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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300 vote 0 2021.06.23 (16:58:30)

    결정론이냐 비결정론이냐. 논쟁하면 결정론이 이긴다. 카오스이론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게 나올 때마다 한 차례씩 들썩거리긴 했지만 학계는 결정론으로 되돌아가 버리기를 반복해 왔다. 그래서 비결정론은 이름이 없다. 


    결정론의 변종인 그리스 신화의 운명론이나 기독교의 예정설도 마찬가지다. 논쟁하면 운명론이 이기고 예정설이 이긴다. 질문에 트릭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결정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안다. 인간이 지분을 조금이라도 챙기려면 미리 결정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말싸움을 하면 결정론이 이긴다. 원래 이런 사유는 결정론을 까기 위해서 나온 건데 반대로 된 것이다. 이는 인간 언어의 한계다. 언어를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법도 법이다 하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말은 아니지만 어떤 일본인이 추측한 것이다. 실정법을 존중해야 개혁의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소크라테스의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논쟁하면 악법도 법이라는 쪽이 이긴다. 법은 사회의 질서이며 질서를 바꾸려면 일단 질서를 인정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탈출은 윤석열의 출마와 같다. 윤석열과 최재형의 대선출마는 그들이 애초에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비밀리에 공작을 해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소크라테스는 고발자를 도덕적으로 패배시킬 의도로 독배를 마셨다. 소크라테스는 이기려고 독배를 마신 것이다. 이기지 못하면서 법을 어기는게 문제일 뿐 이길 수 있다면 당연히 법을 어기고, 촛불을 들고, 왕을 죽이고, 혁명을 하는 것이다. 


    법을 어기는 시민의 행동은 최종적인 민중의 승리에 의해 정당화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핍박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겼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이스라엘이 이겼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는 방법으로 불의한 고발자들을 도덕적으로 패배시키고 이겼다. 윤석열과는 정반대 행보다.


    결정론 논쟁은 무조건 결정론이 이기도록 되어 있다. 근래에 양자역학의 성과가 나오면서 뒤집어졌지만 말로 다투면 결정론이 이긴다. 인간이 도무지 언어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똑부러지게 해야 한다. 결정론이 똑부러진다. 비결정론은 뭘 어쩌자는 건지 애매하다. 결정론을 부정하는 다른 무언가를 들고나오면 그 다른 무언가는 결정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비결정론은 핸디캡을 안고 싸우는 것이다.


    기독교의 다양한 분파들이 이단으로 몰려서 사라졌다. 삼위일체설이 이기게 되어 있다. 왜? 이기려고 고안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탈출하면 거 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깐. 소크라테스 저 인간은 법을 우습게 보는 악당이라구. 이러면서 고발자들이 길길이 날뛴다. 그들이 이긴다. 윤석열이 출마하면 거봐라. 저 인간은 원래부터 대선 나오려고 조국을 사냥했다고. 인간 백정이지. 이러며 우리가 길길이 날뛰는 것과 같다.


    인간의 언어에 함정이 있다.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관계다. 운명은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원자는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언어가 지목할 똑부러지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주체와 객체가 명확하게 존재해야 대칭이 성립한다. 결정론을 부정하면 이러한 질문이 부정된다. 용감하게 질문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이 틀렸다. 결정론을 부정하려면 관측자를 부정해야 한다. 


    관측자는 나다. 내가 희미하기 때문에 내 운명은 결정될 수 없는 것이다. 구원도 결정될 수 없다. 내가 있어야 내 운명이 결정될 수 있는데 내가 없으므로 내 운명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 존재는 없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인가? 나의 영혼? 나의 신체? 내 몸속의 암세포? 손톱과 발톱? 장속의 배설물? 그런 것은 특정할 수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존재는 개별적으로 지목될 수 없으며 어떤 둘의 관계로만 존재한다. 내가 의사결정하여 사건을 일으키면 그 사건의 주체가 나다. 나는 환경과 걸쳐 있다. 존재는 서로 겹쳐 있다. 존재는 사물이 아닌 사건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꼬리와 꼬리가 겹쳐 있다. 사건은 추적할 수 있을 뿐 특정할 수 없다.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


    나무를 지구에서 분리하고 햇볕과 분리하면 죽는다. 나를 나 아닌 것과 분리하면 죽는다. 내 존재가 환경과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며 경계가 희미하기 때문에 내 존재는 결정될 수 없다. 결정론의 부정은 나의 부정이므로 무대에 데뷔하기 어렵다. 시합에 등판하기 어렵다. 논쟁은 목청이 커야 이기는데 비결정론은 목청이 작다. 사물은 똑부러지는데 사건은 애매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논쟁하면 똑부러지는 주장을 들고나오는 쪽이 이긴다. 목청이 큰 운명론이 이기고, 예정설이 이기고, 결정론이 이긴다. 악법도 법이라고 우기는 자가 이긴다. 애초에 인간의 언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결정론적 사고에 익숙하다. 대칭으로 사유하기 때문이다. 둘 중에서 선택하려고 한다. 구조론은 대결하는 두 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게 아니고 둘을 동시에 아우르는 게임의 주최측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결정론을 버리라고 하면 생각 자체를 못한다.


    세상은 결정론이 아닌 상호작용의 원리, 게임의 원리, 맞대응의 원리, 전략의 원리, 동원의 원리, 주체의 원리, 권력의 원리, 기세의 원리를 따른다. 결정론 반대편은 이름이 없다. 굳이 말하면 구조론이다. 이겨야 존재가 있다. 미리 계획을 세우면 정보가 새서 상대가 교란한다. 현장은 교과서와 다르고 돌발상황은 언제나 일어난다. 상대의 행동을 보고 이쪽의 동원을 결정한다. 


    그것을 정하는 주체인 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세상은 결정되어 있는게 아니고 게임에 이겨서 결정하는 것이다. 구조론은 의사결정론이다. 미리 결정되어 있으면 안 되고 지금 결정한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알 수 없어야 게임이 성립한다. 미리 브라질팀이 우승한다고 정해지면 누가 월드컵에 참여하겠는가 말이다.


    미리 결정하지 않고 애매함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끝까지 긴장을 이어가려는게 우주의 모습이다. 큰 방향은 결정되어 있고 세부가 확정되지 않을 뿐이다. 예정설은 자체 모순이다.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하느님도 결정의 노예가 되므로 신의 전지전능이 부정된다. 개신교는 아직도 열심히 논쟁 중이다. 이중구원설 같은 것도 있다. 점점 구조론의 상호작용론을 닮아가고 있다. 결정은 승부에 의해 정해진다. 승부가 존재의 본래 모습인데 그게 미리 정해지면 되겠는가?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금재.

2021.06.23 (18:40:39)

신중하고 합리적인 링컨은 명분에만 치우쳐 성과도 없는 노예제 반대 운동을 벌이다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것보다는, 노예제 반대라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수도 이전도 이루어낼 수 있는 길을 택했다. 링컨은 규탄안 표결 당시에는 조용히 반대표만 던진 뒤, 일단 스프링필드로 수도가 옮겨진 다음 공개적으로 반박문을 발표하였다. 링컨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던 주의원 다니엘 스톤과 공동으로 작성한 이 반박문도 노예제를 무조건 철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링컨은 우선 노예제가 정의에 어긋나는 악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그것을 무조건 법으로 만들어서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 링컨의 생각이었다. 노예제를 없애는 것 또한 헌법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반박문 안에 들어있다. 노예제가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 또 이 제도가 궁극적으로 없어지기를 바라지만, 이를 철폐하거나 존속시키는 문제로 인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해체되거나 헌법이 짓밟히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링컨의 입장은 그 뒤에도 변함없다. 이런 온건하고 현실적인 정치적 접근 방식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과격한 방식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미국에서 노예제가 사라지는 데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 책 '노무현이 만난 링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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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1.06.23 (19:07:36)

이겨야 이긴다는 사실을 아는 링컨

졌지만 목청은 높였으니 됐다는 식으로 어긋난 길을 가는게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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