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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910 vote 0 2010.05.10 (15:45:26)

 

6개월 아기도 선악구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267291(관련기사)

 

사회의 어느 분야든지 조금만 깊이 들어가보면 전부 주먹구구로 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묵은 주장이다.(합리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구조론적인 이유로 첨단분야일수록 주먹구구일 수 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1천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봉건시대 배경이겠다. 시골의 무지한 농부라도 날씨를 헤아려 과학적인 방법으로 씨앗을 뿌린다. 그 안에 인류 수 만년의 지혜가 농축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제왕이라면 어떨까? 부인과의 베갯머리 송사로 정사를 결정한다. 어처구니 없다. 물론 관례가 있고 제도가 정비되어 있으면 규정을 따른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그냥 기분대로 하는 거다.

 

제사를 지낼 때는 문무백관을 모아놓고 장엄하게 격식을 차려서 잘 한다. 이웃나라와 전쟁을 할 때는 그냥 기분내키는대로 한다. 사소한 것은 시스템을 따르고 중요한 것은 기분을 따른다.

 

문제는 이런 엉터리즘이 현대사회라도 예외가 아니며 학계라도 전혀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과학자 집단이 과정 비과학적으로 놀고 있는 것이다.

 

링크한 기사는 세계의 지식인들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학문을 하고 있는지 알게 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예일대 연구진이다.

 

일단 선악(善惡)은 없다. 선의 원소가 없다. 산소나 수소는 있어도 선소(善素)는 없다. 선소가 없으니 선악이 없고, 선악이 없으니 아기가 선악을 ‘구분한다/구분 못한다’는 명제도 불성립이다.

 

이는 언어학의 문제이다. 언어학으로 풀 문제를 두고 엉뚱한 실험을 하고 있다. 구조론적 관점을 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의 맥락이 중요하다. 진-선-미-주-성은 한 덩어리다.

 

이 다섯 중에서 하나를 따로 분리해 낼 수 없다. 선악을 판단한다는 것은 곧 진위를 판단한다는 것이며 한편으로 미추를 판단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6개월 아기가 진위를 판단할 수 있을까?

 

6개월 아기에게 가짜젖과 진짜젖을 들이대면 아기는 어느 것을 선택할까? 6개월 아니라 1개월 아기라도 시력이 발달되어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충분히 진위를 구분할 수 있다.

 

생후 1개월 아기라도 선악을 구분할 수 있다. 아니 엄마 뱃속에서 나오지 못한 태아도 선악을 구분할 수 있다. 6개월 된 아기에게 예쁜 방과 무서운 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떨까?

 

당연히 예쁜 방을 선택한다. 미추를 구분하는데 선악을 구분하지 못할까? 하루 된 병아리도 선악을 구분한다. 단지 과연 병아리가 선악을 구분하는지 판단할 테스트 방법이 문제일 뿐이다.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없는 것을 논하다니 너무 어리석지 않는가? 어린이도 아닌 어른이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다니 말이다. 선은 돕는 것이고 악은 방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행위다.

 

돕는다 혹은 방해한다는 개념은 2차적이다. 1차적으로 보면 성공과 실패다. 성공은 호흡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실패는 호흡이 방해되는 것이다. 선한 상황에서 감정이 고조되고 호흡이 유쾌해진다.

 

악한 상황에서는 호흡이 방해되며 불쾌해진다. 아기에게 좋은 음악과 시끄러운 소음을 들려주면 어떨까? 시끄러운 소음은 사람을 놀래킨다. 놀라면 인간은 호흡을 멈춘다.

 

호흡하는 순간은 인간의 취약점이기 때문이다. 백미터 경주는 무호흡 경주다. 골인지점에 도착하는 10여초 동안 인간은 숨을 쉬지 않는다. 인간은 방어태세일 때 호흡하지 않는다.

 

예의 실험에서 돕는 상황과 방해하는 상황이 있다. 돕는 상황에서는 고른 호흡과 감정의 고조를, 방해되는 상황에서는 호흡정지와 불쾌감을 경험한다. 아기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하다.

 

아기에게 장난감을 보여준다. 그냥 보여주면 아기는 장난감의 어디에 눈을 맞추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한다. 흔들며 보여주면 눈동자가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 아기는 움직이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이는 고양이가 노리개를 흔들면 달려드는 것과 정확히 같다. 아기는 눈의 초점을 맞추려고 하며 표적이 움직일 때 편안함을 느낀다. 이는 기계적인 현상이다. 선악이나 미추는 2차적으도 도출된다.

 

원점에서 아기의 선악판단은 기계적인 단순반응이며 본질에서 아기의 지능과는 전혀 상관없다. 물론 지능이 경험의 축적에는 영향을 미친다. 본질에서 태아라도 선악의 판단이 가능하다.

 

아기를 그냥 안고 있는것 보다 안고 흔들어주는 것이 좋다. 구조론의 축과 대칭원리에 따라 아기의 마음이 가 닿을 축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추를 판단하는 것은 축을 판단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성의 가슴이나 히프에 반응하는 것은 기계적이다. 미추판단 이전에 기계적으로 눈동자가 띠라서 움직이도록 세팅되어 있다. 고양이가 흔들이를 보고 달려드는 것도 기계적이다.

 

인간은 항상 축을 찾으려 하며 남자들은 돌출된 것, 움직이는 것, 동그란 것에 반응하도록 사전세팅이 되어 있다. 여성들은 레이스가 달린 장식적이고 화려한 것에 반응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시각적인 축을 발견하는 것은 미추판단이며 동적인 축을 발견하는 것은 선악판단이다. 인간은 협력하는 상황을 동적인 축으로 보고 그 쪽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 그냥 사각형이 하나 있으면 답답하다. 눈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 둘이 대칭되어 있으면 좋다. 둘을 하나의 팀으로 볼것인지 둘의 대립으로 볼것인지 판단해야 하며 눈은 그 지점을 탐색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역시 답답해진다.

 

■ □□ 둘은 대칭되어 있으면서도 통일되어 있다. 왼쪽은 센 놈이 하나, 오른쪽은 약한 넘이 둘이다. 머리와 꼬리가 나눠지고 진행방향이 특정된다. 눈동자는 머리를 주시해야 한다. 편안하다.

 

미추판단은 기계적으로 일어나며 선악판단은 사회적 의미를 추가한다. 약한 넘 □□ 둘이 협력하여 강한 넘 ■에 맞선다. 이때 자신의 역할이 특정된다. 이 상황에서 누구를 편들겠는가?

 

악당들은 기본적으로 지능이 떨어진다. 동적인 축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시력이 나쁜 것과 같이 물리적 조건이다. 시력이 나쁘면 스포츠를 하지 못한다. 장님이 사격선수는 될 수 없다.

 

장님은 화가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의미판단력이 떨어지면 선악판단을 못해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할 수 없다. 결국 시력이 좋아야 화가가 될 수 있고 사격선수가 될 수 있듯이 의미판단력이 좋아야 선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의미판단력이 떨어지는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남의 일에 개입하다가는 망쳐놓는다. 돕는다고 나서지만 실제로는 심통부린 결과가 된다.

 

많은 악행들은 선의에서 비롯된다. 선교사들의 악행이 그러하고 독재자들의 악행도 그러하다. 그들은 의미판단력이 떨어지므로 남의 일에 옳게 개입할 수 없다. 개입하면 나빠지는게 악이다.

 

축구를 할 때 서너개의 패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 쾌감을 느낀다. 그것이 선이다. 바로 그게 착한 행동이다. 패스가 매번 끊기면? 그것은 악이다. 탁구나 테니스에서 랠리가 계속 이어지면 역시 쾌감을 느낀다.

 

랠리만 계속되기만 해도 답답함을 느낀다. 일단 축을 찾으면 그 축의 축을 또 찾으려 들기 때문이다. 축을 찾고 축의 축을 찾고, 축의 축의 축을 찾고 이렇게 쌓기를 5단계까지 가야 완성도가 포착된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김연아의 연기를 봐야 한다. 김연아의 스케이팅에는 동(動)이 있고 동에는 반드시 축이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축의 축이 있고, 마지막은 축의 축의 축의 축의 축까지 있다.

 

좋은 그림에는 축이 있다. 밀도로 나타나며 긴장감을 준다. 좋은 연주나 좋은 소설, 좋은 영화도 역시 긴장감을 주고 몰입하게 한다. 간단하게는 소실점을 주거나 대칭시키는 방법, 움직이는 방법으로 축을 부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든 인간을 긴장시키는 것이 좋은 작품이다. 끝없이 새로운 축을 만들어낼 때 인간은 긴장한다. 같은 그림이라면 주제에 의해, 명암과 색채에 의해, 소실점에 의해, 주제에 의해, 구도에 의해 통일성이 부여된 그림이 더 시각적으로 긴장시킨다. 그러한 그림에서 눈동자는 재빨리 축을 찾아낸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센터과 생장점 그리고 둘을 연결하는 방향성을 찾아낸다. 선이 굵은 그림이 축을 찾기에 편하다. 인물의 감정이 더 빨리 독자에게 전달된다.

 

- 밀도를 주기(외부에서 들어오는 기운)

- 소실점(통일성)을 주기

- 대칭시키기

- 움직이기

- 두드러지기.(눈에 잘 띄게 하기)

 

이 방법으로 긴장감을 줄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영화의 축을, 소설의 축을, 그림의 축을, 음악의 축을, 찾아내고 몰입한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졸리고 지루해지고 잠이 든다.

 

결론적으로 선과 악은 사회적 개념이며, 사회적인 것이 선이고, 반사회적인 것이 악이며, 사회적인 것은 협력하는 것이며, 혁렵을 위한 공동의 목표 따위는 인간에 의해 2차적으로 해석되고 의미부여 된 것이며

 

그 해석의 단서, 의미의 소스는 자연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과학적인 법칙이고 이는 구조론에 의해 해명되며, 그 자연의 소스들은 진-선-미-주-성이 한 덩어리로 연계되어 있어서 선만 별도로 분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악판단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며 마땅히 질문은 ‘(어떤 것이든) 판단할 수 있느냐’가 되어야 하며 아기는 당연히 판단할 수 있다. 뇌세포가 1개만 되어도 판단할 수 있다.

 

바퀴벌레에게도 선악은 있다. 단지 바퀴벌레의 선악이 인간사회에서 유의미하지 않을 뿐이다. 아기의 선악판단이 인간사회가 관심을 둘 정도로 유의미한 것인지가 관건일 뿐이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선하라고 가르칠 뿐 진-선-미-주-성의 맥락을 가르치지 않으므로 어린이의 선은 종종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선의로 한 행동이 부당한 참견이 되는 모습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선의로 ‘차별하라’고 가르치는 어른들이 무수히 많다. ‘누구와는 놀지 말라’거나 하는 훈수는 제 아이에게는 선의로 일어나지만 사회적으로는 악으로 판명되곤 한다. 나쁜 개입이다.

 

###

인용한 기사 원문의 '선악관념이 태생적'이라는 표현은 구조론이 옳다는 과학적 증거가 된다. 아마 수년 안에 혹은 수십년 안에 이를 뒷받침하는 보다 진보한 학계의 보고가 나올 것이다.

진위판단-선악판단-미추판단은 하나이며 뇌기능의 일부이며 동물에게도 있다고.

인간에게만 있다고 알려진 능력(예컨대 도구사용이나 언어능력)이 알고보니 동물에게도 있더라는 식의 보고는 흔히 있다. 차이는 동물은 손이 없고 발달한 혀 근육이 없어서 도구나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뿐.

http://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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