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터지고 구소련이 무너졌다. 인기가 있었던 고르바초프는 러시아에서 쫓겨났다. 주정뱅이 옐친은 단번에 러시아를 말아먹었다. 인터걸로 대변되는 러시아의 암흑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소련을 찬양하던 진보주의 지식인들은 하루아침에 바보가 되었다. 지식인은 자본의 폭주에 대항할 무기를 잃었다. 냉전시대는 지식인이 키를 쥐었다. 다들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중재하는 지식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좋은 시절은 갔다. 레이건이 세계를 망치고 야비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인류는 집단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제 3의 길 운운하면서 새로운 진보의 활로를 열어보려는 시도는 있었다. 그런 길은 없었다. 자본주의 외에 다른주의는 없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다. 서구 문명은 막다른 길에 몰렸고 백인들은 대안을 찾아 동양을 주시하게 되었다. 한때는 일본이 뭔가를 보여주었다. 와패니즈는 건재하다. 그런데 한물갔다. 후쿠시마 폭탄을 맞은 것이다. 체르노빌 한 방에 소련이 거꾸러지고 후쿠시마 한 방에 일본의 기가 꺾였다. 일본은 달팽이처럼 껍질 속으로 숨었다. 그러나 인류가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다. 한국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열린정치는 무엇인가? 세계의 모든 진보주의가 절벽 앞에 막혔을 때 빛을 제시한 사람이 노무현이다. 노무현은 민중을 정치의 세계로 초대했다. 한국이 일본과 다른 길을 가는 이유다. 노무현이 한국 유권자의 투표율을 높였다. 기득권 보수와 지식귀족인 가짜 진보가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일 때 황소처럼 그가 나타났다. 불행하게도 노무현을 이해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었다. 유시민, 안희정, 이광재, 김경수, 문재인은 막연히 노무현팔이나 할 뿐 노무현을 이해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다. 진짜 진보는 막연한 사람타령, 사랑타령, 생태타령, 진정성타령, 성찰타령, 유기농타령 하는게 아니다. 그게 빌어먹을 주사파 품성론의 변주다. 진실은 산업의 생산력에서 나온다. 칼자루를 쥔 자가 주인이다. 군인이 깝치는 이유는 그들이 칼자루를 쥐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재주가 그들에게 있다. 박정희에 전두환이다. 검사가 깝치는 이유는 그들이 칼자루를 쥐었기 때문이다. 선택적 수사를 하는 재주가 있다. 윤석열에 한동훈이다. 조중동이 깝치는 이유 역시 칼자루를 쥐었기 때문이다. 축구장을 기울이는 재주가 있다. 강남이 깝치는 이유는 그들이 칼자루를 쥐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동산을 잡으려고 할수록 가격을 올려놓는 재주가 있다. 그들이 이겼다. 힘으로 이기고 우격다짐으로 이겼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는가? 아니다. 있다. 닫히면 없고 열리면 있다. 민주주의는 라이플에서 나온다. 총은 있는데 화약이 없다. 파리지앵이 바스티유를 습격한 이유다. 내 한 몸을 지키는 데는 총알 열 발이면 충분하다. 정권을 털어먹으려면 더 많은 총알이 필요하다. 말로 떠드는건 일어난 변화를 알리는 것이고 본질은 변화 그 자체다. 자유, 평등, 평화와 같은 레토릭은 현장의 변화를 알리는 수단이다.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진 것은 변화를 봤기 때문이다. 변화가 진짜다. 그 변화를 디자인하고 포장하고 연출하는 지식인의 선전술은 나중 문제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라이플을 손에 쥔다. 현장을 장악해야 한다. 우리가 손에 쥔 총은 무엇이고, 우리가 미처 손에 넣지 못한 화약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스마트가 있다. SNS가 있다. 문을 닫으면 총을 쏠 수 없다. 열린 정치가 화약을 구한다. 우리는 일체의 문을 닫아거는 자폐증 진보 세력과 싸워야 한다. 품성론과 싸워야 한다. 성찰, 진정성, 유기농, 생태주의가 우리의 적이다. 그들은 진보를 명문대 나온 자의 사유물로 만든다. 생태주의 운운하며 폼을 잡지만 잘 들어보면 그게 명문대 학벌 자랑이다. 우리를 폭발하게 하는 화약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세의 힘에 있다.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과 FTA 가입이 열린 정치다. 우리는 세계 안에서 저질러 버려야 한다. 세계로 쳐들어가야 한다. 일본처럼 고립주의를 추구할 때 화약을 잃고 각개격파 된다. 조중동에 얻어맞고, 검찰에 얻어맞고, 진중권에게 매 맞고, 부동산 세력에게 깨진다. 매 맞는 모습을 보여주면 진다. 천하에 큰 불을 질러 세계를 불태우고 말겠다는 야심이 우리의 화약이다. 방향을 잃고 야심을 잃을 때 내부총질이 시작된다. 자전거가 속도를 잃으면 좌로 기울고 우로 기울면서 내부총질을 반복한다. 밖에서 흥해야 속도를 회복한다. 한류가 흥하고, 손흥민이 흥하고, 월드컵 4강을 가고, 국격이 올라가고, 세계가 한국에 관심을 가져줄 때 한국인들이 변한다. 주목받으면 변한다. 그럴 때 개나 잡아먹는 보수주의가 한국의 수치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우리의 바스티유는 바깥에 있다. 자존감이 우리의 화약이다. 자존감을 잃을 때 모든 것을 잃는다. 인류 역사상 한국이 인류 문명에 기여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열린 정치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럴 때 호르몬이 나와준다. 사람이 바뀐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프로와 아마는 눈높이가 다르다. 우리가 인류 문명의 건설주체로 올라서야 한다. 우리가 세계를 구해야 한다. 세계는 다른 나라에 없는 무언가를 원한다. 한국인 특유의 의사결정능력이 그것이다. 동료와의 의리가 그것이다. 남들이 못하므로 우리가 나서줘야 한다. 인류문명을 구성하는 다양한 캐릭터들 중에 주목받는 하나가 된다. 인류문명의 마지막 퍼즐조각을 한국이 채운다. 일본이 못한 것을 한국도 못하면 인류는 결국 중국을 쳐다보게 된다. 그것은 악몽이다. 스마트 시대에 한국이 잘 적응하므로 세계가 한국을 쳐다본다. 모두가 무대를 쳐다볼 때 한 곡조 뽑지 못하면 끌어내려진다. 다음 기회는 5천년 후다. 여기서 일을 내야 한다. 인류의 답을 우리가 말해야 한다. 세계는 한국형 의사결정 모델을 원한다. 나라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환경변화에 맞는 의사결정 모형을 내는 것이 진보다. |
바보 노무현 운운할때 민중의 비겁함을 봤고,
열린우리당이 망해갈때 자칭 엘리트들의 누추함을 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