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하는데 패거리를 몰고 와서 '상대가 아무리 잘났고 예쁘고 돈 많고 힘 좋고 성실해도 넘어가지 않는 나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겠어.' 이러면 곤란하다. 권력게임이다. 자기네 패거리를 결속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 대화는 불발이다. 다들 이런 식의 낚시를 하고 있다. 지구에 인간이 70억 명 있다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 하나가 없다. 다들 철벽을 치고 있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게 말이다. 이러지 말자. 터놓고 대화하자. 이겨먹으려고 머리 굴리지 말자. 진실을 말하자. 신은 플로지스톤과 같다. 비물질적인 원리이자 추상적 개념이다. 플로지스톤은 산화반응과 환원반응의 대칭성이다.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은 없지만 산화와 환원의 대칭성은 있다. 우주는 대칭성에 의해 작동하지만 실제로는 일의적으로 작동한다. 빛과 어둠이 대칭되지만 실제로는 빛만 존재한다. 어둠은 없다. 독립적인 존재자가 아니다. 엄밀하게는 빛의 상대적인 부재상태라고 말해야 한다. 어둠의 세력이 아니라 빛이 상대적으로 부재한 세력이라고 말해야 한다. 문장이 길어진다. 표현에 애를 먹는다. 표현이 곤란할 때는 플로지스톤 처방이 먹힌다. 원래 신은 조상을 중심으로 한 부족의 결속 개념이었다. 인간의 사회성을 반영한 개념이다. 신은 부족의 결속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유태인은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추상개념을 추상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게 낫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들이 현명했다. 신의 이름을 부르면 신이 현실권력의 상징표지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자신을 신으로 모시라고 그리스인들에게 명령했다. '그가 신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저 그를 신이라고 불러주는 수밖에.' 스파르타 사람 다미스의 푸념이다. 카이사르도 신격화되었다. 유태인이 신을 추상에 머무르게 한 이유는 신격 찬탈자들 때문이다. 인간은 쉽게 눈치챈다. 신이 권력의 공유 개념이라는 사실을. 신은 원래 부족의 결속이고 부족이 결속하면 권력이 생긴다. 이름을 부르면 권력은 우상화된다. 추상권력이 실질권력으로 둔갑한다. 그 경우 권력이 독점된다. 신을 숭배한다는 것은 권력자를 숭배한다는 말이다. 권력은 실제로 존재하여 있다. 그러므로 종교인의 신앙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권력을 직접 겪어봤으니까. 인간의 본능이 권력에 반응하니까. 그들에게 신은 호르몬이다. 호르몬이 나와주는 인간의 신념은 꺾을 수가 없지. 호르몬이 나와주는 자가 권력을 잡는 거야. 이상하게 변질된 게임이다. 구조론에서 신은 우주의 일의성을 설명하는 일종의 플로지스톤이다. 암흑에너지나 암흑물질도 일종의 플로지스톤이다.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도 플로지스톤이다. 종교인의 신이 부족의 결속을 나타낸다면 우주의 결속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가? 우주의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은? 지구에 처음 하나의 세포가 탄생한 이후 생명은 죽은 적이 없다. 면면히 이어져온 생명의 불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 진화라는 형태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종은 인간의 편의적인 구분에 불과하다. 과학적인 타당성은 전혀 없다. 종이 없으므로 창조도 없다. 사건의 관점으로 보면 지구 안의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신은 만유의 연결을 설명하는데 소용되는 일종의 플로지스톤이다. 플로지스톤은 물질이 아니다. 신은 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하드웨어가 아니다. 신은 사람과 같은 인격체가 아니다. 신의 인격을 느끼는 것은 당신의 인격이 신이라는 거울에 반사된 것을 느끼는 것이다. 신에게는 당신의 모습이 얼마간 투영되어 있다. 무신론과 종교인의 쟁투는 비뚤어진 권력게임이다. 우리는 진리에 결속되는가 아니면 이미 결속된 무리에다 진리라는 표지를 붙이는가? 우리는 진리에 결속되어 있어야 하지만 진리를 모른다는게 함정이다. 잘 모르는 것에 결속된다면 위험하다. 공산주의가 그러하다. 모르면서 아무나 따라갔더니 유괴범이더라. 잘 모를 때는 우주상수를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신을 본 적이 없지만 신의 포지션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개별자 포지션 맞은편에 신의 통합자 포지션이 있다. 암흑물질을 본 적이 없지만 암흑물질 포지션이 있다. 물질을 끌어모으는 중력 맞은편에 물질을 팽창시키는 우주상수가 있다. 인격의 맞은편에 신격이 있다. 만유의 소실점이 있다. 포지션이 있으면 있는 거다. 흩어져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각자 위치에서 구심점을 찾아내면 거기에 신이 있다. 명백히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게 있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하면 잘 들어맞는다. 신이 있다고 간주하고 예측하면 잘 들어맞는다. 에너지의 일원성 때문이다. 세상은 확률이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확률을 추적하지만 헛되다. 에너지는 계를 형성하고 뭉뚱그려서 하나의 게임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상호과정 중에 다 용해된다. 개별적인 승리와 패배의 기록은 지워지고 소속팀이 다 결정한다. 에너지의 결정은 언제나 수렴 하나뿐이다. 자연은 확산이고 인간은 수렴이다. 수렴방향을 계속 추적하면 끝단에 신의 자리가 있다. 인간은 중구난방으로 움직이지만 문명은 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에너지의 수렴원리를 반영하는 신의 완전성 개념을 도입하면 당신이 앞날을 예측할 때 적중률은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정상에서 보면 전모가 보인다. 신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때 보여야 할 것이 보인다. 인간들은 스스로 한계를 긋기 때문에 껍질을 깨지 못한다. 인간의 길잡이가 되는 욕망과 본능을 극복하고 신의 사랑으로 봐야 진정으로 보일 것이 보인다.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알 수가 없다. |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향하도록
우리를 지지支持한다
신은 섬세하게 관찰을 하고
능동적으로 지켜보고 살아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