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구조론 게시판 양모님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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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향성이냐 일방향성이냐, 이원론이냐 일원론이냐 이 부분이 필자가 삼년 동안 줄기차게 생각해서 마침내 결론을 내린 구조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거 알면 구조론을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결론부분을 여러번 강조하다 보니 중간과정의 설명이 약해져서 혼선이 빚어진듯 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워낙 어려운 부분이라서, 이걸 제대로 알게 되면 몸에 열이 나서 오밤중에 빤스만 입고 동네 한 바퀴 돌고와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라서 뭐 그래도 괜찮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래도 구조는 ↓ 한 방향이다.
아시다시피 구조론은 존재론과 인식론, 연역법과 귀납법으로 되어 있다. 언뜻 보면 이원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듭 말했듯이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인류역사상 모든 사상의 시조는 일원론이고 그 제자는 대략 이원론이다. 제자들이 삐딱선을 타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게 현장에서 먹히니까.
그래서 일원론인 기독교에 이란족의 사탄신앙이 수입되고, 일원론인 유교에 주자의 이원론이 나타나는 것이다. 퇴계가 잘못된 이원론을 퍼뜨려서 율곡이 일원론으로 바로잡느라 애먹은 것이다.
필자 역시 많은 혼란을 겪었다. 처음에는 인식론이 먼저, 귀납법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조직의 성장이 먼저이고 조직의 작동은 나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수신제가’한 다음에 ‘치국 평천하’라고 했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야 일을 하듯이. 사람이 모여서 국가를 이루어야 비로소 국가가 작동하듯이 인식론이 먼저 조직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더 큰 단위의 상부구조를 보지 못한데 따른 착시에 불과하다.
조직의 성장과 작동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면 이중기준의 오류다. 에너지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해야 한다.
그림처럼 구조 위에 구조가 덧 씌워져 구조의 중첩을 이루고 있다.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모래알이 떨어지는데 이것이 외견상 뿌리에서 가지로 가는 또다른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이는 것이다. 작은 모래시계만 보면 그렇게 보인다.
조직의 성장과 조직의 작동이 있다.
● 조직의 성장은 귀납, 인식론이다. ● 조직의 작동은 연역, 존재론이다.
조직의 성장은 실은 상부구조의 작동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개인의 성장은 인류의 작동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월드컵의 성장은 인류의 작동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다.
에너지의 흐름은
● 조직의 작동 : 잎 -> 뿌리 ● 조직의 성장 : 숲 -> 나무(이 부분이 인간 눈에는 뿌리에서 잎으로 에너지가 가는 것처럼 보인다.)
뿌리에서 잎으로는 에너지가 가지 않는다. 에너지원은 태양 뿐이다. 잎에서 뿌리로 에너지가 가는 것이 인간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땅 속의 물이 물 자체의 고유한 수압에 의해 잎으로 펌프처럼 쏘아지는 것이 아니라 태양빛이 광합성을 해서 당으로 변하여 뿌리로 가면서 물을 끌어올린 것이다.
뿌리에서 잎으로 가는 물의 상승은 태양이 당을 합성한데 따른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복제된 그림자다. 원본이 아니다.
진보는 조직을 성장시키려 하고 보수는 조직을 작동시키려 한다.
● 조직의 작동은 돈에서 일어난다. (잎->뿌리) ● 조직의 성장은 사람에 일어난다. (뿌리->잎)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조직의 성장 역시 실제로는 외부에서 아이디어가 들어오는 것이다. 본질을 보면 역시 (잎->뿌리)다.
진보의 사람이냐 보수의 돈이냐로 우리는 논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진보의 아이디어냐 보수의 돈이냐가 맞고, 진보의 아이디어가 보수의 돈에 선행하므로 진보가 보수보다 앞서는 것이다. 보수가 하부구조다.
아이디어가 돈을 만든다. 노동가치설은 착시에 불과하다.
진보가 깨지는 이유는 돈은 재벌이 외부와 무역하여 밖에서 들여오는데 사람은 안에서 자가발전으로 큰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키우는 아이디어 역시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FTA를 지지하는 것이다. 자본이 들어올 때 아이디어가 묻어오는데 그 묻어오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들어오는 것은 물론 자본이 들어오는 측면도 있지만 역시 아이디어가 들어오는 것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젊은이를 세력화 하고 진보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보이는 아이폰은 알고 보이지 않게 묻어오는 아이디어는 모른다면 실패다.
마르크스 말로 토대 - 상부구조 이런게 있는데 구조론을 잘못 이해한 전형적인 예다. 재미있는 것은 그나마 이게 구조론적인 관점에서의 사고라는 점이다. 어쨌든 마르크스도 약간은 구조주의자다.
마르크스의 결론은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인데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말이 되는 만큼 당연히 허튼소리다. 언제나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결정할 뿐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왜 하부구조 - 상부구조라고 하지 않고 토대 - 상부구조라고 했을까? 진실로 말하면 토대가 상부구조이기 때문이다. 헛갈렸던 것이다. 근데 이거 원래 헛갈리는 문제이다.
정치는 민중의 나무에 핀 꽃이라 할 수 있다. 민중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상부구조이고 정치는 그 열매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직의 작동은 그 반대다. 정권이 상부구조가 되고 민중을 참여시켜 꽃을 피운다.
● 조직의 건설 - 민중이 상부구조(마르크스의 토대)가 되어 하부구조(정권)에서 정치를 꽃 피운다.
● 조직의 작동 - 정권이 상부구조가 되어 민중을 참여시키는 형태로 민주주의를 꽃피운다.
둘은 다른 이야기므로 별도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아버지가 자식을 낳는 것과 자식이 사회로 나아가 돈 벌어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아버지는 자식을 낳고 자식은 돈 벌어서 부모를 봉양한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 아버지(토대) -> 자식(상부구조) : 아버지가 자식을 낳는다. ● 자식(상부구조) -> 아버지(토대) : 자식이 아버지를 봉양한다.
이건 순환논리의 오류다. 아버지가 자식을 부양하는 것은 맞지만 자식이 성장해서 아버지가 되면 역시 자기 자식을 부양할 뿐이다. 아버지->자식으로 1사이클을 끊어주어야 한다. 자식이 아버지를 봉양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논외다.
노동자가 회사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좀 허망한 이야기다. 어쨌든 노동자가 에너지를 공급하여 회사를 먹여살리는 것은 맞다. 결론은 회사조직의 성장과 회사가 외부세력과 대응하여 투쟁하면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논리라는 점이다.
● 회사조직의 발전 - 노동자가 회사를 키운다. ● 회사조직의 작동 - 주주가 권리를 행사한다.
하여간 구조가 양방향으로 전개한다고 여겨지면 위에 구조가 하나 더 덧씌워져 구조의 중첩을 이루고 있다고 판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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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ㅅㅂ 지금 밖에 빤스만 입고 나가서 춤추고 싶은데
엄니가 거실에서 아줌니들이랑 기도모임하고 있소.
나 역시 일원론과 이원론 사이에서 항상 일원론이 맞다고 직감하면서도 대체 '왜' 일원론인지에 대해선 그닥 설득력있게 풀어내질 못했었소.
구조론을 접하니 이제야 좀 내 안에서도 뭔가가 풀리는 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