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화살을 쏜다. 입에서 단어가 발사되어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명중하면 의미고 오발이면 허무다. 그런데 총알을 쏘는지 총을 쏘는지다. 총알은 과녁을 쏜다. 총은 총알을 쏜다. 사수는 총을 쏜다. 활은 화살을 쏘지만 궁수는 활을 쏜다. 대장은 궁수를 쏜다. 왕은 대장을 쏜다. 항상 배후에 하나가 더 있다. 그러므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그 배후의 관점에서 뒷짐 지고 객관적으로 보자는 것이 라고한다의 법칙이다. 선거 때만 되면 기자는 질문한다. 낙선하면 뭐 할거지요? 낙선이라고요?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저는 무조건 당선됩니다. 어거지를 부리는 것이다. 우리는 후보에게 라고한다를 쏜다. 지지자들이 동요하면 안 되므로 후보는 이기는 걸로 한다. 그렇게 작전을 짠다. 후보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라고한다를 쏘면 뭐든 속사정이 있고 발목이 잡혀 있음을 알게 된다. 안철수는 왜 애매한 답변을 할까? 마누라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사실 마누라의 아바타였던 것이다. 한 걸음 뒤에서 보면 총과 과녁의 대칭이 보인다.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면 사수와 총의 대칭이 보인다.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면 드넓은 생태계가 보인다. 안철수 뒤에서 리모컨을 조종하는 김미경이 보인다. 윤석열 뒤에서 리모컨을 조종하는 쥴리가 보인다. 그런 관점을 얻어야 정상에서 사건의 전모를 볼 수 있다. 라고한다의 법칙은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선생님의 개소리를 납득하는 방법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거북이가 이기는 걸로 한다. 왜냐하면 교장 때문에. 교장은 장학사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장학사는 교육청 때문에. 교육청은 문교부 때문에. 문교부는 박정희 때문에. 다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던 거다. 총알이 과녁에 맞는게 아니라 맞을 때까지 다시 쏘는구나. 토끼가 나무 밑에서 잠을 안 자면 수면제를 먹이는구나. 다 방법이 있구나. 뒤에서 시스템이 작동하는구나. 총알이 이겼냐 과녁이 이겼냐 싸워봤자 총이 개입하면 허무로구나. 모순이라고? 천만에. 사실은 창이 방패를 이긴다. 방패가 이기면 창이 다시 던지기 때문이다. 화살이 안 맞으면 궁수가 겨냥을 바꾸지만 과녁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으므로 무조건 화살이 이긴다. 과녁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모순은 모순이 아니다. 창이 방패를 이기는게 역사의 진보다. 진보가 보수를 이긴다. 진보가 창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라고한다의 법칙은 대칭의 한쪽 날개가 아니라 대칭된 둘을 축에 꿰어서 동시에 보는 방법이다. 대칭의 대칭의 대칭의 대칭의 대칭이 보여야 한다. 시스템을 상대해야 한다. 항상 배후에 뭔가 조정하는 것이 있다. 그것을 보면 일방향성을 알게 된다. 창과 방패 사이에서 균형이 보여야 결국 창이 이긴다는 사실을 안다. 핵전쟁의 위기는 상호확증파괴의 균형에 의해 유지된다. 창과 방패 사이에, 토끼와 거북 사이에, 화살과 과녁 사이에 균형도 있고, 그 균형에서 점프하여 또 다른 균형으로 갈아타는 일정한 방향성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일이다.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에너지의 입력부와 출력부가 있다. 조절장치에 의해 계는 통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