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도움이 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세계 최초의 냉전을 벌여 수십 년 동안 서로 박 터지게 싸웠다. 흔히 스파르타를 일방적으로 까지만 사실 스파르타도 장점이 많다. 어느 면에서는 스파르타가 더 민주적이었다. 아테네 정치는 중우정치로 흘러갔다. 어느 해는 해전에 이겼는데 폭풍이 몰아치자 바다에 빠져 있는 생존자를 거두지 않고 철수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8명의 장군 중에 6명을 처형해 버렸다. 아테네의 유능한 인재들은 대부분 국외로 도편추방 되었다. 몰락은 필연이다. 왜 그랬을까? 페리클래스의 황금시대? 사실은 페리클래스의 독재였다. 그가 죽고 아테네는 타락했다. 전쟁에 지고 분풀이로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에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 같은 배신자와 폭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명이 붙은 이유다. 플라톤이 아테네의 민주정을 혐오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스파르타는 언뜻 민주적이나 실은 엘리트 독재다. 헤일로타이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다. 어느 쪽이 옳은 지는 중요하지 않다. 필연의 구조가 문제다. 고립된 내륙국가 스파르타는 시민의 쪽수가 부족해서 전쟁에 이겨놓고도 아테네의 성벽을 넘을 수 없었고 아테네는 항구를 끼고 있어서 억압적인 정치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배 타고 어디든 도망가 버리면 그만이다. 옳고 그르고 간에 구조대로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일본처럼 고립된 나라인가, 아테네처럼 항구가 발달한 나라인가? 인터넷에 의해 달라졌다. 스마트가 항구다. 인터넷이 항구다.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아테네인은 중우정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계속되고 민권은 갈수록 커졌다. 갤리선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시민들은 물에 빠진 시민을 구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군을 처형했다. 노꾼이 장군을 처형할 정도로 향상된 민권 때문에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도무지 말을 안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말발굽 앞에 사이좋게 망했다. 청동은 귀하므로 귀족계급이 만들어진다. 철은 흔하므로 기사계급의 권력이 상승한다. 총은 누구나 쏠 수 있으므로 계급제도를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물리적으로 현장에서 거대한 권력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옳고 그르고 간에 스마트를 장악한 대중은 죽어보자고 엘리트 기득권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때 그 시절 아테네의 인재들이 무수히 도편추방 된 것이나 자칭 엘리트 진중권서민 입이 한 발이나 튀어나온 것이나 본질이 같다. 대중의 권력상승이 엘리트를 좌절시킨다. 그것은 폭주일 수도 있고 질주일 수도 있다. 21세기 이 시대에 과연 그것은 폭주일까 질주일까?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진보를 표방하는 한경오도 네티즌 권력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진보냐 보수냐로 재단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게 나타났다. 누구도 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채울 수 없다. 문제는 환경이다. 순풍이 불면 흥하고 역풍이 불면 망한다. 지금 어떤 바람이 부는가? 신냉전 바람이다. 이 바람은 어떻게 작용할까? 흥한다. 질주는 계속된다. 윤호중의 협상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상관없다. 죽는다. 왜? 희생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티즌의 권력의지가 윤호중을 죽이고 송영길을 죽인다. 이낙연이 유탄 맞는다. 정신차렷! 깝치면 죽는다. 잘해도 죽고 잘못해도 죽는다. 도도한 역사의 법칙이다. 모르겠는가? 갑과 을의 문제다. 너희가 눈치껏 적응해야 산다. 권력이동의 시기에 엘리트 편에 붙으면 죽고 대중들에게 아부하면 산다. 진중권과 서민은 당연히 도편추방 된다. 그때의 중우정치가 지금은 포퓰리즘이다. 근데 원래 이렇게 간다. 몰랐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