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화다. 구조론은 변화의 해명이다. 여기서 척도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는 저울, 됫박, 콤파스, 자, 숫자를 써서 질량, 부피, 넓이, 길이, 낱개를 헤아린다. 각각 4차원, 3차원, 2차원, 1차원, 0창원이다.
4차원 – 저울 - 질량 사물을 헤아리는 방법은 대칭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정된 사물에 대칭시킬 수 있을 뿐 움직이는 사건은 대칭시킬 수 없다. 손가락으로 참새를 가리킨다. 손가락 하나와 참새 한 마리가 대칭된다. 그것이 세는 것이다. 그런데 변화를 헤아릴 수는 없다. 변화는 움직이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새를 저울에 달 수 없다. 움직이는 것과 대칭을 유지할 수 없다. 헤아린다는 것은 자연의 일부를 추상하여 복제한다는 것이다. 복제하는 방법은 대칭이다. 살아있는 소를 복제할 수 없지만 소의 무게만 따로 빼서 복제할 수는 있다. 객체의 어떤 성질만 따로 빼는 것이 추상이다.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은 대칭을 사용하여 성질을 하나씩 추상하고 복제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고정된 사물을 계량할 수 있으나 움직이는 사건을 계량할 수는 없다. 구조론은 사건을 계량하는 수학이다. 인간이 자연의 변화를 재지 못한다면 변화는 어떻게 변화를 잴까? 역시 대칭이다. 인간의 관측과 자연의 상호작용은 같다. 인간이 대칭을 이용해서 자연을 복제하듯이 자연도 대칭을 이용하여 사건을 격발한다. 인간도 추상을 통해 자연의 속성을 복제하듯이 자연도 같은 방법을 쓴다. 이를 통해 인간은 변화를 잴 수 있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자연은 대칭을 통해 변화를 일으킨다. 인간은 대칭을 통해 변화를 추적한다. 자연의 변화에는 방향성이 있다. 그 방향은 마이너스다. 마이너스는 닫힌계 안에서 4차원 - 3차원 - 2차원 - 1차원 - 0차원의 순으로 차원이 낮아지는 방향으로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복제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을 만들려면 그 방법은 객체를 둘로 나누는 것이다. 변화는 공간의 진행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대칭을 만든 다음 코어를 움직이는 방법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때 동일하게 복제된다. 만약 50 대 50이 아니고 51 대 49로 나눠지면? 깨진다. 인간의 신체가 좌우대칭인 이유는 방향전환을 할 때 자빠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펴보라. 자연의 움직이는 것은 죄다 대칭이다. 움직이지 않는 돌은 대칭이 아니다. 설악산에서 양양해변까지 굴러온 돌은 대칭이다. 몽돌해변의 둥글둥글한 몽돌 말이다. 움직이면 깨지거나 대칭된다. 대칭을 유지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뾰족한 모서리가 깎여나가서 몽돌이 된다. 그 깎여나간 손실분이 의사결정비용이다. 사건의 진행은 의사결정비용의 손실을 수반하므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칭형태로 진행된다. 최대한 대칭시키더라도 조금이라도 손실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원리다. 손실이 일어나므로 대칭이 깨진다. 코어를 이동하여 대칭을 다시 조직해야 한다. 그 과정이 4차원-3차원-2차원-1차원-0차원의 마이너스다. 사건은 한 점에서 시작되므로 그 점을 특정하는 절차다. 이러한 진행은 사건 내부에서 일어난다. 인간은 사건 외부에서 관찰한다. 외부에서는 알 수 없다. 인간이 직접 사건 내부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대칭을 통해 내부사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여기까지. 흥미를 느꼈다면 계속 읽어도 좋다. 그런 분을 구조론의 세계로 초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