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009 vote 0 2021.07.08 (16:06:48)

    희망은 없지만 희망은 있다. 의미는 없지만 의미는 있다. 에고는 없지만 신은 있다. 내게는 없지만 하나가 있다. 부분은 없지만 전체는 있다. 희망은 방향이고, 의미는 연결이며, 신은 꼭지점이다. 나에게서 출발하여 방향을 따라 연결을 계속하면 결국 신에 이른다.


    나를 부정함으로써 신에 이른다. 나의 희망을 부정함으로써 신의 희망을 발견한다. 나의 의미를 부정함으로써 신의 의미를 완성한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그것을 완성한다. 그것이 나를 버린다는 것의 의미다. 내려놓는다는 것의 의미다.


    희망은 공유되는 것이다. 의미는 공유되는 것이다. 구원은 공유되는 것이다. 그것을 사유화할 수 없다. 옛날에는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은 공유되기 때문이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7급 공무원이라고 대답한다. 7급 공무원은 공유되지 않는다. 사유화되는 꿈을 타인에게 털어놓을 이유가 없다. 꿈이 뭐냐고 묻는 질문은 무엇을 공유하려는가고 묻는 것이다. 독창이면 남들이 물어볼 이유가 없다. 합창이므로 묻는다. 왜? 장단을 맞추려고.


    꿈은 태양과 같다. 태양은 사유화할 수 없다. 희망은 그런 것이고, 의미는 그런 것이고, 구원은 그런 것이고, 신은 그런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감내해야 한다. 구원 그 자체가 있을 뿐 특정인의 구원은 없다. 구원은 인류의 구원이지 어떤 사람의 구원이 아니다. 인류라는 게임의 피날레가 구원이다.


    신도 있고, 희망도 있고, 의미도 있고, 구원도 있으나 그것은 온전히 하나로 있다. 쪼개지지 않는 완전체로 있다. 거기서 한 조각도 떼어갈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대를 아름답게 완성하는 것이다. 그 빛나는 한순간에 그 무대 안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서는 것이다.


    혹자는 내게 없는 의미가 어딘가에 있은들 무슨 소용이냐고 따지겠지만 거꾸로 의미가 없는데 없는 그것이 내 호주머니에 있은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없는 그것이 내게 속하여 있다는 말은 없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있다. 있는 그것이 여기에 없다면 저곳에 있다. 어딘가에 있다. 널리 공유되어 있다. 누구에게 속하면 의미는 죽는다. 그것은 언제나 완전체로만 존재한다. 개인의 희망은 인류의 희망에 연동되는 것이고, 개인의 의미는 인류의 의미에 연동되는 것이며, 개인의 구원은 인류의 구원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과연 인류에게 희망이 있을까? 인류에게 의미가 있을까? 인류는 온전한 이야기 하나를 품고 있을까? 만약 이야기를 얻으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원래 인류는 이야기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나도 이 무대에서 할 말이 있지만 그 언어는 원래의 것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이 길을 가겠는가?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의 세력에 속하겠는가? 인생의 희망 없고 의미 없음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리하여 온전한 희망과 의미 그 자체를 발견하겠는가?


    내게 약속된 보물을 내 자식에게 준다면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내게 주어질 보물을 신에게 대신 준다면 그대는 아쉬운가? 그렇다면 신과의 연결이 끊어진 게다. 내 몫을 내려놓는 방법으로 끊어진 연결을 복구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이야기의 단초다. 신은 무대이고, 구원은 배역이고, 의미는 대본이고, 희망은 연기다. 비로소 나는 세상을 향해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다. 들을 귀는 없어도 씨부릴 입은 있다. 언어의 씨앗은 광야에 뿌려진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388 입진보 카터의 귀향 2 김동렬 2021-07-12 4484
5387 쥴리의 타살 1 김동렬 2021-07-12 4875
5386 진화와 진보의 전략 김동렬 2021-07-12 3692
5385 진화의 전략 김동렬 2021-07-11 3572
5384 무한의 문제 김동렬 2021-07-10 3597
5383 구조의 탄생 김동렬 2021-07-09 3801
5382 원자는 없고 구조는 있다 김동렬 2021-07-09 3399
» 이야기의 단초 김동렬 2021-07-08 4009
5380 쥴리와 호빠 1 김동렬 2021-07-08 5254
5379 자연은 전략이다 김동렬 2021-07-08 3568
5378 기세란 무엇인가? 김동렬 2021-07-07 4441
5377 중권이랑 쥴리랑 1 김동렬 2021-07-07 4363
5376 민중파가 엘리트를 이긴다 김동렬 2021-07-06 4454
5375 원인은 자연의 조절장치다. 김동렬 2021-07-06 3358
5374 구조론은 무엇으로 사는가? 2 김동렬 2021-07-06 3336
5373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1 김동렬 2021-07-05 4145
5372 이낙연 후단협의 갑질면접 완장질 4 김동렬 2021-07-05 4779
5371 이재명 돕는 윤석열 김동렬 2021-07-05 4008
5370 인간은 명령하는 동물이다 김동렬 2021-07-04 3439
5369 이성은 명령이다 김동렬 2021-07-03 3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