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존재하는가? 어째서 세상은 무가 아니고 유인가? 세상은 없다. 적어도 내가 1분 전에 깎은 코털 속에는 없다. 세상은 무수히 없다.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다. 뒷주머니에도 없고 앞주머니에도 없다. 가방에도 없고 지갑에도 없다. 찬장에도 없고 서랍에도 없다. 도처에 없다. 없음은 무한히 많이 없다. 무는 무한이 많다. 유는 그렇지 않다. 유는 하나다. 세상의 없음은 이곳에도 있고 저곳에도 있지만 세상의 있음은 단수다. 세상이 무한히 많을 수 없다. 세상은 하나다. 하나는 연결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연결이다. 세상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은 존재는 연결되는가 하는 물음으로 바꿔진다. 존재는 연결이 아니면 단절이고 단절이면 무고 연결이면 유다. 어떤 것은 연결되므로 유다. 단절될 수 없다. 단절되면 존재가 불성립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연결된 상태다. 모든 존재는 연결된 존재다. 단절은 연결을 반대편에서 본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연결과 단절만 생각할 수 있다. 다른 것은 단절되므로 그것을 생각할 수 없다. 세상은 있을까 없을까? 세상이 없다면 편하다. 왜 존재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있으면 힘들다. 세상이 왜 있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연결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세상이 연결이면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지? 이런 질문은 당혹스럽다. 신의 신은 누구지? 회피기동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훌라후프를 돌려보자. 파동이 훌라후프라면 이중슬릿을 통과한다. 파동이 입자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인과는 대칭에 갇혀 있다.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간다. 톱니의 관점에서는 시간의 인과지만 바퀴의 관점에서는 공간의 대칭이다. 시간으로 보면 신의 신은 누구인가, 빅뱅 이전은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되지만 공간으로 보면 존재하는 자는 인식하는 자와 대칭이다. 신은 거울을 보고 있다.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는 마주보고 있다. 근원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세상은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이 세상을 알 수 있을까?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세상은 어떤 기술을 사용해서 존재에 성공했을까? 세상의 존재하기 기술을 간파한다면 인간이 그 기술을 카피하여 써먹지 못할 이유도 없다. 세상이 스스로 존재하는 기술과 인간이 세상을 알아내는 기술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연결이다. 연결은 시간의 인과다. 공간의 인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칭이다. 대칭이 구조다. 세상이 널리 연결되는 것은 대칭구조라는 연결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근원의 응답이다. 다른 잡다한 견해는 필요없다. 이런 주의 저런 주의 무슨 주의 필요없다. 엎어 치든 메치든 상관없다. 본질이 되는 하나로 승부 보는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 말이다. 그것은 연결과 단절이다. 대칭과 인과다. 질서와 무질서가 된다. 유와 무가 된다. 태초에 대칭의 연결이 있었다. 그것은 빅뱅 이전부터의 소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