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각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단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기계적인 균형은 균형이 아니다. 정적균형이 아닌 동적균형이라야 한다. 움직이는 균형, 살아있는 균형이라야 한다. 자연은 호흡한다. 생명은 호흡한다. 인간의 생각도 호흡한다. 사회도 호흡한다. 자본도 호흡한다. 상호작용한다. 상호작용의 접점이 있다. 살아있는 것은 생장점이 있다. 나무가 자라는 것은 생장점을 밀고 가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균형점이 있다. 일점을 찾아야 한다. 일점이 진행하는 방향성까지 찾아야 한다. 처음 자전거를 탄다고 치자. 자전거와 내가 대칭을 이룬다. 어느 순간 자전거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일점이 찾아진 것이다. 균형점이 있다. 그 점을 밀고 가는 것이다. 가만있으면 점이 깨진다. 페달을 밟아 전진해야 일점이 유지된다. 그 감각을 따라가는 것이 결 따라가는 것이다. 에너지는 결 따라간다. 소를 잡는 백정도 그것을 느낀다. 뼈와 살과 힘줄 사이에서 칼날은 일점을 찾아내고 그 일점을 따라간다. 나무를 다듬는 목수도 그것을 느낀다. 대패와 나뭇결 사이에 일점이 있다. 일점을 느끼려면 계속 움직이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보통은 반대로 생각한다. 시험문제를 풀려고 한다. 정답을 제출하면 된다고 믿는다. 박지현은 절만 하면 된다고 여긴다. 서울대만 합격하면 된다고 여긴다. 강남에 부동산만 사면 된다고 여긴다. 자전거는 전진해야 일점이 유지된다. 두 손을 놓아보면 알 수 있다. 엉덩이 근육이 실룩거리며 안장을 꽉 잡고 있는게 느껴진다. 사타구니에 근육이 붙어준다. 일점에서 이탈하면 자전거와 내가 분리된다. 대칭을 찾고 코어를 찾고 코어를 이동시킨다. 코어를 이동시키지 않으면 일점이 사라진다. 자전거와 내가 따로 놀게 된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예술이든, 스포츠든 마찬가지다. 모든 의사결정은 수요와 공급 사이, 여당과 야당 사이, 공격과 수비 사이, 작가와 관객 사이에 상호작용한다. 계를 찾고, 대칭을 찾고, 코어를 찾고, 일점을 찾고, 그 일점을 유지해야 한다. 가만있으면 일점이 유지되지 않는다. 랠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일점을 유지하는 균형감각이 답이다. 네가 어떻다. 야당이 어떻다. 하며 2점이 되면 망한다. 견주와 강아지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있다. 언제나 일점을 유지하고 있다.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긴장이 풀리면 이점이 되어 망한다.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이 겉으로 드러나도 망한다. 일점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은 일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자유로와야 한다. 모든 실패는 일점을 도출하는데 실패하거나 일점을 유지하는데 실패하는 것이다. 정치판이라면 여당과 야당 사이에 긴장을 조성하고 일점을 장악한 다음 상대방이 실수하여 이점이 될 때 사뿐히 밟아주면 된다. 메커니즘은 움직이는 둘 사이에서 일점을 통제한다. 그것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는 것이다. 외부에 노출된 접점을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상호작용 과정에 에너지가 수렴되게 하는 것이다. 세차운동을 일으키며 그 진폭을 줄여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