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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440 vote 0 2015.07.23 (19:17:57)

     

    봉건적 사유에서 근대적 사유로


    세례를 받으면 기독교인이 된다. 5분 만에 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기독교도가 되었을까? 수계를 받으면 불교도가 되고, 관례를 치르면 유교인이 된다. 인간은 부족민으로 태어난다. 근대인이 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봉건언어’를 버려야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나쁜 놈들이므로 노동자가 단결하여 자본가를 타도해야 한다는 식의 선악구도로 보는 관점이 봉건적 사유체계다. 문제는 관점이다. 관점이라는 망원경으로 보면 그만큼 시야가 좁아진다.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사유의 표준모형을 바꿔야 한다.


    선악구도는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본능에 따른 것이다. 집단에 기여하는 행동은 선善이고 집단을 깨는 행동은 악惡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성에 부합하는 행동을 선善으로 친다. 사회성이라는 프리즘을 거쳐서 보므로 왜곡되고 만다. 당신은 인간이다. 근대인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


    과학은 자연에서 구한다. 사자는 집단생활을 하지만 호랑이는 단독생활을 한다. 치타는 두 마리가 짝을 지어 사냥한다. 인간의 사회적 양식은 진화과정에서 얻은 본능에 불과하다. 여전히 선악구도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유치하다. 종교 역시 인간의 사회적 본능에 따른 것이다. 결혼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본능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 그러나 근대적 지식인은 그 본능을 극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가족의 역할, 종교의 역할은 개인에게 집단 일원임을 상기시켜 주고 이를 합리화하는 집단적 의사결정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제사를 지내 재앙을 막고 일식을 관찰하여 집단을 보호했지만 지금은 기상대가 일기예보를 하고 뉴 호라이즌스호가 소행성을 탐사한다. 종교의 일을 빼앗는다. 대중은 가족과 종교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당신은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근대적 지식인은 대중과 다른 언어를 써야 한다.


    구조론은 과학이다. 구조론적 사유는 에너지로 본다. 에너지는 효율이다. 자본은 효율을 생성한다. 그런데 인간은 행복을 기대한다. 자본의 효율이 인간의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괴리가 발생한다.


    ◎ 자본의 효율과 인간의 행복은 다르다.


    부자라도 옷을 열 벌씩 입고다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더운 날씨에 옷을 열 벌씩 입다가는 열사병으로 죽기 때문이다. 밥을 열 그릇씩 먹는 거지는 있어도 밥을 열 그릇씩 먹는 부자는 없다. 부자라고 부인이나 남편을 열 명씩 두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중혼죄로 처벌받기 때문이다.


    자본의 효율이 인간에게 주는 이익은 작다. 인간은 행복을 바랄 뿐 효율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모순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본으로부터 심리적 이익을 원한다. 자본을 가진 자가 우쭐대며 뽐낸다. 권세를 부린다. 더 많은 의사결정권을 행사한다. 대개 여기에 넘어간다. 자본을 가진 남자가 더 쉽게 여자 파트너를 얻는다. 그 이익은 직접효율의 열배다.


    인간은 개인적 행복감보다 집단 안에서의 권세를 원한다. 의사결정권의 행사를 원한다. 만인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주목하기를 원한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하고 여긴다. 행복한 거지보다 스트레스 받는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


    자본의 효율이 1이라면 자본의 후방효과로 인한 성경쟁효율은 10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쟁이다. 자본의 힘을 전쟁에 투입하면 이익은 100배가 된다. 자본으로 방직기를 돌려 생산한 직물을 인도인에게 판매하는 것보다, 그 이익으로 무기를 생산하여 인도를 정복하는게 더 합리적이다.


    ◎ 자본의 효율 – 영국인이 인도인에게 면직물을 판매한다.
    ◎ 전쟁의 효율 – 자본의 힘으로 인도를 정복하고 그냥 약탈한다.


    영국인이 방직기를 돌리면 마하트마 간디가 물레를 돌린다. 방직기가 물레를 이기지만 만만치 않다. 총으로 쏴버리는게 빠르다. 약탈하면 되는데 미쳤다고 생산성을 따지나? 다들 자본에 목을 매는 이유는 자본이 전쟁에 승리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효율이 아니라 무기다. 총과 대포에 이어 자본이라는 무기로 쏜다. 독일이 그리스를 자본으로 폭격하듯이 말이다.


    집단의 여론은 둘로 갈라진다. 자본의 모순으로 인한 사회의 해체가 주는 피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진보의 입장과, 그러한 모순을 모른척 하고 대신 자본의 이익을 전쟁에 투입하여 전리품을 분배하는게 낫다는 주장을 하는 보수다.


    ◎ 진보 - 자본모순으로 인한 사회붕괴로 이웃나라에 먹히기 전에 분배하자.
    ◎ 보수 - 자본모순으로 인한 사회붕괴 전에 이웃나라를 정복하자.


    자본의 모순은 사회를 약화시킨다. 약한 사회는 이웃나라와의 경쟁에 진다. 그러므로 모순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진보의 입장이다. 그러나 편법이 있다. 모순으로 사회가 약화되기 전에 이웃나라를 정복해서 전리품을 분배하면 내부의 불만이 무마된다. 이는 지속불가능하지만 일시적으로 먹힌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의 일본이라 치자. 자본으로 인해 일본사회가 분열되고 있다. 복지정책으로 일본의 분열을 치유할 것인가 아니면 조선을 침략해서 얼렁뚱땅 무마할 것인가다. 후자가 훨씬 더 의사결정비용이 싸게 먹힌다. 뒷감당은 후손들에게 떠넘기면 된다. 단기적으로는 전쟁이 집단의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다가 장기전에 져서 망한다. 제국주의 몰락공식이다.


    ◎ 집단은 결정하기 쉬운 것을 결정하며 그것은 나쁜 결정이다.


    중요한 점은 두 개의 전략이 존재하며, 인간은 항상 나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집단은 내부적으로 합의하기 쉬운 결정을 내리며, 그것은 보나마나 나쁜 결정이다. 좋은 결정을 그 결정이 옳다는 증명이 어렵지만 나쁜 결정은 그 증명이 옳다는 증명이 쉽다. 물론 그 옳음은 착각이라는 점이 나중 추궁되지만 역시 나중의 일이다. 전쟁초반에는 히틀러의 무리수가 옳은 결정으로 보인다.


    집단이 나쁜 결정을 내리는 것은 권력 자체의 속성에 따른 것이다. 권력은 권력을 원한다. 그것은 반복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지도자는 한 번 결정하기보다 이미 내린 결정을 바꾸기를 좋아한다. 그럴 때 권력의 존재감이 극대화 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좋은 결정을 하면 대중은 그것이 지도자의 결정이 아니라 당연한 흐름으로 여기고 지도자가 결정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지도자가 변덕을 부리고 뒤통수를 쳐서 유승민을 박살내야 ‘아 이것은 박근혜의 결정이야’ 하고 권력의 존재감을 느끼며 청와대에 줄을 대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십상시의 주머니만 채워진다.


    유승민의 발호를 허용하면 차기 대선주자 경쟁을 허용하는 관대한 결정을 내린게 아니라 박근혜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꼭 뒤통수를 쳐야 존재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나쁜 정치인이 승리하고 제국주의 전쟁으로 몰아간다. 옳은 결정은 과정도 옳아야 하므로 집단이 합의하기 어렵다.


    ◎ 의사결정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바통을 넘기며 그 과정에서 집단은 개인의 뒤통수를 치는 절차를 밟는다.


    의사결정권이 개인에서 집단으로 이양되었다는 점을 확인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집단의 결정은 올바른 판단을 하는 누군가를 죽이는 형태로 일어난다. 이는 예수의 죽음, 이차돈의 순교와 같다. 개인이 희생되어야 집단의 존재를 알아챈다.


    개들의 서열싸움과 비슷하다. 개 무리의 지도자가 자신이 지도자임을 알리기 위해서는 어떤 약한 개의 코를 물어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더 골치아프게 된다. 비용을 줄이고 의사결정을 쉽게 하는 꼼수다.


    개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이 지도자임을 알릴 수 없다. 왜? 말을 할줄 모르니까.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유승민을 희생시키는 방법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한다.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전쟁에 이기는 주의다. 자본의 효율로 이웃을 쳐서 빼앗는게 아니라 그냥 전쟁하면 된다. 사회주의가 의사결정비용이 더 싸다. 노동자를 착취하여 군비를 늘리고, 이웃나라를 쳐서 그 이익으로 노동자의 불만을 무마하는건 혁명직전 로마노프 왕조의 1차대전 방법이다.


    선전이 먹혀서 1500만명의 젊은이가 ‘짜르 만세’를 외치며 전쟁에 자원하였다. 그런데 실패다. 왜? 외전보다 내전이 쉽기 때문이다. 멀리 외국까지 가서 전쟁할 필요있나? 그냥 가까운 모스크바를 치면 되잖아.


    말했듯이 집단은 결정하기 쉬운 결정을 결정한다. 외국과의 전쟁에 승리하기는 어렵고 짜르를 타도하기는 쉽다. 그들은 쉬운 결정을 내렸다. 혁명이다. 이성계의 방법이다. 요동을 치기는 어렵고 개성을 치기는 쉽다. 터키를 치기는 어렵고 모스크바를 치기는 쉽다.


    사회주의는 과정을 생략하고 간단히 전쟁에 이기는 방법이다. 어차피 전쟁으로 결론을 낼 요량이라면 곧바로 전쟁하면 된다. 자본으로 무기를 생산하고 이웃나라를 쳐서 내부의 불만을 무마한다는 돌려치기 방정식은 너무 어렵다. 그냥 짜르의 겨울궁전을 치면 된다. 쉽잖아.


    경제는 결국 전쟁이다. 열전을 할 것인가 냉전을 할 것인가다. 어떻든 이기는 결정이 옳은 결정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복지를 하지 않고 전쟁을 하면 진다. 팀워크가 깨졌기 때문이다. 효율을 생성하지 않고 전쟁을 하면 진다. 상대방의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이기는 전쟁이지만 내전에서만 강하다는 약점이 있다. 사회주의는 운명적으로 세계정복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EU의 분열만 봐도 알 수 있다. 외전에서 지고 내전에서 이기는게 사회주의다.


    재벌체제를 하는 이유는 후진국의 경우 재벌체제가 이기기 때문이다. 재벌체제를 마감하는 이유는 선진국의 경우 비효율적인 재벌체제가 지기 때문이다.


    선악논리는 가짜다.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집단생활 본능에 불과하다. 인간의 사회성과 맞는 행동이 선이다. 그러나 사회에는 피아가 있다. 인간은 피아구분을 해서 대칭구조를 만들어야만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주변에 적과 친구를 두어야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가 된다. 의사결정은 대칭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사결정은 선을 따르는게 아니라 대칭원리를 따른다. 정답은 이기는 길이다. 적을 만들면 지고 자기편을 만들면 이긴다. 자본주의는 안과 밖에 동시에 적을 만든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그렇게 빼돌린 이익으로 외국을 침략한다. 자본주의는 지는 시스템이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기는 시스템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가변적이다. 삼성의 무리한 승계는 안팎에 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경쟁업체 입장에서는 불쾌한 소식이다.


    이기는 자가 권력을 갖는다. 권력자가 의사결정을 주도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누가 결정할 것인가다. 이기는 자가 결정한다. 행복이나 쾌락은 개인적이다. 승리는 집단적이다. 개인과 집단이 대결하면 집단이 이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이기는 구조를 만들어 의사결정권을 쥐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두 개의 전선이 있다. 내부의 전선과 외부의 전선이다. 두 전선에서 동시에 이겨야 한다. 사회주의는 내전에서 승리하지만 외전에서 진다. 자본주의는 외전에서 이기지만 내전에서 진다.


    그런데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결국 외전도 내전이 된다. 세계대전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가 진다. 왜? 모든 전쟁은 최종적으로는 지구라는 한 국가 안에서의 내전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답을 낸다. 그러나 과정에서는 자본주의가 답을 낸다.


   DSC01488.JPG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5.07.25 (02:14:20)

감사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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