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발견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림에서 구조를 찾아본다면 보통사람 눈으로 보아도 각 층을 떠받치고 있는 고임돌 셋 정도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보통 구조는 3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둘이 더 숨어 있다. 돌탑의 각 층은 모두 중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한 줄로 꿰어져 있다. 질량이라는 구슬을 중력이라는 실로 꿰어낸 것이다. 바로 그것을 찾아야 한다.
구조를 이루는 축 1과 대칭의 2에 중력과 질량을 더하여 포지션 5가 존재한다. 그 중의 축과 대칭의 3은 쉽게 포착되지만, 나머지 둘은 아는 사람에게나 보일 뿐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어떤 존재든 반드시 계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꿰어내는 무언가가 있다. 정치라도 그러하고 경제라도 그러하다. 예술이든, 생물이든, 도구든, 조직이든 역사든 문명이든 항상 포지션 5가 있다.
내부에 축과 대칭의 구조가 있고 외부에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줄에 꿰어져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해 있다. 복잡한 시계라 해도 태엽의 입력에서 바늘의 출력까지 한 줄로 이어진다.
자동차라 해도 주유구에서 머플러까지 한 줄에 꿰어진다. 동물이라 해도 입에서 항문까지 하나의 파이프를 이루고 있다. 문명의 발달도 그러하고 역사의 진보도 그러하다. 반드시 센터가 있고 방향성이 있다.
자본의 증식이라면 자본의 센터가 있고 시장의 방향성이 있다. 그것을 알아보는 자가 돈을 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라면 역사의 센터가 있고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성이 있다. 역사는 진보할 뿐이다.
전쟁이라도 그러하며 게임이라도 그러하다. 태풍의 눈이 있고 태풍의 진로가 있다. 태풍의 눈과 진로를 찾아야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 자본의 눈을 찾고 시장의 진로를 찾아야 경영의 성공은 가능하다.
타오르는 불이라도 반드시 불길의 눈이 있고 불길의 진행방향이 있다. 역사도, 전쟁도, 게임도, 심리도, 사회도, 정치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그러하다. 눈과 진로를 찾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다.
역사의 눈, 전쟁의 눈, 게임의 눈, 심리의 눈, 사회의 눈, 가정의 눈, 정치의 눈을 찾아야 한다. 그림의 소실점 찾듯이 찾아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게 개입하여 조정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구조는 축과 대칭에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을 더하여 포지션 5로 구성된다. 그림의 돌탑이라면 중력이 입력하고 질량이 출력한다. 중력의 실과 질량의 구슬을 축과 대칭의 구조 3이 연결한다.
받침돌 셋 중에서 어느 쪽이 축이고 대칭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바람이 불거나 누가 떠밀어서 외력이 작용하면 그 순간에 하나는 축이 되고 나머지 둘은 날개가 되어 대칭을 이룬다.
외력의 맞은편에 있는 돌이 축이면 그 양쪽의 돌이 날개로 대칭구조를 이루며, 거기에 외력의 작용과 항력의 반작용을 더하여 구조는 포지션 5로 세팅된다. 이때 외력과 항력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입력과 출력을 보아내는 것이 깨달음이다. 대칭구조의 축과 날개 사이에서 방향성을 포착할 때 그것을 볼 수 있다. 태풍의 눈과 진로를 찾을 수 있다. 외력의 작용과 항력의 반작용이 포착된다.
그저 남보다 두어수 앞을 내다보기만 해도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게임의 구조 안에 다섯 포지션이 갖추어져 있다. 플레이어 2인이 테이블 1을 축으로 삼이 이익과 손실이라는 작용과 반작용을 제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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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