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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889 vote 0 2021.06.03 (19:26:34)

    공자는 누구인가?


    필자가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이쪽 귀 저쪽 귀로 들어본 결과 죄다 나이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둥소리 같은 진짜배기를 말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공자다. 공자의 정수를 이해한 사람은 공자 자신을 포함해서 역사적으로 0명에 가깝다. 


    공자 당대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사후에도 그의 진면목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막연히 감으로 알아채고 국물이나 얻어먹으려고 주변을 배회하는 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공자는 인류의 유일한 스승이다. 역사에 위대한 사람이 많지만 그들의 직업은 스승이 아니다. 아는게 많은 사람은 지식인이지 스승이 아니다. 교사는 재주를 팔아먹는 사람이지 스승이 아니다.


    진짜가 있다. 진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숨은 플러스알파다. 드러나 있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드러나면 시장에 반영된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을 리 없다. 무언가 감추어진게 있으므로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감추어져 있어야 진짜다.


    숨은 것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산 것과 죽은 것을 가르는 기준은 호흡이다. 호흡은 겉에서 보이지 않는다. 호흡이 생명의 숨은 플러스알파다. 자연의 숨은 플러스알파는 감추어진 기세다. 시장의 숨은 플러스알파는 이윤이고, 사회의 숨은 플러스알파는 권력이다. 반드시 그것이 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전체와 부분의 합은 무엇이 다른가? 전체는 결합되어 있다. 보통은 전자기력에 의해 결합된다. 공유결합의 형태로 원자를 결합하여 우리가 아는 자연의 물리적 형태를 만들어낸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돌멩이도 중력에 의해 지구와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 


    돌덩이 하나를 가져오려고 해도 돌값에다 운반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것은 결합을 해제하고 다시 재결합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숨은 플러스알파다.


    인간들 사이를 결합하고 혹은 결합을 해제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자의 진실은 주체적 권력이다. 공자는 그것을 인仁이라고 했다. 인은 공자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인人을 두 번 쓰면 人人이니 人+二를 仁으로 쓴다. 인은 사람이 사람답다는 뜻이다. 사람답지 않은 것은 짐승이다. 


    짐승과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권력의 유무가 다르다. 결합되어 있는 정도가 다르다. 짐승은 권력이 없고 인간은 권력이 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도 한다. 권력이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켜 서로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다른 말로는 의리다.


    결속된 집단과 그렇지 않은 무리의 차이는 의리다. 그것이 훈련된 군대와 오합지졸의 차이를 만든다. 공자가 위대한 스승인 이유는 그것이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의리로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것이다. 지식은 좋은 거래상품일 뿐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것이 아니다.


    노예그룹에서 나와 시민그룹으로 옮겨간다면 좋은 것이다. 짐승그룹에서 나와 인간그룹으로 옮겨간다면 좋은 것이다. 역사에 천재도 많고 영웅도 많고 뛰어난 지식인도 많으나 그들은 노예가 사슬을 끊고 탈출할 수 있는 도구를 주었을 뿐이다. 예리한 칼 하나를 건네준 것이다. 공자는 결혼해 주었다. 그건 다른 거다.


    유전자에 새겨진 동물의 보호본능과 군자의 의리는 다르다. 부모와 자식의 동물적 사랑은 시장에 반영되지만 동료들 사이의 끈끈한 의리는 최후에 문제를 해결하는 숨은 플러스알파가 된다.


    왜 공자인가? 인간은 종교에서 의리를 조달한다. 예수의 사랑이 의리다. 그런데 종교는 가짜다. 선비의 권력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지는데 목사의 권력은 교역자 1인에게 집중된다. 왜곡되는 것이다. 종교의 권력은 교역자에 의해 도구화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숨은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드러난 도구로 변질된다.


    학계는 지식을 전수할 뿐 권력을 조직하지 않는다. 학자는 의리가 없다. 학자의 지식은 도구일 뿐이다. 정치인의 무력은 도구다. 도구는 드러나 있다. 학자의 지식과 정치의 무력은 노출되고 시장에 반영되므로 숨은 플러스알파가 아니다. 그것으로는 기존의 중력을 떼어내고 새로운 중력을 만들어낼 수 없다.


    사슬을 끊고 넓은 세계로 나가는데 쓰라고 칼을 건네준 사람과 결혼해 준 사람은 다르다. 공자가 유일하게 나와 결혼해 주었다. 스승의 의미는 다른 거다.


    공자의 숨은 플러스알파로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끈끈한 공유결합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되게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켜 노출되지 않은 숨은 플러스알파를 생산하는 방법을 말해준 사람은 공자 외에 없다. 역사적으로 없다.


    문제는 도구로 해결한다. 학자의 지식과 정치의 무력은 도구다. 서양이 동양을 이겼다. 그들이 도구를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구는 공개되고 전파된다. 동양이 서양의 도구를 손에 넣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모든 조건이 대등할 때 최후에 승부를 가르는 것은? 그것은 주체의 변화다. 객체는 노출되지만 주체는 감추어지기 때문이다.


    그냥 두 사람과 부자지간인 두 사람 중에서 한쪽을 선택하여 투자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믿고 재산을 맡기겠는가?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오는 이지 중대원 두 사람과 그냥 두 사람 중에서 당신은 어느 쪽을 작전에 투입하겠는가? 테베의 신성부대가 강력했던 것은 동성애자인 그들이 끈끈한 공유결합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조다.


    그냥 두 사람과 긴밀하게 결합된 두 사람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의리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한다. 도구는 객체다. 객체는 노출된다. 적군이 맞대응을 한다. 최후의 순간에는 주체의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전력이 대등하면 포메이션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동료의 득점을 위해 희생타를 쳐주는 팀이 이긴다. 주체의 공유결합된 정도의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므로 숨은 플러스알파가 된다.


    두 집단 사이에 주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공자의 사람다움이고, 예수의 사랑이고, 석가의 깨달음이다. 예수의 사랑과 석가의 깨달음은 1인의 문제고 공자의 의리는 다수의 문제라는 점이 다르다. 혼자서 군자노릇이 쉽지만 다수 속에서도 여전히 군자로 처신하기는 쉽지 않다. 점잖은 사람도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양아치가 되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청나라가 잘 나갈 때 서구 계몽사상가들이 잠시 공자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들 중에 공자를 이해한 사람은 없다. 공자 열기는 반짝하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자는 노자와 비교해야 진면목이 보인다. 공자와 노자는 무엇이 다른가? 노자는 객체인 환경에 적응하라고 했고 공자는 주체인 인간이 환경을 극복하라고 했다. 그것이 극기복례의 의미다.


    노자는 인간이 환경과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상대적 존재임을 드러냈고 인간은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자의 환경을 이용하는 방법은 도교사상이 적용된 손자병법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손자병법으로는 한 번 적을 속일 수 있을 뿐이다. 적군이 눈치를 채고 반드시 맞대응을 한다.


    오자병법은 순자를 계승한 유가의 병법이다. 오자는 장군이 병사의 무릎에 난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치료한다. 장군이 병사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는다. 그것은 주체의 변화다. 그것은 절대적인 차원의 도약이다. 병사들 간의 공유결합된 정도는 극적으로 높아진다.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를 달성하여 환경을 극복한다. 그것은 적군이 간파할 수 없는 것이며 맞대응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적국이 그것을 모방하면 국가가 깨진다. 사람과의 긴밀한 정도는 계급제도에 반영되고 그 변화는 계급해방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초나라 귀족 40명이 서둘러 오자를 죽인 이유다. 놔두면 오자는 카이사르가 된다.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귀족을 해체할 것이 뻔하다.


    객체는 눈에 보인다. 환경은 눈에 보인다. 그것은 드러난 도구일 뿐 숨은 플러스알파가 아니다. 노자는 총칼만 도구가 아니고 지형지물도 전쟁의 도구이며 인간의 심리도 전쟁의 도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도구를 좋아하므로 노자의 말에 솔깃해한다. 그런데 시장에 반영된다. 잠시 먹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노자와 공자의 차이는 객체를 다루느냐 주체를 다루느냐다. 공자는 한마디로 주체의 발견이다. 객체를 어떻게 하든 잠시 무마할 뿐 그 작용은 반드시 반작용으로 되돌아온다. 주체의 변화가 진정하다. 그것은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것이다. 더 높은 차원의 다른 게임으로 갈아타기다.


    주체의 변화를 시도한 사람은 석가와 예수와 공자다. 석가는 개인의 변화에 머물러 있으니 소승이다. 이후 대승이 나왔지만 공자 근처에 가지 못했다. 내세에 매몰되어 현실권력을 부정하는 허무주의 인도철학의 한계다. 예수는 주체인 사람을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종교의 한계로 인해 순식간에 신이라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기독교는 신이라는 막강한 무기 하나를 손에 쥔 것이다. 기독교에 의해 도구화된 신은 죽은 신이다. 기독교의 신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다. 훌륭한 기독교인도 있지만 그들은 신을 주체로 해석한 것이다. 객체화되면 도구로 변질되고 도구화되면 숨은 플러스알파가 아니다. 신을 주체로 해석하면 내가 신에게 직통계시를 받았다며 개판 치는 자가 반드시 나타난다. 사이비 교주 말이다.


    최후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숨은 플러스알파다. 다른 조건이 대등할 때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낸다. 중국은 토지가 비옥해서 흥했고, 일본은 막부시대에 금광이 터져서 흥했고, 미국은 땅이 넓어서 흥했고, 사우디는 석유가 터져서 흥했다. 좋은 환경 덕분에 일시적으로 흥하지만 그것은 점차 반영된다. 곧 바닥이 난다.


    환경은 눈에 보인다. 대결하면 상대가 맞대응을 하므로 언제나 50 대 50으로 교착된다. 이는 피해 갈 수 없는 자연의 대칭원리다.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을 거친다. 팽팽한 상태에서 마지막에 축구장을 기울이는 숨은 플러스알파는 사람다움이다.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환경에 적응하느냐 극복하느냐가 다르다. 환경에 적응하면 동물이고 환경을 극복하면 사람이다. 객체를 바꾸면 환경에 적응하고 주체를 바꾸면 환경을 극복한다. 소인배의 괴력난신은 환경에 적응하려는 본능의 몸부림이다. 그것은 호르몬의 작용에 의한 동물적 행동이다. 괴력난신은 주술본능이다. 주술은 암시를 걸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소인배의 생존본능이다.


    학자의 지식과 정치의 무력은 노출된 도구다. 누가 지식을 품었거나 무력을 품었다면 남들이 알아채고 맞대응을 한다. 한 번은 당하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가 마음속에 의리를 품었다면 남들이 알지 못한다. 대응하지 못한다. 최후의 순간에 승부를 가르는 것은 의리다.


    이곳에서 지식을 배워 문제해결의 도구를 얻어갈 수 있으나 군자의 의리로 공유결합을 이루지 않으면 가짜다. 노예의 사슬을 풀어줄 뿐 결혼해주지 않으면 가짜다. 주체에 속하지 않으면 가짜다. 함께 게임의 주최측을 이루지 않으면 가짜다.


    인간은 무엇을 하든 초반에 잠시 잘 나갈 뿐 곧 환경의 반작용에 의해 전방위로 교착되어 공세종말점에 도달하게 된다. 새로운 메뉴를 도입하여 장사가 좀 되나 싶으면 어느새 경쟁자가 뛰어들어 판을 혼탁하게 만드는 식이다. 그 상태에서 최후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세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숨은 플러스알파는 생산력의 변화뿐이고 사람을 바꾸는 숨은 플러스알파는 의리뿐이다. 잠시는 새로운 도구를 먼저 손에 쥐는 자가 흥하지만 최후에 세상을 바꾸는 것은 서로 간에 공유결합된 정도의 차이뿐이다.


[레벨:4]고향은

2021.06.03 (23:29:11)

"숨은 것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호흡이 생명의 숨은 플러스 알파다.
자연의 숨은 플러스 알파는 기세다."



숨은 플러스 알파는 잠재태로 있다가
지금 여기에서 현실태로 나타난다
현실에서의 그것은 때로 희생하고,
때로 이윤을 얻기도 하는 능력이며 힘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21.06.05 (00:08:39)

"...초나라 귀족 40명이 서둘러 오자를 죽인 이유다. 놔두면 오자는 카이사르가 된다.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귀족을 해체할 것이 뻔하다."

- 즉 작것들이 작세를 타고 '조국이 카이사르가 된다'고 보았고, 미애도 그렇고, 시민도 그렇다고 보았다. 그러나 조국의 시간에 닥쳐온 밀물은 3대를 이어갈 카이사르가 죽어도 '촛불 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백대를 이어갈 카이사르들로 하여금 적폐 귀족을 해체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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