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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722 vote 0 2008.12.29 (13:07:39)

 

보편이론

유도이론은 세상이라는 아기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해명한다. 집적이론은 그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해명한다. 보편이론은 성장한 그 청년이 어떻게 짝을 짓고 어른이 되는지를 해명한다.

보편이론은 가르기 법칙이다. 동시에 짝짓기 법칙이며 한편으로는 통하기 법칙이다. 모든 갈리는 것은 짝짓고, 모든 짝짓는 것은 통한다. 천칭의 두 접시로 가르고, 두 날개로 짝짓고, 하나의 받침대로 합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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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짝짓기다. 요철(凹凸)이 맞아야 짝지을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그것이 맞아야 첫날밤을 치를 수 있다. 주파수가 맞아야 공명한다. 수평의 ━와 ━가 바르게 짝지을 때 통하여 수직의 ┃을 이룬다.

세상을 총괄하는 두 근본원리가 있다. 진리의 보편성과 일반성이다. ‘모든 갈리는 것은 통한다.’는 짝짓기 법칙과 ‘모든 변하는 것은 합친다.’는 쌍짓기 법칙이다. 전자가 위를 보는 귀납원리면 후자는 아래를 보는 연역원리다.

● 보편이론(일치).. 모든 갈리는 것은 보편화된다.

● 일반이론(연동).. 모든 변하는 것은 일반화된다.

도(道)는 통한다. 길은 통한다. 길은 갈린다. 사방으로 갈린다. 모든 갈리는 것은 통한다. 사통팔달로 통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 통한다. 선박으로 통하고 항공으로 통하고 육상으로 통한다.  

진리의 리(理)는 결이다. 어원으로 보면 리(理)는 옥(玉)+리(里)다. 결은 갈라지는 지점이다. 장인이 옥을 가공할 때 결을 따라 가공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옥은 갈린다. 갈리는 것은 통한다. 진리는 통한다.

왜 보편이론인가? 인간은 다르면 줄 세우고 차별하려는 습관이 있다. 편견이다. 남자와 여자는 갈린다. 그러므로 짝짓고 통한다. 남한과 북한은 갈린다. 그러므로 반드시 손잡고 통해야 한다.

진리는 결이고 결은 갈림이다. 진리가 세상을 갈랐다. 아침과 저녁을 갈라 하루를, 하늘과 땅을 갈라 세상을, 남자와 여자를 갈라 인간을 만들었다. 진리가 갈랐으므로 진리로 하여 세상은 통한다.

가치는 통한다. 가치가 세상을 가르기 때문이다. 일등품과 이등품으로 가른다. 명품과 짝퉁으로 가른다. 그러나 동시에 갈리므로 짝지을 수 있고 짝지어서 통한다. 모든 갈리는 것은 짝짓고 통한다.

금이 없었을 때는 사회가 하나였다. 금이 나타나자 빈자와 부자로 갈렸다. 금이 세상을 갈랐지만, 금은 무엇과도 짝지을 수 있으므로 화폐가 되어 널리 통한다. 금이 갈랐으므로 금으로 하여 통하는 것이다.

가치란 무엇인가? 짝짓기다. 어떤 것이 가치있다는 말의 의미는 아직 짝을 짓지 않았지만 조만간 짝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가치있는 물건이라면 아직 팔리지 않았더라도, 조만간 임자 만나면 그 임자와 짝짓는다.

보편이론은 가치 개념에 대한 이론이다. 가치의 가르기≫짝짓기≫통하기 법칙을 규명한다. 가치는 양날의 칼이다. 가치가 가를 때 사람이 다치고, 짝지을 때 서로 사랑하고, 합칠 때 새 생명은 탄생한다.

인터넷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르고, 화폐는 빈자와 부자를 가르고, 가치는 명품과 짝퉁을 가른다. 재단사의 가위처럼 가르고, 재단사의 자처럼 짝짓고, 재단사의 미싱처럼 그것을 다시 합친다.   

수평적 질서와 수직적 질서

계급이 같아야 통한다. 어른은 어른끼리, 어린이는 어린이끼리 통한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통한다. 하나의 계에는 다섯 계급이 있다. 같은 계급끼리 잘 통한다. 울림과 떨림이 공명된다.

계급이 달라도 통할 수 있다. 계급이 다르면 일로 통한다. 회사는 사장≫이사≫중간간부≫하급간부≫실무자로 통한다. 이는 종으로 통하는 것이다. 다음 일반이론에서 다룰 진리의 일반성이다.

계급이 같을 때 정보의 공유로 통한다. 진리의 보편성이다. 같은 계급끼리 횡으로 통하면 정보가 증폭된다. 한 사람의 성공이 모두에게 파급되어 인류는 총체적으로 진보한다. 질적인 비약을 이룬다.

다른 계급 사이에 종으로 통하면 질서 있게 일하여 수확을 낳는다. 그러므로 보수주의는 종적인 질서를 강조하고 진보주의는 횡적인 소통을 강조한다. 이렇듯 세상에는 수평적 질서와 수직적 질서가 있다.

수직적 질서는 하나의 계 안에서 질≫입자≫힘≫운동≫량의 순서로 연동되어 명령이 하달되는 것이며, 수평적 질서는 계 밖에서 같은 계급끼리 소통의 코드를 일치시켜 커다란 동그라미를 형성하는 것이다.  

존재의 두 조건이 있다. 자기보존과 외부대응이다. 전자는 공간성이요 후자는 시간성이다. 전자는 보편성이요 후자는 일반성이다. 전자는 평등한 무리가 손잡고 둥글게 동그라미를 그리며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다.   

후자는 무리가 외부의 작용에 반작용으로 맞설 때 전투태세에 들어가는 것이다. 명령의 전달순서에 따라 계급을 정하고 일을 처리한다. 일이 끝나면 다시 보편성으로 어우러져 한 바탕 축제가 벌어진다.

다시 평등한 상태로 복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상태가 계속되면 계급이 그대로 유지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계급질서가 유지되면 사회의 긴장도와 피로도는 극에 달한다. 그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평등한 한국인들이 손잡고 동그라미를 이루어 자기보존에 성공한 것이다. 그 대한민국 안에서 상사와 부하, 사용자와 노동자,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어떤 상황을 당하여 일로 처리하는 것이다.

두 질서는 함께 가야 한다. 군대라면 대대≫중대≫소대≫분대≫병의 위계서열이 있다. 일을 할 때의 명령전달 순서다. 수직적 질서다. 그러나 이 하나의 질서만으로는 결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대대장은 대대장과 놀고, 중대장은 중대장과 놀고, 병은 병과 어울린다면 계급 간에 서로 소통되지 않는다. 병사가 입수한 정보가 윗선으로 보고되지 않는다. 그 부대는 패전하고 만다.

정보의 증폭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대대에서 중대≫소대로 명령이 전달되는 데 1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같은 계급의 병사 1만 명에게 확성기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도 역시 1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현대전은 정보가 힘이다. 수직적 정보전달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수평적 전달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간이 힘이다. 계급질서에 집착하는 부대는 정보전달의 실패로 시간을 지체하여 패하고 만다.

봉건국가는 전투를 위주로 하므로 대장의 명령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직적 질서를 발달시켰다. 반면 현대국가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수평적 정보전달 체계를 발달시켰다. 정보의 증폭이 현대성의 본질이다.

수직적 봉건질서를 발달시킨 유럽이 수평적 정보소통 시스템을 발달시킨 몽골군에게 패배했다. 몽골의 초원에는 귀족도 없었고 노예도 없었다. 현대성의 성취는 몽골기병과 같은 수평적 증폭구조의 발달에 있다.

인터넷에도 일하는 수직적 질서와 소통하는 수평적 질서가 공존한다. 월드와이드웹에서 사이트와 웹페이지를 거쳐 특정한 문서를 지나 최종 정보에 도달하는 질서는 우편주소체계와 같은 수직적 연동질서다.  

반면 하이퍼링크의 연결은 수평적 일치질서다. 사이트에서 사이트로 건너뛰고, 웹페이지에서 웹페이지로 건너뛰고, 문서에서 문서로 건너뛰면서 정보가 증폭된다. 정보의 가치가 순증가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매번 WWW≫사이트≫HTML≫파일≫정보의 접근경로를 거쳐야 한다면 인터넷은 불편해진다. 과거 PC통신에서 매번 초기화면으로 되돌아가야 했던 것과 같다.

바로가기 없이 메인 디렉터리를 찾아서 계속 하위 디렉터리를 클릭해야 한다면 환장할 노릇이다. 디렉터리 구조에 몰두한 야후는 실패했다. 구글의 성공 요인은 검색 알고리듬에 수평적 질서를 반영한 데 있다.  

● 질   - 인터넷,   (WWW.)

● 입자 - 사이트,   (http://000.com)

● 힘   - 웹페이지, (HTML)

● 운동 - 문서, 파일(<TABLE>~</TABLE> 혹은 이미지 1컷)

● 량   - 1바이트,  (글자 한 자)

월드와이드웹은 결합하고, 사이트는 독립하고, 웹페이지는 교섭하고, 문서와 파일은 실행하고, 1바이트의 정보는 뇌로 침투한다. 다섯 계급이 수직적 연동질서를 이룬다. 소통은 그 질서를 뛰어넘는 바로가기다.

하이퍼링크는 페이지에서는 페이지로 바로 간다. 사이트의 대문과 메뉴바를 거치지 않고 바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등한 소통이다. 이러한 성질을 사회구조에 잘 반영한 것이 민주주의다.

만약 한국인 중에서 한 명이 아는 것을 5천만 한국인 모두가 일시에 알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길목을 장악한 조중동이 소통을 차단한다. 그러한 정보의 증폭을 방해한다.

보편이론은 정보의 레벨이 동일한 수준일 때, 요철(凹凸)구조의 요(凹)와 철(凸)이 맞게 짝 지어서 널리 소통되는 원리다. 레벨은 5개의 계급이 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있다.

입술과 숟가락은 둥근 곡선이다. 서로 닮았다. 입술이 입에 닿을 때 요철구조를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컵의 테두리가 둥근 곡선인 이유도 같다. 사람 입술이 둥글기 때문에 컵의 입술도 둥근 것이다.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이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기다란 젓가락을 사용하여 길쭉한 멸치를 집는다. 정보를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은 모두 닮아있다. 계급이 같다. 그러므로 서로 통하여 짝짓고 낳는다.

통해야 정보를 증폭하여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수평적 질서의 보편성이다. 수직적 질서의 일반성도 있다. 어느 쪽이 먼저인가? 보편성이 일반성에 앞선다. 공동체의 민주주의가 회사 내의 계급질서에 우선한다.

모든 갈리는 것은 통한다. 서로 통해서 손에 손잡고 둥글게 동그라미를 만든다. 그러므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통할 때 그 정보의 증폭이 가지는 거대한 힘은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직적 질서가 사물과 접촉하고 일하여 1을 획득한다면 수평적 질서는 그 만배를 획득한다. 구불구불한 논이 경지정리로 소통하여 트랙터를 받아들인다면 한 고랑 지나갈 때마다 곡괭이질 만 번 만큼 일한다.

수직적 질서도 중요하다. 경지정리는 한 차례 하고 나면 더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혁명은 한 번으로 족하다. 한글은 한 번 창제되고, 인터넷은 한 번 도입되고 변혁은 한 번 일어나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일반이론

세상은 유도이론에 의해 밖에서 유도되어 탄생하고, 집적이론에 의해 안으로 집적되어 성장하고, 보편이론으로 일치되게 짝지어 결혼한다. 그 다음 일반이론이 일하고 마지막으로 분류이론이 낳는다.

존재는 완전성의 동그라미를 이루어 정보를 증폭하는 수평적 질서와 직접 사물과 접촉하여 일하는 수직적 질서로 갖추어진다. 수평적 질서가 공간의 자기보존이라면 수직적 질서는 시간적 외부대응이다.

사회가 수평적 질서만 강조하면 일하지 못하므로 낳지 못한다. 생산하지 못하므로 대가 끊어져서 몰락한다. 반면 수직적 질서만 강조하면 공동체는 보존되지 않는다. 계급을 차별하면 국민이 신대륙으로 떠나간다.

수직적 구조의 일반이론은 일의 1 사이클 진행을 해명한다. 일은 시작에서 끝까지 연동되어 하나를 따라간다. 직원이 10만 명이라도 특정한 임무는 CEO≫이사≫부장≫과장≫실무자의 1개 라인을 따라간다.

구조체는 하나의 소화관이다. 길쭉한 관(管) 형태다. 파이프와 같다. 동물의 소화관 속으로 음식물이 통과한다. 그 소화의 진행과정에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의 1 사이클 전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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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변화하고, 양은 침투한다. 질은 밖에서 음식을 들여와 입과 결합하고, 입자는 내장이 그 음식에 독립적으로 맞서고, 힘은 소화액으로 음식과 교섭한다.

운동은 소화시켜 음식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양은 소화된 영양분을 근육으로 침투시킨다. 이때 음식물을 부수는 소화관 관점에서 볼 것이냐, 혹은 그 소화되는 음식물 관점에서 볼 것이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발사하는 총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 아니면 튀어나가는 총알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다. 절대성과 상대성이다. 총은 자기 힘으로 총알을 발사할 수 있다. 반면 총알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발사시키지 못한다.

스스로 발사할 수 있는 능동의 관점이 절대성이요 스스로 발사할 수 없는 수동의 관점이 상대성이다. 이 문제를 명석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닫힌계 개념이 필요하다. 닫힌계로 보면 절대성이 옳다.

절대성과 상대성이 공존하지만 절대성이 앞선다. 절대성≫상대성이다. 절대성이 상위 단계의 질서를 구축하고 상대성이 하위단계의 질서를 구성한다. 상대성은 하위디렉터리를 성립시켜 상위의 절대성에 연동된다.

총이 총알을 받아들임은 질의 결합이다. 총의 공이가 뇌관을 치는 것은 입자의 독립이다. 공이가 뇌관을 때림은 힘의 교섭이다. 화약이 폭발함은 운동의 변화다. 총알이 과녁에 날아와 박힘은 양의 침투다.

이 과정을 총알의 관점에서 보면 반대다. 총알은 총과 만나고(양) 맞물리고(운동) 맞서고(힘) 하나되고(입자) 통한다(질). 질≫입자≫힘≫운동≫량이 아니라 양≫운동≫힘≫입자≫질이 되는 것이다.

전자는 절대성에 지배되는 연역의 보편원리요 후자는 상대성에 지배되는 귀납의 일반원리다. 두 관점이 있다. 구조원리에 따라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해야 하므로 닫힌계를 전제로 한다면 총의 관점이 옳다.

연역은 절대적으로 성립하고 귀납은 상대적으로 성립한다. 빛은 절대적으로 있고 그림자는 상대적으로 있다. 빛은 광자라는 실체가 있고 그림자는 그 입자가 없다. 그림자는 빛의 강약에 따라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그림자의 강약을 끌어내는 것은 스크린이다. 빛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여 있지만 그림자는 항상 스크린의 전제에 의존한다. 빛은 스크린이 있어도 있고 없어도 있지만 그림자는 스크린이 있을 때만 있다.

빛은 연역이고 그림자는 귀납이다. 빛은 총의 관점이요 그림자는 총알의 관점이다. 빛은 스스로 진행하고 그림자는 상대적으로 진행한다. 총은 스스로 발사하고 총알은 누군가가 발사해주어야 날아간다.

빛은 실재하나 그림자는 허상이다. 빛의 관점에서 관찰해야 바르다. 이를 위해 입체적 모델링과 유기체적 시뮬레이션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상대성의 대를 끊어 절대성으로 환원함이다.

그림자의 관점도 필요하지만 거기에는 많은 전제들이 딸려 있다는 점이 문제로 된다. 먼저 닫힌계를 찾아야 한다. 그림자를 성립시키는 전제조건들인 스크린과 필름과 촛불을 낱낱이 찾아내야 한다.

마침내 빛이 발견되면 그림자는 필요 없다. 2가 있으면 반드시 1로 되돌려야 한다. 음양이 있으면 빛을 찾아야 하고, 밤낮이 있으면 지구를 찾아야 하고, 남녀가 있으면 인간을 찾아야 한다. 1을 회복해야 한다.

어떤 것이 있으면 겉과 속의 2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1이다. 빛은 실재하지만 어둠은 빛의 어떤 속성을 설명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 속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제 3의 존재인 스크린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세상이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믿는다. 하늘과 땅, 밤과 낮, 빛과 어둠, 플러스와 마이너스다. 그러나 실제로는 땅이 있을 뿐이며 낮이 있을 뿐이며 빛이 있을 뿐이며 항상 플러스가 있을 뿐이다.

일반이론은 짝지어진 복제본의 둘에서 원본의 하나를 찾는다. 상대성의 2에서 절대성의 1을, 밝음과 어둠의 2에서 빛의 1을, 밤낮의 2에서 하루의 1을, 남녀의 2에서 인간의 1을 찾아 본래대로 되물린다.

여기서 밝음과 어둠, 밤과 낮, 산과 강은 모두 운동에 의해 성립함을 이해하는 것이 일반이론의 핵심이다. 모든 2는 운동에 의해 탄생된다. 운동은 시간상에 전개한다. 이를 공간으로 되돌리면 1이다.

그 1을 추적하는 것이 귀납이다. 세상 모든 변화에서 숨은 1을 찾을 수 있는 원리가 일반이론이다. 모든 것은 일반화된다. 그리고 일반화되기까지는 미완성이다. 일반화되어야 완성되고 완성되어야 통한다.

성을 차별하고, 종을 차별하고, 지역을 차별하면 2다. 미완성이다. 남존여비 미완성이고 장유유서 미완성이다. 종교나 철학은 대개 일원론으로 출발하며 이원론으로 퇴행했다가 다시 일원론으로 되돌아와서 완성된다.

종교나 철학의 창시자가 어둠 속에서 처음 빛을 발견했으므로 일원론이 온갖 철학과 사상과 이념의 출발점이 된다. 그 빛으로 세상을 밝히려 하나 대중이 따라주지 않으니 대중을 통제할 수단의 질서가 필요하다.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로 구분한다. 처음에는 오직 하느님이 있었을 뿐인데 나중 어둠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탄 개념을 추가한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2원론으로 퇴행하였으니 예수의 가르침에서 멀어졌다.

유교도 원래 일원론인데 주희가 이원론으로 퇴행시켰다. 예(禮)의 빛으로 질서를 세우려 하나 대중이 따르지 않으니 군주를 위한 통치술로 변질된 것이 음과 양, 여자와 남자, 임금과 신하로 가르는 이원론이다.   

나중 왕양명의 심학에 와서 불교의 일원론을 받아들인다. 조선에서는 율곡과 화담의 1.5원론을 거쳐 혜강 최한기의 기일원론으로 완성된다. 결국 일원적인 소통으로서만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의 주파수대는 하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언어, 하나의 신호로, 하나의 다리를 건너, 하나의 광장에서 소통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론의 차별로 실패한 문제가 일원론의 소통으로 해소된다.

전기는 원래 하나의 극을 가진다. 전기가 흐르므로 플러스와 마이너스 2로 나누어진다. 모든 흐르는 것, 움직이는 것, 변화하는 것, 운동하는 것은 앞과 뒤의 2를 가지며 이는 본래 1이었다는 것이 일반이론이다.

지구도 진정한 극점은 하나 뿐이다. 남극과 북극은 지구의 자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지구의 극은 중력의 중심이다. 그 하나의 극이 기동하여 남극과 북극의 2를 연출한 것이다.

일반화의 원리는 알리바이 법칙으로 경찰의 범인수사에 활용된다. 범인과 피해자의 2는 범행의 성립지점에서 1이었다. 질≫입자≫힘≫운동≫량의 전개에 따라 범인은 다섯 단계에서 1에서 2로 갈렸다.

보편원리는 사건의 진행 5단계에 따른 5지점에서 1에서 2로 갈렸음을 밝히고, 일반원리는 그러므로 그 사건이 일어난 후 다섯 지점에서 2에서 1로 환원시킬 수 있는 단서를 포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범인과 피해자는 질≫입자≫힘≫운동≫량에서 각각 1에서 2로 갈렸으므로 5회에 걸쳐 단서를 남겼다. 경찰은 량의 단서≫운동의 단서≫힘의 단서≫입자의 단서≫질의 단서를 찾아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

● 질   - 범인과 피해자는 같은 시간과 장소로 ‘결합’되었다.

● 입자 - 범인이 사용한 흉기는 그 시간과 장소에서 ‘독립’되었다.

● 힘   - 범인은 칼로 찌르면서 힘으로 피해자와 ‘교섭’하였다.

● 운동 - 범인은 범행이라는 운동으로 현장을 ‘변화’시켰다.

● 량   - 범인이 남긴 타액 양은 담배꽁초에 ‘침투’하였다.

용의자와 피해자는 질≫입자≫힘≫운동≫량 다섯 지점에서 1을 성립시켰으므로 그 1을 역추적하여 범행을 입증할 수 있다. 양을 먼저 찾고 다음 운동을, 다음 힘과 입자와 질의 순서로 찾아야 한다.

연인이 거울을 쪼개서 나눠가짐은 그 이별의 2에서 상봉의 1을 찾는 방법이다.상인이 영수증에 사인을 남기는 것은 역시 2를 탄생시켰다가 나중 1로 되짚어 올 수 있는 단서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도장찍고 약속하고 기록하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모두 1에서 2를 논리함이요 그 검증과 채점과 평가와 확인은 모두 2에서 1을 이론함이다. 개가 전봇대에 오줌으로 표식을 해도 그렇게 2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평형은 심과 날개 사이에서 성립한다. 심은 1이요 날은 2다. 자연에서는 항상 1에서 2로 전개한다. 심에서 날로 전개한다. 연역원리요 보편원리다. 갈라지는 것이다. 항상 하나에서 둘이 되는 것이다.

하루는 아침과 저녁이 되고, 사람은 여성과 남성이 되고, 세상은 하늘과 땅이 된다. 줄기는 가지와 가지로 갈라진다. 부대는 편제로 갈리고 회사는 조직으로 갈리고 팀은 감독과 선수의 포지션으로 갈린다.

인간의 인식은 그 과정을 되짚는다. 모든 학습은 2에서 1을 찾아가는 것이다. 소리와 색깔 2에서 사과 1을 찾는다. 형태와 냄새 2에서 홍어 1을 찾는다. 낱낱의 사물에서 더 높은 단위의 그룹을 찾는다.

개와 말의 2에서 동물 1을 찾고, 소나무와 감나무의 2에서 식물 1을 찾는다. 그렇게 한 계단씩 상위단계의 그룹을 찾아간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항상 1이 2가 될 뿐 2가 1이 되지는 않는다.

자연에서 2가 1이 되는 현상을 목격했다면 그림자를 본 것이다. 그림자는 스크린의 존재를 전제로 하므로 실제로는 1에서 2다. 스크린의 존재를 망각하므로 2가 1로 환원되는 것처럼 착각되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적이라고 믿는 것은 모두 2다. 그 2들에게는 모두 스크린이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상대성이 없다. 자연은 절대로 존재한다. 다만, 인간의 눈이 자연의 맞은편에서 거울에 비추어보므로 상대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행동은 존재론-연역법-보편원리다. 인간의 인식은 인식론-귀납법-일반원리다. 자연의 집배원은 도≫시≫동≫사람의 순서로 주소를 찾고, 인식의 학생은 사람≫동≫시≫도의 순으로 세계를 발견한다.

분류이론

구조론은 유도이론≫집적이론≫보편이론≫일반이론을 거쳐 분류이론으로 완성된다. 낳음을 완성시켜 1 사이클의 전개를 종결한다. 분류이론이 최종이론이며 그 이전단계들은 분류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안다는 것은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류한다는 것은 자신이 목표로 하는 특정 타켓을 발췌하여 선택적으로 링크를 걸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을 장악하고 통제하여 의도를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은 컴퓨터와 같다. 폴더를 만들고 파일을 저장한다. 그리고 필요한 때 저장된 정보를 다시 꺼내쓴다. 그렇다면, 폴더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분류이론의 핵심이다.

폴더부터 만드는 것이 깨달음이고 만들어진 폴더 안에 파일을 저장하는 것이 지식이다. 인간의 모든 실패는 여기서 비롯된다. 폴더를 미리 만들어 두지 않았기 때문에 파일들이 뒤섞여서 혼란에 빠진 것이다.

깨달음은 구조체의 입체적 모델링으로 정보를 조직하여 인식의 원본 폴더를 성립시키고, 시스템의 유기체적 시뮬레이션으로 사건을 조직하여 행동의 원본 폴더를 성립시킨다. 그 원본을 복제하여 삶으로 펼쳐낸다.

존재는 연역된다. 위에서 아래로 진행된다. 원하는 정보를 특정하려면 한 단계 위로 올라가야 한다. 정보 위에 파일 있고, 파일 위에 폴더 있다. 폴더 위에 프로그램 있고 프로그램 위에 운영체제(OS) 있다.

분류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정보들과 구분하여 독립시킨다. 둘째 그 정보를 다시 꺼내쓸 수 있도록 목록과 색인, 확장자명을 지정한다. 셋째 그 정보를 저장할 상위폴더를 지정한다.

이러한 작업은 항상 한 단계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보의 처리는 파일에서, 파일의 데이터베이스 관리는 폴더에서, 폴더의 출입은 프로그램에서, 프로그램의 운영은 운영체제에서 일어나야 한다.

분류의 의미는 둘이다. 첫째 중복과 혼잡을 피해야 한다. 둘째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다. 타당한 분류이론에 기초한 분류가 아니면 반드시 한 두 가지를 놓친다. 야후의 초기 디렉터리 분류는 중복되거나 빠져 있었다.

모든 존재는 위≫아래로 향하므로 인간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하게 되어 있다. 파일을 얻고자 하면서 파일보다 한 단계 아래인 정보로 내려가는 실수를 저지른다. 파일보다 상위의 폴더로 가야 한다.

사과를 얻고자 하면 사과나무 아래로 가야 한다. 사과가 파일이면 사과나무는 폴더다. 파일을 얻고자 하면 폴더를 노크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한 단계 아래인 사과그림, 사과통조림으로 간다.

인간의 실수는 숙명이다. 반드시 실수한다. 인간은 반드시 실수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항상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서 헤매게 된다. 왜인가? 정보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어딘가에 침투해 있다.

정보는 항상 사과통조림, 사과그림 등으로 다른 무엇과 결합되어 있다. 그 결합에 의해 사과가 인지된 것이다. 인간이 사과를 찾는 데 이용하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은 항상 그 결합을 따라간다.

이것이 귀납법의 실패다. 연역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사과를 인식하는 데 사용한 사과모양, 사과냄새, 사과느낌, 사과맛, 사과소리는 그 사과와 결합되어 있을 뿐 사과 그 자체는 당연히 아니다.

진실로 말하면 인간은 사과를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다. 인간이 실제로 본 것은 사과를 거쳐온 빛이다. 우리는 사과 아닌 것을 보고 사과를 해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오류가 따른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불완전한 그림자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원리에 따라 본래의 완전성으로 되돌려야 한다. 원본의 완전성을 이해해야 분류할 수 있다. 정보가 복제되기 이전의 원본을 찾아야 한다.

첫째 외부와의 소통을 이해해야 그 완전성을 이해할 수 있다. 자동차 바깥에서 도로를 알고, 배를 알고, 비행기를 알아야 자동차를 안다. 자동차는 그 도로와 배와 비행기와 소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이해해야 완전하다. 소통은 바깥에 있다. 바깥을 이해해야 완전하다. 인간을 안다는 것은 인간 바깥의 사회를 아는 것이어야 하고, 동물을 안다는 것은 동물 바깥의 생태계를 아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닫힌계 내부에서 내적 정합성을 이해해야 완전하다. 계 전체를 한 줄에 꿰어 하나의 수단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내부를 장악하고 하나의 논리로 전부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동차는 핸들 하나로 조작한다. 운전기사는 한 명이어야 한다. 기어는 1단이거나 2단이거나 그 중 하나다. 존재는 항상 1을 따라간다. 그래야 계 전체가 통일된다. 통일되어야 내부를 추스려 외부에 맞설 수 있다.

그래야 일할 수 있다. 일해야 낳고 낳아야 완전하다. 하나의 논리로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 머리와 몸통을 각각 다른 논리로 설명하면 불완전하다. 정치는 정치로 설명하고 경제는 경제로 설명한다면 불완전하다.

안다는 것은 외적 소통과 내적 정합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밖에서 안으로의 방향성을 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 시킨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작동하게 한다는 것이다. 펄쩍펄쩍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다.

구분의 종류

인간이 인지하는 사물은 그 대상에 직접적이지 않다. 모두 간접이다. 정보들이 대상을 거쳐서 온 것이다. 해시계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이 보는 것은 그림자이고 그 그림자는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인간이 실제로 얻으려는 것은 태양의 위치다. 태양의 위치를 읽어서 시간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태양≫빛≫바늘≫스크린≫그림자’의 순으로 정보가 전개된다. 인간은 최종 그림자를 보지만 최초 태양을 원한다.

유도이론에 따라 정보는 자기복제된다. 해시계는 인간의 손바닥 위에 있지만 인간이 만든 복제본이다. 원본인 태양의 위치는 하늘에 걸린 허공의 해시계에 있다. 두 해시계는 닮았다. 정보가 복제된 것이다.

● 하늘의 해시계 - 태양≫빛≫바늘≫스크린≫그림자

● 손바닥 해시계 - 몸체≫바늘위치≫바늘각도≫눈금판≫특정눈금

하늘의 해시계와 손바닥 위의 해시계는 대칭을 이룬다. 해시계의 몸체는 태양을 바라보고 해시계의 바늘은 빛을 바라본다. 해시계의 바늘각도는 태양에 대한 빛의 각도와 작용반작용으로 일치한다.

 

3.GIF

스크린은 그림자의 이동거리다. 해시계의 눈금판은 그림자의 이동거리와 시간을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그림자는 해시계의 특정 눈금에 닿는다. 눈앞의 해시계는 추상적인 하늘의 해시계를 복제한다.

분류이론은 존재의 주소지를 묻는다. 모든 존재는 고유한 자신의 주소를 가진다. 주소따라 분류된다. 족보와 같다. 아담과 이브로부터 혈통이 전해져서 오늘의 나로 맺어진 갈래따라 분류할 수 있다.

자연에서 그것은 일이다. 모든 존재는 고유한 자신의 일을 가진다.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사건(event), 하나의 일(work)이다. 그 일을 주소로 삼아 분류되어야 한다. 그 일은 어떤 만남에 의하여 얻어진다.

인간은 여자와 남자의 만남에 의해 탄생한다. 악기는 연주자를 만나기 위해 존재하고, 상품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 존재한다. 연필은 종이를 만나고 과도는 사과를 만난다. 그리고 만나서 일을 꾸민다.

해시계에 만들어진 그림자의 주소는 태양도≫빛시≫바늘동≫스크린 1번지≫그림자 씨 귀하다. 그림자는 해시계와 만난다. 암컷은 수컷을 만나 새끼를 얻고 그림자는 해시계와 만나 시각을 낳는다.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일이다. 일에 따라 분류되어야 한다. 일은 종(種)과 류(類)를 이룬다. 종은 질≫입자≫힘≫운동≫량의 계급구분이다. 류는 같은 계급 안에서 온갖 짝을 짓는 다양한 형태들이다.

일은 혼자서 성립할 수 없다. 반드시 어떤 만남에 의해 성립한다. 이때 연역되는 시간축과 귀납되는 공간축이 있다. 전자는 존재론이요 후자는 인식론이다. 양자가 바르게 결합해야 존재는 성립된다.

시간축은 종, 공간축은 류다. 시간축은 계급을 나타낸다. 아버지와 아들은 계급이 다르므로 종에 해당한다. 남편과 아내는 계급이 같으므로 류다. 종과 류가 결합하여 종류를 구성하면 분류가 성립된다.

아버지가 먼저 가고 아들은 나중 간다. 그러므로 종(種)이다. 남편과 아내는 함께 간다. 그러므로 류(類)다. 분류구분은 종류구분이다. 도표로 나타낼 때는 종의 수직 시간축과 류의 수평 공간축으로 짝짓는다.

분류이론의 중핵은 종 개념의 이해에 있다. 빛≫그림자로 가야 한다. 그림자≫빛으로 가면 실패다. 빛을 추적하면 언젠가는 그림자를 만나게 되지만 그림자를 추적하면 영영 빛을 만나지 못하는 수 있다.

분류의 요체는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는 데 있다. 빛≫그림자로 가는 종의 시간축에 의해 중복과 혼잡은 걸러진다. 연역과정에서 점점 범위가 좁아져 특정 타겟에 도달하므로 중복과 혼잡이 제거되는 것이다.

종은 씨앗이고 류는 밭이다. 씨앗과 밭이 결합하여 온갖 꽃을 피운다. 이때 씨앗은 순수하여 하나뿐이지만 밭은 무한정 존재한다. 류를 따르면 무한히 많아져서 중복과 혼잡의 미로에 빠지고 만다.

류는 종이 복제된 것이다. 복제본은 원본과 대칭된다. 건물을 지으면 통로가 생긴다. 통로는 도로에서 골목길을 거쳐 마당과 복도와 방으로 이어진다. 건물만 집이 아니라 통로도 집이다.

인간은 결국 방이라는 막다른 통로, 막다른 길에 노숙자처럼 서식하는 존재인 것이다. 통로가 도로≫골목≫마당≫마루≫안방으로 건축된다. 건물이 토대≫기둥≫대들보≫서까래≫지붕으로 건축되듯이.

[존재론의 인식론 복제에 따른 종↓과 류↔]

● 배경 ┳ 응용         

● 실체 ┳ 종합        

● 연관 ┳ 분석        

● 이행 ┳ 수용

● 귀결 ━ 지각

존재론은 위에서 아래로 해체되고, 인식론은 아래에서 위로 건축된다. 원본인 자연의 존재론이 작동할 때 복제본인 인간의 인식론은 저절로 건축된다. 원래 길이 없었는데 자동차가 달리면 저절로 길이 생겨나듯이.

존재론과 인식론

구조론은 유도이론≫집적이론≫보편이론≫일반이론을 거쳐 최종 분류이론을 성립시킴으로써 완결되고 분류이론은 존재론의 절대경로와 인식론의 상대경로를 교통정리함으로써 완결된다.

깨달음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퍼즐을 푸는 입체적 모형을 뇌 속에 세팅함으로써 완성된다. 그것은 존재를 규명하는 구조체의 입체적 모델링 작업과 사건을 규명하는 시스템의 유기체적 시뮬레이션 작업으로 완성된다.

어떻게 토끼를 알아낼 수 있을까? 토끼똥, 토끼발자국, 토끼털, 토끼냄새, 토끼소리의 단서를 추적하여 알아낼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귀납적 인식방법이다. 이렇게 얻은 단서들은 상대경로의 류에 속한다.

토끼는 한 마리인데 토끼똥은 여럿이다. 토끼발자국도 여럿이고 토끼털도 여럿이고 토끼냄새도 여럿이고 토끼소리도 여럿이다. 이렇듯 여럿에서 한 마리의 토끼를 특정하여 내는 것이 분류이론이다.

류(類) 중심의 인식은 자연의 실재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왜곡된 상이다. 그림자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토끼똥을 발견하고 ‘앗 이것이 토끼로구나!’ 하고 착각할 수 있다.

토끼똥+토끼냄새+토끼털+토끼발자국+토끼굴을 한 곳에 모아놓으면 거기서 저절로 토끼가 발생하여 나온다고 믿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거기서 토끼는 나오지 않는다. 원하는 타겟을 정확하게 구할 수 없다.

자연의 실재는 물질≫생물≫토끼종≫토끼가족≫특정토끼 한 마리로 범위가 좁혀지는 것이다. 연역이다. 절대경로의 종(種)이다. 이 경우는 옳다. 토끼가족을 모아 놓으면 거기서 분명히 특정 토끼 한 마리가 튀어 나온다.

빛을 따라가면 언젠가는 그림자를 만나게 되지만, 그림자를 따라가면 영영 빛을 만날 수 없다. 빛을 따르는 것이 절대경로 종이고 그림자를 따르는 것이 상대경로 류다. 분류는 종이 류에 우선한다. 종≫류다.

존재는 심과 날로 전개된다. 종은 심을 찾는다. 류는 날개를 벌린다. 존재의 주소지는 먼저 도≫시≫동≫번지≫아무개 씨로 종적인 전개를 가진다. 류는 같은 도 안의 여러 시들, 같은 시 안의 여러 동들이다.

분류의 10하 원칙

분류의 목적은 중복과 혼잡을 배제한 최적화에 있다. 전모를 보는 데 있다. 컴퓨터 작업은 일정한 양식을 만들어 놓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매번 새로 기안서의 양식을 만든다면 번거로울 뿐이다.

같은 임무는 양식을 하나로 통일함으로써 중복과 혼잡을 제거한다. 그러므로 운영체제≫프로그램≫폴더≫파일≫정보의 종(種)이 전개된다. 이에 따라 존재의 주소는 ‘유도≫대응≫의속≫인과≫표상’이다.

유도는 유도이론≫대응은 집적이론≫의속은 보편이론≫인과는 일반이론≫표상은 분류이론으로 해명된다. 이들은 종을 구성하고 류와 만나 10하 원칙으로 발전한다. 6하가 아닌 10하로 빠짐없이 기술할 수 있다.

언제≫누가≫왜≫어떻게≫하였나는 종의 시간축을 구성한다. 어디서≫무엇을≫어떤≫하여지게≫되었나는 류의 공간축을 구성한다. 이들이 좌표의 X축과 Y축을 구성하여 5 곱하기 5의 25항목으로 전개한다.

패턴이 반복되어 125≫625≫3125항목으로 분류는 완성된다. 집적도 1에 종(種) 5요소에서 집적도 5에 시스템 3125요소로 존재는 한 가지 일을 하는 단일체가 완성된다. 그 이상의 복잡성은 중복과 혼잡이다.

[작용하는 연역의 시간축 종(種) ≪-≫ 수용하는 귀납의 공간축 류(類)]

유도 :    언제 - 어디서

대응 :    누가 - 무엇을

의속 :      왜 - 어떤

인과 :  어떻게 - 하여지게

표상 :  하였나 - 되었나

연역-존재론은 세로로 전개되는 시간축을 따르고, 귀납-인식론은 가로로 짝짓는 공간축을 따른다. 존재론은 시간축을 따라 작용하며 종(種)을 성립시키고 인식론은 공간축을 따라 수용되며 류(類)를 성립시킨다.

● 연역의 종 -> 지도에서 목록과 주소로 찾기

언제≫누가≫왜≫어떻게≫하였나

● 귀납의 류-> 광장에서 여러 단서로 표적 식별하기

어디서≫무엇을≫어떤≫하여지게≫되었나

자동차의 종 분류  

◎ 배경≫ 바퀴, 수레, 마차, 자동차

◎ 실체≫ 원동기, 오토바이, 자동차(2륜차, 3륜차, 4륜차)

◎ 연관≫ 전기차, 디젤차, 가솔린차, LPG

◎ 이행≫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

◎ 귀결≫ 특정차량

자동차의 종분류는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어 지구 상에 출현하는 시간적 순서를 따른다. 자동차 내부의 내적 정합성에 따라 언제≫누가≫왜≫어떻게≫하였나의 순으로 종이 분류된다. 주소를 따라간다.

자동차의 류 분류

◎응용≫ 배, 잠수함, 비행기, 로켓, 기차

◎종합≫ 승용차, 화물차, 트럭, 트랙터

◎분석≫ 현대차, 삼성차, 대우차

◎수용≫ 개인용, 공용, 승용, 장식용, 판매용

◎지각≫ 자동차모형, 장난감자동차, 자동차그림, 자동차 여행,

자동차의 류분류는 제조과정에서 제기되는 용도에 따라 공간적 전개를 가진다. 자동차와 인간의 짝짓기에 따라 어디서≫무엇을≫어떤≫하여지게≫되었나로 류가 분류된다. 식별되는 명찰을 따라간다.

종이 활쏘기와 같다면 류는 짝짓기와 같다. 종의 화살은 홀로 고독하게 날아간다. 하나의 타겟에 정확히 명중하기 원한다. 류의 짝짓기는 다양하게 펼쳐진다. 파트너를 바꿔가며 이리저리 배회한다.

시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시간은 태양과 달이 정한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정한다. 이때 무엇과도 결합하지 않는다. 시간은 순수하게 전해진다. 종이다. 종은 고독하고 순수하다.

공간은 땅 위에 펼쳐진다. 이때 결합된다. 인간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결합된다. 자동차그림, 장난감자동차 등은 결합된 것이다. 류는 결합되므로 류를 따르면 중복과 혼잡에 빠져버린다.

구분지

구분지는 태양이 쏜 빛이 해시계의 바늘을 만나 스크린에 그림자를 연출할 때 그 바늘이다. 노즐이고 필름이다. 구분지는 종과 류의 같음과 다름을 판단한다. ‘이다≫있다≫같다≫옳다≫맞다’의 다섯 계급이 있다.

우리는 막연히 ‘같다/다르다’로 판정하지만 실제로는 심층구조를 가져서 복잡하다. 다섯 개의 바늘이 있다. 각각 태양≫빛≫바늘≫스크린≫그림자에 대응한다. 아래로 갈수록 복잡해진다. 다양해진다.

무지개의 색깔들은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진다. 여기서 같음과 다름이 구분된다. 색깔들은 어떤 스크린에 투영되는가에 따라 변한다. 스크린에 곡률이 있다면 상은 굴절되어 나타난다.

최종적으로 스크린의 각 화소가 있는 위치에 어떤 사항이 주어져 있느냐에 따라 또 변한다. 그림자가 대상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만약 스크린이 검다면 빛은 흡수되고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 이를 잘 구분하지 않는다. ‘맞다’가 맞는데 ‘옳다’고 하거나 혹은 ‘같다’고 한다. 언어는 포함관계를 이루므로 이를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포지션을 읽어서 대략 알아챈다.

있다는 이다에, 옳다는 같다에 포함된다. ‘사과가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사과이다’로 말해도 대략 통한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다. 가장 정밀한 맞다/틀리다는 구체적인 계측의 수단이 있다. 눈금자가 있다.

옳다/그르다는 눈금은 없지만 기준선이 있다. 기준선이 100이라면 100에 근접할수록 옳다. 디지털시계는 특정 숫자를 나타내므로 ‘맞다’를 표시하고 아날로그시계는 대략 근접하므로 ‘옳다’를 표시한다.

● 이다/아니다.. 수레는 차고 배는 차가 아니다.

● 있다/없다  .. 가솔린 자동차는 만들어져 있고 원자력차는 없다.

● 같다/다르다.. 4륜차는 자동차와 같고 오토바이는 자동차와 다르다.

● 옳다/그르다.. 특정 용도에서 소형차는 옳고 대형차는 그르다.

● 맞다/틀리다.. 특정 차량은 내 차가 맞고 다른 차는 틀리다.

투수가 던진 공이 볼이냐 스트라이크냐로 판정되는 것은 홈플레이트 위의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구분지를 가지며 구분지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특색을 나타낸다.

빛은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색깔을 나타내고, 소리는 성대를 통과하면서 음색을 나타내고, 강철은 공장을 통과하면서 자동차가 될지 자전거가 될지 결정된다. 존재는 다섯 구분지를 통과하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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