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전 끝에 완패?
월드컵 16강으로 가는 두 번째 산이었던 대 아르헨티나戰에서 결국 한국은 1 : 4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2 : 0 으로 완승했던, 그 기쁨과 희망을 뒤로하고, 축구강국인 아르헨티나의 벽을 실감하였다. 말 그대로 완패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졸전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언론에서는 관용어처럼 "졸전 끝에 완패"라는 말을 쉽게쓰겠지만 말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르헨티나戰이 그리스戰 보다 훨씬 재미있고, 수준 높은 경기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결과적으로는 스코어가 1 : 4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각종 언론에서는 그 원인을 '한국팀의 공수전환이 느렸다', '감독이 차두리를 출전시켰어야 했다', '고질적인 골 결정력 미숙' 등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서 쏟아낼 뿐이다.
물론 아르헨티나는 강팀이고, 그 개개인이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선수들로 구성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패배한 이유가 단지 상대적으로 기술면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술이 떨어지는 부분은 조직력으로 얼마든지 보완 할 수 있다.
북한 vs 브라질
북한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북한은 세계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전반에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브라질 선수들의 개인기로 북한 선수들을 속이고 제쳐버리려고 내내 노력하였지만, 북한의 수비 조직력이 브라질의 발재간에 쉽게 속아넘어가지 않았고, 브라질 선수들을 갑갑하고 짜증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반에 들어 북한은 내리 세 골을 내주고 말았다. 그 이유는 북한의 수비조직력이 무너졌다는 말도 맞긴하지만, 결국 북한이 공격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격을 시작하면 정대세한테 볼이 가는데, 정대세를 받쳐줄 선수도 없었고, 함께 공격으로 전환하는 선수도 없었다. 그러니 브라질은 정대세만 막으면 되는 것이고, 반대로 공격의 빈도가 더 높았고, 그러니 여러가지 루트로 공격을 시도하다보니까 골이 난 것이다.
북한은 1994년, 1998년의 대한민국의 수준에 있었던 것이다. 스코어가 1 : 3 이라고 해서 1 : 4 로 진 한국이 북한보다 못하다고 단순비교 할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94,98년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2002년의 히딩크가 체력을 최우선으로 하여 훈련한 것도, 공격과 수비를 빠르게 전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수비만하거나, 공격만 하는 것은 그만큼 체력의 부담이 없지만, 수비에서 공격으로, 공격에서 수비로 유기적으로 전환하려면 막강한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박지성, 박주영, 이청룡과 같은 유럽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있다. 어디로 어느 타이밍에 패스를 해야지 기회가 오는지를 알고, 기회가 오면 마무리 할 실력도 갖추었다. 선수들이 조금씩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긴시간 월드컵의 문앞에서 쏟은 눈물의 결실인 것이다.
패배의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에 통한의 패배를 맛볼 수 밖에 없었다. 박주영의 자살골은 논외로 하더라도 참으로 뼈아픈 패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긴 했어도 98년의 네덜란드에 0 : 5 패배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아르헨티나 공격수의 현란한 기술에 쉽게 농락당하지도 않았고, 날카롭게 공격하는 모습을 몇차례나 보여주었다.
심리전을 하지 않았다거나, 차두리를 투입하지 않았거나 하는 이유는 본질이 아니고, 진짜는 따로 있다. 바로 고지대 적응에 실패했던 것이다. 고지대에서는 공기저항이 적기 때문에 같은 힘으로 볼을 차도 더 멀리 날아간다. 허정무 감독은 경기 전부터 그 점을 걱정했는데, 실제로 경기내용을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볼 트래핑, 볼 컨트롤이 안되어서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곤 했다.
꼭 그런것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영리하게도 숏패스와 드리블로 공격해오는데에 반하여, 한국 선수들은 공격전환을 할 때 롱패스를 하고, 롱패스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거나, 컨트롤 실수를 하거나, 도중에 차단되어 역공을 당하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세 번째 골이 터지기 전까지 후반 중반까지 한국은 매섭게 몰아쳤고,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점차 체력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추가골을 내어준 것도 패스가 차단되어서 역공을 당하면서, 공격으로 전환하던 한국선수들이 급하게 다시 수비로 전환하면서 수비 조직력이 무너졌고, 아르헨티나의 골로 이어졌다. 그 뒤에는 사기가 꺾이고,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신이 나고... 만약에 후반에 한국팀이 득점을 했더라면 얘기는 달랐을 것이다. 결국 모든 원인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가 축이 되어서 밸런스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또다시 고지대에서 게임을 하게 될 런지는 모르지만, 사람을 컨트롤 하지 못해서 진게 아니라, 볼을 컨트롤 하지 못해서 졌다는 것은 또다른 교훈을 줄 것이다. 고지대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실력의 일부이다. 그리고 다시 고지대에서 아르헨티나와 같은 강팀을 만난다고 해도 패배할 확률이 높다.
수준을 보자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름 수준있는 경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만약 한국팀이 북한처럼 수비만을 고집했더라면, 오히려 졸전 끝에 대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졸전하지 않았다. 결과가 아니라 수준을 봐야 한다는 것. 물론 아르헨티나 선수들만큼의 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인상적인 플레이를 했다는 얘기.
그 자체로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자는 말이 아니라, 분명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는 다른 양상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고무적으로 볼 일이다. 그것이 문제라면, 그것만 아니라면 오히려 괜찮을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 한국축구 슬 당당해지고 있다.
한국팀은 한번 잘하면 그담 경기는 별로고
한번 말아먹고 욕 먹으면 그담 경기는 잘 합디다.
나이지리아전은 2 대 0으로 이기고 16강 가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