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장기표도 알고보면 재미있는 사람이다.(장기표 측근 중 저와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있어서 오해받기도 하는데 장기표와는 일면식이 있을 뿐.) 이 양반이 10여년 전부터 인터넷 신문명시대가 온다고 선언해서 필자의 주의를 끈 일이 있다.

10년 전이면 PC통신 시대다. 그 시절 장기표는 정치인 중 유일하게 네티즌과의 교류를 시도했던 사람이다. 딴지일보가 뜨자 누구보다 먼저 홈페이지를 만들고 네티즌과의 만남을 열망해왔다. 문제는 네티즌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장기표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재미가 있다. 네티즌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열렬히 구애했지만 네티즌들에게 왕따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노무현은 그 반대이다. 누구처럼 신문명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네티즌시대를 예언하지도 않았고 네티즌들에게 추파를 던지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원칙을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네티즌들이 일제히 노무현에게로 달려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책상물림 지식분자가 뭘 좀 안다는 것과, 그것을 제대로 엮어서 시장에서 상품화 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으며, 그 간극이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기표는 알고도 행하지 못한 것이다.

진정한 네티즌시대의 총아는 누구일까? 노무현은 아니다. 시대가 노무현을 선택했을 뿐 노무현이 알고 네티즌과 짝짜꿍 한 것은 아니다. 유시민도 아니다. 그는 개혁당을 인터넷당으로 만든다고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네티즌들이 개혁당을 장악할까봐 노심초사한 사람이다.(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의 오해에 대한 유시민의 해명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상당한 혐의가 있다고 본다.)

우리당의 허운나 eparty 분과위원장만 해도 그렇다. 입만 열면 네티즌을 팔다가 실제로는 네티즌들을 따돌리기 위해 날치기 창당을 시도하고 있다.(허운나의원도 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필자는 상당한 혐의가 있다고 본다.)

이처럼 진짜와 가짜의 간극은 크다. 그 간격이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필자가 우리당의 창당에 별로 기대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우리당을 네티즌들 입맛대로 어떻게 해보자는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포기할 일이다.)

유시민을 비난할 일도 아니고 허운나를 꾸짖을 일도 아니다.(유시민, 허운나의 잘못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하지만) 그런건 원래 잘 안되는 거다. 장기표가 안되고 있듯이 구조적으로 안되게 되어 있다. 세월이 더 흘러야 한다. 한 세대가 통째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므로 차라리 기대를 접자.

장기표의 실패와 조갑제의 실패
오늘 불거진 이슈로는 조갑제의 최병렬 때리기가 돋보인다. 근데 읽어보니 말인즉 모두 맞는 말이었다. 나는 조갑제의 글에서 단 하나의 트집거리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럴수가!

생각하면 김상현이 DJ를 배신한 것이나, 추미애가 노무현과 찢어지는 것이나 다 예정되어 있었듯이 조선일보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갑제가 최병렬의 뒷통수를 치는 것도 '나와바리의 법칙' 상 필연적으로 예정된 코스로 가는 것이다.

정치는 가진 것을 지키고 밖의 것을 얻는 게임이다. DJ 밑에서 큰 김상현은 호남을 이미 얻었으니 YS가 먹고 있는 영남이 탐난 거고, 추미애는 대구가 굳었으니 광주가 그리운 거고, 조갑제는 수구세력의 이념적 구심점 조선일보를 최병렬과 공유했으니 이제 한나라당이 탐나는 거다.

하여간 조갑제 말은 다 맞다. 한나라당은 이왕지사 지는 게임, 조갑제의 충고를 따라 장렬하게 산화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최병렬이 가는 길은 명분도 실리도 다 놓치는 최악의 길이다. 최병렬이 조갑제의 충고를 받아들이면 못해도 제 2의 장세동은 될 수 있다.  

본심번역기를 가동하여 조갑제의 칼럼을 양심어로 번역해보니 아래와 같이 출력되고 있다.

응석받이 최병렬은 뜬물단식 중단하라

"한나라당은 의지만 있으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다. 민주당 이중대와 정책연합도 가능해진 지금 정치력만 있으면 대통령 탄핵도 가능하다. 대통령 탄핵사유가 되도록 법리적으로 적당히 조작하여 옭아매기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특검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이유로 의원직 사퇴 결의, 대표 단식 농성이란 선택을 했다. 이는 노무현대통령 말대로 원내 소수야당이나 하던 수법이 아니던가. 원내 제1당이 왜 이처럼 패배주의적이고 자학적인 방식의 투쟁을 하는가.  

지금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가 국회를 마비시키면서까지 모든 것을 걸만큼 절대적인 명제인가.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사소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이 극한 투쟁을 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개혁세력들이 안티조선운동을 통하여 수구퇴출작업을 성공시키고 있으니 우리는 이를 모방하여 KBS 시청료 안내기 운동에 주력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건재하는 한 대한민국이 건재할 수 없다는 개혁의 논리를 역으로 적용하면 KBS가 건재하는 한, 한나라당도 온전할 수 없다는 궤변이 만들어진다.

특검법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다수 국민의 여망을 놓치는 수가 있다. 안티KBS는 개혁세력이 구사하는 안티조선운동 만큼의 전략적, 상징적 의미가 있다. 지금 우리 꼴보수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수구세력의 이념적 구심점이다.

한나라당이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질 일이 있다면 꼴보수들이 매일 밤 악몽을 꾸고 있는 즉, 안티조선의 공격을 받아 해체되고 있는 우리 수구세력의 이념적 구심점의 문제이다.

한나라당이 승부처로 삼아야 할 일은 수구이념에 대한 개혁세력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다. 한나라당은 원내에서 단식할 것이 아니라 거리로 나와서 조선일보를 팔아야 한다. 적들이 그리하듯이 우리도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중을 쟁취하지 못하는 야당은 정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작년의 대선으로 증명되었다. 의원직 사퇴서, 단식 같은 구태의연한 자학적 투쟁방식으로써는 개혁세력과 맞서 싸울 수 없다.

국회를 지배하는 제1 야당이 의원직 사퇴나 단식과 같은 졸렬한 투쟁방식을 택하면 한나라당 지지층은 자신감을 잃을 것이다. 애써 약하게 보이려는 응석받이 지도자를 누가 따라가겠는가.

이념대치상황이 한반도의 절대적인 조건인 상황에서 이념이야말로 가장 큰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한국이 처한 이념대치상황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에 안티조선이라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보다 덜 중요한 것에 목숨을 걸고 있다.

주제와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한 지도자는 전투에서는 이길지 모르지만 전쟁에선 반드시 패배한다. 한나라당이 투철한 수구이념무장에 실패한다면 매번 헛수고를 할 것이다. 작은 것에 전력을 쏟다가 큰 것을 놓치는 헛수고 말이다."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김동렬 평역)-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조갑제가 이렇게 맞는 말을 다 하다니.. 하여간 조갑제가 보기는 정확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알면 뭐하냐.. 책상물림이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과 현실에서 이를 구체화 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데 말이다.

콜롬부스보다 먼저 신대륙을 발견하고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은 많다. 스코트는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얼어죽었고, 장기표는 인터넷 신문명시대를 내다보았음에도 인터넷의 왕따가 되고 말았다. 조갑제의 판단은 옳으나 그 길이 장렬하게 산화하는 길이다.

최병렬은 쪽도 까고 당도 뽀개지는 단식투쟁 그만두고 조갑제의 충고를 받아들여 수구세력의 이념적 구심점 만들기 운동이나 해야한다.

각설하고..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이상의 깃발은 멀리 꽂아놓아야 하지만 현실에 임해서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개미들이 꿈꾸는 진정한 네티즌시대는 10년 후에나 이루어진다. 내년 총선의 이슈는 '수구퇴출' 이거 하나다.

우리당에 기대하지 말고, 민주당에 낙담하지 말고, 한나라당 겁내지 말고 '수구퇴출', 오직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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