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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901 vote 0 2015.08.13 (18:36:40)

     

    구조론의 출발


    구조론은 자연의 의사결정원리로 본다. 인식의 근본문제가 있다. 우리는 관측을 통해 인식에 도달한다. 여기에 관점의 문제, 곧 판단기준의 문제가 끼어든다. 인간이 보고 듣는 것은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상대적이다. 상대성이 인간을 헷갈리게 한다. 상대성은 사건 내부에서 성립된다. 안에서 보면 왜곡된다. 바깥에서 보아야 한다. 사건의 바깥은 어디인가? 자연의 의사결정원리다.


    6.jpg


    앞에서 보면 6이고 뒤에서 보면 9다. 상대성이다. 인간의 신체감관은 바른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가해자가 원인측을 구성하고 피해자가 결과측을 구성한다. 결과측인 피해자가 알아챘을 때는 사건이 종결된 다음이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없다. 원인측의 사정을 알아야 한다.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은 가해자이다.


    그러므로 범죄사건이라면 가해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현장검증이 필요하다. 자연에서 가해자는 누구인가? 의사결정 메커니즘이다. 의사결정원리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피해자 시점에서 보는데 익숙해 있다. 가해자가 현장을 이탈하여 사건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결과측에 주목할 뿐 원인측을 놓친다. 동쪽에서부터 해가 뜬다고 믿지만 사실은 서쪽에서부터 지구가 도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모두 의심해야 한다. 자신이 사건의 밖에 있을 때는 정확하게 보인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므로 전봇대가 뒤로 가는 착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구 안에 있으므로 헷갈리는 것이다. 자신이 강자일 때 바르게 보이나 약자일 때는 뒤집어져 보인다. 그러므로 자신을 약자로 놓는 안티행동은 위험하다. 헷갈리는 이유는 대칭성 때문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을 거친다.


    오른쪽이라고 하면 관측자의 오른쪽인지 피사체의 오른쪽인지 헷갈린다. ‘가다’와 ‘오다’는 헷갈리지만 ‘모이다’와 ‘흩어지다’는 헷갈리지 않는다. 가다와 오다는 관측자가 사건 안에 있고, 모이다, 흩어지다는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흔히 객관이라고 한다. 객관 찾다가 주객전도가 되기 쉽다. 객관이라 해도 사실이지 헷갈리는 말이다. 완전히 바깥에 있는 제 3자의 관점이어야 한다.


    오류를 피하려면 대칭성 이전의 일의성 위주로 판단해야 한다. 대칭축을 위주로 보는 것이 일의성이다. 대칭이라고 하면 좌우대칭이다. 사실은 중심과 주변의 대칭이 외력에 의해 변형된 것이 좌우대칭이다. 좌우 2가 아니라 중심 1을 봐야 한다. 좌우는 없고 확산과 수렴이 있다. 중앙과 지방이 있다. 여당과 야당의 좌우대립으로 오해되지만 본질은 권력과 민중의 대립이다.


7.jpg


    자연의 대칭은 원래 중심과 주변의 대칭으로 존재한다. 외력의 작용에 의해 불균일이 일어나면 축이 이동하여 바로잡는다. 곧 좌우대칭이다. 중심과 주변의 대칭은 보이지 않는다. 중심이 내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좌우대칭만 이해한다. 좌우대칭은 축이 이동하여 형태를 연출한 것이고 본질은 여전히 중심과 주변의 대칭이다. 좌우대칭으로 보면 헷갈리지만 중심과 주변의 대칭으로 보면 정답이 나온다. 언제나 중심이 원인이다. 


   DSC01488.JPG


    사람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혹은 바로크와 로코코, 이성과 감성으로 대칭을 시켜주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억지 짜맞추기가 많고 자연의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본질은 중심과 주변의 대칭이며 방향은 하나입니다. 문명은 확산방향으로 가고 의사결정은 수렴방향으로 갑니다. 자연은 언제나 일방통행이며 좌우의 사이좋은 공존 따위는 없습니다. 일베충과의 공존은 없습니다. 좌와 우의 투쟁이 아니라 무지와의 투쟁입니다. 빛이 어둠을 삭제해 가는 과정이며 그 역은 없습니다. 어둠이 빛을 삭제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좌우로 흔들리는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주변과의 균형맞추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일방적으로 커질 뿐 작아지는 일은 없습니다. 나무가 좌우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똑바로 서 있기 위해 외부의 바람에 맞서는 것일 뿐 나무는 성장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자랍니다. 우리 몸에 양 팔이 있는 것은 외력에 맞서기 위함일 뿐 내 안에 어떤 본질적 대립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두 다리로 걷지만 무게중심으로 보면 인간은 언제나 골반이라는 한 다리로 걷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까뮈

2015.08.14 (21:57:32)

방향을 만드는 곳이 핵심,좌우가 아무리 움직여도 그건 반복.

노를 아무리 저어도 키로 방향타를 만들 지 못하면 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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