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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474 vote 0 2011.04.15 (18:10:21)

 

 

존재와 구조


겁내지 마라. 세상은 넓지만 하나로 집약할 수 있다. 바닷가의 모래알이 제 아무리 많아도 하나의 바위에서 떨어져나온 부스러기들에 지나지 않는 것, 우주가 아무리 넓다 해도 숫자로는 자연수 1 하나에 의해 모두 대표된다. 나머지는 1의 반복에 불과한 것, 1의 정확한 포지션만 알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만유를 집약하는 하나는 ‘대칭성’이다. 대칭성은 마주보고 서는 것이다. 무엇과 무엇이 마주보는가? 남과 여가 마주본다. 하늘과 땅이 마주본다. 원인과 결과가 마주본다. 시작과 끝이 마주본다. 작용과 반작용이 마주본다. 산과 강이 마주본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마주본다. 머리와 꼬리처럼 서로 마주보고 의지한다.


알아야 한다. 모든 존재는 서로 마주보고 짝을 지음으로써 포지션을 나눠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칼날과 손잡이처럼, 그릇과 음식처럼, 활과 화살처럼, 안경알과 안경테처럼, 찐빵과 팥소처럼, 동전의 양면처럼, 에너지가 들고 나는 양측이 짝지어 포지션을 나눠가짐으로써 비로소 존재 그 자체는 현실의 시공간 위에 구축될 수 있 것이다.


존재는 그냥 우두커니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서로 짝을 지어 세팅되어 있고, 제 둥지를 찾아 자리잡고 있고, 당당하게 폼잡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적하여 존재의 주소지를 알 수 있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고유한 자기 포지션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상에서 외력의 작용에 대항하고, 시간상에서 자기를 보존하여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대항한다’는 것이며, 그 항거하는 대상과 맞선다는 것이다.


하나가 일어설 때 다른 하나도 일어선다. 그것이 맞서는 것이다. 생이 일어설때 사도 일어선다. 앞이 일어설 때 뒤도 일어선다. 시간이 일어설 때 공간도 일어선다. 여름이 일어설 때 겨울도 일어선다. 낮이 일어설 때 밤도 일어선다. 입력이 일어설때 출력도 일어선다. 여당이 일어날때 야당도 일어나듯이, 공격이 달려들때 수비도 덤벼들듯이 어떤 하나가 일어날 때 다른 하나도 맞일어난다. 두 사람이 백짓장을 맞들어야 하듯이 둘이 함께 일어나 서로 포지션을 나눠가지는 것이 구조의 대칭성이다.


존재는 시스템이다. system은 쌍(sy-)으로 일어선다(stand)는 뜻이다. 존재는 서로를 의지하여 지탱한 채로 일어선 시스템 안에서 고유한 자기 포지션을 가진다. 포지션은 외부에서 에너지가 투입되어 그 에너지 진행의 방향을 결정하는 1 단위로 기능한다. 에너지 작용의 원인과 결과로, 사건이 진행되는 시작과 끝으로 역할을 나누어 서로 마주보고 일어나서 존재를 이룬다.


에너지 대신 인간의 사유가 작동하는 추상개념이라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관념 역시 사유체계 안에서 의사결정의 1단위로 포지션은 기능한다. 전기의 회로가 전류의 이동경로를 지정하듯이, 하나의 존재는 마주보고 서로 버티어 일어선 대칭구조 안에서 하나의 에너지 진행경로 결정단위, 또는 추상적 사유의 의사결정단위, 혹은 현장에서 사건의 진행방향 결정단위가 된다.


인간이 우주의 존재를 바라보는 첫번째 개념은 카오스와 코스모스, 곧 질서와 무질서 개념이다. 질서(秩序)는 차례 질, 차례 서다. 질서는 마주보고 서로를 지탱한 채로 일어서 있는 둘 사이의 일어나는 순서다. 원인과 결과의 일어섬에는 원인이 앞서고, 시작과 끝의 일어섬에는 시작이 앞서고, 생과 사의 일어섬에는 생이 앞선다. 언제라도 탄생이 먼저고 죽음은 나중이다. 항상 하나가 먼저 일어나고 다른 하나는 뒤따라 일어난다. 그 반대의 경우는 결단코 없다.


존재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는 것은 에너지다. 생은 그 에너지가 있고 죽음은 그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생은 그 에너지로 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죽음은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빛이 먼저 일어나고 그림자가 뒤따라 일어난다. 그림자가 빛을 앞지르는 경우는 결단코 없다. 이러한 존재의 비가역성이야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다.


◎ 존재는 마주보기다. 곧 대칭성이다. (☞ ☜)
◎ 마주보고 서로 지탱하여 일어서는 데서 각자의 포지션이 성립한다.
◎ 포지션을 지정하는 에너지 전달경로가 우주의 질서다.


존재가 일어선 대칭에 에너지를 태울 때 방향이 꺾이며 구조의 복잡성이 성립한다. 그러면서 조직은 진보한다. 남자와 여자가 마주본 가운데 방향이 꺾여 새로 아기가 태어난다. 하늘과 땅이 마주선 가운데 방향이 꺾여 인류의 문명이 탄생한다. 대칭성을 가진 존재가 외력의 작용을 받아 중간에 에너지의 진행방향이 꺾이므로 빅뱅이 일어나 우주는 이렇듯 크고 복잡해진 것이다.


마주보고 일어선 대칭의 꺾임이 구조다. 구조의 꺾임에 의해 인류는 번성하게 되었고, 생물은 진화하게 되었고, 자본은 증식하게 되었고, 조직은 발달하게 되었고, 국가는 탄생하게 되었고, 예술은 전파하게 되었고, 드라마는 흥행하게 되었고, 패션은 유행하게 되었고, 우주는 빅뱅을 일으켜 팽창하게 되었다. 세상의 그 모든 일이 거기서 일어났고 널리 망라하게 되었다.


존재가 단지 자기 포지션을 고수할 뿐이라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는 팽창하고, 자연은 펼쳐지고, 생명은 진화하고, 문명은 진보한다. 존재는 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벌떡 일어나 스스로 전개하여 사방으로 넘쳐난다. 존재의 대칭이 에너지를 태울 때 구조의 방향이 꺾여 옆으로 부단히 새 가지를 쳐 나가기 때문이다. 뿌리에서 방향을 틀어 줄기가 뻗고, 줄기에서 방향을 틀어 가지가 나고, 가지에서 방향을 틀어 잎과 열매가 돋으니 풍성해졌다.


복잡한 회로는 무수한 가지의 꺾임에 의해 성립된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한 회로라도 전원의 입력과 출력은 그대로다. 중간에서 방향이 꺾여도 결국 음식은 입으로 들어와 항문으로 나간다. 인류가 아무리 진보하고 발전해도 근원의 마주보기는 조금도 다치지 않는다. 문명이 팽창해도 하늘과 땅은 그대로다. 그것이 소통하여 에너지를 증폭하게 하는 존재의 완전성이다.


우리는 1+1=2가 되는 산술급수적 성장을 알고 있을 뿐이지만 생명은 종이 울려 그 소리를 널리 퍼뜨리듯이, 촛불이 한 순간에 어두운 방안을 환 하게 밝히듯이, 혹은 민들레 홀씨가 퍼져서 사방에서 돋아나게 하듯이, 혹은 천 마리의 개가 일제히 짖어대듯이, 한꺼번에 전파하고 공명하여 순식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성질이 있다. 조금씩 발전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여름날 비온 후의 풀밭처럼 갑자기 무성해져 버린다. 정보를 증폭하는 완전성 때문이다.


문득 천장을 뚫고 솟구친다. 급격히 도약한다. 거대한 빅뱅이 일어난다. 혁명적인 성취가 한 순간에 얻어진다. 단위에서 단위로 건너뛴다. 10등을 하던 소년이 열심히 노력하여 9등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1학년이던 학생이 하룻밤 사이에 2학년으로 올라선다.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지름길을 낸다.


자연은 늘 그러하다. 어리석은 인간은 경쟁하여 동료를 제치고 약간이나마 등수를 올려보려고 기를 쓰지만 자연은 여럿이 협력하여 최고의 팀을 구성함으로써 한 순간에 다른 차원으로 도약해 버린다. 하나가 일어설 때 다른 하나도 일어서는 맞일어섬의 법칙에 의하여 그러하다. 각자 한 가지씩 장점을 가진 사람들이 최고의 팀을 결성함으로써 서로의 지혜를 합쳐 에너지의 입력에서 출력까지 직결로 소통하게 하는 구조의 완전성에 도달함으로써 종이 소리를 내듯이 한 순간에 압도해 버리는 것이다.


◎ 존재 : (☞ ☜) 존재는 짝을 지어 서로 지탱하며 마주보고 함께 일어나 대칭을 이룸으로써 고유한 자기 포지션을 얻는다.


◎ 구조 : ( ┬ ) 외력이 투입되어 대칭이 에너지를 태울 때 에너지의 진행방향이 꺾여 옆으로 새 가지를 치는 형태로 회로가 만들어지며 조직은 발전하고 고도화 되고 복잡해진다.


◎ 완전성 : (☞┬☜) 구조가 고도화 되어도 계 내부의 회로가 복잡해질 뿐 입력과 출력이라는 근원의 대칭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내부의 회로연결이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을 직결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갈 때, 팀이 결성되어 단위에서 단위로 건너뛰는 정보의 증폭이 일어나며 더 높은 차원으로 비약한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결국 진보와 성장과 발전의 문제다. 존재가 제 자리에 가만이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조금도 걱정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문명은 발전하고, 역사는 진보하고, 자본은 팽창하고, 조직은 성장하고, 생물은 진화하고, 개인은 성취하고 인류는 사명을 수행한다. 그러면서 서로 충돌한다. 구조가 전개하여 하나의 포지션이 다른 포지션을 친다.


개인은 인격을 성장시키며 자신의 포지션을 확대하여 다른 사람이 차지한 포지션을 치고, 회사는 자본을 성장시키며 시장을 확대하여 다른 기업의 시장을 친다. 국가는 인구와 부를 증가시켜 그 힘으로 이웃나라를 친다. 포지션으로 포지션을 쳐서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포지션의 침범문제, 곧 구조의 모순을 해소하는 열쇠가 자연의 완전성이다. 어떠한 구조의 성장도 단위 안에서 작동할 뿐 근원의 대칭성을 다치지 않는 것이 완전성이다. 자연이 풍요로우면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것은 완전성 때문이다. 2등이 1등의 자리를 뺏듯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며 치고올라가지 않고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올라서듯이 차원을 비약할 때 모순과 갈등은 없다.


자신은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되지만 누구도 아래로 끌어내리지 않는다. 노력하여 경쟁하는 방법이 아니라 각자의 장점을 조합하여 최고의 팀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실제로 인류의 주요한 성취들은 모두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해 얻어졌다. 학회라든가 예술가 집단이라든가 정당의 결성원리, 주식회사의 작동원리에도 이러한 팀의 원리, 비약의 원리가 반영되어 있다.


최고의 팀을 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팀의 결성을 위한 방향제시가 되는 철학이 필요하고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팀의 결성을 위하여 서로에게 다가가도록 돕는 유행과 예술과 오락과 스포츠와 휴식의 문화가 필요하다. 수준있게 잘 노는 사람이 인간을 잘 이해하여 최고의 팀을 결성할 수 있다.


독립적 존재의 단위가 되는 대칭성, 그리고 그 존재를 성장시키는 구조, 그리고 팀을 결성함으로써 한 차원 더 높이 도약하게 하는 완전성, 이 세 가지 개념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 구조론 이해의 요체이다. 세상 모든 문제는 구조의 성장이 만들고 세상 모든 답은 구조의 완전성이 제시한다.


문제와 답은 맞서서 대칭을 이룬다. 그러므로 문제가 일어설 때 답도 일어선다. 처음 문제가 제시되었을 때 답은 이미 제시되었다. 존재의 대칭이 에너지를 태워 성장함으로써 구조의 문제를 일으켰을 때 완전성의 답은 이미 제출되어 있었다. 이로써 세상의 온갖 모순을 해소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를 곤란케 하는 온갖 모순들은 구조의 방향꺾임에 의해 일어나며, 구조의 지속적인 성장에 의해 각자의 포지션이 취합되어 최고의 팀을 결성함으로써, 입력에서 출력까지 에너지 회로를 직결로 연결시킬 때 근원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될 때 모순은 해소된다. 구조의 꺾임은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한 가지 형태로만 일어나므로 가능하다.


아기는 천사와 같아 모순이 없다. 그러나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온갖 모순이 일어난다. 아이의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지는 만큼 지성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불완전하나 공동체의 발전에 의해 여러사람의 지혜가 합쳐짐으로써 모순은 해소된다. 개인의 모순이 공동체의 진보를 촉발하는 것이다.


아이는 혼자 힘으로 에너지를 조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순된 존재다. 그러나 가족을 결성함으로써 외부로부터 에너지가 조달되어 그 모순은 극복된다. 구조의 집적은 에너지가 조달되는 한계선까지 밀어붙이며 진보를 유발한다. 에너지가 완벽하게 조달될 때 완전성에 도달한다. 공동체의 구성원 중에서 하나가 완성될 때 종이 소리를 내듯 일제히 정보를 증폭하여 구성원 모두가 성공하게 된다. 생태계의 진화는 생존경쟁이 아니라 이러한 증폭에 의해 일어났다.


공동체의 발전은 처음 한 개인의 내적인 모순에 의해 촉발된다. 그것은 어떤 형태의 결핍이며 남녀가 함께 일어나 맞일어섬으로 하여 가족을 결성함으로써 그 결핍이 해소된다. 가족의 결핍에 있어서는 이웃의 맞섬이 모순을 해소하고, 이웃의 결핍에 있어서는 부족의 맞섬이 모순을 해소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차차로 공동체를 일으켜 세운다. 개인에서 가족으로, 부족으로, 국가로 나아가면서 차차로 서로의 지혜를 결집하여 간다. 마침내 한 개인이 인류 전체의 지혜를 대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될 때 모순은 온전히 해소된다.


물은 도중에 흐르는 방향이 꺾여도 한사코 아래로만 흐른다. 지구의 중력을 조달받아야만 그 물이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진보가 여러 중간 단계를 거쳐 최종단계에 도달함으로써 완전성을 얻어 널리 소통을 일으키고 마침내 내부의 모순을 해소하게 되는 이유는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여 최종적으로 입력측과 출력측을 직결시키기 때문이다.


나무가 태양을 향해 위로만 가지를 뻗어 그 가지가 서로 엉키지 않게 하듯이,구조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조달받을 수 있는 하나의 지속가능한 방향으로만 꺾이므로 인간은 존재를 알 수 있고, 대상과 소통할 수 있고, 그것을 장악할 수도 있고, 통제할 수도 있다. 인간은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복잡하게 얽힌 실의 실마리를 찾아내듯이 외부로 노출된 에너지의 입력측과 출력측을 장악하면 다 걸린다. 에너지는 외부에서 들어와 외부로 나가므로 완전성을 얻게 하는 에너지의 입출력측은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 있다. 실머리와 실꼬리는 바깥으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다. 그러므로 엉킨 실을 풀 수 있다.


너와 나 사이에 마주보게 하는 대칭이 있다. 에너지가 작용하면 방향이 꺾여 가족이 탄생한다. 가족과 가족 사이에서 부족이 탄생하고, 부족과 부족 사이에서 국가가 탄생한다. 모든 진보는 이러한 원리에 따라 새로운 에너지 전달회로를 구성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하나의 발전은 곧 하나의 새로운 에너지 공급회로 구성이다. 처음 세포와 세포의 대칭에서 방향이 꺾여 생명체 내의 조직이 탄생하고, 조직과 조직의 대칭에서 방향이 꺾여 신체의 장기와 같은 기관이 탄생한다. 기관과 기관의 대칭에서 개체가, 개체와 개체의 대칭에서 군집이, 군집과 군집의 대칭에서 생태계가 탄생하니 생명은 진화하고 자연은 널리 이루어졌다.


개인이든, 국가든, 사회든, 자본이든, 전쟁이든, 스포츠든, 예술이든, 패션이든, 드라마든 모두 이 하나의 성장원리에 의해 조직된다. 그 근본은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대칭성의 원리, 함께 일어나는 맞섬의 원리, 쌍으로 일어서는 시스템 원리, 곧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나의 대항원리다.


하나의 존재는 곧 하나의 대항이다. 하나의 존재는 곧 하나의 포지션이며 하나의 포지션은 에너지가 진행되는 하나의 경로를 지정한다. 바둑판 위의 흑돌과 백돌처럼, 혹은 장기판 위의 말들처럼 각자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고 있으며 외력의 작용에 반작용으로 대항한다. 각자의 대항과 대항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회사를 이루고, 시장을 이루고, 점차 발전해 가는 것이다. 세상 모든 진보는 각자 대항수단의 획득에 의해 일어난다.


◎ 대항원리 - 네가 이렇가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


요(凹)와 철(凸)이 맞서 팽팽하게 버티는 대항의 수단을 잃을 때 존재는 사멸한다. 에너지 공급루트에서 멀어져서 고유한 자기 포지션을 잃고 외부의 힘에 의해 침범당하여 죽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문제는 그러한 대칭성의 요청 형태로 일어난다. 어떤 것이 발생했는데 거기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이다.


물이 일어나면 불에서 막히고, 산이 일어나면 강에서 막히고, 땅이 일어나면 바다에서 막히고, 아침이 일어나면 저녁에서 막힌다. 인류의 모든 문제는 그 대항하는 힘의 요청이다. 전염병이 일어나면 백신으로 막고, 두통이 일어나면 아스피린으로 막듯이,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거기에 맞서 대항해야 한다.


개인이 타인에게, 개인이 국가에게, 집단이 집단에게, 집단이 국가에게,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집적되어 사회가 탄생하고 문명이 진보한 것이며 법이든 제도이든 규범이든 관습이든 그러한 물음의 집적 형태로 되어 있다. 그 대항수단을 찾을 때 조직은 진보하고 개인은 발전하며 시장은 번영한다. 그 대항수단을 잃어서 외부에서 하나가 일어나도 자신은 맞일어서지 못할 때 죽는다. 호랑이가 덤벼드는데 맞대항하지 못하면 죽는다. 반응하지 못하면 죽는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는 것이 무(無)다.


대항수단이 없어 맞일어서지 못하므로 대칭의 평형에 이르지 못할 때,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사이에 불균형이 일어나 구조가 붕괴하여 조직은 파멸한다. 곧 사회의 모순과 병리다. 에너지 공급루트가 끊어져서 조직의 성장은 중단된다. 개인은 보수화되고, 집단은 분열되고, 사회의 소통은 단절되고, 시장은 파장하고, 기업은 파산하고, 국가는 멸망한다.


성장하는 조직은 반드시 외력에의 대항수단을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다. 재벌의 난동에, 조폭의 준동에, 독재자의 횡포에, 특정 팀의 독주에, 불한당의 난입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그 답을 제시하는 형태로 인류는 진보하고, 개인은 발전하며, 자본은 증식되고, 문화는 세련되고 드라마는 흥행한다.


대항수단은 에너지의 공급루트의 개설 형태로만 찾아진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서로 대항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장악할 때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존재는 성립하고, 가정은 꾸려지고, 모임은 성원되고, 회사는 창업되고, 군대는 창설되고, 국가는 건국되고, 생명은 탄생하고, 자연은 조화된다.


에너지 공급은 반드시 상위단계에서 하위단계로만 일방향 이행한다. 에너지는 하나의 존재단위, 하나의 의사결정단위, 하나의 포지션을 거칠때마다 소모되며 그 소모된 분량 만큼을 채워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단위의 대칭성이 큰 단위의 대칭성으로부터 에너지를 조달하여 조직이 작동한다.


세포들의 대칭성은 그 세포의 집합인 생명체의 조직으로부터, 조직들의 대칭은 그 조직의 집합인 기관으로부터, 기관들의 대칭은 역시 더 높은 단계인 개체의 대칭으로부터 에너지를 조달한다. 반드시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로 일방향 이행하므로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이라는 근원의 대칭성은 다치지 않는다.


자연의 생태계가 아무리 복잡해도 에너지 회로는 엉망징창이 되지 않는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궁극적으로는 태양에너지라는 하나의 공급원을 가지기 때문이다. 풀이 당을 합성하여 햇볕을 모으고, 소가 그 풀을 먹고, 사자가 그 소를 먹으며 생태계 안에서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가족은 가장의 수입으로부터 막내의 소비생활로 에너지가 전달되므로 대칭이 유지된다. 만약 막내가 별도로 수입원을 획득하면 곧 분가되어 그 가정은 해체되고 만다. 에너지는 하나의 입력과 출력 루트를 가지므로 대칭이 유지되어 존재가 이룩되는 것이다. 회로는 복잡해도 입력과 출력은 일제히 직렬한다.


먼 바다를 항해하는 큰 배라도 엔진은 하나여야 한다. 보조엔진을 갖추었더라도 함대의 선장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부선장이 쓸데없이 간섭하더라도 그 배의 키는 하나여야 한다. 최종단계에선 반드시 하나여야 하며 이로써 최종단계에 이르러서는 구조의 복잡성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존재의 완전성이다.


하위단계의 마주봄은 상위단계의 마주봄으로부터 에너지를 조달받는다. 이를 수학적으로 나타낸다면 눈금과, 자와, 콤파스와, 됫박과, 저울로 표현할 수 있다. 눈금 둘의 대칭으로 자가 이루어진다. 자 둘을 대칭시키면 콤파스다. 콤파스 둘을 대칭시키면 됫박이다. 됫박 둘을 대칭시키면 저울이다. 그 이상은 없다.


에너지는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다섯 단계를 거치며 다섯가지 형태의 대칭을 성립시킨다. 입력은 저울, 저장은 됫박, 제어는 콤파스, 연산은 자, 출력은 눈금 형태로 일어난다. 입력이 원인이면 출력은 결과다. 그 사이에 세 포지션이 더 있다. 에너지의 작용은 공간과 시간 양측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
◎ 저울≫됫박≫콤파스≫자≫눈금


하나의 존재에는 반드시 이 다섯가지 구조가 숨어 있다. 돌멩이처럼 단순한 구조여도 살펴보면 그 안에 보이지 않게 저울과 됫박과 콤파스와 자와 눈금이 숨어 있다. 저울이 있으므로 그 돌멩이가 중력을 나타내게 되며, 됫박이 있으므로 그 돌멩이가 부피를 가지게 되며, 콤파스와 자와 눈금이 있으므로 그 돌멩이가 너비와 길이와 위치를 각각 나타내게 된다. 만약 예의 다섯가지가 없다면 그 돌멩이는 무게도 없어지고 크기도 없어지며 따라서 존재도 없어진다.


이러한 원리는 물질에 적용될 뿐 아니라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관념에도 적용된다. 한 사람이 일을 해도 혼자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다섯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혼자 감당못할 정도로 일거리가 늘어나면 5명 정도가 팀을 이루어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을 각각 담당한다. 인원이 몇이든 이러한 역할 자체는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겉으로는 역할이 없어보여도 숨은 역할이 있다.


하나의 존재가 온전히 작동하려면 에너지가 진행하는 경로를 따라 다섯 포지션이 필요하므로 서로는 서로의 역할을 필요로 하여 손잡고 함께 일어섬으로써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을 필요로 하고 여성은 남성을 필요로 한다. 부모는 자식을 필요로 하고 자식은 부모를 필요로 한다. 포지션은 반드시 마주보므로 혼자서 일어서기는 불능이다.


조정경기의 노잡이는 뒤를 보고 노를 젓지만 키잡이는 앞을 보고 키를 조정해야 한다. 보는 방향이 반대이므로 혼자서 모든 역할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설사 능력있는 자가 있어서 혼자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한다 해도 결국 실패하게 된다. 남자 혹은 여자가 혼자 자손을 낳지 못하듯이 그것은 불능이다.


공격수는 수비수를 필요로 하고 수비수는 공격수를 필요로 한다. 투수는 포수를 필요로 하고 포수는 투수를 필요로 한다. 공을 받아주는 포수가 없으면 투수 혼자서는 연습을 할 수 없다. 부하는 보스를 필요로 하고 보스는 부하를 필요로 한다. 여당은 야당을 필요로 하고 야당은 여당을 필요로 한다. 궁수는 혼자서도 활을 쏠 수 있지만, 결국 활을 필요로 하고, 활은 화살을 필요로 하고, 화살은 과녁을 필요로 하고, 과녁은 버티고 설 대지를 필요로 한다. 모두 필요하다.


혼자서 여당과 야당의 역할을 둘 다 하려다가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생명이 성장할 때 한번 탄력을 받으면 파죽지세로 밀어붙여야 하고, 난관을 당하여 가속도를 잃으면 돌풍이 지나갈때까지 최대한 몸집을 줄이고 움츠려야 한다. 둘은 상반되므로 혼자 다하기보다 역할나누기가 낫다.


항해하는 배가 거센 파도를 만났을 때는 전속항진으로 맞받아쳐 그 파도를 직각으로 타고넘든가 아니면 도주하여 안전한 항구로 도망쳐야 한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여야 한다. 어중간은 없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꾸물대다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공격이든 수비든 각자 한가지 장점을 발달시켜 팀을 결성해야 한다. 혼자서 다하려다가는 중간에서 치인다.


모르는 사람은 진보와 보수 사이의 중도가 적당하다고 믿지만 실제로 역사의 진보는 완전성의 원리에 따라 나아갈 때는 거세게 밀어붙이는게 맞고, 멈출 때는 확실히 멈추는 것이 낫다. 어중간하게 중도에 서다가는 나아갈 때 가속도를 잃어 천장을 뚫지 못하므로 한 일이 도무지 성과가 없고, 멈출 때는 무게중심을 낮추지 못해 그만 자빠지고 만다. 일어설 때는 천장을 뚫어야 하고 주저앉을 때는 무게중심을 낮추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확실해야 한다.


하나의 존재가 에너지를 태울 때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다섯 포지션을 가지므로 조직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도입될 때 마다 그것을 뒤에서 받쳐줄 네 포지션이 추가된다. 겉으로는 하나가 추가된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섯이 더 추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시도하는 일은 항상 예상보다 복잡해진다. 아마추어가 쉽게 보고 덤빈 일이 갈수록 꼬이게 되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죽이기’ 시도가 곧장 실패로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김대중죽이기부터 시작해서 노무현죽이기를 거쳐 유시민죽이기로 이어지지만 계속 실패가 된다. 죽이기로 투입되는 에너지가 맞일어섬의 원리에 의해 상대편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구조원리에 따라 하나를 쏘려면 다섯번 확인사살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니한만 못한 결과가 된다.


미국의 어느 작은 시에서 도시주변 사막에 물품을 보관할 창고를 하나 지었는데 이를 경비할 사람이 필요해서 창고지기 한 명을 고용했더니, 그 창고지기에게 식사를 제공할 사람이 또 필요해졌다고 한다. 창고지기와 요리사를 관리할 사람이 또 필요해지고, 또 이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회계담당자가 필요해져서 결국 수 십명이 시의 직원으로 고용되어 일했는데, 정작 그 한명의 창고지기는 출근하지도 않았고, 그 고용된 수 십여명의 직원 중에 단 한 사람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더라는 유머가 있다. 관료주의를 꼬집는 유머지만 무슨 일이든 원칙대로 하려면 다섯배로 복잡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함부로 덤비다가 조직이 방만해져서 감당하지 못한다.


혼자서 다섯 포지션을 모두 감당하기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한가지 역할만을 담당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는 역할을 분담하여 공동체를 구성하며 점차 조직화되고 문명은 진보하는 것이다. 그만큼 타인에게 의존하게 된다. ‘내가 내힘으로 내돈벌어 내맘대로 쓸테니 넌 상관하지 마’ 하고 배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세상에 혼자 힘으로 가능한 것은 없으며 반드시 누군가가 뒤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겉으로는 혼자 힘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살펴보면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대칭을 이루어 함께 일어섬으로써 존재를 성립시키고, 그 대칭의 중간에서 에너지의 진행방향을 꺾여 구조를 이룸으로써 조직을 진보하게 하며, 그러면서도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이라는 근원의 대칭성을 다치지 않는 완전성으로 하여 존재는 널리 외부로 소통하여 정보를 증폭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비약한다. 인간은 그렇게 비약한 존재라는 점에서 동물과 차별화 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60억 인류 전체의 지혜를 결집하여 한 사람으로 하여금 대표할 수 있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며 이는 지구의 생명체가 수십억년 진화하여 이룬 성과를 집약하여 한 사람으로 하여금 대표하게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다섯 포지션을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나타낼 수 있다. 구조론은 이들 다섯 사이에서 에너지가 작동하는 순서와 방향을 일러준다. 에너지의 작동은 반드시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로 이행하며 그 성과는 반대로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의 순으로 인간에 의해 관측된다. 실제로 에너지가 작동하는 방향과 이를 인간이 인식하는 순서가 반대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오류가 일어난다.


[원인측] 기 - 승 - 전 - 결 [결과측]
◎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
◎ 질≫ 입자≫ 힘≫ 운동≫ 량


두 사람이 싸움을 벌였다면 그 사건은 전체 단위로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상처는 팔이든 다리든 어느 부분에 나타난다. 사건이 전개하는 방향과 단서가 수집되는 방향이 반대다. 인간은 결코 사건의 전모를 볼 수 없다. 담배꽁초와 같은 작은 부분의 정보를 입수하고 추론하여 전체를 추측할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판한다. 만약 인간이 바른 판단을 한다면 그것은 같은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므로 경험하여 알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전체과정을 모두 경험해 본 베테랑이 있기 때문이다. 혹은 학문적 체계에 의해 기록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인간의 거의 백 퍼센트 오판한다. 그러므로 경험을 쌓거나 전체과정을 체험하거나 학문적 체계를 갖추고 데이터를 수집해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경우 오판하는 것이 바르게 판단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완전히 새로운 사건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부분 과거에 유사한 일이 일어났지만 역사공부를 게을리 해서 그러한 데이터를 갖고있지 않을 뿐이다. 왜 구조론이 필요한가? 인간의 인식체계에 의하면 오판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인간 두뇌의 인식시스템으로는 오판이 더 자연스럽고 인간은 오직 충분한 경험과, 체계적으로 축적된 데이터와, 전체과정을 꿰뚫어볼줄 아는 베테랑 동료들의 협력에 의해 겨우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거울의 좌우가 바뀌어 비치듯이 자연의 존재가 진행하는 방향과 인간의 인식이 진행하는 방향은 반대되므로 구조론에 기초한 전문적인 분석이 아니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구조의 꺾임이다. 이 부분에서 거울처럼 좌우가 바뀐다. 그러므로 역설이 나타난다. 무게중심이 낮으면 반대의 효과가 일어난다. 상대를 타격하면 그 힘이 역효과를 일으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동일한 대상이라도 무게중심이 위인가 아래인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바뀌므로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텍스트로 기술된 가르침으로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고 반드시 모형을 가져야 한다.


구조론의 질≫입자≫힘≫운동≫량의 전개는 모형이다. 그 모형은 저울에 됫박을 태우고, 됫박에 콤파스를 태우고, 콤파스에 자를 태우고, 자에 눈금을 태운 모형이다. 실제로 천칭저울을 관찰해 보면 좌우에 물체를 올려놓을 수 있는 두 개의 됫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저울접시다. 마찬가지로 됫박은 두 콤파스에 의해 공중에 매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콤파스는 두 자의 결합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는 두 눈금의 결합이다.


입력 [기 - 승 - 전 - 결] 출력
◎ 저울≫됫박≫콤파스≫자≫눈금


저울은 물체만 올려놓으면 저절로 눈금을 가리키지만 됫박이나 콤파스나 자는 인간이 직접 손으로 움직여서 작동시켜야 한다. 저울은 지구의 중력이 에너지로 작용하여 작동시키지만 됫박이나 콤파스나 자는 엔진이 없으므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됫박과 콤파스와 자와 눈금은 동력이 들어오고 나가는 입력과 출력 포지션들 중에서 한 가지나 두어가지가 빠진 것이다.


그러므로 저울에서 됫박을 거쳐 콤파스와 자와 눈금으로 갈수록 인간이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 한 단위를 진행할 때 마다 다섯배로 복잡해지며 다섯배로 인간이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 체중계라면 그저 올라서기만 해도 저절로 숫자가 나온다. 그러나 됫박으로 쌀의 부피를 계량하려면 직접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 이때 개입횟수는 5배로 늘어난다.


눈금의 방법으로 5회 작업할 일을 자를 사용하면 한번에 끝낼 수 있고, 자를 사용하여 5회 작업할 일을 콤파스를 사용하여 한 번에 끝낼 수 있고, 콤파스로 5회 작업할 일을 됫박으로 한 번에 계량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됫박으로 5회 작업할 일을 저울로 1회 작업하여 계량할 수 있다.


눈금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한 박스의 사과를 일일이 세어본다는 것이다. 만약 좁쌀이라면 하루종일 세어도 분량을 파악하기 어렵다. 자를 사용하면 한줄로 늘여세운 다음 빠르게 판단할 수 있고, 콤파스를 사용한다면 면으로 깔아놓은 다음 더 빠르게 판정할 수 있고, 됫박을 사용한다면 역시 더 빠르게 판정할 수 있다. 물론 저울에 올려보면 바로 판정이 가능하다.


◎ 눈금 - 좁쌀을 한 알씩 센다.
◎ 자 - 좁쌀을 한 줄로 늘여세운 다음 자로 잰다.
◎ 콤파스 - 좁쌀을 바닥에 깔아놓은 다음 면적을 잰다.
◎ 됫박 - 좁쌀을 용기에 담아 부피를 잰다.
◎ 저울 - 좁쌀을 저울에 올려 판정한다.


한 단계 차원이 올라갈 때마다 인간의 개입횟수는 1/5로 줄어들므로 인간은 구조원리를 이용하여 최소개입으로 최대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최소개입을 하려면 사전에 구조를 세팅해야 한다. 저울에 됫박을 종속시키고 됫박에 콤파스를, 콤파스에 자를, 자에 눈금을 종속시키는 사전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번 세팅하여 포드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순식간에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다.


구조는 존재를 대칭의 맞일어서는 원리에 따라 적절하게 세팀함으로써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이 연동되어 일어나게 한다. 이때 하부구조에서 여러번 개입할 일을 상부구조에서 한번 개입하여 끝낼 수 있다. 농부가 낫이나 쟁기로 하루종일 작업할 것을 트랙터나 콤바인으로 단 번에 끝내는 것과 같다.


봉건적인 주종관계나, 집단 내부의 서열이나, 회사조직의 간부와 노동자의 관계, 관료제도, 군사조직, 스포츠팀, 정치조직에는 이러한 구조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상부구조로 갈수록 더 적게 개입한는 대신 더 크게 개입한다. 말단부로 갈수록 더 많이 개입하는 대신 더 작게 개입한다. 상부구조의 CEO는 가끔 한번씩 명령을 내리지만 그 명령은 조직 전체에 전달된다. 말단의 현장직원은 하루종일 그 회사의 제품을 만지지만 회사전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조직은 CEO≫이사≫간부≫하급간부≫노동자로 내려가면서 각각 저울과 됫박과 콤파스와 자와 눈금의 역할을 가지며 각 단위에서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때 각 단위가 순서대로 조직되어 있는가, 그리고 각 단위에 맞일어서는 대항원리가 작동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조직의 발전이 결정된다.


구단주와 단장과 감독과 코치와 선수간에 그리고 감독과 연출부와 배우와 극장과 관객간에 이러한 포지셔닝이 적절히 안배되었는지에 따라 팀의 성패가 결정되고 흥행성적이 결정된다. 만약 구단주의 명령이 단장과 감독과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선수에게로 간다면, 혹은 각 의사결정 단위에 대항수단이 없어서 단장이나 감독이나 코치나 선수가 직언을 못한다면 그 조직은 와해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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