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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005 vote 0 2013.01.11 (21:18:25)

 

    몰아서 한 넘에게 독박을 씌우는게 깨달음이다. 전체를 한 줄에 꿰어 통짜덩어리로 상대해준다. 자연계의 모든 운동은 전자기력으로 설명된다. 수학의 모든 영역은 집합론으로 설명된다. 구조론의 상호작용으로 모두 설명한다.

 

    집합론을 창시한 칸토어는 반대파에게 괴롭힘을 당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필자가 구조론 전파에 애를 먹듯이 칸토어도 고생 깨나 했다. 남보다 먼저 알면 괴롭다. 이때 사실이 아니라 언어의 문제로 고통받는다.

 

    칸토어는 수(數)라는 단어의 개념을 바꾸었다. 상식을 뒤집었다. 이는 룰에 관한 문제이므로 국회에서 입법을 하듯이 학자들이 회의를 해서 결정해야 한다. 혼자 독단적으로 국어사전을 바꾸려들면 당연히 말썽이 나는 것이다.

 

    멀쩡한 이태리가구를 필자가 ‘가구가 아니다’고 선언하는 격이다. 어쨌든 인상주의 화가들은 낡은 그림을 밀어내서 그것을 더 이상 그림이 아니게 만들어 버렸다. 사회의 룰이 바뀌었다. 구조론도 관점을 바꾸고 룰을 바꾼다.

 

    아인슈타인도 그렇다.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관측결과를 그런 식으로 표현해도 되느냐는 언어의 문제에 부딪힌다. 시공간의 절대성을 전제로 하는 기존체계 안에서 설명방법을 찾는 노력을 왜 않느냐다.

 

    “야임마! 기존의 뉴턴체계 안에서도 얼마든지 설명할 방법이 있을건데 노력해보지도 않고 왜 그래? 깽판놓자는 거야? 네가 물리학자 맞아?”

 

    언어를 바꾸는 문제는 만인이 합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만인이 지켜보는 쇼를 베풀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일식쇼로 언론을 타서 그 문제를 해소했다. 전 세계인이 쇼를 지켜봤기 때문에 저절로 언어의 문제가 해소되었다.

 

    김기덕 감독은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그 문제를 돌파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거창한 이벤트를 벌여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시킨 것이다. 그러나 칸토어는 끝까지 핍박받았다. 아래는 위키백과 발췌인용이다.

 

    Georg Cantor.jpg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는 수학 기초론의 바탕이 된 집합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집합간의 일대일 대응의 중요성을 확립하고 무한과 정렬된 집합을 정의하였으며, 자연수보다 실수가 "훨씬 많음"을 증명하였다.

 

    초한수에 관한 칸토어의 이론이 일상적인 직관과 너무나 상치되는 충격적인 개념이어서 크로네커, 푸앵카레 등 동시대 수학자들은 그의 이론을 거부하였다. (중략) 1897년까지 그는 기초 집합론에서 몇 가지 역설을 발견했다. 말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와 겹쳐 가난하고 굶주리며 살다가, 결국 독일의 할레에서 정신병에 걸린 채 사망하였다.

 

    칸토어의 혁신적인 수학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크로네커 등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현대의 대다수 수학자들은 그의 초한수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고서 그 위에 수학을 확립하였으며, 이는 중요한 수학적 방법론의 패러다임의 변화로 여겨지기도 한다.

 

   
칸토어의 ‘일대일 대응’ 개념은 구조론과 유사하다. 구조론은 크기를 배제한다. 크기를 배제한다는 것은 숫자가 0,1,2,3...의 자연수임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구조론에 자연수는 없다. 자연수는 자의 눈금이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눈금 지우고 시작한다. 눈금 지우면? 콤파스로 돌아간다. 자는 콤파스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이다. 자의 수학이냐 콤파스의 수학이냐? 역시 언어의 문제다. 자의 수학과 콤파스의 수학은 자베르와 장발장처럼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하나는 반드시 꺾여야 한다.

 

    ◎ 자의 수학 - ●는 1이다.
    ◎ 콤파스의 수학 - ●와 ●의 사이에서 연결하는 링크가 1이다.

 

    구조론은 콤파스를 쓰므로 눈금이 없다. 무엇인가? 구조론의 점, 선, 각, 입자, 밀도는 크기가 없다. 선(線)이라면 ‘긴 선’을 생각하지만 구조론의 선은 길이가 없다. 면(面)이라면 넓은 면을 생각하지만 구조론의 각(角)은 너비가 없다. 구조론의 입체는 체적이 없다. 콤파스는 원래 그게 없다.

 

    무엇인가? 칸토어의 일대일 대응이다. 구조론은 마이너스이므로 밀도로부터 시작한다. 밀도>입체>각>선>점의 순서다. 그러나 밀도는 집합이고 숫자는 원소이므로 원소부터 시작하면 점에서 시작된다.

 

    점은 크기가 없다. 우주의 허공에 한 점을 찍어보자. 거기다가 하나의 점을 추가하자. 점 둘이 잇닿으면 선이 된다. ●●다. 그러나 구조론의 점과 선은 크기가 없으므로 ●●는 인정되지 않는다. 무한히 작은 점을 찍어야 한다.

 

    크기가 있는 점 ●에다 점 ●를 더하면 선이 되는게 아니라 두 점이 된다. 점+점=선이라는 생각은 이미 크기를 부여한 관념이다. 자가 아니라 콤파스여야 한다. 크기를 배제하라. 그렇다면 선은 불성립이다. 점+점=두 점이다.

 

    점에서 선으로 비약하려면? 구조론의 1은 A나 B가 아니라 A와 B 사이에 연결하는 링크다. 당구공 둘이 충돌한다면 그 접점은 하나의 점이며 그 점은 크기가 없다. 두 당구공 사이에 하나의 링크가 있으며 1이다.

 

    ○○다. 여러분은 두 당구공들 사이에 하나의 점이 성립함을 알수 있다. 여기에 하나의 점을 추가해 보자. 가능한가? ○A○B○로 하면 점 A와 점B가 생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점들이다. 선이 아니라 점 2인 것이다. 실패다.

 

    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당구공 중의 하나를 굴려야 한다. 굴리면 당구공 표면에 선이 그어진다. 그 굴리는 길이가 0이면 이렇게 된다.

 

    12121.JPG

 

    평면 상에 그림으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당구공의 크기가 0이라고 볼 때 최대 네 개의 포지션이 이런 식으로 집적된다. 각 0, 1, 2, 3차원을 이룬다. 여기에 운동 혹은 시간을 추가하면 4차원 밀도가 탄생한다.

 

    자연에서 하나의 지점에 인접할 수 있는 포지션의 최대 숫자는 자기를 포함해서 5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단 다섯 번째는 하나가 들어올 때 동시에 하나가 나가야만 한다. 교대순간에 5를 성립시킬 뿐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다.

 

    가속도처럼 에너지가 계속 들어올 때는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으면서도 유지되는 효과를 낸다. 그것이 4차원의 세계다. 4차원은 가속운동을 할 때만 있다. 에너지의 투입없이, 어떤 운동이나 변화의 새로운 촉발이 없이 그 상태가 유지되는 관성계 안에서는 3차원 밖에 없다.

 

    폭발이나 변화, 운동의 촉발은 4차원을 이룬다. 지속적인 폭발은 4차원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4차원의 세계를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계에 밀도가 걸려 운동하고 있는, 작동하고 있는 것이 4차원이다.

 

    4차원 밀도는 3차원 공간에 에너지(시간)가 투입되어 질량을 형성한 것이며 3차원은 거기서 에너지를 뺀 멈춘 공간이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4차원이다. 다만 관측영역은 대개 3차원이다.

 

    손으로 컵을 쥔다면 어떨까? 손의 에너지는 컵뿐만 아니라 컵을 받치고 있는 탁자에도 전달된다. 중력에 의한 마찰력 때문에 컵과 컵이 아닌 부분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실상 컵이라는 것도 전자기력에 의해 형성된다.

 

    이 부분을 엄밀히 하려면 컵에서 컵 아닌 것을 완벽하게 배제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배제하다 보면 컵은 사라져버린다. 이를 막으려면 컵의 정의는 컵이 아니라 컵을 쥐려는 사람에 의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사람과 컵 사이의 일대일 대응이 칸토어의 1인 것이다. 그렇다면 컵이 아닌 사람을 보아야 컵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어디까지 사람인가? 일단 사람의 손이 컵을 잡지만 실제로는 뇌가 컵을 잡는 것이다. 손은 도구에 불과하다.

 

    사람은 칼손잡이를 잡지만 실제로는 칼날을 쓴다. 이렇듯 잡다한 것을 완벽하게 배제하면 뇌 안의 한 점만 남는다. 뇌 안의 한 점에 대응하는 컵의 한 점은 무게중심이다. 뇌 안의 한 점과 컵의 무게중심의 일대일 대응이 1이다.

 

    그 뇌세포 하나와 컵의 무게중심 사이의 모든 것은 소거되어야 한다. 이때 그 중간을 완벽하게 소거했을 때 최종으로 남는 것은? 입체다. 즉 입체란 어떤 둘의 일대일 정면대응인 것이다.

 

    우리는 입체를 덩어리라고 생각하지만 구조론적 입체는 어떤 둘의 충돌순간의 전자기력의 상호작용 모습이다. 우주의 한 지점에서 어떤 둘을 충돌시켰을 때 광속을 넘지 못하면서 투입된 에너지가 질량으로 변하는 모습이 4차원이다. 거기서 에너지를 배제한 모습이 3차원이다. 둘의 충돌이 아니라 일방의 충돌은 각이다. 그 충돌하는 진행은 선이다. 그 충돌하는 포지션은 점이다.

 

    입체는 일대일 대응이며 각, 선, 점 일대일 대응에도 미치지 못한다. 각은 대응하러 가다가 꺾이는 것이며, 선은 대응하려고 연결하는 것이며, 점은 대응하려고 자기 포지션을 찾는 것이다.

 

    점으로 포지션을 정하고, 선으로 잇고, 각으로 꺾어서, 입체로 대응하고, 에너지를 전달하면 밀도이며, 즉 공간의 차원이란 A와 B사이에 어떻게 에너지를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 핵심은 일대일 대응이고 구조론에서는 이를 상호작용이라 한다. 구조론은 상호작용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 역시 언어의 문제다. 어떤 기자가 신문기사를 다음과 같이 썼다고 치자.

 

    “윤석민 선수 직구를 던졌습니다. 박병호 선수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윤석민 선수가 던진 공의 전자기력이 박병호 선수가 휘두른 방망이의 전자기력과 마주쳐서 서로 밀어내는 반발력을 일으켜서 홈런이 되었습니다.”

 

    그 기자는 짤렸다. 언어의 문제다. 언어를 받아들일 배짱이 있는가이다.

 

    ◎ 의미를 버리고 맥락을 취할 배짱이 있는가?
    ◎ 이태리 가구를 버리고 핀란드 가구를 취할 배짱이 있는가?
    ◎ 아카데미즘을 버리고 인상주의를 취할 배짱이 있는가?
    ◎ 극화를 버리고 병맛을 취할 배짱이 있는가?
    ◎ 텍스트를 버리고 이미지를 취할 배짱이 있는가?
    ◎ 뽕짝을 버리고 K팝을 취할 배짱이 있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그 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라 그 영화의 느낌과 같은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일상의 섬뜩한 체험을 이야기할만한 충분한 체험을 그대는 수집해 두고 있는가? 인생을 180도로 트는 문제이다. 그것을 틀지 못해서 크로네커는 칸토어를 죽였다.

 

   

[레벨:1]까치산

2013.01.12 (12:03:24)

칸토어가 집합론을 만들게 된 이유중에 하나는 무한집합을 다루기 위해서였다.여기서 무한이란 끝이 정해져있지 않다는 뜻이다.

각설하고 집합론은 칸토어 스스로에게도 역설(모든 집합들의 집합은 없다)이 드러났고,그 후 러셀의 패러독스(아무리 논리적인 과정으로 결론을 유도해도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 의해서도 거의 존재위기의 공격을 받는다.결국 집합론자들은 공리들에 몇가지 제한을 가함으로써 집합론을 구하고 현대수학의 중요한 기반 하나를 쌓았다.

 

완전하지 않지만(그렇게 주장하면 역설이 발생하니까) 완전하다고 양해?를 구한거다.왜? 그 정도로해서 얻는 이득이 엄청나니까.(괴델은 수론에서도 참 또는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고 증명했다)

 

과학도 수학도 완전하지 않다.극한으로 몰고가면 역설이고 모른다이다.(그렇다고 과학-수학 자체를 부정하는건 아니다) 단,처음의 체면불구-염치없지만 양해를 구함의 상황(공리를 받아주세요)을 잊지말고 너무 잘난척 하지 말라는 거다.

 

완전-신은 없다

다만 인간의 완전에의 욕망이 있을 뿐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2 (12:07:29)

완전은 있소.

단지 완전의 개념을 다르게 쓸 뿐.

완전이 무엇이냐를 완전히 정의하지 못한 것이오.

 

전지전능은 가능하오.

문제는 전지전능의 모순이오.

전능하다면 전능을 파괴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전능은 전능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오.

결국 언어의 문제를 해결못한 잘못이오.

 

@ "신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 "그렇다면 신은 신을 죽일 수도 있는가? "

@ "그렇다."

* "누구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신이 완전한 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

@ "닥쳐!"

 

이는 언어의 불완전성을 의미할 뿐

신의 불완전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오.

완전의 개념은 에너지 순환의 완전을 말하며

이때 반드시 일방향성을 내포해야 하오.

되돌아오면 규칙 위반이오.

생각을 끝까지 안 해보고 대충 얼버무리면 곤란하오.

[레벨:1]까치산

2013.01.12 (12:23:29)

언어의 궁극적문제를 굳이 거론하자면 완전의 개념이 문제가 아니라...'있다'의 개념이 다르다고 해야겠소. 님의 있다와 나의 있다가 다르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완전이 있다고하는 사람에겐 완전이 없고 완전이 없다고하는 사람에겐 완전이 있소.

구조론식으로 얘기하면 극한으로 밀어갔을 때 완전이라는 상부구조의 대문에는 자물쇠가 있소.이 때 '없다-모르겠다'라는 열쇠를 들이밀면 그 문은 열리지만 '있다-깨달았다'라는 열쇠를 들이밀면 문은 열리지않소.

 

그래서 완전을 얘기하는 님이나 구조론에는 역설적으로 완전도 없고 신도 없소.그저 잘 짜여진 슈퍼컴퓨터가 있을 뿐이오.아주 기능좋은...하지만 결코 인간의 마음도 신의 마음도 읽을 수 없는...

하기사 구조론은 마음에는 관심없으니까 필요도 없을꺼요.하지만 그 마음에서 에너지가 나온다는걸...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2 (12:26:19)

그래서 구조론에서는

있다를 쓰지 않고 이다를 쓰오.

있다를 주장하면 일단 제쳐두는 것이오.

당신은 완전이 있다/없다를 쓰기 때문에 일단 아웃이오.

조금 더 진도를 나가면 자발적 강퇴가 되오.

 

[레벨:1]까치산

2013.01.12 (12:34:30)

당신은 당신의 상부구조에서 언뜻 진짜배기 에너지가 오면 참지를 못하오.

왜냐면 스스로의 취약고리가 간지러우니까..

하기사 아주 훌륭한 슈퍼컴퓨터에게 넌 그래봤자 '깡통'이야하고 알려주면 무섭겠죠.스스론 엄청 똑똑하다고 믿으니까.

 

구조론은 상부구조에서 에너지 유입이 안되는 닫힌계라서 님의 자발적-제한적 에너지가 다하면 사라질 것이오.

그때까지 열심히...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2 (12:36:36)

그래봤자 아웃.

당신한텐 배울게 없으니까.

[레벨:1]까치산

2013.01.12 (12:48:12)

딩동댕!정답이요  배울게 없다는 거

사람-사람관계에서 배울려고 상호작용하는 거 아니요

이 사이트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뭐 배우는거 아니요.님도 혹 가르친다는 생각이 있으신건 아니겠죠.

다만 님이 만든 곳이니까 손님의 예를 갖추는 거겠죠.

 

나와의 상호작용이 싫으면 아웃하시오  난 좋은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2 (12:49:34)

배울게 없으니까 장난이 시작되는거.

그니까 자발적으로 꺼져주시오.

강퇴 시키는거 잼없소.

 

님이야 여기서 배울 일이 없지만 남들은 다르잖소.

근데 경험에 따르면 이 정도 가면 거의 100퍼센트 결국 강퇴됨.

 

나라면 오기로라도 강퇴를 피해볼텐데.

약간만 호흡조절을 하면 나중 조금 더 골려먹을 기회가 있을텐데 말이여.

프로필 이미지 [레벨:28]오리

2013.01.12 (15:48:15)

까치산님은 예전에 있던 두분과 필체가 같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사발

2013.01.12 (16:01:53)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12 (16:13:21)

저도 왕년에 남의 사이트 가서

주인장 골려먹은 일이 많기 때문에 이런거 이해는 되오.

 

근데 올해부터는 프로젝트를 여럿 띄우기로 결정했으므로

우리가 무엇을 왜 하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분명하게 말하기로 했소.

 

강퇴야 흔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해져서 돌아오면 좋고

아니면 우주의 커다란 확률 속에 묻히는 거.

 

왕년에 십년간 대한민국에서 자발적 강퇴로 있었는데 해볼만한 경험이오.  

요즘은 평균 기대수명이 최소 10년은 더 길어졌으니까

 

20대 젊은이라면 한 십년쯤 해외에서 놀다가 오는게 낫지 싶소.

20대에 직장잡고 돈벌겠다는건 멍청한 생각이 아닐까요?

 

옛날에는 한 살이라도 어릴때 취학하는게 낫다고 해서

나도 한 살 먼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어리석은 결정이오.

 

한 살이라도 늦게 들어가는게 더 유리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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