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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81 vote 0 2021.07.11 (15:31:00)

    사건에는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의 방향은 확산에서 수렴이다. 범위를 좁혀 가는 마이너스 방향이다. 갈수록 좁아지므로 궁지에 몰리지 않으려면 미리 큰 것을 찜해놔야 한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문제는 연결비용이다. 사건을 다음 단계로 연결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출하다 보면 무언가 줄어들어 있다. 갈수록 궁지에 몰리는 이유다. 애초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처음에는 큰 것을 선택해야 나중에 몰려도 여유가 있다.


    늑대에 쫓기는 사슴은 갈림길에서 옆길로 빠져야 추적자를 따돌릴 수 있다. 경황이 없는 사슴은 직진만 선택하게 된다. 옆길로 빠지려면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늑대의 추격이 집요하므로 그럴 여유가 없다. 그게 몰린 것이다. 이제 사슴은 오로지 스피드 하나에 올인해야 한다.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선택지를 하나씩 잃어먹는 것이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이자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본래 사슴은 선택지가 많았다. 머리를 써서 옆길로 빠지기, 속도를 높여 추격을 따돌리기, 소처럼 뿔로 들이받기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코끼리처럼 몸집을 키울 수도 있고 생쥐처럼 새끼를 많이 낳는 방법도 있다. 진화과정에 차례대로 선택지를 잃어먹어서 결국 사슴에게는 점프력과 속도로 따돌리는 하나의 기술만 남는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진다. 환경에 적응할수록 이용가능한 환경의 폭이 좁아진다. 갈수록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드는 엔트로피와 같다.


    치타가 대표적이다. 오직 스피드만 남고 다른 기술은 모두 잃어먹었다. 표범은 나무를 오르고, 호랑이는 기습에 능하고, 사자는 무리사냥을 하고, 하이에나는 집요하게 추적하는데 치타는 단거리 경주만 잘한다. 그게 몰린 것이다. 갈수록 몰려서 치타는 멸종위기에 가까워져 있다. 환경이 변하면 치타의 생존확률은 0에 근접하게 된다. 치타의 제로백 높이기 전략은 그다지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어린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크기 때문이다. 큰 것을 찜하는게 전략이다. 큰 것은 외부에 있다. 내부의 작은 것을 내주고 대신 외부의 큰 것을 얻어오는 바꿔치기를 전략이라고 한다. 내부의 작은 것은 확실하고 외부의 큰 것은 불확실하므로 전략적 사고에는 확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생물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도 진화하고, 인터넷도 진화하고, 우주도 진화한다. 한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것이다. 방향성을 가진 변화가 진화다. 우리는 자연의 진화원리에서 숨은 보편성을 찾아 기업의 발전원리, 예술작품의 흥행원리, 정당의 집권원리, 우주의 팽창원리에 적용할 수 있다. 엔트로피 원리를 적용하여 사건의 다음 단계를 알아낼 수 있다. 


    생물의 진화는 유전자와 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환경의 역할을 강조하고 유전자의 능동적 역할을 무시한다. 진화를 우연에 의한 수동적 결과로 본다. 환경 결정론이라 하겠다. 다윈은 결과론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학은 원인론이라야 한다. 왜 아프지? 병에 걸렸으니까 아프지. 왜 병에 걸렸지? 병에 걸렸으니까 병에 걸렸지. 이런 식의 동어반복, 순환의 오류, 허무개그를 시전하는 사람이 많다. 진화의 주체는 유전자다. 유전자 결정론으로 갈아타야 한다. 진화는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작용구조에서 유전자가 능동적으로 환경을 장악한 결과다.


    호랑이는 숲을 장악했고, 사자는 사바나를 장악했고, 고래는 물을 장악했고, 원숭이는 나무를 장악했고, 인간은 모두 조금씩 장악했다. 인간의 지능이 발달한 이유는 숲과 나무와 들판과 땅속과 물속과 공중까지 환경을 두루 장악하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무에는 기어올라 열매를 찾고, 땅속은 도구를 이용하여 뿌리를 캐고, 공중은 돌을 던져서 새를 사냥하고, 들판은 인간 특유의 지구력으로 사냥감을 추적한다. 인간은 더운 곳에서 추운 곳까지 모든 환경을 이겼다. 그 전략적 선택의 과정에서 머리가 좋아진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 환경을 장악한게 아니고 애초에 유전자가 그런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유전자는 외부환경을 외부로 인식하지 못한다. 빛이 100만 킬로 밖에서 오더라도 눈앞에 있는 것과 차이가 없다. 인체 내부의 감정신호와 인체 밖의 감각신호를 구분할 수 없다. 냄새는 코에 붙어 있고, 소리는 귀에 붙어 있고, 빛은 눈에 붙어 있고, 촉각은 피부에 붙어 있다. 외부의 타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유전자가 인체 내부를 장악하듯이 외부환경도 내부로 착각하고 장악하는 것이다.


    유전자는 외부의 바람을 복제하여 털을 만들고, 외부의 빛을 복제하여 눈을 만들고, 외부의 소리를 복제하여 귀를 만든다. 내부를 복제하듯이 외부도 복제한다. 외부환경을 복제하여 내부를 구성한다. 배가 부른 것은 내부의 사정이고 소리가 들리는 것은 외부의 사정이지만 유전자 입장에서 둘은 같다. 날씨가 추우면 몸이 추운 것이고 날씨가 더우면 몸이 더운 것이다. 유전자는 바깥의 더운 날씨와 추운 날씨가 아니라 내부의 뜨거운 몸과 차가운 몸으로 인식한다.


    진화는 외부환경과 인체가 상호작용한 결과이지만 유전자 입장에서는 그냥 둘을 합친 하나의 조절장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환경을 복제하는 능력이다.


    미생물은 소화기관이 없다. 신체 외부의 영양소를 그냥 흡입한다. 인간은 위장에서 소화하지만 위장은 엄밀히 따지면 인체 밖이다. 입을 기준으로 안팎을 구분하는 것은 자의적인 판단이고 세포 밖에 있으면 외부다. 외부든 내부든 감지되는 것은 모두 복제하여 장악한다. 그 과정에서 외부환경을 내부로 들여오는 것이 진화다. 


    진화는 유전자가 환경과 싸워 이겨온 기록이다. 이기려면 전략을 써야 한다. 힘을 한곳에 몰아줘야 한다. 사건에는 방향성이 있으므로 첫 단추를 끼우면 그 방향으로 계속 가게 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유전자는 조절장치가 있다. 환경과의 간격을 조절하여 결과를 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코끼리는 속도를 내주고 대신 몸집을 키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말은 빠르게 달리는 전략을 선택했다. 기린은 키를 키웠다. 어떻게든 환경을 이겨야 한다. 몸집으로 환경을 이기고, 스피드로 환경을 이기고, 키로 환경을 이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 있어서 그쪽으로 계속 가게 된다는 점이다. 한 번 방향을 정하면 되물릴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조절장치다. 조절은 한 방향으로 일어난다. 엑셀레이터 페달은 없고 브레이크만 존재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전개된다. 앞단계에서 정한 범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단계적으로 선택지가 축소된다. 마이너스의 원리다. 뭔가를 줄이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할 수 있다.


    자동차가 물에 빠지면 문을 열 수 없다. 물속에서는 수압이 걸려 있기 때문에 잠수함의 해치를 열 수 없다. 늑대 무리에 쫓기는 사슴과 같이 환경에는 압력이 걸려 있기 때문에 유전자는 무언가를 플러스하는게 아니라 무언가를 차단하는 장치를 망실하는 형태로만 진화한다. 기린은 키를 조절하는 장치가 망가진 것이다. 한 번 망가지면 회복되지 않는다. 도마뱀은 뱀이 될 수 있지만 뱀은 다시 도마뱀으로 돌아갈 수 없다. 조절하는 무언가가 망실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개코원숭이의 날카로운 이빨과 오랑우탄의 매달리는 팔힘과 원숭이의 실팍한 꼬리를 잃어버렸다. 한 번 잃은 것은 복구되지 않는다. 다시 원숭이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하마가 진화하여 고래가 되었다. 고래는 하마로 돌아갈 수 없다. 하마는 고래가 될 수 있는 조절장치가 있었는데 그게 망가졌기 때문이다. 하마의 일부가 바다로 가서 바다하마가 되었다. 바다하마들은 곤드와나 대륙 시절에 얕은 천해에 살았다. 밤에는 육지로 올라오고 낮에는 바다에서 생활한 것이다. 대륙이 이동하여 천해가 사라지자 큰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 것이 고래다. 그 과정에서 고래는 육지생활의 기반을 모두 잃었다. 엔트로피에 의해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제 주어진 상황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확실한 실용을 잃고 애매한 가능성을 얻는 바꿔치기가 전략이다. 전략은 언제나 위험부담을 수반한다. 개코원숭이의 이빨과 오랑우탄의 팔힘과 침팬지의 털은 실용적이다. 진보는 언제나 실용을 잃고 명분을 얻는다. 진화가 전략인 이유는 내부를 잃고 외부를 얻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체 내부의 이빨과 털과 꼬리와 팔근육을 잃는 대신 나무와 들판과 물과 공중과 땅속까지 서식영역을 넓혔다.


    전술과 전략의 차이다. 전술은 전장 안에서 결정되고 전략은 전장 밖에서 결정된다. 전략의 기본은 이길 수 있는 전투를 내주고 대신 내가 유리한 전장으로 옮겨가서 최후의 결전을 치르는 것이다. 당장의 작은 것과 미래의 큰 것 사이에서 바꿔치기를 반복한다. 인간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이빨과 팔힘과 털과 꼬리를 내주고 대신 다양한 서식환경을 얻었다. 이것이 전략이다.


    전략의 바꿔치기는 정치에도 경제에도 흥행에도 진보에도 적용된다. 항우는 승리를 얻고 유방은 민심을 얻었다. 오늘의 작은 전투를 내주고 대신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전장으로 옮겨가서 최후의 대회전을 치른다. 내부를 주고 외부를 얻는다. 고래는 다리를 내주고 바다를 얻었다. 사람은 이빨을 내주고 다양한 환경을 얻었다. 오늘 이로움을 내주고 손해보는 대신 내일 이길 수 있는 기반을 얻는다.


    인터넷 물물교환 사이트에서 빨간 클립 한 개로 바꾸기를 시작하여 집을 샀다는 캐나다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가진다. 현재를 내주고 미래를 가진다. 고체를 내주고 유체를 가진다. 도박을 져주고 판돈을 올린다. 가까이 있는 은을 내주고 멀리 있는 금을 얻는다. 이 수법을 무한반복하는게 전략이다.


    인간의 조상은 터무니없는 전략을 선택했다. 한때 인류는 1천 개체 정도로 줄어 멸종할 뻔했다. 대신 서식영역을 평지, 땅속, 나무, 물속, 하늘로 확장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땅속의 두더지도, 들판의 사슴도, 물속의 물고기도, 나무의 열매도 인간은 먹었다. 영역의 확장에 비례해서 지능지수가 높아졌다. 이것은 리스크를 떠안는 위험한 전략이었다. 한 번 방향을 그렇게 잡으면 그쪽으로 계속 달려가게 된다. 치타는 속도에 운명을 걸었다. 쥐는 다산으로 승부했다. 그 방향 쪽으로만 기세가 작동하므로 돌이킬 수 없다. 전략은 실패할 수도 있다. 멸종한 동물은 전략의 실패가 원인이다. 환경과의 게임에 진 것이다.


    하이에나는 무리의 세력이 강하면 겁대가리가 없어져서 사자에게도 덤빈다. 그러다가 죽는다. 내 유전자를 남기지 못해도 무리가 살면 된다. 작은 내 목숨을 내주고 큰 집단을 살리는 전략이다. 그렇게 바꿔치기를 계속 한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얻어야 하므로 방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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