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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091 vote 0 2011.05.23 (00:31:49)

 


미래는 결정되어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과학이다. 물론 많은 부분에 있어서 결정되어 있지 않다. 구조론에 따라 매 결정단위마다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재질서화가 일어난다. 단계를 건널 때 마다 ‘처음부터 다시.’를 명령한다. 그러므로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문제는 과학의 입장이다. 과학의 임무는 미래예측이다. 예측하려면 미래가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내일 날씨는 내일 가봐야 안다.’ <- 이렇게 말하는 기상예보관은 없다. 몰라도 안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자기 직업이니까. 마찬가지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는게 과학이다.


과학은 꾸준히 예측가능한 영역을 넓혀왔다. 최근에는 ‘텔로미어’라는 유전자 꼬리에 의해 인간의 수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보고도 나왔다. 일란성 쌍둥이가 헤어져 각자 다른 교육환경에 놓였어도 서로 비슷한 운명을 걷게 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이런 식의 결정론을 싫어한다.


다 결정되어 있다면 종교적인 숙명론에 빠져서 체념하게 되기 때문이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많이 결정되어 있을수록 지식인이 자의로 대중을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정되어 있지 않은 영역을 자기네 밥그릇으로 보고 그 밥그릇이 줄어들까 염려하는 심리 때문이다.


지식인은 결정론에 반대하며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와 자의적인 선택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심한 경우 이를 위하여 맞춤연구도 벌어진다. 사전에 지식인의 입맛에 맞는 답을 정해놓고 거기에 보고를 맞춰낸다. 아래에 언급된 침팬지 서열정하기 이야기도 그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방송에 나온 동물전문가는 단번에 동물을 제압해 보임으로써 과학자를 우습게 만든다. 감동의 명화로 소개되는 충성스런 개도 동물 전문가는 ‘사실은 할줄 아는게 그것 밖에 없어서’로 만들어 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나쁜 짓은 할줄 아는게 그것밖에 없어서다.


포지셔닝 게임이다. 구조는 포지션이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포지션에 의해 결정된다. 역할의 노예가 되어 있다. 골은 공격수가 넣도록 되어 있다. 홈런은 타자가 치도록 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관중이 득점을 올리는 수가 있다거나 특별한 경우 심판이 득점을 올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누구든 그 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그 역할을 한다. 심지어 돌두환도 청와대에 가져다 놓으면 에헴 하고 대통령 연기를 제법 해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과학이 자연의 신비를 해체하면 사람들은 실망한다. 드라마를 잃기 때문이다. 사실이지 과학의 역사는 인간을 실망시켜 온 역사다.


과학에 의해 인간은 내세도 잃고, 천국도 잃고, 귀신도 잃고, 마법도 잃었다. 존엄도 잃고, 자유도 잃고, 사랑도 잃고, 꿈도 잃게 될까봐 두려워 한다. 과학에 의해 인간은 정신적으로 빈곤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과학의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과학이 성과를 올릴수록 이미 결정되어 있는 부분은 늘어난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사실은 다 결정되어 있다고 확인되는 부분이 늘어나는 만큼 거기에 비래하여 새로 인간이 결정해야 할 영역도 늘어난다. 인간은 진보하며 꾸준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그러한 인간은 영역확장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부분을 과학이 확인하는 정도에 비례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활동은 곧 의사결정이며, 결정되어 있어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와 자의적인 선택은 반대로 그 결정되어 있음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부단한 결정 그 자체다.


물론 여기서 결정은 미래의 결정이 아니라 상황별 대응매뉴얼의 결정이다. 진리는 결정되어 있다. 1+1은 언제라도 2로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진리를 뼈대로 삼아, 거기에 살을 붙여 인간의 삶을 일구어 낸다.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정된 토대를 발판으로 삼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심이 결정되어 있어야 날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인간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지만 상황별 대응매뉴얼은 구조론에 따라 상당히 결정되어 있고 과학이 그 하나의 결정된 매뉴얼을 발견해낼때마다 인간의 새로 결정해야 할 영역은 확대된다. 인간의 자유로운 삶의 지평은 넓어진다.


바둑에 비유할 수 있다. 초반 포석은 정해져 있다. 정석이 있는 것이다. 막판 끝내기도 정해져 있다. 결정되어 있지 않은 부분은 중반 전투다. 만약 초반부터 아무데나 마구잡이로 둔다면 주체적인 의지나 선택은 의미가 없다. 기초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어받는 인간의 결정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기가 결정되어 있어야 승으로 이어갈 수 있다. 결정된 기가 인간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승과 전을 부른다. 결도 결정되어 있다. 인간의 생이 기라면 사는 결이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누구든 결정되어 있다. 그 사이의 여백은 각자가 채워가는 거다.


결정론을 부정하는 확률개념도 넓은 의미에서는 결정의 일부분이다. 결정론을 부정하는 구조론의 재질서화 개념도 넓은 의미에서는 결정의 일부다. 기계적인 결정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으로 결정되어 있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공식이 결정되어 있다.

 

* 숙명론 -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

* 구조론 - 상황별 대응매뉴얼이 결정되어 있다.


나아가는 방향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결정되어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과학이다. 구조론은 한 마디로 ‘이게 이렇게 되면 저건 저렇게 된다’는 거다. 이것에 의해 저것이 결정되는 거다. 즉 일반의 통념에 비해 더 많은 부분이 결정되어 있다는 거다.


그냥 빈 종이에 그려라고 압박하는 것보다 주제를 던져주고 그려라고 하는게 더 진도가 빠르다. 눈덩이를 뭉쳐도 처음에는 단단한 심이 있어야 한다. 결정된 핵에 살을 붙여가기 쉽다. 최초에 필요한 것은 와꾸다. 즉 틀이다. 진흙으로 소조를 하더라도 철사로 뼈대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구조는 기승전결의 한 단계를 올라설 때마다 5배씩 늘어난다. 그러므로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구조의 틀이 주어졌을 때 5배로 실적이 증가한다. 틀이 있어야 더 많은 상상과 창의가 가능하다. 보통 창의적인 교육을 강조하며 틀을 깨라고 하지만 실은 틀을 찾아라가 맞다.


구조의 틀은 다섯이다. 상업적인 작업이라면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틀에 맞춘 작업을 하게 되는데 레벨이 낮은 틀을 사용한다. ‘틀을 깨라’고 하는 것은 높은 틀로 올라서라는 말이지 무작정 틀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창의는 가장 높은 레벨의 틀을 찾아내는 것이다.


구조는 포지션이며 포지션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예컨대 그동안 일본이 잘 나간 것은 일본이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가는 항로에 있었기 때문에 서구문명이 아시아로 오는 길목을 차지해서 재미를 본 것이다. 경정시합은 인코스를 잡으면 유리하고 사이클 경주는 앞에 가면 손해다.


막연히 ‘다 결정되어 있다면 피곤해. 재미없잖아.’ 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아무 것도 없이 그냥 허허벌판에 내던져진것 보다, 무장을 갖추고 임무를 띠고 현장에 출동했을 때 인간은 더 자유롭다. 1단계가 결정되어 있을 때 자유롭게 2단계로 치고나갈 수 있는 것이다. 준비한만큼 자유다.


구조론은 ‘포지션’이다. 틀이고 와꾸다. 와꾸가 나와줘야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다. 와꾸는 바둑의 정석처럼 사전에 결정되어 있다. 더 나아갈 진취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퍼질러 앉아 꾸물댈 퇴행적인 생각을 하므로 사전에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지만 실제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연한 만남보다는 의도있는 만남에서 더 맺어질 확률은 높다. 길거리에서 만나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거다. 그러나 동아리 모임에서 만났다면 어느 정도 상대방의 의도가 결정되어 있으므로 훨씬 더 진도를 나가기 쉽다.


과학자라면 쿨해져야 한다. 와꾸가 정해져 있고, 매뉴얼이 나와있고, 임무가 제한되어 있고, ‘이게 이렇게 되면 저건 저렇게 된다’는 공식이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부담을 가진다면 곤란하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그 주어진 토대 위에서 건축할 수 있다.


구조론은 포지션결정론이다. 환경결정론처럼 보인다. 사실 지정학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문명이 대부분 섬이나 반도를 끼고 교통의 요지에서 일어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당연한 거다. 되는 나라는 되고 안 되는 나라는 안 된다. 교통 좋은 강남 땅값은 오르고 외딴 무인도 땅값은 안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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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ut walk 라는 운동이 있다. 어떤 경찰책임자가 ‘여성의 헤픈 옷차림 때문에 성폭행이 일어난다’는 식의 말을 해서, 여성단체에서 ‘여성들은 헤픈(?) 옷차림 할 권리가 있다’고 받아친 것이다. 이런 투쟁들은 매우 비합리적으로, 그러나 ‘구조론에 맞게’ 일어난다.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질서정연하다.


필자가 늘 말하는 ‘이기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악역을 맡아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인 행동’의 사례다. 그 경찰 책임자는 인류를 위해 진실을 말했고 여성단체로부터 몰매를 맞음으로써 자신을 희생시켰다. 히틀러와 같은 역사상의 바보들이 늘 저지르는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여성들의 ‘자유로운 옷차림을 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다. 인류문명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그러하다. 인간은 진보하는 존재이므로 진보하는게 자연스럽고 따라서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영역’이 더 넓어지는게 인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slut work는 인간다운 행동이다.


그러나 그 길로 가기는 험난하다. 누군가가 먼저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미니스커트의 윤복희처럼 튀는 옷차림을 해서 사회에 쇼크를 주면 일단은 몰매를 맞는다. 행위예술가 낸시랭 처럼 말이다. 병역거부의 강의석처럼 말이다. 즉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들은 늘 손해를 보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김기덕 감독처럼.


여기에는 침팬지가 공동체에 긴장을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몰매에 가담하는 바보들은 자기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돌을 던진다. 그들은 긴장을 공동체에 파급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파시스트 검은셔츠단이나 나치 돌격대들이 하는 빌어먹을 완장짓 말이다.


유시민죽이기 하는 오마이뉴스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공동체 전체에 긴장을 파급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이런 긴장의 전파 역할은 ‘까’ 형태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빠’ 형태로 일어나기도 한다. 광적인 추종자와 광적인 혐오자가 충돌하면서 긴장을 공동체 전체에 파급하는 것이다.


흐름이 잘못가서 여성들이 자기들에게 손해가 되는 ‘남자의 비위에 맞추는 옷입기’를 하기도 한다. 한때 영국에서는 장신구는 창녀나 사용하는 것으로 되었다. 한때 프랑스에서는 가난하고 검소한 복장이 유행하여 추운 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옷에 물을 뿌리다가 무수히 많은 여성이 폐렴에 걸려 죽었다.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는 것이 과연 여성들에게 유익할까? 전족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이 전적으로 전족을 강요했다는건 사실이 아니다. 하이힐과 원리는 같다. 한국여성 특유의 지나친 화장도 이와 관련이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으로 여성들끼리 소모적인 내부경쟁을 하는 것이다.


중은 제 머리를 깎지 못하고, 쥐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한다. 집단적으로 손해를 보는 악순환이 일어나며, 이때 악역이 등장하여 공공의 적 노릇을 해줘야 한다. 멍청한 경찰책임자가 헛소리를 해서 진실을 드러낸다. 그 경찰의 말대로 남자가 여성이 옷차림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오버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물론 남자에게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를 드러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책임이 남자에게 있느냐 여자에게 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어떤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사실을 감춘다. 과학자들이 그렇다.

 

드러내야할 진실을 감출수록 민감해진다. 즉 그것이 드러났을 때 사회적인 긴장도는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조중동이 진실을 은폐할수록 그것이 드러났을 때 센세이션의 파급력이 커지듯이 말이다.


여성의 옷차림을 남자가 잘못 해석하는 책임은 남자에게 있기 때문에 그 잘못을 은폐해버리는 것이다. 이게 더 심각하다. 김기덕에게 가해지는 돌팔매도 그렇다. 왜 진실을 드러내서 문제를 키웠느냐는 식이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진실이 우선이어야 한다. 문제를 키워 공동체 전체에 파급해야 진정으로 해결된다.


인류의 진보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포지션 게임을 하는 것이다. 서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는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때 단점을 더 많이 지적당하는 쪽이 도리어 이득을 보는 역설이 일어나기도 한다. 즉 지는게 이기는 싸움이 된다.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이 도리어 여성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흔하다. 당장의 우대가 장기적으로 잠재력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물론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정치판도 이와 비슷하다. 여야간에 자살골 넣기 시합이다. 좋은 정책을 펼쳐 유권자의 인정을 받기보다 상대방이 삽질을 해서 반사이익으로 집권한다.


가장 좋은 것은 까놓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타협하는 것이다. 여성은 옷차림을 자유롭게 하고 남자들은 쿨하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은 어떤가? 엉뚱한 상상을 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난리부르스를 친다. 사회는 점점 웃기게 변해간다.


실제로 자연의 진화는 장점의 극대화보다 단점의 극복에 의해 일어나는 점이 크다. 단점이 발견되면 일제히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진화는 그러한 공격에 대한 방어노력에 의해 일어난 점이 크다. 바둑도 단점을 방어하려는 수비형바둑이 지배적이고 프로야구의 각팀들은 장점의 극대화보다 수비에 치중한다.


김성근 야구가 그렇다. 필자는 김성근 감독이 한국야구 수준을 올려놓은 점도 있지만, 큰 시선에서는 한국처럼 바닥이 좁은 곳에서 잘 관찰되는 돌연변이로 본다. 야구시장 전체의 자원을 갉아먹는 소모적인 내부경쟁이다. 시합에는 이기지만 각 선수가 가진 기량의 극대화라는 진짜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원래 프로야구는 투수가 손톱으로 공에 흡집을 내고 침을 발라서 던졌기 때문에 많은 점수가 나지 않았고 각팀이 똑딱이 야구를 해서 홈런은 없었다. 야구가 인기가 없는 종목이었던 것이다. 베이브 루스가 홈런을 쳐서 인가를 끌자 협회가 규정을 바꾸어서 타자에게 유리하도록 룰을 변경했다.


과학은 쿨해져야 한다. 까놓고 진실을 말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야 단점의 방어가 아니라 장점의 극대화에 의한 제대로된 진보가 가능하다. 생각해보면 역사이래 진보가 제 손으로 설계를 해서 그 설계도대로 진보한 예가 손꼽을만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사회는 구조에 의해 진보했다.


히틀러와 같은 꼴통이 사고를 쳐야 정신을 차리고, 부시같은 멍청이가 간헐적으로 등장해서 또라이짓을 해야 뒤늦게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이명박이 삽질을 보고 뒤늦게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이 평가받는다면 곤란하다. 왜 제 눈으로 미리 알아보지 못하는가?


사회가 보수화 되는 것은 진보 스스로가 진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닫힌 공간에서는 무조건 보수화 된다. 진리만이 진보를 구원한다. 진보에 유리한 지식만이 지식이라는 편협함을 털어내고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더 진보한다. 보수에 유리한 정보라도 발표해야 진보한다. 역설이다.


과학가는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의연하게 진리를 드러내야 한다. 사회가 보수화 되는 것은 역시 구조적 필연이다. 보수를 막는 것은 오로지 진보 스스로의 가속도 뿐이다. 진보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멈추므로 보수화 되는 것이지, 보수가 특별히 기동해서 보수화 되는 것은 아니다.


◎ 진보 – 장점의 극대화
◎ 보수 – 단점의 방어


자연의 생태계는 단점의 방어라는 보수적인 진화 위주로 일어난다. 하긴 자연이 진보로 돌아서도 곤란하다. 급격한 진화는 생태계에 큰 리스크를 떠넘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처럼 보수적으로 행세한다면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보수적인 진화는 개나 돼지나 침팬지도 한다.


인간이라면 스스로 자신의 진보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설계도를 가지고 문명의 기획을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나 보통은 노무현 같은 진짜배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명박이 같은 반면교사 덕에 진보한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말이다. 이는 부끄러운 일이다.




http://gujoron.com




[레벨:15]오세

2011.05.23 (08:50:50)

전송됨 : 트위터

◎ 진보 – 장점의 극대화
◎ 보수 – 단점의 방어

깨알같은 한줄 요약이구려

프로필 이미지 [레벨:24]꼬치가리

2011.05.24 (13:35:04)

slut work  --> slut walk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5.24 (14:07:13)

^^;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1.05.24 (16:38:05)

미래는 결정되어있지 않지만, 패턴은 결정되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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