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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논문 형식의 서론 본론 결론이지 칼럼형식이 아닙니다.
칼럼이라는건 신문의 가로쓰기에 세로칸을 나눈게 기둥모양이라는 말인데
이는 신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외부 필진의 기고라는 말이고
신문 기사의 맥락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글을 쓰기 때문에
도입부가 중요합니다. 사설과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논문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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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급격히 변화해 왔습니다. 산업혁명을 거쳐 디지털 혁명의 문턱을 넘으면서, 노동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고민도 새롭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4일 근무제는 단순히 근무 시간을 줄이는 제안이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을 재정립하고 경제적, 사회적 효율성을 강화하려는 시대적 흐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사건의 제시가 아닙니다. 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결론까지 다 내려버려. 이건 전체 칼럼을 압축해 놓은 것입니다. 이미 결론이 나왔는데 왜 더 읽어야 되나요? 이런 글은 칼럼이 아니고 논문 형식의 글입니다. 논문은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도입부의 장치가 필요없습니다. 예컨대 지구 온난화 문제라면 이미 문제가 충분히 제기되어 있습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만 제공하면 됩니다. 이건 정보제공용 글이지 문제제기용 칼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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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렬님 칼럼이 갑자기 앱에서는 검색이 되고 사이트에서 검색이 안되는데
(제목: 글쓰기의 전략, 2007-3-17일 / 글을 잘 쓰는 방법, 2014-8-16일)
전에 말씀하시기를 숫자나 어떤 사건의 요약보다는 글의 긴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하셨습니다.
(신문기사를 긁어와서 주소와 숫자와 이름이 나온다.)
=> 이 부분은 해당 글의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다른 예시나 비유 설명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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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검색하면 나옵니다. 구조론연구소는 사이트를 개편하는 중입니다.
=> 이 부분은 해당 글의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다른 예시나 비유 설명이 아닌지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 신문기사를 긁어와서 주소나 숫자나 이름이 모두에 나오면 그게 논문이거나 사설은 몰라도 칼럼을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지루해서 읽지 않음.
외부 기고 칼럼은 독자 입장에서 뜬금포가 되기 때문에 도입부가 중요합니다. 영화를 보더라도 초반 5분이 중요한데 헐리우드 영화는 초반에 주인공의 활약을 5분 정도 보여주고 그 다음에 인물소개로 갑니다.
보통 이야기 -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요즘 헐리우드 : 도입부 액션 -> 발단 -> 전개 ->위기 -> 절정 ->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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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을 하더라도 결국 나는.. 자기소개로 회귀. 앞으로 3년간 나는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하세요.
잘못된 칼럼의 예
정답은 함정이다 김겨울
그럴 리가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명쾌할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견디질 못해서 스스로 명쾌하다고 주장하는 의견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복잡한 세상에서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해가며 더 복잡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정답이라고 믿는다. 잘못된 이야기를 정답으로 여기거나, 어느 정도 옳은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 믿음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경우, 어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기도 한다.
첫 문단에 서론, 본론, 결론이 다 나와버렸다. 더 이상 읽을 이유가 없다. 의도적으로 순서를 거꾸로 배치하는 것도 긴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럴 리가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명쾌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름대로 기술을 쓴 것이다. 어쭈. 글 좀 쓴다 이거야? 그렇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첫 문단이 끝나기 전에 머리를 싸쥐고 읽기를 포기한다. 아이구 골치야. 지가 할말을 다 써놔서 밑으로는 안읽어도 된다는게 치명적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형태를 갖추어서 궁금증을 유발하여 계속 읽게 만들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1995년 옴진리교 교주의 주도하에 도쿄 지하철에서 벌어진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그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고있는 르포르타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에 이어 옴진리교에 속해 있었던 신자들을 인터뷰한 <약속된 장소에서>를 출간했는데, 이렇게 방대한 작업을 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범행을 저지른 범인 중 한명에게 쓴 말은 다음과 같다. “현실이란 본래 혼란과 모순을 내포하고 성립되는 것이며, 혼란이나 모순을 배제해버리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혼란과 모순을 초월하는 이야기, 확실한 정답, 반박을 허락하지 않는 진리에는 함정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은 이 문단이 맨 앞에 와야 한다 나라면 현실이란 본래 혼란과 모순을 내포하고 성립되는 것이며, 혼란이나 모순을 배제해버리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이 부분을 맨 앞에 쓰겠다.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표현이다. 초반에 밑밥을 깔고 미끼를 던져야 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해서는 안된다는 최소한의 윤리가 아닌 이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답’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정답이 있다고 여기는 과학마저도 반증 가능성에 의해 정당화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발견을 통해 내용이 업데이트된다. 대학교에 들어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지식의 체계가 무너져내리는 충격적인 경험을 해본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단순한 지식은 대학원에 이르러 복잡한 조건을 꽁무니에 줄줄 달게 된다. 삶은 원래 불안정하고, 세상은 원래 불확실하며, 설명은 원래 복잡하다. 그렇지 않다면야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이렇게 많은 종교에 오랜 시간 의지했을 리가 없다.
정답이 없는게 정답이라는 나름대의 정답을 제시하고 있다. 어쨌든 방향전환이다. 그러나 모두에 이미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같은 말 재탕이다. 했던 말 또하면 어쩌냐? 맹구냐?
조용하고 깔끔한 세상, 한 가지 진리가 영구히 통하는 세상, 복잡한 설명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은 위험하다. 그러한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파시즘의 모습을 하게 된다. 나치가 집권했을 때, 어쨌든 한동안은 독일이 조용했다. 그 조용함을 기뻐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 혹은 결함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죽어나갈 때도 그것을 후련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정상적이다. 어떤 방향전환을 제시하고 그것을 검증한다.
나의 신념, 나의 정의, 나의 미감을 한번씩 돌아보고, 그와 다른 신념, 다른 정의, 다른 미감을 보고, 듣고, 견뎌야 한다. <데미안>이 알을 깨라고 했을 때 소설적으로 그 알은 개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이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의미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정말 깨야 할 알은 단순화의 알이다. 옴진리교 신자들도 옴진리교에 귀의하기 전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지겹고 지난한 자신의 서사를 폐기하고 그 자리에 구원의 찬란한 서사를 집어넣은 것뿐이었다. 모든 것이 명쾌해졌을 때, 많은 것이 잘못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정리해주는데 결론이 모두에 나와버려서 했던 말을 세 번 재탕하고 있다.
1. 정답은 없다.
2. 하루키도 그랬다.
3. 정답은 없다는게 정답이다.
4. 내 말이 정답이라니깐.
5. 역시 정답은 없어.
했던 말 무한반복. 병맛인증, 자기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