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동영상 해설입니다.]
전쟁에 임하여 세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 전쟁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둘째 전쟁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셋째 전쟁을 어떻게 종결할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하는 자가 승리한다.
● 전쟁의 시작.. 주술적 태도로 빠지기 쉽다. ● 전쟁의 지속.. 합리적 태도를 견지하는 자가 승리한다. ● 전재의 종결.. 미학적 태도가 마지막에 전쟁을 끝낸다.
기본적으로 합리적 태도와 비합리적 태도가 있다. 전쟁의 역사는 합리주의가 일체의 비합리주의를 이겨온 역사다. 합리주의란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전쟁을 전쟁 자체의 내부논리에 맡기는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 전쟁이 주인공이다.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의 관점, 직업군인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전쟁은 결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전쟁은 결코 정의와 불의의 대결이 아니다.
선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정의가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은 나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휴머니즘을 버려야 한다. 사실주의적 태도와 과학의 관점에서 전쟁을 다루어야 한다.
전쟁은 단지 전쟁 자체의 법칙을 따를 뿐이다. 비합리적 태도는 자기 감정을 개입시킨다. 과학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감정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쪽으로 판단한다.
아마추어가 어떤 판단을 했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90프로는 이 법칙을 비켜가지 못한다. 그래서 전쟁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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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반에는 주술적 태도가 등장한다. 아마추어의 관점이다. 조짐이나 점괘에 집착하고, 전쟁을 신의 뜻으로 돌리며 신념을 강조하고 용기와 충성을 내세우며 정신력에 의존한다. 이렇게 가면 진다.
전쟁의 첫 번째 문제는 어떻게 군대를 모을 것인가이다. 일단 전쟁터까지 가야 한다. 그게 쉽지 않다. 주술이 도움을 준다. 지혜, 사기, 명분, 용맹, 충성을 강조한다. 패배하고 만다.
왜 패배하는가? 승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전쟁터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지혜, 사기, 명분, 용맹, 충성은 군대를 모으는 데 쓰일 뿐 승리하는 데는 필요없다.
전쟁은 장수의 지혜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병사의 사기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대의명분으로 이기는 것도 아니며, 장수의 용맹이나 부하의 충성으로 이기는 것도 아니다. 오직 전쟁의 법칙이 승리를 낳는다.
어떤 주술이 있었는가?
동학군은 부적에 의존했다. 황건적과 태평청국군도 주술에 의존했다. 십자군은 신념에 의존했다. 잔다르크는 종교적 신념과 열정에 의존했다. 유방은 적제의 후손이 백제의 후손을 물리친다고 소설했다. 유비는 대의명분을 강조했다.
그들은 모두 패전을 경험했다. 그들의 1차목표는 군대를 모으는 것이었으며 그 방법으로 군대를 모을 수 있었으나 그 다음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패배한 것이다. 전쟁은 현실이다. 사실주의가 아니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당면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다. 처음 전쟁이 발발하면 대부분 회피하려고 한다. 지혜, 사기, 명분, 용맹, 충성은 전쟁을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나약한 생각이다.
전쟁이 계속된다면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담담한 태도가 된다. 합리주의자로 변하는 것이다. 밥먹듯이 전쟁을 해온 나라들이 합리주의가 된다. 알렉산더나 카이사르나 징기스칸이 그러하다.
그들에게 전쟁은 인생 그 자체였다. 그들은 기술자가 문제를 해결하듯이 혹은 건축가가 집을 짓듯이 전쟁을 차근차근 건축해 간다. 선과 악의 개념이 없고 대의명분도 필요하지 않다.
● 합리주의는 전쟁을 현실로 인정한다.
● 비합리주의는 전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어떤 악당 때문에 일어난 재난이라고 여긴다. 악당에 대한 증오의 형태로 감정을 개입시킨다. 전쟁을 전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복수나, 혁명, 혹은 심판이라고 여긴다.)
충성, 용맹, 애국, 지혜, 사기, 명분, 복수, 심판, 혁명이라는 생각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일종의 자위행위, 자기위안이다. 전쟁은 집을 짓는 것과 같으며 애국이나 충성이 아니라 기술자가 필요하다.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현실을 외면하고 솔개의 공격을 받은 병아리가 낙엽더미에 머리만 파묻고 있듯이 명분이니 애국이니 충성이니 사기니 복수니 용맹이니 하는 주술 뒤에 숨는다. 부질없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승리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옮겨야 한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 포지션으로 옮겨간다. 애국, 충성, 용맹, 복수, 심판 등의 감정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한 인체의 반응에 불과하다.
종교적 신념에 의존하는 신비주의나 과거에 집착하는 경험주의 혹은 1회성 속임수로 우연한 승리를 꾀하는 실용주의가 다 비합리적인 태도이다. 이들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경험도 버리고 손자병법도 버려야 한다.
일체의 전쟁 안에서 답을 찾지 않고 전쟁 바깥에서 답을 찾는 행위가 비합리적 행동이다. 물론 하수들끼리 맞붙은 경우 이 방법으로 승리하기도 한다. 애초에 전쟁의지가 없는 군대가 적의 숫자만 보고 도망친다든가 하는 따위다.
주술을 써서 많은 농민을 모아놓으면 적이 지레 겁을 먹고 붕괴되기도 하는 것이다. 황건적도 그 방법으로 초반에는 승리했다. 일본군이 일본도를 들고 육박전으로 달려들면 미군이 도망갈 것이라고 여긴다든가 하는 예가 전형적인 비합리적 태도이다. 물론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다.
천우신조를 기대하거나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돕는다고 믿거나 따위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물론 약간의 사기진작에 도움이 되지만 전형적으로 지는 군대의 모습이다. 확실한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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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주의는 전쟁 안에서 답을 찾는다. 적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고 자기군대 안쪽을 들여다 보고 내부적인 시스템을 개선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성인가 절대성인가다. 절대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적이 아군보다 약하면 이길수 있지만 상대적인 관점이다. 적은 다시 힘을 모아 반격해 온다. 적을 어떻게 하는 방법으로는 불완전하며 아군이 완전해야 한다. 무적의 군대를 만들어 적의 전쟁의지를 붕괴시켜야 한다.
●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첫째다. 알렉산더나 카이사르의 직업군인, 앗시리아 군대나 몽골군의 전리품 목적이 그 예다. 그들은 대의명분을 위해서나 혹은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돈벌이를 위해서 전쟁을 했다. 프로의 자세다.
전쟁이 이익이 되어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이다. 명분 때문에 이익이 없는 전쟁을 하는 자는 대개 패배한다.
● 내부시스템을 꾸리는 것이 둘째다. 소대와 중대, 대대 따위의 편제를 만들어 피라밋형태로 조직하고 군법을 엄하게 시행하며 한편으로 보급문제를 해결한다.
러시아군은 잘못을 저지른 자를 끌어내 곤장을 치지만 프러시아군은 잘못을 저지른 병사는 놔두고 부대원 전원에게 푸시업과 같은 단체기합을 준다. 전쟁은 뛰어난 장수나 용감한 병사에 의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의 협력에 의해 승리하므로 개인을 처벌하지 않는다.
● 신무기를 앞세우는 것이 셋째다. 지휘관의 능력으로 이기면 적은 지휘관을 암살하거나 회유하려고 한다. 혹은 더 나은 지휘관을 선발하여 맞서려 한다.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우세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최종적으로는 국가 체제가 우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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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주의를 실천하여 승리한 예. - 오자병법.. 오기는 군대 내부에 편제에 주목하여 부하와 장수간의 밀접한 소통을 실현했다.
- 로마교범.. 적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숙영지를 건설하고 도로를 놓고 부교를 만들고 참호를 파고 도시를 건설하여 적에게 신뢰를 주는 방법을 썼다. 치고빠지는 것도 아니고 명성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주둔을 꾀하는 로마군의 입장을 게르만족이 완전히 알게 되면 전쟁의지가 소멸한다.
- 구스타프 아돌프의 참호전.. 병사를 보호하는 전쟁을 했다. 대의명분을 위해 병사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 태도이다.
- 알렉산더와 시이저의 직업군인제.. 국가를 위한 병사의 희생은 비합리적인 마이너스 개념이고 전쟁을 통한 돈벌이의 이익을 강조하는 것은 합리적인 플러스 개념이다.
- 시스템에 의존하는 조조.. 자식을 희생시키고 눈물을 흘려가며 측근 부하 장수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중요시했다.
- 마키아벨리의 근대주의 .. 신의 뜻을 펼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에 따른 전쟁임을 갈파했다.
- 알렉산더의 추격전.. 적장을 일부러 도망가게 해서 끝없는 추격전을 벌이는 방법으로 적의 왕과 신하 사이 고리를 끊어놓는다. 적의 군대를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국가시스템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 징기스칸의 공성전 학습.. 독재자는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하므로 배우려들지 않는다. 몽고군은 대왕의 체면을 구겨가면서 아랍인의 공성기술을 배워왔다.
비합리주의로 패배한 예 - 손자병법의 속임수 전쟁의 기본을 속임수로 보는 태도는 적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게 해서 1회의 전투를 이기고 장수 개인의 명성을 높일 뿐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속임수로 승리하지 못한다. 물론 감정을 배제하고 인정사정없는 전쟁을 추구한 점은 합리주의적이다. 속임수는 비밀유지가 관건이므로 적을 속이기 위해 아군도 속이는 과정에서 내부불신을 야기하여 전체적으로 군대를 약화시킨다. 작은 나라가 일회용으로 쓰는 방법일 뿐 대군이 속임수를 쓰면 안 된다. 물론 무리한 정면대결 추구가 실은 두려움 때문인 경우도 많다. 반복되는 전투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므로 평야에서의 대회전을 추구하다가 박살난다.
대의명분의 추구는 전쟁단계에 돌입하기 위한 사전작업일 뿐이다. 군대를 모으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그것으로 승리하지는 못한다.
- 무정부주의 테러 자객을 시켜 한 방을 노리는 식의 암수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춘추시대 소국들간의 어지러운 전투에나 먹힐 뿐이다.
- 초패왕의 무개념 남쪽 초나라와 북쪽 진나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초나라 출신 항우는 북쪽 진나라 사람들은 초나라와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쪽 세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 광해군의 눈치 전쟁의지 부족이다. 적의 침공 앞에서 눈치나 보는 나약한 태도는 내분을 일으켜 필패한다. 그 상황에서 내분은 필연적이다.
- 송양지인 명성을 얻어 싸우지 않고 외교력으로 승리하려는 태도는 흔히 있다. 전쟁의지 부족이자 나약한 태도이다.
- 십자군의 무대책 전쟁터까지 가는게 목적이었다. 더운 날씨에 대한 대비가 없어서 아랍의 뜨거운 태양에 가열된 철갑 안에서 저절로 통구이가 되었다.
- 약자의 환상 춘추시대 많은 소국들이 강대국의 군대를 빌려 어떻게 해보려다가 저절로 접수되고 말았다.
- 감정적 태도 유비의 이릉전투는 복수목적이다. 한니발의 복수심이나 잔다르크의 주술도 이성적이지 않다.
- 일본군의 경험주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무모한 육박전으로 운좋게 승리한 일본군은 이차대전도 같은 방법으로 승리하려고 했다. 경험에 의존하는 자는 패배하고 만다.
- 히틀러의 실용주의 초반에 기선제압으로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최종적인 전쟁의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면 전쟁이라는 수렁에서 발을 빼지 못한다. 개전은 자신이 정하지만 종전은 자신이 정하지 못한다. 총체적인 전쟁수행능력을 보지 않고 적이 자멸하기를 바라며 요행수를 노린 것이다. 기습전이라는 암수가 실용적이지만 1회용이다. 실용주의는 치고빠질 수 있는 섬나라의 특기다. 대륙에서는 패전한 자가 승복하지 않아 전쟁이 장기화되므로 합리주의가 필요하다.
전쟁의 종결 전쟁의 중간단계를 해결하는 합리주의가 전쟁초반 단계에 몰입하는 주술 위주의 비합리주의를 이기지만 최종적으로 종결짓지는 못한다. 최종적인 전쟁의 종결을 위해서는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미학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미학은 밸런스의 추구다.
무엇이 전쟁을 종결하는가? 사회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 카이사르는 로마를 부족국가에서 세계국가로 변모시켰다. 사회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전쟁은 계속될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 황제의 등장으로 전쟁을 막는다. 여러 봉건왕이 할거하고 있으면 외교가 되지 않아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 황제는 봉건구조의 모순에 따라 필요한 포지션이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였기 때문에 황제가 없어져서 여진족들이 고구려에 충성하지 않게 되었다. 황제는 세력다툼이 끊이지 않는 여러 부족장을 중재하는 역할이었는데 중재자가 사라진 것이다.
일본왕이 봉건제후들을 중재하는 역할인 것이나 영국왕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식민지를 통합하는 역할인 것이나 같다.
- 민주주의로 전쟁을 막는다. 봉건왕의 전쟁욕심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30년 전쟁에서 신교가 우세한 것도 신교가 무역으로 돈을 번 부르조아들의 욕망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주적으로 욕망을 결집시켜 부르조아의 탐욕을 부정하는 구교에 대항했다.
민주주의는 선과 악 정과 사의 개념을 떠나 역사의 흐름을 긍정한다. 역사의 필연법칙이 전쟁을 종식시킨다.
- 무역으로 전쟁을 막는다. 양차세계대전, 아편전쟁. 바이킹의 활동, 왜구의 3포왜란은 무역과 관련되어 있다.
- 혁명으로 전쟁을 막는다. 봉건 계급제도 철폐 등. 생산력의 변화에 맞는 국가체제가 탄생해야 전쟁이 종결된다. 춘추전국시대도 철제무기의 등장 때문에 확산된 전쟁을 국가체제의 변경으로 종식시킨 것이다.
고려의 끝없는 전쟁이 조선왕조에 이르러 사대부 계급의 등장과 함께 전쟁이 종식된 예도 이와 같다.
- 신무기로 전쟁을 막는다. 핵무기 등 압도적인 무기가 등장하면 전쟁이 종결된다. 장궁이나 소총은 농민도 쉽게 무장할 수 있다. 대중이 전쟁의 전면에 등장하면 대중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왕권이 요청되고 이에 따라 전쟁으로 수익을 올리는 군소봉건귀족이 몰락하고 지역에서의 소규모 분쟁이 중지된다.
전쟁을 최종적으로 종결하려면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한니발은 세력을 일구지 못했다. 마키아벨리나 한비자 역시 세력을 이루지 못하고 군주 1인에게 의존했다. 미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위험을 예방하기 위하여 위험을 존치할 필요가 있다. 알렉산더처럼 적을 도망가게 하고 쫓는 것이다. 그냥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드러내고 밸런스를 추구하는 것이다.
적과의 공존을 꾀한다. 민주주의가 야당과 공존하듯이. 진보주의가 북한과의 공존을 꾀하듯이.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면서 적응해야 한다. 싸움을 끝내고 평화를 유지할 것이 아니라 계속 싸움을 일으켜야 한다.
싸움의 나무가 자라게 해야 한다.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 무역경쟁, 민주경쟁, 실력경쟁으로 바꾸어서. 인간의 상승욕구를 배출하는 출구를 열어주는 것이다. 내부의 에너지를 밖으로 배출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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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전쟁/ 선거 결이 같지요.
돌아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냉정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선진국들은 그에 걸맞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 갈등의 해소 차원에서 쓰이는 비용임을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돈만이 가치라고 여긴다면 무의미,
그에 상충하는 사회적 갈등, 시간등을 고려하면, '가치'가 돈의 교환의미입니다.
그 전쟁같은 삶을 줄타기할수 있는 '경험'과 '이론'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이론'이 먼저입니다. 경험으로 얼치기로 맞춰보려는 심보를 버려야합니다.
주술/비합리적 태도 > 비합리/비합리적 태도 > ?/비합리적 태도
?/합리적 태도> 합리/합리적 태도 > 미학/합리적 태도
전쟁 전체를 일관하는 태도의 구분이 합리와 비합리로 볼 때,
초기 비합리적 태도인 "주술"과 대비되는 "?"는 무엇인지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
처음 전쟁이 일어날 시점에서는 그것이 과연 전쟁인지가 불명합니다.
천안함 사건이 과연 전쟁인가는 알 수 없지요.
미국 독립전쟁 당시 5000명의 미군이 5만명의 영국군과 맞서고 있었는데
그 5천명의 미군이 과연 군대인지 산적인지 양아치 집단인지 빨치산인지는 불명합니다.
당시 미국인의 70프로는 여왕에게 충성하고 있었고
독립정부를 자가발전으로 벼슬하고 싶어서 안달난 룸펜 정신병자 집단으로 보았습니다.
전쟁이 확실히 일어났는지
그냥 워싱턴이라는 몰락한 귀족출신의 머저리가 혼자 맛이 살짝 가서 헛소동을 일으켰는지는 불명합니다.
프랑스가 개입하는 등 일단 전쟁이 확실해지자
미국인은 백프로 독립파로 돌아섰고 삽시간에 50만 대군이 결집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집을 가능케 한 것은
'김주열 열사가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거나 '이한열 열사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거나
신화의 탄생과 함께 합니다.
동학이나 십자군전쟁 태평천국 황건적, 광주항쟁 등은 전쟁이 일어났는지 불명한 상태에서 전쟁을 발발시킨 것입니다.
선전포고하고 국가간에 전쟁을 한 것이 아니지요.
주술이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그냥 모여 있는데
나랏님이 어사를 내려보내서 '미안하다. 집에 가라'고 하니
동학군이 '임금님이 집에 가란다. 집에 가자' 하고 집에 갔습니다.
그래서 1차봉기가 실패했지요.
전주성 앞에 모였다가 그냥 집에간 아저씨들은 과연 전쟁을 하러 간 것인가요?
그들은 조선왕조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못했지요.
전쟁 초반의 비합리적 태도는 전쟁이 불확실한 상태에서의 혼란스런 행동을 말합니다.
확실히 전쟁이라는 점이 명백해지면 합리적 태도로 바뀝니다.
동학군이 몇 십만 모였지만 실제 전투 가능한 포수는 몇 백명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무력시위하러 모인 것이고 전쟁의지가 없었습니다.
몇 십만 농민이 무력시위를 벌이면 조정에서 겁먹고 굴복할 거라는 계산이지요.
프랑스가 개입하므로 미국의 독립전쟁이 확실히 전쟁으로 격상되었듯이
동학도 일본군의 개입으로 전쟁의 성격이 명백해진 것입니다.
주술이란 명칭에 집착할 이유는 없습니다.
병에 걸렸다면 옛날 사람들은 그게 과연 병인지 모릅니다.
이건 마녀의 저주야, 마녀를 잡아서 주리를 틀면 나을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닭을 죽이고 그 피를 문지방에 뿌리면 돼.
소금이나 뿌려.
고사라도 지내봐.
방법할매가 방법을 쓴거야.
이건 과연 병인지 아닌지 모르는 거지요.
병이면 의사를 불러서 의학으로 처방해야 하는데
병인지 모르니까 무당, 마녀, 방법할매의 약밥, 저주, 부적, 기도, 고사, 푸닥거리 등에 의존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전쟁이 확실하면 과학으로 해결할텐데
전쟁인지 모르니까 주술인 것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주술>과학>미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선거랑 같네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