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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225 vote 0 2010.06.01 (21:03:37)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 아이들은 강도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순종한다. 이렇게 말하면 현실성 없는 너무 끔찍한 비유가 아니냐고 따지겠지만 몽고사를 읽어보면 이것이 고원에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연한 상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목민의 삶은 원래 그랬다. 고원은 텅 비어있고 적들이 말을 타고 나타나서 습격하면 어쩔 수 없다. 산도 없고 바위도 없고 동굴도 없고 숲도 없다. 도무지 숨을 곳이라곤 없다. 무적의 징기스칸 조차 멜키트족에게 부인을 약탈당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징기스칸은 잃었다가 나중 되찾아온 부인의 소생인 주치를 두 말없이 키웠다. 주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는 적에게 살해되고 어머니는 낯선 사람에게 약탈당한 셈이다. 그래도 주치는 핏줄이 아닌 징기스칸에게 순종했다. 그게 인간이다.

 

두 분 대통령은 돌아가셨다. 냉정하게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이명박의 성공사례다. 어떤 방법을 썼던지간에 결과적으로 적 세력의 구심점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구심점을 제거함으로써 적을 와해시키는 전략은 역사에서 무수히 관찰된다. 3족을 멸하고 9족을 멸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구심점이 없어지자 심리적으로 공허해진 유권자들이 이명박 정권에 순종하고 있다. 1백년전 고종이 승하하자 분노하여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하기는 커녕 거꾸로 일본 제국주의 폭력에 순종하게 되었듯이.

 

경기북부 지역은 천안함 사태의 최대 피해자이지만 역시 가해자에 순종하고 있다. 이명박이 당선되면 전쟁난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견했다. 동영상들 보셨을 것이다. 말씀대로 되었다. 용산참사에서 천안함까지 모두 이명박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이요 희생이다. 어제도 한 분이 목숨을 빼앗겼다. 앞으로도 무수히 재난이 기다리고 있다. 네가 알고 내가 알듯이.

 

최대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협력하는 황당한 현상은 역사에서 무수히 관찰된다. 구조론적으로 보면 정치는 집단의 의사결정이며, 의사결정은 의사결정원리에 맡겨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의사결정은 단순할 수록 좋다. 이명박 전략이 먹히는 이유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다. 지식인들은 단련되어 있으므로 스트레스가 없다. 그러므로 민초의 마음을 모른다.

 

전쟁하기 쉽다. 평화하기 어렵다. 고로 전쟁한다. 인간은 언제라도 결정하기 쉬운 쪽으로 결정한다. 물론 민중이 반전을 외칠 때도 있다. 그것은 전쟁이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목도했을 때 뿐이다. 실은 전쟁끝내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체감하기 전에는 다들 편하게 전쟁을 선택한다. 그래서 양차 세계대전이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국민적 지지하에 일어났다. 월남전도 이라크전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은 그 전쟁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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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 심리다. 처음에는 ‘나는 즐기러 왔지. 돈 따러 온게 아냐.’하고 침착하게 배팅하여 약간의 성적을 낸다. 그러나 막판 12경주가 다가오면 허무감이 엄습한다. ‘내가 왜 경마장에 왔지? 나는 바보인가봐.’ 자신을 징벌하기 시작한다. 합리적인 베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마장에 온 행위가 유의미한 실천이 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결론에 맞추어서 베팅한다.

 

◎ 하루종일 열심히 베팅해서 고작 3만원 땄다. - 차비밖에 안 된다. 허무한 짓이다.

 

◎ 신의 계시를 받아 막판 큰거 한방으로 그동안 잃은 것 다 복구했다. - 멋진 드라마다. 큰 의미가 있다.

 

인생의 큰 교훈이 되고 추억거리가 되는 의미있는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 베팅한다. 그것이 가장 드라마틱한 승부가 되어 두고두고 포장마차에서의 술안주가 되는 형식의 각본이 나와준다.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오링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큰거 한방으로 환원시켜 건곤일척의 승부를 결정짓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겠다며 승부할 타이밍을 미루다가 정작 큰 승부를 해야할 결정적인 타이밍이 왔을 때는 ‘왜 하필 지금이 그때이지?’ 하는 심리에 빠져 결론을 못 내리고 미적거리다가 주저앉고 마는게 하수들의 본능이다.

 

◎ 고수 - 작은 승부를 반복하여 승리하며 조금씩 경험치를 쌓아간다.

 

◎ 하수 - 큰 거 한방으로 단번에 역전하기 위해 적을 깊숙이 유인하겠다며 안방을 다 내주고 계속 후퇴하다가 결국 반전의 결정적인 기회가 와도 타이밍 못잡고 궁지에 몰려 죽음을 맞이한다.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조금씩 승리의 확률을 높여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지만 인간은 끝없이 반복되는 의사결정 자체를 두려워 한다. 하나의 의사결정이 다른 의사결정에 연동되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할수록 스트레스의 강도가 배가되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결정을 안 해도 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의사결정을 회피하는 심리가 의사결정을 타인에게 위임하게 하고 그에 따라 신의 계시를 찾고 징크스를 찾고 운명을 찾고 침착함을 잃게 되어 파멸한다.

 

무엇인가? 그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 혹은 인생에 큰 의미를 주는 가장 큰(치명적인) 의사결정을 하려 한 것이다.

 

의사결정으로 인하여 인간이 얻게될 고통을 빼놓고 단지 의사결정에 투입되는 시공간적 노력의 효율성만 따져보면 이명박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라는 비용이 적게 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임을 알 수 있다.

 

◎ 의사결정의 법칙 - 가장 적게 투입하고 가장 큰 것을 얻는다. 의사결정에 가장 적은 시간과 가장 적은 스트레스를 투입하고 가장 큰 결과(죽이 되든 밥이 되든)가 나오는 엄청난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그 합리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가 아니라 반대로 의사결정 시스템 그 자체가 편하도록 하는 이상한 합리였다는 점이다. 즉 마사회가 편하도록 베팅하고 하우스장이 다 먹도록 베팅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사회를 번영시키고 하우스를 번영시킨 것이다. 이거 구조론에 다 나온다. 자기를 희생하여 세력을 키우는 세력동기 법칙이다.

 

인간이 드물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때도 있는 것은 그 동안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에 따른 스트레스를 안 받도록 단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당해봐야 안다. 약간 당해서 안 되고 아주 죽도록 당해봐야 약간 정신을 차린다. 천안함은 누구라도 처음 겪는 일이다. 이 경우 대부분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0.06.02 (07:57:33)

함께 살아가는 국민 다수의 잘못된 판단을 뻔히 지켜본다는 것도 참으로 고통입니다.
2년 전 검은 구름이 온 나라를 뒤덮으며 몰려오고 있는 환영에 너무 끔찍하고 괴로왔는데.....
그 구름이 검붉은 비가 되어 강을 물들이고 땅을 적시고 인간을 적시고 입을 마비시키고 인터넷을 적시고...
이제는 폭풍우가 되어갑니다.......

아침 햇살이 참 밝고 맑네요......
그래도 저 햇살을 오늘 내 마음속에 가장 커다란 뉴스로 삼고자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6.02 (13:01:20)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유시민이 떨어지고, 김문수가 당선 될 거라는 예측이오?
그런데 우리 국민은 KAL기 폭발사건, 아웅산 테러, 수지 킴 사건 등... 선거 직전에 안보불안을 초래하는 갖가지 황당할 사건을 겪어왔소. 그런 경험칙과 이번 천안함 사태는 다른 것이오? 국민이 학습하지 못한 것이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된 것은 국민들이 그런 사례에 충분히 학습되었기 때문에, 집단지성으로 각성했다는 내용인듯 하오.
[레벨:1]갈구자

2010.06.02 (15:17:22)

이번선거는 질듯한 뉘앙스가 흐르는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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