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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624 vote 0 2003.12.17 (15:27:50)

나는 음악을 모른다. 음악도 모르면서 서태지들의 등장에 열광한 죄가 있다. 서태지들을 좋아한 것은 그들의 음악성을 평가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훌륭한 인격자였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의 언행에서 공인의 모범을 발견했기 때문도 아니다.

『 만평..한나라당이 이효리를 영입한다고? 대략 뒤쪽이 수습이 안되는거 같소.』

어쩌면 나는 부러워한 것이다. 서태지가 아니라 서태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부러웠다. 그들은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열광하고 있었다. 그들 내부에 감추어진 에네르기를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그건 참 아름다운 거다. 마땅히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내부에는 감추어진 무언가가 있다. 어떤 계기를 맞아 그 감추인 것을 한껏 드러내어 꽃피울 수 있다면 좋은 거다. 밖에서는 비아냥과 냉소가 판을 치고 있지만 그 동아리 안에서는 진정 아름다웠을 것을 나는 믿는다.

그것은 무엇인가? ‘체험의 공유’이다.

유년의 나다. 또래들이 본부놀이를 한다. 산기슭 우거진 대숲 속이다. 대나무를 휘어 가마니를 덮고 나무판자를 깔아 본부를 짓는다. 까만 밤에 촛불을 켜들고 대밭 속 본부로 모여든다. 그때 그시절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 했던가?

깜깜한 밤, 어두운 숲속. 나뭇가지에 걸려 나부끼는 비닐조각이 유령처럼 보인다. 그 귀신 나오는 대숲 속에서 우리는 도무지 무엇을 바래어 날마다 거기에 집결하였던가? 타격해야할 우리들의 적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또래들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타는 촛불의 심지를 돋우며 밤이슬을 맞는다. 감자밭을 습격하여 설익은 생감자 몇개를 캐먹은 것이 우리가 성공시킨 작전의 전부였다. 무엇인가? 그 또한 ‘체험의 공유’이다. 또래는 남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스런 느낌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누구나 한번 쯤은 체험해 보았을 그때 그 느낌, 기억하는가?

『 체험의 공유, 정서적 동질성, 코드의 획득. 그것이 역사의 훌륭한 자산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에겐 꿈이 있다
꿈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미국이라면 X세대니 베이비붐세대니 하는 것이 있다. 그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특별한 체험이 있다. 그것은 반전시위의 체험이기도 하고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축제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지난해 월드컵에서 길거리응원의 체험이 있다.

무엇인가? 그것이 ‘코드’이다. 체험의 공유는 문화적, 정서적 동질성을 낳는다. 그 정서적 동질성이 그들 특유의 코드를 낳고, 코드는 소통을 낳으며, 소통이 트렌드를 낳고 트렌드는 시대정신을 낳는다. 그것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대 간에 코드의 차이는 소통의 단절을 낳는다. 그 단절의 벽은 점점 두터워진다. 625를 체험한 기성세대와 87년 민주항쟁을 체험한 신세대는 정서가 다르고, 체험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코드가 다르다. 그렇다면 애초에 소통은 불능이다.

세대 사이에 벽이 있다. 우리는 그 벽을 더 높이 쌓는다. 결단코 타협은 없다. 유권자들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625세대인가 민주항쟁세대인가? 양자간의 극한투쟁이 전개된다.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극복하면서 변증법적 지양과 지향이 이루어진다.

아는가? 이것이 역사다.

프랑스라면 대혁명의 기억이 있다. 300년을 우려먹는 거대한 체험의 공유이다. 우리 세대는 86년 민주항쟁의 체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 공유된 체험이 무서운 거다. 생각하면 1910년 광주학생운동의 체험이 면면히 이어져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학생운동으로 승화되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번쯤 학생운동의 불길이 타올랐지만 일과성에 지나지 않았다. 오직 한국에서만 무려 100년을 이어온 것이다. 어쩌면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동맹휴학에서부터 이어져온 전통일지도 모른다. 그 불길 잘 안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작은 체험의 공유에 불과하다. 그 작은 촛불이 그 불씨 꺼지지 않아 간단없는 폭발을 낳는다.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치기도 한다. 그것이 역사다. 그 역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들의 비밀 암호 노무현
노무현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어린시절 대밭 속 가마떼기로 얽어만든 본부에서 주고받던 우리들의 비밀암호다. 모두들 암호를 부르면서 모여들었지만 암호가 불러서 모인 것은 결코 아니다. 모두들 노무현을 외치며 모여들지만 노무현이 불러서 모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신호이며,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같은 것이다. 환한 대낮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까만 밤이 찾아오면 빛나는 촛불 말이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본부는 허무하게 해산되었지만 그 꿈은 해산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의 기사 중 한토막이 생각난다. 중요한 것은 김일성이 과연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맹랑한 신화를 꾸며내게 했는가이다. 그 밑바닥에 숨겨진 에네르기를 보라는 말이다.

이 모든 일들이 노무현 한사람의 작품이라고 믿는가? 천만에! 노무현이 오기 전에 이미 준비된 것이 있었다. 생명수가 주어지기 전에 목마름이 있었다.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며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반복하면서, 성공사례를 전파하고 모범을 창출하면서 계속 가는 것이다.


서프라이즈의 당파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서프는 당파성만으로 뭉친 사이트가 아닙니다. 98프로의 본질이 있고 2프로의 플러스 알파가 있다면, 당파성은 그 2프로의 ‘플러스 알파'입니다. 이름쟁이와 저의 의견차이가 변희재와 저의 의견차이보다 더 클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네티즌들이 '당파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개는 이면에 무언가 복선을 깔고 있습니다. 전술적인 목표를 감춘 일종의 포지셔닝이지요. 항상 그렇듯이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요는 ‘인터넷’입니다. 저와 마케터님은 인터넷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이름쟁이님은 오래전부터 여러 사이트의 웹마스터를 해왔고 그래서 인터넷을 좀 아는 것입니다. 서프와 비서프의 본질적인 차이는 인터넷을, 네티즌의 속성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습니다.

서프는 친노이기 앞서 친네티즌입니다. 서프가 사이트개편을 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시도하다가 결국 반 밖에 못한 이유도 친네티즌적 속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 하는 본질문제에 부닥쳤기 때문입니다.(사이트개편 쉽지만 친네티즌으로 하려면 무지 어려움. 6개월을 끙끙대었는데 정답을 못찾음)

필진들 개개인은 뛰어나지 못합니다. 잘나서 필진이 아니고 많이 알아서 필진이 아닙니다. 판단이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의 판단에는 물론 오류가 있지만 시스템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름쟁이님의 이번 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름쟁이님의 작년 이맘 때 글 중 하나는 민주당 국회의원 90여명이 읽었습니다. 즉 어떤 결정적인 시기에는 크게 역할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필진들은 인체의 오장육부와 같아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고 있습니다. 심장은 열심히 뛰는데 간장은 놀고있다거나 맛있는건 위장이 다먹고 후장(?)은 뒤처리만 한다거나 .. 이건 아니지요. 보이지 않지만 다 필요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최용식님 글은 제가 가장 많이 배웁니다. 공희준은 편집이 바빠 많이 못쓰지만 색다른 글을 씁니다. 서영석님이 세밀한 정치분석을 잘하지만, 지난 봄 노사모를 해체하자고 했고 저는 반대했던 데서 보듯이 장기적인 전망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필진들은 당파성이 아니라 역할 때문에 뭉친 것이며, 그 역할 중 상당은 인터넷에 관한 것입니다. 인터넷이 저희들을 헤어질 수 없게 강제하고 있습니다. 필진들은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어서 시스템구조 상 삐걱대면서도 계속 이렇게 굴러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프는 당파성이 아니라, 인터넷이 규정하고 네티즌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인터넷의 속성, 그 네티즌의 열정이라는 자체동력에 의해 계속 갈 것입니다. 이미 롤러코스터를 탔다니깐요. 물론 당파성도 2프로의 '플러스 알파' 역할을 계속 할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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