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갈 길이 멀다. 이는 역으로 아직 많은 기회가 남아있다는 말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들이 다 해놨으니까 그냥 정답을 베끼면 되는게 아니고, 여전히 인류는 출발점에서 몇 걸음 떼지 못했으므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스카이넷이나 빅브라더의 출현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찍고도 20년 지났지만 인류는 HAL9000 근처에도 못 갔다. 비슷한건 있지만 인공지능이라고 인정할 만한 것은 없다. 물론 진작에 성공했다고 우겨도 말은 된다. 언어는 원래 고무줄이니까. 외계인이 지구에 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과학자는 냉정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이 짓이 한두 번 해먹고 말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능은 소프트웨어고 두뇌는 하드웨어다. 구조로 보면 같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하나의 사건으로 통일된다. 인공지능 이전에 인공두뇌가 있다. 뭐가 두뇌인가? 예전에는 전자계산기가 컴퓨터였다. 그전에는 기계식 계산기가 컴퓨터였다. 사람이 컴퓨터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주판이 최초의 원시적인 컴퓨터다. 주판은 손가락을 복제한 것이다. 손가락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컴퓨터다.
왜 아무도 손가락을 컴퓨터라고 부르지 않지? 주판이 있기 때문이다. 왜 아무도 주판을 컴퓨터라고 부르지 않지? 기계식 계산기가 있기 때문이다. 왜 기계식 계산기를 컴퓨터라 부르지 않지? 전자계산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모든게 빌어먹을 컴퓨터 때문이다. 완성된 컴퓨터가 있으므로 중간 단계의 얄궂은 것들은 이름을 박탈당한다. 컴퓨터만 들어가면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센서가 하나만 들어가도 인공지능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아니다. 조만간 더 좋은게 나오기 때문이다. 더 좋은게 나올 때까지 잠정적으로 인공지능 행세를 하는 것이다. 이 패턴은 반복된다. 진짜가 나올 때까지는 가짜가 주인이다. 지금 알려진 인공지능은 손가락의 신경세포 정도는 된다. 신경도 뇌의 일부이고 원시적인 뇌다. 나름대로 판단을 한다. 외부자극의 강도를 측정하여 뇌에 전달한다. 그것도 일종의 의사결정이라면 의사결정이다. 물론 이런 것은 안 쳐준다. 스스로 문제를 출제해야 인공지능이다. 사건의 주최측이 되어 자신의 게임을 개설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알려진 인공지능은 문제를 정해놓고 자동코딩을 하는 것이다. 입력과 출력 사이에서 기능한다. 능동적으로 입력을 조절해야 진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카메라로 찍은 것을 뇌가 해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착시가 있다. 눈은 2차원을 보고 뇌는 3차원으로 해석한다. 테슬라의 오토 파일럿이 하는 일이다. 뇌가 2차원을 3차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나름대로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건 지능이 아니다. 지능의 보조장치다. 파블로프의 개와 같다. 파블로프의 개는 학습되어 조건반사를 한다. 오토 파일럿은 파블로프의 조건학습과 같다. 야구선수가 타격훈련을 하면 공을 잘 맞히게 된다. 야구선수의 근육기억은 지능인가? 지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기대한 것은 아니다. 아기가 처음 걸을 때는 뇌에 걷기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무작위로 움직여본다. 이때 많은 뉴런이 관여한다. 아기의 걷기 능력은 소거법을 적용하여 관련이 없는 뉴런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뉴런이 삭제된다. 하지만 염소는 태어나자마자 걷는다. 이 학습과정은 생략된다. 아기도 매달리기는 본능적으로 한다. 심지어 수영도 한다. 원숭이 시절에 잘 매달렸기 때문이다. 아기의 걷기학습은 사실 없어도 된다. 대부분의 동물은 그냥 걷는다. 새도 그냥 난다. 단, 잘 못 날고 수풀에 몇 번 처박힌다. 학습은 반드시 필요한게 아니며 더 잘하게 도울 뿐이다. 머신러닝이니 딥러닝이니 하는 것은 시리나 빅스비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화면이 켜져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귀찮게 하는 것과 같다. 손이 시려. 했는데 시리가 켜지고, 박스 버려 했는데 빅스비가 응답하면 피곤하다. 학습으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다. 좋은게 나오면 나쁜건 버려진다. 진짜 인공지능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류가 인공지능 행세를 한다. 시리든 빅스비든 아이큐가 0이다. 조건반사 수준이며 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흥미를 끌 장난감은 된다. 이루다는 백억 건 이상 카톡대화를 학습했다고 한다. 이루다가 개발자와 직접 대화 1만 번으로 해결할 것을 왜 100억 번 무의미한 대화를 학습할까? 이루다가 질문하고 개발자가 대답하는 형태로 가르치면 되는데 질문을 하지 못하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에 인공지능에 대한 접근방법이 틀려먹었다는 말이다. 과학가의 자세가 필요하다. 솔직히 인삼, 녹용, 웅담 따위 아무 효과없다는거 다들 알잖아. 혹시 모르니까 분위기 안 깨려고 대충 주변에 맞춰준 거잖아. 홍삼을 정성껏 달여와서 선물했는데 이건 그냥 물질이걸랑요 하고 초를 치면 사이코패스로 오해되잖아. 다들 눈치를 보잖아. 웅담은 원래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사람의 어혈을 푸는 것인데 우루사에 든 성분을 인간이 느끼는건 비타민 B를 이용한 트릭이고 간기능 개선 효과는 그냥 간 영양제인데 웅담에서 발견된 물질이라고 우루사라는 이름이 들어갔을 뿐이다. 원래 알려진 웅담효능과와는 상관이 없다. 다 그런건 아니고 약간 효과가 있는 물질도 약방에 있다. 도라지는 확실히 약효가 있다. 솔직히 다들 들떠 있는데 분위기 안 깨려고 인공지능 옹호하는 척하고 그랬잖아. 남들 열심히 하는데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지만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까 이제 의문부호를 던질 때가 되었다. 우리가 진지해져야 한다. 경로를 기억하고 경로를 재설정할 수 있어야 지능이다. 경로를 기억하도록 태그를 붙이는 것은 감정이다. 대뇌가 하는 역할은 대부분 감정조절이다. 우리의 큼지막한 뇌는 사실 필요없다. 알파고는 너무 많은 컴퓨터 자원을 쓰고 전기를 낭비한다. 그렇게 안 해도 된다. 까마귀는 문제를 잘 해결한다. 까마귀의 뇌는 매우 작다. 까마귀 머리통 7할이 눈알구멍이다. 털 빼고, 부리 빼고, 눈 빼고, 두개골 빼면 나머지는 콩알만 하다. 그 안에 대뇌와 소뇌, 변연계, 해마, 척수, 신경계 따위가 자리를 나눠 가지면 실제 지능을 결정하는 부분은 벼룩 눈알만 하다. 까마귀는 1밀리 정도를 쓰는데 알파고는 체육관만 한 것을 쓰고 있으니 인간이 뭔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알파고가 바둑으로는 까마귀를 이기지만 다른 것은 못 하잖아. 뇌가 커야 할 이유가 없다. 세 살 먹은 사람과 세 살 먹은 까마귀가 대결하면 까마귀가 이긴다. 까마귀는 뚜껑을 열고 먹이를 꺼내지만 사람 아기는 그냥 엄마를 쳐다본다. 까마귀가 지능이 높은 이유는 까마귀의 뇌가 문제해결에 특화된 알고리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까마귀를 본 적이 있다. 로드킬로 죽은 쥐를 탐내고 있었다. 까마귀가 나를 떠보는 것이었다. 너 그 쥐고기 먹을 거야? 이러는 거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까마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까마귀는 한 걸음 다가왔다. 죽은 쥐를 가운데 두고 정확히 3미터씩 같은 거리에 마주보고 선 것이다. 까마귀는 명백히 내게 신호를 보냈다. 이쯤 되면 내 의도를 알았을 테니 너는 그 죽은 쥐고기 안 먹을거면 얼른 갈 길 가라고. 이런 거였다. 까마귀는 내게 게임을 걸어온 것이다. 문제를 해결한게 아니라 문제를 출제한 것이다. 응수타진이다. 알파고가 응수타진을 하는 지는 모르겠다. 까마귀는 먼저 사람에게 말을 건다.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까막지능이다. 보통은 이렇게 못한다. 보통은 두렵다 아니면 만만하다 둘 중에 하나다. 두려우면 도망치고 만만하면 덤빈다. 까마귀는 두 가지 선택지를 동시에 겨냥한다. 화살 하나로 두 가지 표적을 겨누는 것이다. 마음속에 도마가 있어야 가능하다. 테이블을 펼쳐야 한다. 테이블 위에 문제를 올리기다. 테이블 위에 두 가지 선택지를 펼쳐놓고 하나의 시선으로 동시에 겨냥해야 한다. 테이블이 있다는 것은 객관화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주관화되어 자기를 개입시켜 동적상태에 두기 때문에 쫓기고 있어서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보통은 답을 찾으려는 조급한 마음에 쫓기고 있어서 느긋하게 질문을 던지는 여유를 부리지 못하는 것이고 인간의 커다란 뇌는 대부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감정조절용이며 아이큐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은 1밀리로 충분하다. 뇌가 클 이유가 없고 알파고가 학습할 이유가 없다. 정리하자. 테슬라가 하는 것은 구조론에서 질과 입자를 포기하고 힘, 운동, 량에 매몰된 것이다. 문제를 압축하고 푸는 것이다. 문제를 테이블에 올리는게 진짜 지능이다. 여기에는 전략개념이 쓰인다. 전략은 게임에 이기는게 아니라 아예 게임 종목을 바꾸는 것이다. 지능은 경로를 기억하는 것, 동적상태를 멈추는 것, 반대편을 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반대편을 상상하여 볼 수 있는게 전략이다. 전장을 바꾸는게 전략이다. 하던 것을 중단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게임을 갈아타는 것이다. 경로를 기억했다가 경로를 수정하기다. 까마귀는 8단계를 거쳐 먹이를 꺼내먹는다. 어지간한 어린이도 이 정도 못 한다. 까마귀의 뇌 용적은 완두콩만 한데 7살 어린이의 문제해결능력이 있다. 완두콩만 한 머리에 대뇌, 소뇌, 해마, 변연계, 척수 따위를 구분하면 실제로 써먹는 뇌세포는 80년대 구형 컴퓨터 정도다. 복잡하게 연결된 뉴런이나 신경망 컴퓨터는 필요없다. 뇌도 하나의 도구다. 깔떼기와 같다. 입력=출력이다. 생선을 올려놓을 도마가 없으로 칼이 있어도 자르지 못한다. 그것은 방아와 확 사이의 경사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회로가 끊어졌거나 감정이 잘못 세팅된 것이다. 집중하여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은 감정이다. 감정이 하던 동작을 멈추고 테이블을 다시 펼친다. 구조론으로 보면 감정은 질을 입자로 바꾸는 것이며 확산을 수렴으로 바꾸는 것이다. 시리든 빅스비든 인간에게 먼저 말을 걸려면 자신이 이전에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경로를 기억하는 것이다. 인간이 문제를 내면 답을 맞출 궁리만 하니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