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는 행복이 없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공리주의가 득세한 이래 인간들이 하나같이 유치해졌다. 공리주의는 결과주의, 기능주의, 실용주의, 성과주의, 쾌락주의다. 소인배가 요행수를 노리고 지갑을 주우려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위험한 사상이다. 공리주의가 먹히는 이유는 말싸움에서 승리하게 하기 때문이다. 말싸움에서 이기는 이유는 증거를 대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오복은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이다.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이 행복이다. 이것은 증명할 수 있다. 나이는 세어보면 안다. 돈은 금고를 열어 보여주면 된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증거를 대려는 자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예수쟁이들은 성경에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진실을 말하자. 성경에는 단지 글자가 있을 뿐이다. 증거라는 것은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산속에 사는 자연인들은 모두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행복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행복팔이 외에 세상을 향해 말을 걸어갈 방법이 없다.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산에서 내려가지 않고 상대방이 먼저 자연인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게 하는 방법은 행복을 과시하여 사회인들이 자연인을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슬픈 기술이다. 눈물 난다. 사실은 방송사의 시청률 올리기 멘트에 불과하다. 구조론은 정확히 공리주의 반대편에 선다. 공리주의가 결과주의라면 구조론은 원인주의다. 사건의 원인은 에너지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최대 에너지다.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다. 에너지는 운동의 원인이다. 운동은 눈에 보이지만 운동의 원인은 알 수 없으므로 에너지라 한다. 어원으로 보면 에너지는 안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내부에서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에너지다. 인간 사회에서는 권력이 에너지다. 권력의 상징물이 있다. 깃발이나 왕홀이다. 갓을 쓰고 수염을 기르는 것도 권력의 표지다. 표지를 달고 다니는 이유는 권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보이지 않으므로 말싸움을 하면 공리주의가 이기지만 진실은 따로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호르몬이다. 호르몬이 작동하는 사회적 조건이 권력이다. 권력은 원인이지 결과가 아니다. 총을 쏘아 사냥감을 잡기보다 총을 갖고 있는게 낫다. 굳이 성과를 낼 필요가 없다. 칼이 칼집에 있을 때 권력이 있다. 행복이든 쾌락이든 성공이든 남에게 전시하여 보이려는 것이다. 권력도 전시하려는 자가 있지만 본질에서 권력은 보이지 않는다. 권력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은밀히 작동한다. 환경에 대해서 상대적인 힘의 우위에 서는게 권력이다. 주는 것이 권력이다. 패스를 하는 자가 패스를 받는 자에 대해 권력이 있다. 주는 자는 받는 자를 선택할 수 있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현찰과 뒤로 감추어진 권력 사이에서 바꿔치기다. 인생의 정답은 언제라도 권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현찰은 그냥 챙기면 되지만 권력은 미리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빵은 그냥 먹으면 되지만 빵을 굽는 기술은 미리 배워둬야 한다. 현찰은 가만있어도 저절로 지갑에 들어온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만있어도 가을에 열매가 맺힌다. 선택할 필요가 없다. 다만 권력은 원재료의 상태로 존재하므로 요리사의 손끝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뛰어난 자는 권력을 선택하고 바보는 현찰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요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보는 권력을 줘도 써먹지를 못한다. 공리주의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단기전에서 틀릴 뿐 장기전에서는 맞다. 논리가 틀렸을 뿐 방향이 맞다. 장기적으로는 결과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역설이 작용하므로 이명박의 결과 지상주의는 위험하다. 그래서 결과가 나왔느냐고? 경제만 성장하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그래서 실제로 경제가 성장했느냐고? 결과만 좋으면 되는데 단기적으로는 결과가 좋지 않다. 경제성장을 외치던 트럼프가 - 3퍼센트 역성장을 했다. 뜻대로 안 된다. 공리주의는 거꾸로 읽어야 한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게 아니고 결과가 좋은 것은 우리가 모르는 그만한 원인이 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결과가 좋다. 그것은 결과만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다. 스탈린이 더 결과를 추구했다. 한때 소련은 1년에 20퍼센트 성장했다. 박정희도 성과를 냈다. 김일성도 성과를 냈다. 그러면 뭐하냐고? 박정희 성과는 전두환이 까먹고, 김일성 성과는 김정일이 까먹는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 낸 성과는 의미가 없다. 합리주의 – 원인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 실력자가 완성시켜야 한다. 하수가 어설프게 합리주의를 주장하다가는 꿩도 매도 다 놓친다. 공리주의 –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 중간과정은 논하지 말자. 장기적으로는 시행착오 끝에 결과가 좋아질 수 있지만 답을 알고 가느니만 못하다. 기업이 성과만 추구하면 대주주가 이익을 빼돌려서 기업의 미래가 사라진다. 당장 주가이익만 추구하여 연구개발과 투자에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청나라 경제가 번영했지만 사라졌다. 세계 GDP 반을 청나라가 가져갔다. 사우디의 명목상 GDP가 높지만 의미 없다. 외국인 노동자가 반이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는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게 맞지만 세부적으로는 매우 위험하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독일이 흥했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정당화될 리는 없다. 세상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으며 그 방향은 한 방향이므로 장기적으로는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게 맞다. 그런데 왜 결과가 좋은지를 생각해야 한다. 답을 모르면 인간은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원인을 추구해야 결과가 좋다. 의도가 좋은데 결과가 나쁠 수도 있고 의도가 나쁜데 결과가 좋을 수도 있다. 인간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똑똑하면 당연히 원인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 공리주의는 말싸움에 이길 목적으로 진지한 사유를 포기한 것이다. 재판은 증거 대는 사람이 이긴다. 스펙만 만들어오면 수시 붙는다. 이건 세상이 실패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결과만 추구하면 결국 결과가 나빠진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건 맞는데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자는 결국 도박하다가 죽는다. 도박꾼들은 말한다. '돈만 따면 될거 아냐?'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세상은 대칭이고 대칭은 축이 있다. 성과를 내는 방법은 대칭의 좌우 중에 하나를 기울이는 것이다. 축이 반대로 움직여서 게임을 무효화 시킨다. 조중동이 축구장을 우로 기울이면 국민이 반대쪽으로 이동하여 바로잡는다. 에너지를 추구하면 행복은 따라오는 것이고 행복을 추구하면 도박을 하다가 죽는다. 결과만 추구하는 현실주의자 중국인이 아편에 중독된 데는 이유가 있다. 권력은 미완성이고 현찰은 완성이다. 천재는 권력을 선택하고 바보는 현찰을 선택한다. 결과주의는 바로 입증되고 원인주의는 바로 입증되지 않는다. 에너지의 방향성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공리주의가 옳을 수 있다. 에너지의 역설 때문에 단기적으로 결과를 추구하면 실제로는 반대로 된다. 공리주의는 성과를 추구하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다. 원인은 내가 차지하고 결과는 후손이 차지하는게 맞다. 인간은 에너지를 추구하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다. 에너지는 증명되지 않으므로 모를 뿐이다. 인간은 권력을 선택하고, 기회를 선택하고, 주도권을 선택하고, 갑을 선택하고, 환경과의 게임에 이겨야 한다. 당장의 빵보다는 미래를 위한 기술을 배워야 한다. 결과만 추구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 상호작용의 증대를 선택해야 한다. 집단에 의지하고 의리를 선택하고 공존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결과가 좋아진다. 인간은 다만 사건을 일으킬 뿐이며 결과는 사건이 진행되어 저절로 도출되는 것이다. 당장 성과를 내서 증명하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
"인간은 다만 사건을 일으킬 뿐이며 결과는 사건이 진행되어 저절로 도출되는 것이다. 당장 성과를 내서 증명하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