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공자를 싫어한다. 고리타분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도움이 안 된다. 공자는 어른들 말을 들으라고 한다. 어른들은 내게 십 원 한 장 주지도 않으면서 왜 말을 들으라고 하지? 반발할 만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어른이 총을 보여주면 어떨까? 너 이 총 가지고 싶지 않니? 그때는 말을 들어야 한다. 무뎃뽀라는 말이 있다. 일본어로 뎃뽀는 철포다. 총도 없이 빈손으로 와서 거들먹거리는 자가 무대뽀다. 역으로 생각하자. '내 말을 들어라'고 말하지 않는 자는 총도 없이 빈손으로 껍죽대는 무대뽀다. 턱도 없이 대중에게 아부하는 자들 있다. 막연히 ''내려놓아라 거나 '네 잘못이 아니야' 하고 위로하겠다는 자들 말이다. 총도 없이 빈손으로 와서 사기치는 자들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내 말을 들어라'고 큰소리치는 자와 '남의 말 듣지 마라'고 귀엣말로 속삭이는 자다. 우리는 그중에서 누가 빈손으로 온 사기꾼인지 알 수 있다. 구조론은 총이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구조론의 말을 들어야 한다. 총을 획득할 기회니까. 인류의 위대한 스승은 공자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격이 떨어진다. 다들 기특한 아이디어를 하나씩 들고나왔다지만 대개 진리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전개한다. 우리는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승과 전과 결로 이어지는 사건의 다음 단계 때문이다.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구심점이 필요하다. 먼저 와서 깃발을 꽂고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내놓은 잡다한 아이디어가 살을 보탤 수는 있으나 뼈대를 세운 사람은 공자다. 수학으로 치면 유클리드의 원론과 같다. 원론 다음에 각론이 나와야 한다. 사건에는 본과 말이 있다. 먼저 본을 취하고 거기에 말을 더하는게 수순이다. 석가는 인생을 고로 규정했다. 고의 원인은 집, 집의 해결책은 멸, 멸의 방법은 도다. 고집멸도 사성제에서 8정도와 12연기로 이야기가 가지를 친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고가 본이다. 뒤에 따라붙는 이야기는 말이다. 그런데 인생은 과연 고인가? 인생은 락이 아닌가? 대전제가 깨지면 뒤에 따라붙는 논리는 모두 무너진다. 인생은 고일 때도 있고 락일 때도 있다. 석가의 방향은 틀렸다. 구조론은 인생을 게임으로 규정한다. 다른 말로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다. 인생의 게임 속에는 고도 있고 락도 있다. 락이 고를 이기는게 기술이다. 게임에는 이겨야 한다. 이기면 다음 게임에 초대된다. 사건을 계속 연결시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의미에 의한 사건의 부단한 연결이 진보로 나타나고, 문명으로 나타나고, 역사로 나타난다. 자연이라도 마찬가지다. 우주는 진화하고 생물도 진화한다. 우주든 생물이든 게임에 이겨서 사건을 연결시켜 가는 것이다. 지면? 죽는다. 생물은 멸종하고 우주는 죽어서 빅 프리즈로 얼어붙는다. 말로 떠드는건 의미 없고 우리에게는 총이 필요하다. 공자는 총을 설계했다. 그 총은 앞으로 천 년은 더 굴러가야 제대로 작동되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총이다. 진보라는 이름의 총알이 발사되어 역사라는 이름의 과녁에 명중된다. 총을 이어받고 총을 건설하려면 대중과 함께해야 하며 그럴 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필요하다. 인생은 게임이며 게임은 이겨야 계속된다. 공자는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군자의 길이며, 의리의 길이며, 정명의 길이다. 공자는 군자를 세웠고, 맹자는 의리를 밝혔고, 순자는 정명을 밝혔다. 공자의 길을 따랐을 때 중국은 흥했다. 한 고조 유방은 도교를 숭상했기 때문에 한나라는 초장부터 오랑캐에 씹혔다. 고조의 약법삼장은 노자의 무위지도를 따른 것이다. 한때 중국은 흉노의 신하가 되었다. 뒤에 한무제가 유교를 일으켰을 때 중국은 크게 일어났다. 이후 황실이 도교를 숭상하는 바람에 망했다.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도 유교로 일어났으나 유교는 통치수단이고 황실 중심으로 도교를 신앙한 것이 중국의 몰락 원인이다. 유교정치를 그대로 놔두면 조선처럼 당쟁이 일어나서 신권이 왕권을 이겨버리므로 견제수단으로 도교와 불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은 개화기에 왕을 떠받들며 공자의 명분론으로 흥했지만 패전 후에는 공자를 버렸다. 전쟁의 책임을 공자와 유교에 뒤집어씌운 것이다. 맥아더가 일본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버렸다. 이후 일본은 노자의 실용주의 성진국으로 돌아섰다. 서구도 한때는 공자를 배웠다. 18세기에 서구가 흥한 것은 공자의 영향을 받은 계몽주의, 절대주의 사상 덕분이다. 그때는 청나라가 선진국이었다. 유럽은 중국의 관료주의를 모방하기 바빴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아편전쟁 이후 재빨리 공자를 버렸다. 그리고 망했다. 제국주의와 양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인종주의 타락은 서구가 공자를 버린 결과다. 서구는 트럼프를 숭상하고 백신을 거부하는 반지성주의로 흘러간다. 신자유주의에 신냉전주의로 오락가락 한다. 인류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민주주의는 최악을 막아줄 뿐 최선을 찾아주지 않는다. 서세동점이 동세서점으로 바뀐다. 공자는 지성주의, 계몽주의, 인문주의, 합리주의, 긍정주의다. 강자의 철학이며 권력의 긍정이며 이기는 사상이다. 총을 가진 자의 시선이다. 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게임의 주최측이 되라는 것이다. 남의 게임에 용병으로 고용되면 좋지 않다. 남의 게임에 주급선수로 뛰지 말고 독립하여 별도로 자신의 게임을 개설하라. 반대쪽에 노자의 반지성주의, 실용주의, 허무주의, 패배주의, 부정주의가 있다. 물신숭배, 종교집착, 경쟁만능, 승자독식, 탈근대도 공자의 길과 거리가 멀다. 마르크스 역시 물리력에 호소하는 점에서 반지성주의다. 그들은 총이 없기 때문에 빈대붙을 생각만 하며 저렴해진다. 언제라도 총을 가진 자가 질서를 정해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이 있다. 인간은 팀플레이를 추구하고 비인간은 각자도생을 추구한다. 인간은 이성을 따르고 비인간은 생존본능을 따른다. 문제는 인간이 비인간으로 태어나서 교육에 의해 인간이 된다는 점이다. 누구든 태어날 때는 동물이다. 개 돼지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이 되는 절차를 받아서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공자의 지성주의와 노자의 반지성주의는 이성을 따르는가 생존본능을 따르는가다. 흔히 진보와 보수라고 하지만 대개 결과론이다. 환경변화와 맞아떨어지면 진보가 되고 어긋나면 보수가 되는 것이다. 정의당이 엘리트 위주로 진보장사를 하지만 21세기의 IT중심 환경변화와 맞지 않은 점에서 그들은 운이 좋지 않다. 환경이 나쁘면 무슨 짓을 해도 나빠진다. 지성으로 가도 나쁘고 합리주의로 가도 나쁘다. 진보장사 해도 망한다. 그럴 때 실용주의가 고개를 든다. 실용주의는 나쁜 환경에서 작동하므로 생존본능을 충족할 뿐 인류를 전진시키지 못한다. 인류의 전진은 생산력 혁신에 의지하고 산업의 혁신은 그 자체로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진보다 보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하지만 죄다 개소리다.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이 있을 뿐이다. 좋은 환경에는 이성으로 전진하고 나쁜 환경에는 본능으로 생존한다. 트럼프의 반지성주의, 신보수주의는 중국산업의 상대적인 승리에 의해 미국인들이 나쁜 환경으로 인식하여 그들의 무의식이 생존본능을 불러낸 결과다. 공자 말씀은 총이 있을 때 먹힌다. 총이 없으면 총을 만든다. 공자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총을 만들었다. 그 총은 대중이 참여하여 함께 만드는 총이다. 대중이 손발을 맞춰 함께 일하려면 구령을 불러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구령을 불러주는 스승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 좀 들어라 인간들아. 총이 있는 자는 말할 자격이 있다. 공자의 말은 총이 있을 때 먹히고 좋은 환경일 때 먹힌다. 서양이 동양을 이겨서 환경이 나빠졌으므로 공자가 죽고 노자가 살아났다. 코로나19 시대에 다시 동양이 서양을 이기고 있으므로 죽은 공자가 다시 호출된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했다. 환경이 우호적일 때 인간은 이성, 지성, 긍정, 진보, 합리로 돌아간다. 환경이 나쁘면 인간은 괴력난신에 의지하고 음모론에 매몰되고 요행수를 바라고 도박을 한다. 본능적인 퇴행행동을 하는 것이다. 환경이 나쁘면 종은 스스로를 제거한다. 식물도 재빨리 꽃을 피우고 말라 죽는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인간은 환경이 나쁘면 자신을 해치는 나쁜 결정을 내린다. 그게 전체의 생존확률을 높인다. 동양에 공자가 있는 만큼 서구에도 많은 장점이 있다. 기독교의 일원론, 유클리드의 원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플라톤의 이데아론, 아리스토텔레스의 3일치의 법칙은 유의미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흩어지지 않고 모아진다는 점이다. 이들 각각은 불완전하나 이들의 모아지는 공통점은 희미하지만 깃발이 될 수는 있다. 뚜렷한 방향성이 암시된다. 우주 안에 방향은 둘뿐이다. 확산 아니면 수렴이다. 흩어지면 망하고 모아지면 산다. 노자가 확산이면 공자는 수렴이다. 노자는 흩어지고 공자는 모아진다. 확산은 플러스고 수렴은 마이너스다. 서구의 일원론, 원론, 원자론, 이데아론, 3일치의 법칙은 공자와 통하는 수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름대로 내부질서를 만들어 낸다. 공자가 위대한 스승인 이유는 그의 직업이 스승이기 때문이다. 스승은 제자를 가르친다. 무리를 모아 사건을 연결한다. 팀플레이를 한다. 구령을 붙여준다. 군자의 길, 의리의 길, 정명의 길로 갈 때 다수는 함께 손발을 맞춰 일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계속 갈 수 있다. 의미는 그곳에 있다. 동서고금에 뛰어난 철학자가 많으나 개인의 아이디어를 불쑥 들이밀 뿐 사건을 연결하는 사람은 없다. 권력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부단히 상호작용의 게임에 이겨서 문명이라는, 진보라는, 역사라는 사건을 연결시켜 간다는 학문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공자 외에 없다. 연결하면 커진다. 커지면 공유된다. 이익은 공유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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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청초기엔 청나라가 로마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