가 낳고, 대수가 키우고, 과학이 최종적으로 수확한다.

우리는 손가락을 꼽아 수를 셈하지만 손가락을 꼽는 과정에 이미 기하의 대칭원리가 적용된다. 사과가 열이면 손가락도 열이다. 손가락과 사과가 1 대 1로 정확히 대칭되어 평형을 이룬다.

 

사과와 손가락의 대칭에서 이미 ‘직선은 두 점을 가장 빠르게 연결한다.’라는 직선의 정의가 사용되고 있다. 모든 대수는 기하의 유도를 거친다. 마찬가지로 모든 기하는 반드시 구조론의 판정을 거친다.

2+2와 2*2는 다르다. 연산한 값은 같지만 포지션이 다르다. 주변과 동시에 물린 수가 다르다. 덧셈이 선이면 곱셈은 각이다. 덧셈의 짝짓기는 앞뒤와 물려 있을 뿐이지만 곱셈의 심과 날은 좌우로도 물려 있다.

덧셈보다 곱셈이 밀도가 높다. 더 많은 링크가 걸려 있다. 자릿수 0은 그 차이를 드러낸다. 하나의 포지션이 몇 개의 변수와 물리는가다. 1에서 10은 선으로 나열되지만 10~100은 면, 1000은 입체로 그려진다.

가로*세로*높이 각 10의 입방체로 1000단위가 그려진다. 밀도를 안다면 1만 단위까지 시각화가 가능하다. 입방체에서 각 단위 □ 속에 10이 들어가면 밀도가 성립한다. 숫자 1만이 1개의 그림으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점은 위치를 알 수 없으므로 0이다. 위치가 특정되려면 다른 점과 이어 선을 이루어야 한다. 그럴 때 앞뒤가 생겨서 포지션을 얻는다. 우리는 보통 면 위에 점을 찍으므로 위치가 있지만 순수한 점은 그 위치가 없다.

밀도는 미적분의 개념에 근접한다. 입방체에 시간이나 가속도, 움직임 등의 변수가 추가되면 미적분으로 해석한다. 이 경우도 통합적 모형으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셈할 수 있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을 때도 큰 불편 없이 살았다. 그러나 그 수준으로 달에 로켓을 보낼 수는 없다. 0을 몰라도 셈할 수 있고 포지션을 모르고도 인류는 이만큼 왔지만 더 나아가려면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구조론과 포지션 5

구조론은 5로 전부 설명된다. 5는 완성을 뜻한다. 산술 개념의 5가 아니라 입체 개념의 5다. 1은 값, 2는 대칭, 3은 평형, 4는 집적, 5는 완성을 의미한다. 완성되면 통한다. 통하면 낳는다. 낳으면 발전한다.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는 시작과 끝을 바라볼 뿐 완성의 개념이 없다. 소통의 개념이 없다. 낳음의 개념이 없다. 진보의 개념이 없다. 발전이 없다. 앞과 뒤만 아는 선형사고다. 비선형 사고로 발전해야 한다.

입체를 넘어 밀도에 닿아야 완전하다. 1은 사람, 2는 길, 3은 길목, 4는 집, 5는 도시다. 도시가 건설되면 밖으로 길이 열려 물류가 소통된다. 식량과 연료가 조달되면 잉여를 낳아 축적한다. 번창한다.

1은 잎, 2는 가지, 3은 줄기, 4는 뿌리, 5는 흙이다. 잎은 가지에 의지하고, 가지는 줄기에 기대고, 줄기는 뿌리에, 뿌리는 대지에 기댄다. 대지는 태양과 맞서고 강물과 맞선다. 밖으로 창을 낼 수 있다.

나무는 대지에 의지했을 때 비로소 외부에서 햇볕과 물을 조달할 수 있다. 종래의 기하학에서 말하는 점, 선, 면, 입체 개념은 그러한 생명체의 진화와 문명의 발전, 우주의 탄생을 설명할 수 없다.

포지션 5 중에서 핵심인 세 번째 제어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과율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 제어가 기능하므로 구조가 드러난다. 제어는 일한다. 기존의 인과율은 그 일을 보지 못한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해야 결과가 나온다. energy의 어원은 ‘안en에서 일ergy하는 것’이다. 제어는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일하고 있다. 일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에너지 작용이 있다. 에너지 작용을 조절하는 저울 역할이 제어다. 구조가 5인 이유는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입력과 출력의 2에 제어의 3(작용, 판정, 반작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 입력-원인 (시작)

◎ 저장-작용

◎ 제어-판정

◎ 연산-반작용

◎ 출력-결과 (끝)

제어는 저울이다. 저울은 심 1에 날 2다. 저장≫제어≫연산의 3이다.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의 5로 완성된다. 세상은 무수한 저울의 집합이다. 저울은 3으로 구성되지만 입출력을 더하여 5로 작동한다.

 

심 1, 날 2의 천칭에 지구중력과 계량할 물체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천칭 저울의 한쪽 접시에 추를 올리는 것은 중력을 대표하기 위함이고 맞은편 접시에 물체를 올리는 것은 계량하기 위함이다.

기존의 논리학은 원인과 결과 2로 단순화되어 있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원인≫작용≫판정≫반작용≫결과’의 절대경로를 가진다. 구조의 제어가 중간에서 어느 정도 반작용할지를 결정한다.  

방법적 사유

수학자는 연산규칙을 사용한다. 이발사는 가위를 쓰고, 재단사는 자(尺)를 쓰고 목수는 망치를 쓴다. 반드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생각을 하는 데는 그런 공식이 알려져 있지 않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도구를 써야 한다. 마술을 부려도 도구가 필요하고 도술을 부려도 도구가 필요하다. 인간의 생각 역시 도구가 있어야 하고, 공식이 있어야 하고, 화두가 있어야 한다.

구조론의 의미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 있다. 명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에 있어서는 명상한다면서 그냥 머리에 힘주고 앉아있을 뿐이다. 공식과 논리와 화두를 써서 연산해야 진짜 명상이다.

저절로 생각이 떠오른다면 불완전하다. 그냥 아이디어가 떠올랐어도 실제로는 뇌 안에서 도구를 사용한 결과다. 깨달음은 사유의 도구를 획득함이다. 입체적 모형을 세팅해 두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 깨달음 -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

● 구조론 - 값≫대칭≫평형≫구조체≫시스템

생각은 풀어내는 것이다. 실타래에 감긴 실 풀듯이 풀어낸다. 수학문제를 풀어도 풀어내는 것이다. 풀기 위해서는 실타래에 실이 감겨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 입체적 모형의 감긴 실타래가 존재해야 한다.

작가가 붓을 쓰고, 무사가 칼을 쓰고, 목수가 연장을 쓰듯 도구를 사용해서 풀어야 한다. 입체적 모형이라는 연장을 머릿속에 세팅해 놓지 않으면 생각의 입구와 출구를 몰라서 술술 풀어낼 수 없다.

방법적 사유가 아니면 안 된다. 내부에 저울이 없어서 풀 수 없다. 구조가 저울이다. 소설의 구조를 모르고 쓸 수 없고, 시의 구조를 모르고 지을 수 없다. 그림에는 구도가 있고 음악이라면 화성이 있다.

소설에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저울이 있고 시에 압운이라는 이름의 저울이 있다. 자유시라 해도 정형시의 압운을 대체하는 내용상의 대칭성이 있다. 시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테크닉이 있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마술이든, 코미디든, 광고물이든 모두 구조가 있어서 시선을 끌고 긴장시키고 집중시킨다. 내부에 대상을 제어하는 밸런스의 축이 있어서 저울 역할을 한다.

만약 그것이 없으면 가짜다. UFO처럼 가짜고, 외계인처럼 가짜고, 유령처럼 가짜고, 허깨비처럼 가짜다. 내부에 내적 정합성의 저울이 없으면 가짜고, 외부에 드나드는 입출력의 문이 없으면 가짜다.

구조론은 생각의 도구다. 운전자의 핸들이고, 항해사의 나침반이고, 선박의 키고, 화가의 붓이고, 병사의 총이다. 그것을 손에 꽉 움켜쥐어야 한다. 머릿속에 그려서 메모리 위에 띄워야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조라고 하면 딱딱한 건축의 구조를 떠올린다. 그러나 진짜는 일이다. 구조는 일의 구조다. 일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팀을 짜더라도 포메이션 구조가 필요하고, 회사를 꾸려도 조직구조가 필요하다.

거래를 하더라도 시장구조가 필요하고, 계획을 세우더라도 스케줄 구조가 필요하고, 전쟁이라면 전략과 전술의 구조가 있어야 한다. 구조는 겉과 속이 있다. 겉에 입력과 출력이 있고 속에 심과 날개가 있다.

전쟁이라면 겉은 전략이고 속은 전술이다. 전략은 전장 밖에서 성립하고 전술은 전장 안에서 성립한다. 입력과 출력은 지휘관에서 말단병사에 이르기까지 직결로 정보가 전달되는 편제다.  

사장≫단장≫감독≫코치≫선수의 수직적 편제로 심을 이루면 종심돌파 전략을 실행할 수 있고, 평등한 선수들 간에 포지션 분담하는 수평적 편제로 날을 이루면 포위전술의 구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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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조직이나 하다못해 동네 축구팀이라도 이러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 구조는 업무에도 있고, 정치에도 있고, 시장에도 있고, 문화에도 있다. 생각에도 있고, 언어에도 있고, 사랑에도 있고, 삶에도 있다.

모든 움직이는 것에 구조가 있다.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겉보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터를 닦는데 1이 투입된다면, 골조를 올리는 데는 5가 투입되고, 벽체를 세우는 데는 25가 투입된다.

구조가 한 단계씩 진전될 때마다 내부질서는 5배 복잡해진다. 그것을 통제하는 이쪽의 수단도 5배로 증강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 새로운 일거리를 하나 추가할 때마다 뭔가 5가지가 늘어난다.

조직이 성장할 때는 1에서 2, 3, 4..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1에서 5, 25, 125, 625, 3125로 5배씩 확대된다. 구조가 잘못되면 명목상 3명이 일을 해도 실제로는 한 명만 일하고 있는 공백현상이 발생한다.

반면 남는 인원을 정리했을 때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을 하든 안 하든 포지션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대표팀이 초등학교 팀을 상대하더라도 골키퍼는 있어야 한다. 있을 건 다 있어야 한다.

테마와 스타일

구조는 등뼈와 같다. 하드웨어의 뼈대를 이해하기는 쉽다. 건물의 골조가 뼈대다. 소프트웨어의 등뼈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스타일과 테마가 뼈대다. 스타일은 외부에 맞서고 테마는 내부를 지탱한다.

테마는 모듈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장편소설이라면 중심되는 이야기가 있고 거기서 가지를 치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렇게 가지를 쳐나갈 수 있느냐다. 중심의 테마가 튼튼해야 가지를 칠 수 있다.

인생의 테마를 깨달으면 철학을 얻고 소설의 테마를 깨달으면 작가가 된다. 음악의 테마를 획득하면 작곡할 수 있고, 조형의 테마를 얻으면 화가가 된다. 전체를 한 줄에 꿰어 한 마디로 설명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요소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하나의 중심에 모아 전체의 그림을 잡아주는 것이다. 통합적인 모형의 제시다. 거기에다 밖에서 에너지를 불어넣어 내부에 피가 돌게 하는 것이 스타일이다.

● 스타일(자체 완결성의 유기적 시뮬레이션)-입력에서 출력까지 에너지 순환.

● 테마 (내적 정합성의 입체적 모델링) - 전체를 한 줄에 꿰어내는 등뼈.

테마는 비슷하다. 동서고금의 소설은 결국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뼈대를 주어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타이틀로 묶어낸다. 스타일은 작가마다 다르다. 스타일이 비슷하면 표절이거나 모방이다.

스타일은 작가가 테마를 자기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테마는 정형화된 기법이고 스타일은 진정한 작가의 창의다. 스타일의 차이는 입구와 출구의 차이다. 사랑이라는 테마로 들어가고 나오는 방식이 다르다.

관점이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다. 작가의 사건에 개입하는 정도가 다르다. 사건속으로 뛰어들어서 보느냐 아니면 담장 너머에서 시니컬한 표정으로 흘겨보느냐다. 사건과의 관계맺기가 스타일이다.

테마를 얻을 때 점차 확장된다. 음악이든, 조직이든, 동호회든 그렇다. 곡은 길어지고 조직은 확대되고 동호회는 발전한다. 만약 그것이 없거나 약하다면 인원이 늘어날 때 반드시 둘로 쪼개지고 만다.

테마가 없을 때 소설이라면 등장인물이 늘어날수록 어색하고, 음악은 곡이 길어질수록 지루하다. 대하소설일수록 테마에 의해 긴장감이 유지된다. 확대되어도 긴장감이 유지되게 하는 것이 테마다.

스타일은 변형을 가능케 한다. 호흡이 있고 리듬이 있고 템포가 있다. 강약과 고저와 장단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다. 요소들에 자유를 주어도 밸런스가 유지되므로 중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스타일이 없을 때 정형화된 형식에서 이탈하면 이상해진다. 애드립은 상상할 수 없다. 고전적 형식미가 강조될 뿐 문체의 자유로움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 하수가 기교를 부리면 꼴사납다.

스타일을 얻을 때 진정한 대가가 되고 달인이 된다. 고수가 되고 명인이 된다. 법식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변형해도 시비하는 사람이 없다. 피카소가 그렇고 추사가 그렇고 재즈가 그러하듯이.

하수의 작품은 규정에서 벗어날 때 어색해진다. 고수의 작품은 자유자재로 변형되므로 멋이 있다. 그 안에 밀도의 조절이 있기 때문이다. 먹이라면 농담이 있다. 추사의 글씨에는 석봉의 글씨에 없는 속도감이 있다.   

테마는 계 전체를 관통하는 등뼈다. 스타일은 작가 자신이 주장하는 조형적 질서다. 그것이 없는 하수는 크게 하면 지루하고 변형하면 어색하다. 그것이 있는 고수는 크게 해도 집중되고 변형하면 멋이 있다.

생명의 구조

구조의 딜레마는 닫힌계에 어떤 하나를 추가하여 양을 늘리면 둘로 쪼개진다는 데 있다. 부부가 는 가정에 외부인이 끼어들면 혼인은 파탄난다. 어떤 방법을 써서 양을 늘려도 쪼개지지 않게 할 것인가?

테마는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법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깨지려던 가족이 단결한다. 흩어졌던 민심이 통합된다. 작가는 외부의 적을 설정하여 긴장을 조성한다. 소설의 긴장이 깨지지 않게 한다.

테마가 있을 때 구조는 진보한다. 양이 증가해도 구조가 깨지지 않고 상태를 유지한다. 긴장이 내부를 긴밀하게 조여주기 때문이다. 생태계에는 생존의 위협이라는 긴장이 있다. 생태계의 기본 테마다.

한편으로 암컷과 수컷의 만남이라는 다른 차원의 긴장이 있다. 생존의 긴장과 함께 씨줄과 날줄을 이룬다. 대부분 소설에 주인공을 해치려는 적과 함께 주인공을 사랑하는 파트너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생존의 위협이 테마라면 암수의 만남은 스타일이다. 생존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뭉쳐야 하지만 암수가 만나기 위해서는 흩어져야 한다. 한 곳에 모여 있어서는 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테마는 소설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타이틀 아래 뭉치게 하고 스타일은 다양성을 부여하여 흩어지게 한다. 흩어져도 이탈하지 않고 부단히 중심과의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스타일이다. 소통으로 가능하다.

독재자는 테마를 강조한다. 국가, 국기, 국시, 상징물을 이용한다. 가상 적을 만들어 국민을 단합시킨다. 그러나 적대행위에 따른 폐쇄성과 배타성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성공적인 국가모델을 만든 나라들은 모두 개방을 선택했다. 그리스와 로마가 그러하고, 전성기의 당나라가 그러하고, 전성기의 영국과 프랑스가 그러하다. 대외개방은 입구와 출구가 있다는 점에서 스타일이다.

민주주의는 스타일이다. 다양성을 부여한다. 흩어져서 각자 자신의 사랑을 찾아나서게 한다. 피를 돌게 하고 맥박이 뛰게 한다. 그 과정은 무질서해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거기서 얻어진다.

테마가 딱딱한 입체의 모델링이라면 스타일은 무른 유기체의 시뮬레이션이다. style의 어원이 steel이므로 딱딱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딱딱한 신사 스타일보다 부드러운 숙녀 스타일이 더 나은 대접을 받는다.

테마는 내부를 구축하므로 뼈처럼 딱딱하고 스타일은 외부와 맞서므로 살처럼 부드럽다. 흔히 스타일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스타일이 계의 밀도를 나타내는 바 밀도는 균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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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립 3-5 보편이론, 일반이론, 분류이론 image 김동렬 2008-12-29 6723
9 발전 4-1 극한의 법칙, 자연의 구조 image 김동렬 2008-12-29 5406
8 발전 4-2 사물의 구조, 구조론 사전 image 김동렬 2008-12-29 5017
7 발전 4-3 구조주의 철학, 구조주의 세계관 image 김동렬 2008-12-29 5843
» 발전 4-4 (계속) image 김동렬 2008-12-29 4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