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게임이론으로 풀어낸 진화론이다. 진화 개념을 생물의 진화에 국한시킨다면 좁은 의미에서의 진화다. 구조론의 진화는 무기체적 자연현상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진화를 의미한다.
진화가 생물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항성도 진화하고, 화성암도 진화하고, 광물의 결정도 진화한다. 인간사회도 진화하고, 인간이 만든 도구도 진화하고, 시장에서의 자본도 진화한다.
우주는 통째로 진화의 산물이다. 물질의 탄생, 문명의 발달, 역사의 진보, 사회관계의 고도화, 예술가의 창의, 패션의 유행, 전쟁의 확산, 군중심리 현상도 진화개념을 적용하여 풀어낼 수 있다.
진화의 핵심은 조직의 발달이다. 유기체의 성장이 세포 조직의 발달에 의해 일어난다면 인류문명의 진보는 사회적 조직의 발달로 일어난다. 도구의 개량이나 자본의 증식도 발달원리는 같다.
일체의 탄생하고 성장하고 점점 커져가는 것, 유기체의 특성인 생로병사의 순환구조를 나타내는 것에는 보편성과 공통성이 있다. 그 이면에 시스템 역학에 따른 필연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이렇듯 성장하는 것은 모두 계 전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모든 식물이 하늘을 향하여 두팔벌려 자라나고, 모든 강물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듯이 예외없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게 되어 있다.
외부에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를 두며, 내부에 대칭과 축의 하부구조가 있어서 손발이 되고, 가운데 에너지를 제어하는 센터가 상부구조를 이루어 머리가 되어 이중구조를 이룬다는 점도 공통된다.
실행하는 하부구조와 제어하는 상부구조로 이원화 된 구조체 내에서 에너지 흐름의 일방향성을 찾는 것이 구조론이다. 생명도, 자본도, 사회도, 문명도, 전쟁도, 유행도 반드시 한 방향으로 간다.
모든 성장하는 것, 진화하는 것은 방향성이 있다. 생명의 방향, 자본의 방향, 사회의 방향, 정치의 방향, 예술의 방향, 유행의 방향, 전쟁의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의 시작점이 그 존재의 두뇌다.
그림에 소실점이 있고, 태풍에 눈이 있고, 동물에 머리가 있듯이, 계 전체를 통일하는 센터가 있고 그 센터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방향이 있다. 센터를 알면 통제할 수 있고 방향을 알면 전진할 수 있다.
조직의 방향을 알면 경영에 성공할 수 있고, 자본의 방향을 알면 경제에 성공할 수 있다. 전쟁의 방향을 알면 승리할 수 있고, 예술의 방향을 알면 창의할 수 있고, 도구의 방향을 알면 발명할 수 있다.
센터를 장악하여 내부를 통제하고 방향성을 포착하여 외부로 뻗는다. 태풍의 눈을 알고 진로를 알아내면 곧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듯이. 정치라도, 경제라도, 문화라도, 사회라도 가능하다.
###
게임이론으로 풀어낼 수 있다. 게임의 구조는 축과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플레이어는 합리적인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포지셔닝의 우위를 이루어 상대방의 행동을 의도대로 제어할 수 있다.
상대방을 통제하려면 어떻게든 상대방과 연결되어야 한다. 씨름이라면 샅바를 잡아야 하고 유도라도 상대방을 붙잡고 기술을 건다. 그러나 직접 연결되지 않고도 통제하는 것이 게임이론이다.
둘이 하나의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면 가능하다. 널뛰기나 시소라면 상대방을 손으로 잡지도 않고 몸으로 스치지도 않지만 일정한 정도로 통제가 가능하다. 게임은 이러한 구조에서 성립한다.
평형원리, 곧 밸런스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밸런스를 ┳로 나타낼 수 있다. 수평으로 뻗은 양 날개가 대칭이면 수직으로 뻗은 가운데 기둥이 축이다. 대칭된 양 날개가 축 하나를 공유한다.
두 사람이 시소를 탈 때 한 쪽이 뒤로 한 걸음 움직이면 상대방도 뒤로 한 걸음 이동해야 한다. 만약 물러서지 않으면 구조가 무너지고 시소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방법으로 상대방을 통제한다.
이심전심의 원리다. 여기서 심(心)은 변덕스런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불변의 핵심, 중심, 본심을 의미한다. 연필심, 볼펜심과 같은 심이다. 센터(center), 핵(core)이다. 시소의 축이다.
보트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있다면 상대방을 손으로 잡지 않고도 물에 빠뜨릴 수 있다. 보트를 전복시키면 된다. 이심전심 원리다. 토대를 공유한 상황에서 이런 마술같은 일이 벌어진다.
대칭된 상황에서 중간 연결과정을 거치지 않고, 물리적으로 직접 상대방에게 힘을 작용하지 않고 배후에서 상대방을 통제하는 것이 게임이론이다. 일의적 동시결정 원리로 입증이 가능하다.
사과를 칼로 자른다면 이쪽의 절반에 단면이 얻어졌을 때 저쪽 절반도 단면이 얻어지며 두 단면은 완전히 일치한다. 둘은 하나를 공유한다. 이러한 운명의 공유가 세상 모든 논리의 출발점이다.
근대과학의 토대는 인과율이다. 인과율을 구성하는 원인과 결과, 사건을 구성하는 시작과 끝, 물리법칙을 구성하는 작용과 반작용, 열역학 1, 2법칙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우주의 기본원리다.
###
천칭저울의 한쪽 접시를 차지한 플레이어가 상대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을 때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면서도 구조를 붕괴시키지 않으려면 오직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축의 위치 이동이다.
축을 장악한 자가 축의 위치를 이동시켜 포지셔닝의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으로 승리하는 원리가 게임의 법칙이다. 상대방은 움직이지 못하고 자신은 움직일 수 있으므로 상대방을 제어할 수 있다.
그런데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 일방향성 원리에 따라 날개는 축을 칠 수 없다. 언제나 축이 날개를 칠 뿐이다. 시소의 끝단에 있는 사람은 에너지가 없으므로 혼자서는 축을 움직일 수 없다.
축을 장악하려면 외부에 동일한 형태의 또다른 구조가 있어야 한다. 플레이어가 위치한 ┳ 바깥에 또다른 ┳가 있어 대칭을 이루며 그 두 ┳의 대칭을 통일하는 제 3의 ┳가 더 있어야 한다.
축을 장악한 자가 게임에서 승리하지만 외부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축을 장악할 수는 없다. 날개가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 구조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조의 필연적인 모순이다.
진화는 항상 외부의 것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형태로만 일어난다. 반드시 외부와 연계되어야 한다. 외부와 연계된 자가 조직의 리더가 된다. 사람은 눈과 코와 귀와 입을 통하여 외부와 연계된다.
외부와 연계된 것이 두뇌다. 그러므로 두뇌가 인체를 장악하고 통제하며 리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왕은 외교를 통하여 국가를 장악한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는 반드시 외부와 연계되어 있다.
진화는 외부의 자원을 내면화 하는 과정이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은 움직일 수 없다. 바위에 붙어 있다가 바위를 내면화 한 것이 조개껍질이다. 껍질을 내부로 들여온 것이 척추동물의 뼈다.
생명의 진화, 정치의 발달, 자본의 증식, 도구의 발달, 예술의 진보, 패션의 발달, 전쟁의 확산, 군중심리 현상, 유행의 변화도 모두 이 한 가지 형태로만 일어난다. 지속적인 외부에서 들여오기다.
눈은 색상을 들여오고, 귀는 소리를 들여오고, 코는 냄새를 들여오고, 입은 음식을 들여오지만 불완전하다. 들여오는 과정도 ┳의 대칭성을 이용하므로 구조의 절반은 여전히 바깥에 위치한다.
눈은 색을 보지만 색을 낳는 빛은 태양에 있다. 귀는 소리를 듣지만 음원은 바깥에 있다. 그러므로 바깥에서의 환경변화에 따라 내부에서의 대응도 변한다. 구조는 외부의 환경변화에 취약하다.
모든 존재는 불완전하다. 생명도, 조직도, 정치도, 예술도, 자본도, 학문도, 컴퓨터도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성이 오히려 진보의 동력원이 된다. 외부 환경변화에 따른 내부대응의 변화가 진보다.
###
구조는 ┳ 형태다. 포지션 경쟁이 일어난다. 축을 장악한 자가 승리한다. 축을 장악하려면 ┳ 바깥에 ┳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두 ┳를 통제할 축으로 제 3의 ┳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
┳ ┳ ┳
세 ┳가 역시 ┳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집적해 간다. 봉건 계급구조는 피라밋 형태가 되고, 다단계사업 역시 피라밋 구조가 되고, 군대의 계급, 회사의 조직도 피라밋 형태가 된다.
┻ ┻┻ ┻┻┻┻ (피라밋 구조, 모빌구조)
플레이어간 포지셔닝 경쟁이 지속되면 ┳의 나무는 점점 자란다. 점점 더 큰 피라밋이 된다. 재벌 계열사는 피라밋 형태로 늘어나고, 컴퓨터 프로그램은 파일과 폴더들이 피라밋 형태로 축적된다.
구조의 나무가 성장하려면 일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전체가 한 방향으로 전개해야 조직의 내부모순에 의한 충돌을 막을 수 있다. 모든 도구, 모든 존재는 반드시 전체를 제어하는 센터가 있다.
구조의 작동은 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동력은 외부에서 들여온다. 외부에서 들여온 에너지가 하나의 ┳를 통과할 때 마다 잉여를 창출해야 계가 유지된다. 지속가능한 조직이 된다.
엔진에서 바퀴까지 전개하며 하나의 부품을 통과할 때 마다 에너지 손실이 일어난다. 부품들은 손실분을 취하여 자신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시계처럼 태엽에서 바늘까지 전부 한 줄에 꿰어진다.
강은 물줄기가 ┳ 형태로 합쳐질때마다 강물이 흘러가는 동력을 얻는다. 많은 강의 지류가 바다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큰 물줄기로 통합된다. 만약 그 반대로 나눠진다면 바다로 가는 동력을 잃는다.
┳의 지류가 계속 합류하는 꼭지점은 항상 바깥에 있다. 식물이라면 생장점이 끝단에 있듯이. 조직의 발달은 그 생장점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배출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자본에도 그러한 생장점이 있고, 학문에도 생장점이 있고, 문명에도 생장점이 있고, 예술에도 있고, 스포츠에도 있다. 정치에도 경제에도 사회에도 문화에도 있다. 생장점을 찾는 것이 구조론이다.
생장점은 칼의 날이다. 두뇌는 손잡이다. 센터를 이룬 손잡이와 생장점을 이룬 날을 다이렉트로 연결하면 하나의 선이 찾아진다. 조직의 방향성이다. 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구조론의 완성이다.
에너지의 출입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천칭저울은 두 날개가 대칭되어 좌우간에 방향을 알수 없지만 중력이 드나든다. 중력은 지구중심에서 온다. 지구중심과 천칭을 직결로 연결하면 방향이 보인다.
정치에서, 경제에서, 문화에서, 사회에서, 예술에서, 생명에서, 전쟁에서, 조직에서 센터와 생장점을 찾고 둘을 연결하는 방향성을 찾고 에너지가 드나드는 순환고리를 찾아낸다면 완성이다.
바로 그것을 찾았을 때 포지션의 우위를 이루어 모든 경쟁에서 승리하고, 모든 예술을 창의하고, 모든 도구를 발명하고, 모든 조직을 성장시키고, 모든 구조를 제어할 수 있는 참된 리더가 된다.
###
기차는 기관차가 앞이고 객차가 뒤다. 그러나 천칭저울은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알 수 없다. 지구중심에서 먼 쪽이 앞이고 가까운 쪽이 뒤다. 중력이라는 에너지 흐름을 보면 방향성이 보인다.
진보와 보수, 플러스와 마이너스, 밤과 낮, 닭과 달걀처럼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알 수 없는 대칭구조도 에너지 흐름을 보이면 앞과 뒤가 명석하게 구분된다. 손잡이와 칼날이 구분된다.
인간사의 모든 오류는 앞뒤구분이 안되어 손잡이가 아닌 칼날을 잡는데서 일어나는 실패다. 에너지 흐름을 보지 못하니 센터와 생장점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보면 분명히 방향성이 있다.
교육이라면 내면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자유방임이 좋을까 아니면 스파르타식 억압과 통제가 좋을까? 야구로 치면 자율야구가 좋을까 관리야구가 좋을까? 사회에서 이들은 보통 평행선을 그린다.
정답은 나와 있다. 기량이 되면 자율야구, 기량이 안 되면 관리야구다. 넉넉한 연봉을 줄 수 있으면 베테랑 스위스 용병처럼 자유를 주어야 하고 국군처럼 임금없는 군대라면 관리를 해야한다.
관리와 자율이라는 두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량과 댓가의 밸런스라는 하나의 논리가 있다. 진보와 보수도 두 논리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논리가 밸런스에 따라 좌우로 기운다.
타고난 기량이 센터라면 천문학적 연봉은 생장점이다. 둘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프로야구가 진보하는 하나의 방향성이 찾아진다. 기량이 있는 A급 자원을 데려오고 넉넉한 연봉을 주면 된다. 센터가 생장점을 따라가는 것이 진보, 생장점과 센터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구조가 붕괴되려 할 때 속도조절을 하는 것이 보수다. 둘은 별개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원리에 따라 역할이 나눠진다.
정치에, 경제에, 문화에, 스포츠에, 조직에, 도구에, 예술에, 생명에 센터와 생장점이 있고 둘을 연결하는 하나의 방향성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에너지가 순환하며 존재를 성장시킨다. 진보하게 한다.
∑ |
음식에 비유한다면 우선 철학이 필요하겠지요. 요리는 원재료의 맛이 중요하다든가, 요리는 건강에 기여해야 한다든가, 요리는 농민을 도와야 한다든가. 등등.
원재료의 맛으로 컨셉을 정했다면 보수적인 요리, 곧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의 풍미를 살리는 요리가 센터라면 요즘 유행하는 시중의 트렌드(예컨대 비빔밥처럼 섞어서 원재료의 맛을 퇴색시키는 요리 대표적인 건 햄버거와 비빔밥)는 생장점이겠지요.
센터와 생장점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면 방향성이 찾아집니다. 즉 원재료의 맛을 잘 알아야 햄버거나 비빔밥도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첨에는 햄버거처럼 이것저것 섞기만 하면 됩니다.
야채와 고기와 소스를 합치기만 하면 되지요. 그러나 경쟁하다보면 결국 원재료의 맛을 살린 햄버거나 피자가 더 잘 팔리지요. 그걸 쉽게 파악하려면 변하는 것(생장점)과 변하지 않는 것(센터)을 보고 그 둘을 대립구도가 아닌 입체적 구도로 보면 됩니다.
보통은 그걸 대립구도로 보기 때문에 모르는 거지요. 진보와 보수가 서로 적대시 하듯이. 보통 어떤 대립되는 둘이 툭탁거리고 있다면 실제로는 한편입니다.
둘 중 하나는 뒤에서 무게를 잡아주고 한 넘은 앞에서 손발을 휘두르지요. 손발은 뒤에서 무게잡는 엉덩이 때문에 동작이 느려져서 싸움에 못이긴다고 화를 내지만 엉덩이는 반대로 내가 무게를 안잡아주면 손발은 바람에 날려가버릴 거라고 말하지요.
하여간 손발과 엉덩이는 서로 .. 궁뎅이 너 때문에 느려졌다 굼벵아, 손발이 너는 내가 안잡아주면 바람에 날아갔다 이 가벼운넘아 하고 서로 싸웁니다. 그래서 답을 못 찾지요.
이 둘 사이에 우선순위만 정하면 만사가 해결되는데 인간이 깨닫지를 못해서 그걸 대립구도로 보므로 답을 모르는 거지요. 둘을 대립구도가 아닌 연속과정임을 알아채려면 외부에 또다른 구조의 존재를 상정해야 합니다.
글고 외부와 연계된 지점에서 잘 못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아니면 에너지가 없는 곳에 터를 잘못 잡아서입니다.
언제나 질문은 엉성하고 답변은 체계적이니...앞으로 질문을 잘하려 노력해야겠네요.
그런데 질문을 잘하는 것도 아는 만큼이니...아직 구조론에 대해서 이렇다.라고 할 만큼 정리가 덜 되어서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질문이 황당하더라도 잘된 답변 계속 부탁드립니다.^^;()
에너지를 느끼고, 있다라는 것을 포착하거나 끌어내는 것도 곧 사람이고 보면...
에너지가 분명 있는데도 안된다면.,.,. 사람의 문제일까요...?
에너지가 분명 있는데도 터를 잘못 잡는다면 그것 역시 사람의 문제일까요...?
시간터를 잘못 잡았겠지요.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은 고수들만의 세계인데 한국은 후진국이라서 고수의 등장을 싫어합니다.
한국영화, 소설, 만화, 드라마의 공통점은
무능한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지옥훈련 하는거나 좋아하고
원래부터 능력있는 사람의 등장은 싫어합니다.
반면 미국은 원래부터 능력있는 사람만 찾다가 슈퍼맨 이야기나 하고.
우리나라에 고수들의 많은 등장을 기대해봅니다.
그러나 고수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슈퍼맨이나 초능력자가 되겠다는 ,혹은 기대하는 것은 많이 상쇄되지 않을까 합니다.
원래부터 능력있는 사람들이 훅훅치고 들어가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지는 사회가 되기를 열망해봅니다.
그들의 에너지가 결국 같이 살게 한다는 것을 좀 받아 들이는 자세도 필요할 것 같구요.
그리고 그들로 인하여 버블이 일어난다면 전반적으로 그것은 사기가 아니고 방향을 잘 잡아 가는 것이니 성장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거품이 꺼진다 하여도 사람은 남으니까요.
그리고... 답변 감사드립니다.^^()
'둘을 연결하는 방향성을 찾고 에너지가 드나드는 순환고리를 찾아낸다면 완성이다.'
한 개인이나 어떤 집단의 방향성이나 순환고리를 찾거나 생장점을 가장 빨리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의 기준을 정한다면 어떤 것을 파악해야 할까요.?
그리고 외부와 연계된 그 지점에서 잘 하는 사람이 있고 하기는 하는데 그것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인(세부적인)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