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것은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내 목숨이 소중하고 죽음이 두려운데 왜 싸우지? 누가 선동하지 않았다면, 유언비어가 유포되지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을 것인데 누군가의 선동에 속아서 싸웠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인간을 오해한다. 인간은 원래 잘 싸우는 동물이다. 전쟁이 터지면 잽싸게 도망가야지 하고 장롱 구석에 금괴 보따리 싸놓은 자들도 실전이 터지면 우크라이나인처럼 용감하게 싸운다. 죽음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당신도 변한다. 우크라이나의 부패왕 포로센코가 그렇다. 악당인데 요즘 재평가되고 있다. 삽질을 하다가 들통나자 잽싸게 외국으로 튀었는데 막상 전쟁이 터지자 귀국해서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 그는 나쁜 놈인데 왜 돌아왔을까? 싸우는 방법을 알면 인간은 누구나 용감해진다. ### 도박을 하면 돈을 잃는다. 누구나 안다. 그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정선 카지노로 모인다. 권도형의 루나사태도 같다. 다단계는 결국 파멸한다. 전쟁을 하면 공격측이 진다. 당연한 상식이다. 근래에 먼저 공격해서 이긴 전쟁이 있었던가? 베트남을 침공한 프랑스? 역시 베트남을 침략한 미국과 중국?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과 미국?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 포클랜드를 먹으려고 한 아르헨티나? 1차대전 일으킨 동맹국? 2차대전을 일으킨 추축국? 그들은 모두 패배했다. 그들의 패배는 사전에 예측되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래도 인간은 무모한 도박을 계속한다. 왜 항상 수비가 이기는가? 보통은 사기를 말하지만 환상이다. 사기는 할 말이 없을 때 둘러대는 말이다. 이를 설명할 다른 적당한 언어가 없을 뿐이다. 사기는 아니고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있다. 러시아 국영방송 로시야 1의 아나운서가 비관적인 전망을 늘어놓는 퇴역군인 대령에게 매서운 질문을 던졌다. 우크라이나군의 사기가 높다고? 우크라이나는 직업군인이 얼마 없는데? 동네 아저씨들이 첨단장비와 전문성으로 무장한 우리 막강 러시아를 이긴다고? 말이나 돼? 여자 아나운서가 비웃음을 던졌음은 물론이다. 얼핏 말 되는 이야기다. 비정규군이 정규군을 이길 수 없다는건 상식이다. 훈련되지 않은 농민군이 관군을 이길 수는 없다. 런던공습 때의 홈가드Home Guard가 그렇다. 이들은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삽질은 많다. 나치의 국민돌격대도 마찬가지. 그냥 삽질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기는 높았다. 사기가 너무 높아서 탈이었다. 영어가 서투른 외국계 영국군 조종사를 낙하산으로 탈출한 독일군 조종사로 오인하고 때려잡는게 홈가드가 주로 하는 일이다. 독일군이 오지도 않았는데 교량과 시설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일본군의 카미카제와 같다. 카미카제가 실패한게 사기가 낮아서가 아니다. 사기와 정신력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정직한 러시아 퇴역군인은 사기를 이야기했을까? 좀 아는 사람인데도. 답은 의사결정구조에 있다. 구조론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사기 외에 다른 말로 그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문제는 인간에 대한 오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변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한신은 정형전투에서 오합지졸 노인부대를 데려와서 배수진을 쳤다. 유방에게 정예병력을 뺏기고 급하게 잡병을 끌어모은 것이다. 사기가 높았을까? 천만에. 사실은 양동작전의 승리였다. 한신은 이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광주에서의 싸움 역시 인간에 대한 오해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르고 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극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푸틴과 석열의 무모한 도박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인간이 변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한 번 노예는 영원한 노예고 한 번 귀족은 영원한 귀족이라 믿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사기? 필요 없어. 전쟁사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은 안다. 일본군은 사기가 높았는데도 전멸했다는 사실을. 훈련되지 않은 농민군의 주술이 첨단장비로 무장한 러시아군의 공학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오해된 사람이 잔 다르크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글자도 모르는 농민 출신 잔 다르크가 주술을 구사하여 우수한 전투력을 가진 영국군을 이겼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병력을 지휘했고 잔 다르크는 따라다니며 농부들 앞에서 연설이나 했겠지. 응원단장 정도의 역할 아니겠어?
그러나 최근 학계의 연구에 의하면 잔 다르크가 실제로 병력을 지휘했으며 때로는 영국군을 능가하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능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필요할 때는 귀족 출신 기사에게 지휘를 위임하고 후방에서 조력하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을 오해한다. 진보 지식인들이 더 크게 오해한다. 잔 다르크가 군대를 지휘할 수 없다는 상식. 사기가 높은 농민군이 첨단장비로 무장한 정규군을 이길 수 없다는 상식. 광주시민이 겁도 없이 특전사 출신 계엄군에게 덤빌 수 없다는 상식. 그 상식이 틀렸다. 인간에게 무언가 있다. 이길 수 있는 구조가 포착되면 인간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임무를 정확히 알면 인간은 극적으로 변한다. 용감해진다. 인간이 비겁해지는 것은 동료가 사라졌을 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다. 밥과 무기를 주지 않을 때다. 한신의 오합지졸은 사기가 낮았는데도 잘 싸웠다. 일본군은 사기가 높았는데도 전멸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왜 잘 싸울까? 첫째,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왜 못 싸우는 걸까? 사실 같은 민족이다. 국적이 다를 뿐 같은 사람이다. 러시아군 사기도 높다. 국민 85퍼센트가 푸틴을 지지하는데 사기가 낮겠는가? 러시아군의 사기가 떨어진 이유는 첫째, 예상대로 되지 않아서 이긴다는 확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둘째,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공격 측은 충분한 준비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동료들과 유기적인 협력이 되어야 한다. 1중대가 전진하면 2중대는 엄호사격을 해줘야 한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기는 바닥이 된다. 그런데 그게 원래 쉽지 않다. 2차대전 독소전 초반 소련군은 우왕좌왕했다. 사기가 낮았다. 그들은 대거 항복했다. 미국이 스팸을 주자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왜? 끝까지 싸우면 소련이 이긴다는 확신 때문이다. 광주의 영령들은 끝까지 싸우면 국민이 이긴다는 확신 때문에 총을 든 것이다. 전두환과 개들은 그런 인간을 오해했던 것이다. 무지렁이들도 순식간에 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오합지졸도 한신의 지휘 아래에는 강군이 된다. 일본의 세이난 전쟁에서 사무라이들은 농민군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사무라이와 농민은 종자가 다르지. 농민군은 순식간에 강력해졌다. 소련군은 원래 항복이 전문이었다. 프랑스군은 순식간에 190만이 항복해버려서 독일군의 진격속도를 늦추었다. 진격보다 포로수용이 더 급해. 러시아군은 순식간에 500만 명이 항복해 버렸다. 역시 독일군은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런 소련군이 갑자기 강력해졌다. 미국이 스팸을 줬기 때문이다. 트럭을 줬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미국이 트럭과 지프 41만 대를 줬는데 항복하겠는가? 소련 사람은 제 눈으로 봤다. 미국이 제공한 트럭과 지프 41만 대가 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현장을. 당연히 눈이 뒤집어진다. 용맹해지는 거다. 시베리아 촌놈이 미국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미제 지프에 올라타고 신이 나서 전장을 달리는 것이다. 그들은 물러설 수 없다.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물자에 흥분해버린 것이다. 이미 호르몬이 바뀌고 무의식이 바뀌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인간은 단순하다. 주변에서 세 사람이 바람을 잡으면 넘어간다.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세 사람이 응원하면 180도로 태도를 바꾼다. 비겁자도 한순간에 용맹해진다. 끝까지 가면 우리가 이긴다는 확신이 들면 정말 끝까지 간다. 물론 공격 측이 이기는 전쟁도 있다. 그 경우는 대개 수비 측의 내분과 자멸이다. 고구려는 남건과 남생의 분열이다. 혹은 10배 이상의 압도적인 전력 차다. 체첸 인구는 백만이다. 100배 이상 전력 차가 나는 데도 전쟁을 10년 이상 끌었다. 백배의 전력으로 때리면 10년 안에 러시아가 이길 수 있다. 인간을 만만하게 보지 마라. 인간이 약한 이유는 이기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적의 나폴레옹 근위대는 워털루 전투에서 갑자기 비겁해졌다. 나폴레옹이 배가 아파서 잠시 막사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용맹한 군대도 지휘관이 없으면 한순간에 바보가 된다. 농민군도 때로는 순식간에 강력해진다. 첫째, 밥을 주고, 둘째, 총을 주고, 셋째, 의리를 줘야 한다. 이길 수 있는 구조 속에 들어가면 용감해진다. 그러한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 요행수를 노리는 바보들의 무모한 도박을 멈출 수 있다. 그런데 모른다. 지식인도 모른다. 나는 우크라이나가 진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구가 반인데 왜 진다는 거지? 그러나 세계의 많은 지식인과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예상했다. 그들은 인간을 크게 오해하고 있다. 지식인에게 지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아직도 사기타령 한다. 사기가 높은건 맞다. 그건 본질이 아니다. 결과론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똑같은 루스인이다. 푸틴의 지지율은 높다. 사기가 높아서 잘 싸우는게 아니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사기가 높은 것이다. 그 확신은 어디서 왔는가? 인류가 지켜보기 때문이다. 누구든 무대에 올라서면 객석의 관객들에게 힘을 받는다. 내 등 뒤에 1만 명이 쫓아오면 직진만 계속한다. 권도형은 왜 그랬는가? 추종자들 때문이다. 윤석열은 왜 그랬는가? 추종자들 때문이다. 푸틴은 왜 그랬는가? 지지자들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왜 용감한가? 지켜보는 청중이 70억인데 당신이라면 비겁하게 꽁무니를 빼겠는가? 광주의 영령들이 관심을 가진 부분은 미국의 항공모함이 이동하고 있는가였다. 만약 항공모함이 왔다면 모든 광주시민이 죽는다 해도 총을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은 예비군의 카빈총으로 M16을 든 특전사를 이길 수 없지만 역사의 승부에서는 이긴다는 확신 때문에 싸운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오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예상한 모두는 인간을 오해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지켜볼 때는 후퇴하는 비겁자가 없었다. 역사가 지켜보지 않으면 비겁해진다. 역사가 지켜보면 용감해진다. 훈련되지 않은 농민군이라서 비겁할 거라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농민군은 지켜볼 장교가 없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이다. 625 때 졸전을 벌인 국군의 전투는 대부분 지휘관이 자리를 비웠던 때였다. 역사가 지켜본다는 사실을 안다면, 전 인류가 한국의 야심 찬 도전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면, 진중권도 비겁하게 윤석열 뒤에 줄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가 지켜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관객이 지켜보면 본능적으로 한 곡조 뽑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