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언어 말 나온 김에 했던 이야기를 조금 더 정리하자면. 하품이 왜 일어나는가? 이런 것도 제대로 입증을 못하는게 기존의 과학임. 구조로 보지 않기 때문. ‘아니다. 그거 사실은 다 증명되어 있다. 니가 몰라서 그렇지’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말의 맥락은 유효한 것. 어떤 학자가 상당한 연구비를 타먹고 ‘아기는 왜 옹알이를 하는가?’ 답.. ‘말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와 이거 엄청난 발견이다. 이것도 사실은 의미있는 연구야 하고 큰 소리 칠 수는 있겠지만, ‘놀고 있네’ 하는 비웃음을 사도 할말없음. 아기는 말을 배우기 위해서 옹알이를 한다. <- 이건 과학 아님. 그것은 사과는 무겁기 때문에 떨어진다는 말과 똑같은 것. 그렇다면 만유인력은 뭐냐고요? 사과는 무겁기 때문에 떨어진대매? 답 나왔네. 됐잖아? 그러나 답은 나왔는데 그게 쳐주는 답은 아님. 안쳐줌. 다른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보편성 없기 때문. 하품을 왜 하는가? 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서.(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말 많음.) 이게 사실이다 해도 이건 애초에 과학이 아님. 왜? 위하여니까. 위하여 어쩌구 하면 무조건 비과학임. 의하여가 맞음. 과학은 과학의 언어를 써야 하며 그것은 위하여를 배척하는 것임. of(원인) by(제어) for(결과) 이러한 인과의 메커니즘을 드러내야 과학임. 하품이나 기지개나 같은 원리인데 기지개는 뭐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려는건감? 하여간 이게 맞든 안맞든 이런 수준은 애초에 과학이 아니라는 거. 왜? 과학의 언어가 아니니까. 모든 ‘위하여’는 일단 비과학임. 이렇게 말하면 ‘과학인지 아닌지를 왜 니가 정하냐?’ ‘그거 과학인 것으로 다 되어 있다. 몰랐냐?’ 이런 식으로 나오면 대화 안 되는 거. 이 글은 과학의 패러다임, 방법론 전반에 걸쳐서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글임. 불확정성 원리나, super string 이론에 이러한 대칭성 개념이 적용되었는지 모르지만, 하품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칭성 개념을 적용 안 하고 있는게 사실. 그러니 물새가 왜 한쪽다리를 들고 있는지 모르는 것. 발이 시려서 한쪽다리 들고있는 물새도 아마 있기는 있을 것. 그러나 넌센스. 애초에 번짓수 잘못 짚었음. 그거 과학 아님. ‘위하여’는 무조건 과학 아님. 설사 발이 시려서 그랬다는게 사실로 밝혀졌다 해도 그거 과학 아님. 어떤 이유로 물새가 한쪽 다리를 들었든 상관없이, 애초에 물새는 한쪽다리를 들고 서도록 구조가 세팅되어 있었다는게 과학임. 물새가 먹이를 포착하려면 돌부처처럼 움직이지 않아야 물고기가 꼬이는데, 두 다리로 서면 반드시 꼼지락거리고 움직이게 됨. 왜? 뇌의 영역간에 충돌이 일어나. 두 다리 사이에 체중 배분해야 하므로 뇌가 피곤함. 바람은 불고, 물살은 세고, 물고기는 다 눈치채고 그러므로 한 다리로 서야 함. 새가 왜 날지? 날고 싶어서. 이건 과학 아님. 날개가 있으니까 나는 거지. 날고 싶다고 다 나는감?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은 인과의 대칭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거. 과학 안에 이런 식의 비과학이 매우 많다는 거. 무조건 구조의 필연적 대칭성을 기초로 해서 논리가 전개되어야 함. 상부구조에 의하여라야 함. 상부구조가 제시되어야 함. 새가 한쪽다리로 선다면 상부구조는 뇌의 의사결정이고 하부구조는 다리, 체온 따위. ### 이 사진의 사람들은 자신이 목을 길게 빼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왜 사람들은 미녀 앞에서 목을 빼는 것일까? 1) 목을 길게 빼면 롱목미남으로 알고 여자가 데이트 신청을 할 것으로 착각해서. <- 기존의 과학은 이 수준. 대칭성 원리가 불확정성 원리나 초끈이론에만 적용될 성질의 것은 아니고 어디에나 적용되는 보편원리라는 것. AB형은 이유없는 행동을 한다. <- 이런 말은 어떤 일본인의 장난이 아니고 최근 우리나라 웹에서 떠도는 표현일 것. 대칭성으로 본다는 것은 이게 AB형의 판단이 아니고 AB형 아닌 사람들의 판단이라는 것. AB형 자신은 다 이유가 있지. 이유없는 행동이 어딨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했다는 거. 이게 대칭성. 바넘효과는 자기판단에 해당됨. 대칭성은 타인의 판단이므로 해당안됨. A형이 어떻다거나 B형이 어떻다거나 다른 혈액형이 공격하는 말임. 이러한 공격행동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 거기에 이유가 있다는 거. 비과학-선동렬은 야구를 잘 한다.(바넘효과 작동-주관) 과학 - 선동렬은 최동원보다 야구를 잘 한다(대칭성 있음-객관) 기존의 과학은 이러한 대칭성이 전혀 적용 안 되고 있으므로 엉터리라는 거. 전여옥이 일본은 없다에서 일본인 어떻다고 썼는데, 그거 다 모르고 하는 소리임. 예컨대 ‘일본인은 때를 밀지 않아서 몸에 때가 많다.’ 전여옥이 그렇게 썼는데 과연 그런가? 그렇든 아니든 그게 본질이 아님. 한국인이 그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한국인의 눈에 그게 띄었다는게 본질임. 즉 일본인이 과연 몸에 때가 많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떠나 한국인이 거기에 신경쓰는건 백프로 객관적 과학이고 사실임. 한국인이 일본에 콤플렉스가 있으니까. 혐한류도 마찬가지 자기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거. 한국에 온 미국인은, 한국인은 다 옥수수광이다. 심지어 식빵에도 옥수수를 촘촘히 박아서 먹는다. 한국에서 내가 먹은 거의 모든 음식에 옥수수가 들어있더라. 이건 착각임. 전혀. 한국인은 워낙 빵을 안 먹고, 샌드위치를 안 먹기 때문에 빵가게들이 옥수수라도 박아서 팔아볼까 하는 것. 즉 한국인은 옥수수광이다. 빨간모자 피자에 옥수수가 박혀있어서 먹다가 버렸다는 미국인 판단은 착오. 그러나 미국인에게 그게 문제가 된 것은 백퍼센트 사실. 미국인 판단은 착오지만 그 안에 과학적 진실이 숨어 있는 것. 기존의 과학 방법론은 이러한 점을 보지 못함. 그냥 미국인 착각이다. 끝. 이런 식. 이건 뭐 사과가 무거워 떨어진다는 식. 비과학임. 한의학에서 뭐는 몸에 좋다.. 실제로 그럴수도 있지만 그게 과학 아님. 메커니즘을 드러내야 과학임.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사실이 그렇다 해도 조상의 지혜일 뿐 과학 아님. 그런 개별적인 경험의 집합을 과학이라 하면 곤란. 기압이 떨어지면 벌레가 빗방울을 피해 풀잎 뒷면에 숨고, 따라서 제비가 벌레를 찾으려고 낮게 난다. -> 이건 과학임. 대칭성 있음. of(원인) by(제어) for(결과) 작동. 1+1=2 이건 굉장히 고도의 함축이 들어가 있음. 이 안에 엄청난 방정식이 숨어 있다는 말. 이걸 알아먹는다면 이심전심이 통해서 직관으로 알거나 아니면 경험으로 아는 것. 그냥 사과 둘 갖고 와서 하나, 하나 자 둘이지? 맞지? 이건 과학이 아님. 이런 식으로 배운 산수는 산수에 지나지 않는 것. 1+1이 2가 되는게 아니고 2를 1+1로 정한 것. 이건 대칭성. 윷놀이 말판에서 오른쪽으로 가는게 +, 방향을 바꾸는게 -, 지름길로 가는게 곱하기, 그 반대로 가는게(윷말판에는 없지만) 나누기. 이런 전체의 모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 그래야 대칭성이 작동하기 때문. -를 빼기라고 아는 한 착각. 방향전환이 맞는 거. 대칭성은 모형 안에서 작동하는 거. 모형을 가지고 출발해야 과학임. 모형 안에서 포지션 지정으로 봐야 과학임. 그냥 더하기 빼기식의 접근은 비과학.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어쩌고 봉건지주가 농민을 착취하고 어쩌고 이건 사회주의권에서 쓰는 표현인데 과학의 언어가 아님. 감정이 들어가면 과학 아님. 콜롬부스가 남미에서 옥수수 감자 토마토 고추 담배 등을 들여와서 농업소득이 늘고, 따라서 인구가 늘고, 따라서 농민의 발언권이 커지고, 시스템구조 상 지배집단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리고 이게 과학임. 메커니즘을 드러내는게 과학. 모순은 착취 때문에 있는게 아니고 생산력 증가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 생산력의 증대에 따른 집단의 의사결정 방식의 변화가 사회발전의 핵심동인. 생산력 증대(하부구조 변화)->의사결정구조 변화(상부구조 변화) 이건 대칭성 있으므로 적어도 과학적 표현이지만 내용은 마르크스의 착각임. 실제로는 의사결정수 수단인 금속활자가 먼저 보급됨. 의사결정수단의 변화(상부구조 변화) -> 생산력 증대(하부구조의 변화) 상부구조가 먼저 변하고 하부구조가 뒤이어 변한 것이며 의사결정구조 변화가 먼저 일어남. 다만 정치판에서 적용되는건 다른 범주인데 이건 전지구적인 사건의 등장->지역으로 파급. 그러므로 이 역시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이행함. 자본의 발달에 따라 지구적 차원의 문제 등장(제국주의 경향) ->봉건왕조 타도 봉건시대에는 생산이 국경 안에서 일어났으므로 국가적 의사결정구조가 작동하지 않음. 그러나 자본의 발달에 따라 남의 나라 기름을 빼오므로 지구적 차원의 의사결정 문제가 먼저 대두 -> 국가의 의사결정구조 변화(정치적 혁명) 여전히 전체의 변화->부분의 변화,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진행함. 이러한 전개는 계속 구조의 대칭성을 따라가는 거. 착취니 분노니 이런 말 나오면 봉건언어로 퇴행. 과연 과학이 과학의 언어를 쓰고 있는가? 아님. 여전히 감정 들어간 봉건언어를 쓰고 있음. 아직도 ‘위하여’ 타령하고있음. 여전히 사과는 무겁기 때문에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음. 하품을 하는 이유가 뭐라고 밝혀지건 간에, 아기가 옹알이를 하는 이유가 뭐라고 발표하건 간에 그건 한의사가 ‘몸에 좋다’고 말하는 수준. 그건 비과학. 과학-이게 이렇게 되면 저건 저렇게 된다. 비과학- 인삼 녹용 당귀 마황은 어디에 좋다. 세 남자가 미녀 뒤를 따라가면서 목을 길게 빼고 있는 이유는, 뇌의 판단을 몸이 흉내내어 따라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임.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는 이유도 이 원리가 작동한 것. 전체가 모두 맞물려 하나로 되어 있으므로 뇌의 작은 판단이 몸 전체에 곧바로 영향을 미침. 아기가 저절로 말을 배우는 이유도 이 원리에 의해 일어남. 옹알이도 이 견지에서 접근해야 함. 부바키키현상으로 입증됨. 물새가 한쪽다리를 서는 것도 마찬가지임. 물새가 한쪽다리를 드는 이유는 알겠는데, 세 남자가 목을 왜 빼는지는 모르겠다면 그게 어째서 만유인력이겠느냐고. 한줄에 꿰지 않고 각개약진하면 과학 아님. 전체의 모형 안에서 각기 포지션 지정 아니면 과학이 아님. 현대과학은 과학인가? 아님. 연금술 수준에 머물러 있음. 물론 불확정성 원리인지 초끈이론인지 따위에 대칭성이 적용되고 있다 해도 학계 전체의 패러다임이 여전히 봉건에 머물러 있음. |
∑
수컷공작 이야기는
정말이지 바보같은 소리입니다.
이건 초등학생이 봐도 설득력 제로죠.
사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걸 납득못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모든 진화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습니다.
코끼리 코가 계속 길어진다든가
(코만 길어지는게 아니죠. 귀도 커지고, 다리도 굵어지고)
일각고래의 어금니는 아무 이유없이 길어요.(용도 제로)
코가 긴 코끼리와 짧은 코끼리 중에서 긴 코끼리가 살아남은게 아니라
지중해 섬에는 몸집이 작은 코끼리도 있었습니다.
현생인류가 다 죽였죠.
애초에 처음부터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진화는 반드시 구조적인 언밸런스를 이루므로
이 부분을 보상하기 위해서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멈출 수 없는 거죠.
코끼리의 언밸런스는 오직 진화에 의해서만 밸런스가 잡히니까요.
하나의 불만을 시정하면 그 불만을 시정하는 요인에 의해
또다른 불만이 발생하기 때문에 계속됩니다.
공작깃 뿐만 아니라 모든 진화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암수 모두에게 적용되며
사람의 경우 여자의 미적인 진화가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공작은 왜 수컷이?
수컷은 발정기 때 외에는 별로 필요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암컷은 생존해야 하므로 보호색을 가지고
수컷은 생존이 불필요하므로 과시하는 색을 가집니다.
사자는 강하므로 불필요한 수컷이 과시하다가 대개 죽고 다수의 암컷이 살아남음.
사람은 약하므로 무리생활을 해서 수컷이 암컷을 보호하기 위해 생존필요 있음.
결론적으로 공작수컷이 화려한 색을 가진 이유는
진화가 구조적인 언밸런스를 이루었고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속적인 진화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생태계에는
쓸데없이 지나친 짓을 하는 생물 종이 무수히 많습니다.
50 정도로 그쳐도 되는데 100을 넘어 오버하는 경우입니다.
집짓는 새가 미친듯이 짓고 버리고 새로 짓고 하루종일 수리하고 한다든가
암컷에 의해 선택된다든가 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예컨대 사람의 경우 미인이 선택될 확률이 높지만 생존과는 무관합니다.
만약 생존과 연결된다면 백인만 살아남고 흑인은 없어졌게요?
미인만 선택할 경우
오히려 유전적 다양성을 해쳐서 생존확률이 낮아집니다.
화려한 수컷공작만 선택하는 것이 어느 면에서는 생존확률을 낮춥니다.
건강한 유전자를 잃어먹을 확률이 높아지므로.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은 균형을 잃게 되는데
균형을 잡기 위해서 먼저 한 발을 앞으로 내딛습니다.
일시적으로 균형이 잡히지만 그러한 행동에 의해 또다른 불균형이 생기는데
이 때문에 다시 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어
결국 본의아니게 내리막길을 달리게 됩니다.
원래는 달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요.
공작이든 코끼리든 사람이든 일각고래든 돼지든 딱 하나의 이유
진화가 구조적인 언밸런스를 일으켜 가속적인 진화를 유도하며
여기서 일정한 진화의 방향성이 지시된다는 거죠.
이런 진화의 오버가 너무 심해져서 멸종한 종도 매우 많습니다.
성선택설이 보조적으로 수용될 수 있지만 본질은 아니지요.
인간은 왜 아름다울까요? 털이 없기 때문이지요. 고양이 털 깎아보세요.
그럼 왜 털이 없는가?
원숭이 궁둥이를 보세요. 털 없습니다.
즉 인간의 아름다운 몸은 원숭이 궁둥이에서 이미 방향성이 정해진 것입니다.
원숭이 궁둥이는 발정기 때 부풀어 오르는데
그 때문에 원숭이 엉덩이 빨갛다는 노래가 있지요.
원숭이 엉덩이가 몸 전체로 확장된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성선택이 아니라 원숭이 때 이미 지금의 결과가 예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의 폭주는 인간에 가까운 영장류의 생존확률을 떨어뜨렸고
현생인류의 탄생 이전에는 영장류들이 대개 멸종직전에 와 있었죠.
진화의 오버 때문에 인류는 진작에 멸종할 뻔 했던 것입니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만 겨우 살아남은게 그 때문이지요.
사실 제가 썼던 댓글과는 다른 맥락에서 쓰신 글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글들에 대해서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코끼리의 언밸런스는 오직 진화에 의해서만 밸런스가 잡히니까요.
......공작깃 뿐만 아니라 모든 진화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습니다.
"
-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화석 기록 등으로 이미 백여년전부터 잘 증명되어온 내용이기도 하고, 많은 진화학자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평가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윈이 왜 자연선택 중에서도 성선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가를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고, 복제로서의 진화의 의미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
예컨대 사람의 경우 미인이 선택될 확률이 높지만 생존과는 무관합니다.
만약 생존과 연결된다면 백인만 살아남고 흑인은 없어졌게요?
"
- 아직 명확히 증명되지는 않은 부분이지만, 소위 미모라는 것과 자연선택(성선택)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밀접한 관계를 가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평균 외모가 확인할 수 있는 불과 몇백년 기간 동안에도 계속 변화해왔다는 것이 일부분 이 가정을 보조합니다. 좌우균형 등의 미모 특징들, 특정 신체 비례 등을 신체 발달, 면역성, 다산성 등의 기능들과 연결하는 연구들이 일부 성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백인은 백인 집단에서 성선택으로 선택되고 강조된 특징이고, 흑인은 흑인 집단에서 성선택으로 강조된 특징입니다. 이 과정에는 개체 발달 중 각인이라는 과정을 개입시켜 이해합니다. 실험적으로 갈매기 아종 집단에서 타 집단으로 이주한 개체의 배우자 선택이라는 것으로 증명한, 대중에게도 잘 소개된 예가 있습니다. 현생 인류는 100개체 내외의 씨족 집단을 형성하면서 진화해온 동물입니다. 씨족 집단들마다 각인과 성선택으로 고유의 선호 외모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인류 외모의 다양성이 보존되어올 수 있었습니다. 최근 반 세기 동안의 한국인 집단에서는 서양 문화 중심의 미디어 충격으로 서양인의 외모 기준 또한 각인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인의 외모가 인류 모든 집단에서 미모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
미인만 선택할 경우 오히려 유전적 다양성을 해쳐서 생존확률이 낮아집니다.
화려한 수컷공작만 선택하는 것이 어느 면에서는 생존확률을 낮춥니다.
건강한 유전자를 잃어먹을 확률이 높아지므로.
"
- 유전적 다양성 문제는 왜 일부 생물들이 성분화를 겪었는가, 특히 상대적으로 개체 크기가 크고 수명이 긴 생물들의 성분화 현상이 뚜렷한가에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성선택의 일관성과 유전적 다양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집단 내에서의 성선택이 각인 효과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경향 때문에 몇백만년 동안 코끼리 코가 계속 길어진 것이고, 여러 인류 집단들 사이의 다양한 미모 기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꼬리 큰 수컷 공작들이 더 많은 자손을 남겼기에 장기적으로 꼬리가 더욱 화려해진 것이고 (개체 생존의 한계에 이르게 되면 다른 신체 능력들이 더욱 보강되는 방식으로), 미남 미녀들이 정말 열심히 만났기 때문에 한 인류 집단 내에서 불과 몇백년만에도 특정한 외모 특징들이 강조되는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는 미남 미녀 커플이 꼭 예쁜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닌 것은, 결국 성분화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로 각 개체는 유전적으로 충분히 heterogeneous하기 때문입니다. 각 배우자들이 heterogeneous하게 갖고 있는 유전자 쌍 중에 무작위적으로 반씩들만을 투자하여 또 다른 heterogeneous한 자손 개체를 낳기 때문에 그 유전 표현형은 일시적으로 반대 방향으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전체 집단 규모에서는,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코끼리 코, 공작 꼬리, 인간 미모 등의 특징은 점점 더 강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미 성분화가 이루어진 생물체에서 특정 배우자 선택과 유전적 다양성의 문제는 전혀 다르게 굴러가는 문제입니다. 오직 근친 교배라는 한 요소만이 문제될 뿐입니다. 따라서 자손 수가 적은 생물체들은 근친교배를 피하려는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
그럼 왜 털이 없는가?
......즉 인간의 아름다운 몸은 원숭이 궁둥이에서 이미 방향성이 정해진 것입니다.
......원숭이 엉덩이가 몸 전체로 확장된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성선택이 아니라 원숭이 때 이미 지금의 결과가 예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의 폭주는 인간의 생존확률을 떨어뜨렸고 현생인류의 탄생 이전에는 영장류들이 대개 멸종직전에 와 있었죠.
"
- 처음 듣는 가설이면서, 동시에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체모와 집단 생존 능력의 관련성은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습니다. 현생인류 한참 전인 호모 에렉투스부터 이미 불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런 판단에 한몫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체적인 내용들에 아무런 근거들이 없습니다. 인류가 침팬지와 비슷한 동물로부터 갈라져나와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털이 점진적으로 줄어 들었는지, 더 털이 많아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는지, 더 많은 여러번의 변동을 겪었는지, 일체의 증거들이 없습니다. 오직 지금 현생 인류에 털이 없다는 결과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털의 유무조차도 모르는데, 그것을 원숭이 궁둥이에서 기원한 방향성 등은 너무 많은 도약입니다 (명백한 비과학입니다).
더구나 현생인류 탄생 즈음에 전체적인 인류 계통 종들의 형편이 빙하기라는 환경적 요소를 제외하면 (인간 뿐만 아니라 많은 종들의 형편에 영향주었던)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털이 거의 없는 현생인류가 확장하면서 더 털이 많았을 수도 있는 다른 인류 계통 종들의 멸종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침팬지는 여전히 털이 많지만 아직도 아프리카에만 머물고 있는 반면에, 인간은 그 진화 과정에서 현생 인류 이전에도 여러 차례의 팽창과 축소를 경험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호모 에렉투스는 구대륙의 대부분에 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또한 현생 인류는 아마도 아프리카 시절에 털이 적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지만 (백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종들을 볼 때), 시기적으로 후에 출현한 백인들은 좀 털이 많은 편입니다. 백인의 상대적으로 많은 털들도 당연히 성선택으로 간주하고 있지, 같은 위도에 거주하는 황인들과 비교해볼 때 어떤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전까지 과학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검증 과정에서 점점 오류 사례가 많아지고
최초의 가설이 흔들리다가
그 믿음을 주장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담합하여 대항하고
오류까지 설명할 수 있는 더 명확한 주장이 발견 되면
그 이론이 새 시대의 과학으로 믿어지는 것이라고 어디서 봤습니다.
천동설과 지동설, 만유인력과 만유척력, 상대성 이론 그리고 구조론의 출현이
그러한 연장선 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의 전환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과학도 정치를 하는 투쟁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wson/
이건 뭐 아주 유치한 수준의 논의로 보는데, 하나하나 다 반박하기는 피곤한 일이네요.
진화의 방향성을 분명히 인정해놓고,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털 없는 부분이 확장된 것은 또 성선택 어쩌고 이건 제 말을 이해못한 거죠.
제가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구조적 밸런스 이야기를 했는데, 이 밸런스는 신체가 기우뚱하는 외형의 밸런스 뿐만이 아니라, 유전체 안에 미학적인 밸런스가 있습니다.
파충류의 비늘이 새의 깃털로 변했다면 일제히 깃털로 바뀌는 거죠. 반반씩 절묘하게 나눈다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까. 미학적 밸런스는 유전자 내에서 의사결정이 편하도록 진행하는 경향성입니다.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결혼을했다면, 우성을 선택하고 열성을 도태하는데 어느게 우성이고 어느게 열성이냐를 결정하는 규칙이 있는 거죠. 결정하기 편하도록 결정합니다.
*** 법칙-유전자는 결정하기 편하도록 묶음 단위로 결정한다. 유전자 모듈이 있다.
예컨대 발정기의 원숭이 엉덩이만 통통하다 -> 볼도 통통, 젖가슴도 통통, 허벅지도 통통, 오똑한 콧망울, 입술도 통통, 몸 전체가 다 통통하다. -> 그렇다면 일년내내 발정기여야 한다. -> 그러므로 인류는 발정기가 따로 없다.
이렇게 의사결정을 단순화 해 가는 것이 미학적인 밸런스이며, 인류의 진화는 이 원리에 따라 일어난 것입니다. 즉 인간만이 발정기가 없어진 사실과, 원숭이 엉덩이 법칙이 몸 전체에 의태된 것이 같은 하나의 규칙이란 말이지요.
엉덩이 따로, 뺨 따로, 발정기 따로, 젖가슴 따로, 입술 따로, 털 따로, 콧망울 따로 가는게 아니고, 발정기 원숭이 엉덩이가 곧 통통한 젖가슴, 통통한 뺨, 없는 털, 두툼한 입술, 오똑한 코로 동시에 전개되는 겁니다. 하나씩 따로 진화하는게 아니라 묶음 단위로 진화하는 거죠. 그게 우성과 열성 중에서 결정하기 편하니까.
성선택에 따라 흑인은 두툼한 입술을 성선택하고 백인은 얇은 입술을 성선택? 천만에. 요즘 백인들 입술 성형이 대유행입니다.
코끼리의 큰 귀와, 큰 상아와, 큰 코와, 굵은 다리는 하나의 세트입니다. 묶음 단위, 모듈 단위로 진화하므로 코만 길다거나, 상아만 길다거나, 귀만 큰 코끼리는 없어요. 그런건 도태된게 아니라 애초에 있을 수 없습니다. 구조적인 언밸런스를 유발하니까. 언밸런스는 유전체 내에서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니까.
예컨대 흑인, 백인, 황인이 각각 자기집단의 선호기준을 발달시켜왔다는건 말도 안 되는 소리구요. 최근에 모든 인종은 미적 기준이 완전히 같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흑인, 백인, 황인을 섞어버리는 것이며 그 결과는 베네수엘라 미인이고, 이건 미인대회에서 입증된 겁니다.(흑인은 검은 피부를 좋아한다? 천만에!)
다시 말해서 인종마다 다른 선택을 한게 아니라 모든 인종이 기준이 같고, 인종마다 다른 것은 격리설이 적용되어서이며, 일본인이 못생긴 이유는 일본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고, (유럽 백인 중에 러시아 시골사람이 못생겼는데 봉건제도가 오래 유지되어 거주이전 자유 없었음,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미인이 많은데 동양인과 섞임, 중국 위구르 미인도 유명, 중국 시안에 미인이 많은데 수천년 전에 수도라서 미인을 불러모았다는 말이 있는데 개소리고 서양인과 혼혈이 있음, 궁녀들은 결혼 안하므로 미녀라도 유전자 안 남김. 여진족과 섞인 북한의 국경지역 강계, 회령미인이 유명하고 일본도 서쪽으로 갈수록 미인이 많음.)
유전자가 섞이면 무조건 미남이 되며, 유전자 거리가 먼 파트너를 선택한다는 건 입증된 거고 최근에 많이 신문에 나왔어요. 신문 정도는 챙겨보실텐데. 미남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파트너는 무조건 본적없는 낯선사람에게 끌립니다. 이거 한 두번 언론에 나온게 아니에요.
일본 북해도 아이누족 원주민이 털이 많기로 유명한데 성선택 아닙니다. 반대로 추운지역이라 옷을 입고 있으니 성선택을 할 수가 없지요. 흑인은 더우니 옷을 입지 않고 따라서 거시기가 눈에 보이고 보이니 선택할 수 있는데 추운지역에서 옷을 벗지 않으면 안보이는데 뭘 선택합니까? 털 많은 사람이 추위에 강해서 추운지역에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백인이 입술이 얇은 이유는 백인의 미적 기준이 얇은 입술이라서가 아니라 추운지역에서 체온절약이 목적입니다. 즉 추운지역에서 많은 털, 두터운 지방, 좁은 코, 얇은 입술이 하나의 모듈이라서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래서 흑인은 수영을 못합니다. 수영 못하는 흑인을 선택한게 아니고 더운 지역에서 체온을 낮추려고 피하지방을 제거하다보니 물에 가라앉는 거죠. 이 또한 모듈이라서 어쩔 수 없구요. 흑인의 없는 털, 두터운 입술, 넓은 코, 없는 피부지방은 모두 더운 지역에서 체온을 낮추는 하나의 모듈입니다. 성선택? 천만에. 모듈이라서 그것만 따로 분리하여 선택한다는게 애초에 불가능해요.
*** 인간진화모듈- 두터운 엉덩이, 두터운 젖가슴, 두터운 뺨, 두터운 입술, 오똑한 콧날, 없는 털
*** 백인추위모듈-좁은 콧날, 얇은 입술, 많은 털, 많은 피하지방, 신체 전체에 고루 찌는 살, 적은 땀구멍
*** 흑인더위모듈-넓은 콧날, 두터운 입술, 적은 털, 없는 피하지방, 엉덩이에만 몰아주는 살(호텐톳). 많은 땀구멍.
이들은 개별적으로 진화하는게 아니라 묶음 단위로 진화하므로 성선택의 여지가 없음. 겉으로는 여러 외형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유전체 안에서 방아쇠는 딱 하나임. 유전자 하나만 바꿔도 아주 많은 변화가 일어남.
'특정 형질의 진화 방향성'은 과연 어떤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진화 방향성이란 진화의 현상이나 결과물일 뿐이지 그 자체로 자기 완결적인 1차적 원인 동력은 아닙니다. 특정 경우에 다른 진화 현상의 기반이 되는 2,3차적 원리로는 해석할 수 있어도요. 설마 진화 방향성을 진화의 기본 내재 원리로까지 생각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
여러 가지를 강변하고 계시니 그대로 말 따라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싶고, 조금 다르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저 진화 방향성은 진화 과정 중에 어떤 방식으로 강화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먼저 말씀드렸다시피, 진화란 원래부터 이렇고 저런 것이다...라는 계시같은 전제 논리는 빼고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유전체 안의 미학적 밸런스란 'sexy'한 제목의 현상은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설마 유전자들이 무슨 생각이라도 할 줄 알아서 피곤하고 안피곤하고를 따진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실테고, 도대체 유전자 발현의 효율성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성질들이 더 효율이 높다고 결정되고 걸려지는 것일까요?
하나, 혹은 단기간의 변이가 여러 주목할만한 형질의 묶음 단위 모듈 진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즉 김동렬님 말씀하시는 "모듈 진화"라는 것의 동력은 또 어디서 확보되는 것일까요? 연관된 문제로서, 모듈 진화의 유효한 모듈 단위는 실제적인 진화 과정에서 어떤 수위에서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 김동렬님께서 말하는 진화 모듈의 현실적으로 (그리고 진화상 의미로) 존재하는 실체가 무엇인가요?
"여러 주목할만한 형질의 (시간상 선후관계를 무시한) 묶음 단위 진화"로서의 모듈 진화는 사실 다양한 진화 수위와 단계에서 여러 사례가 발견되고 분석되어 오래 전부터 잘 정착되어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제각기 다양한 이름들을 사용해왔지만, 모뮬 진화라는 이 이름은 한글 표현으로는 입에 착 잘 감깁니다), 이것은 일부분에 한하여 의미있을 뿐입니다. 특정 진화 수위나 단계로 한정하여 본다고 해도, 모든 의미있는 진화가 소위 모듈 진화 양식으로 번역되지는 않습니다.
조금만 유추해보신다면, 소위 진화학이라는 방대하다면 방대할 수 있는 학문의 기저 논리들이 정말로 매우 기초적이며 간단한 사유들 외에 별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혹은 희망합니다.
(따지고 보자면, 그토록 다양하고 또한 기상천외한 생명 현상들까지도 담보하고 있는 유전 정보라는 것도 사실상 불과 네 가지 밖에 안되는 nucleotides의 다양한 조합일 따름이지요?)
------------------
그리고 이건 정말 말꼬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 김동렬님 글들을 읽으면서 혼란스럽고 어려워하는 두 가지 문제점(?)을 이 글에 빗대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용어의 문제입니다. 사소할 수는 있지만 혼란을 일으킬 위험이 충분한 잘못된(혹은 맞지않는) 용어 사용은 되도록이면 피했으면 합니다. 이 글에서는 가장 먼저 우성,열성 문제를 보았습니다. 멘델 시절의 유전학부터 우성과 열성은 그 유전자 발현 자체에서도 가치중립적이었지만 자연선택과도 전혀 관계가 없는 성질로 정의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dominant, recessive를 우,열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무래도 적절치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우성/열성은 오직 두 allele의 heterozygote에서 어느 쪽이 발현되는가'만'을 따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교재에서도 그렇게 적혀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한 allele은 기능이 살아있고, 다른 allele은 기능이 죽거나 약화되었다면, 살아있는 기능의 allele만이 표현 형질로 나타나고, 이때 이 표현형으로 발현되는 유전형을 우성이라고 합니다. 죽어있거나 안성맞춤으로 약화된 allele이 homozygous 상태에서 표현된다면 오히려 자연선택에서 더 유리할 수 있는 경우에도 그 allele은 여전히 열성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자연선택 과정으로 열성 allele의 집단 내 frequency가 증가하지만요.
두번째는 논리 도약의 부분입니다. 이 글에서는 인간의 체모 상실과 발정기 상실 문제까지 가정하고 계시는군요. 단언컨대 아무런 현실적 근거 없이 상상하는 것은 가설조차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인간의 체모가 먼저 사라졌을지, 아니면 발정기가 먼저 없어졌을지, 등이라도 알고계신 바가 있으십니까? 인간의 발정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가설들이 있어왔지만, 체모 문제는 누군가 상상해봤을 망정 아무런 관련 근거들이 없기 때문에 (주로 체모 흔적은 화석에 남지 않았던 이유로) 그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관련성은 단지 상상에 머무를 뿐입니다.
이런 식의 대응은
'넌 학자 아니니까 빠져' 하는 식의 배척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는 구조론 사이트이고
따라서 구조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구조론을 모르는 분과는 어차피 대화가 한정됩니다.
구조론 안에서 위 제기하신 부분은 예전에 다 이야기된 것입니다.
모듈진화는 구조론의 기본개념입니다.
비단 생물의 진화 뿐 아니라 조직의 진화, 정치의 진화, 자본의 진화, 언어의 진화,
물질의 진화에 이르기까지 두루 공통되는 효율성 추구원리이며
그 이유는 에너지 공급루트의 확보 원리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변이는 그 변이를 위한 동력을 필요로 하며
그 동력은 오직 에너지 공급의 효율성에 의해서만 달성되고
모듈화는 에너지 공급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므로
모든 진화는 딱 하나의 원리,
곧 에너지 공급의 효율성이 증대하는 모듈형태로만 일어나게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구조론 사이트에 와서
'난 구조론을 모르므로 당신의 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대응은 잘못이지요.
*** 동력없는 변이, 변화, 진보, 발전, 진화는 없다.(왜? 동력이 없으니까.)
*** 동력공급은 오로지 구조적인 효율성의 증대라는 하나의 방법으로만 일어난다.
***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은 오직 모듈화 뿐이다.
*** 이 법칙은 우주 안의 모든 변화, 발전, 성장, 진화, 진보에 보편적으로 해당된다.
*** 생명의 진화는 유전체 안에서의 의사결정에 의해 일어나며, 의사결정은 밸런스 원리의 지배를 받고, 밸런스에 도달하는 방법은 모듈화 밖에 없다.(밸런스는 대상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
예컨대 두 손, 두 발, 두 콧구멍, 두 귀, 두 눈으로
대개 짝이 있는 것은 그게 더 뇌가 통제하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쌍이 있어야 밸런스에 도달하기 쉽고, 밸런스가 잡히면 작은 힘으로 대상을 통제할 수 있고
그 때문에 모듈화 된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감상하고 자연이 아름답다며 감탄하는 이유는
인간의 뇌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시각정보를 더 통제하기 편하다는 것입니다.
생물이 에일리언처럼 괴상망칙하게 생겼다면
뇌가 인지하기 불편하고 따라서 몹시 괴로우며 그것이 추한 거죠.
(눈이 촛점을 못 잡으면 멀미를 일으킴. 그게 징그러운 것. 역겨운 것.
역겹다는 말은 오바이트 한다는 거. 오바이트 하는 이유는 뇌의 멀미 때문.)
왜 생물은 아름다운가?
외부환경과 충돌하여 서로 상대방을 통제하려고 하는데
이때 통제하기 편한 쪽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듈화를 한 거죠.
통제하기 편하다는 것은 에너지를 적게 투입하고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거죠.
미녀 - 한번 보고 인지할 수 있다.
추녀 - 여러번 봐야 어디가 눈이고 코인지 알 수 있다.
미녀는 인지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적고
추녀는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으므로 에너지가 많이 소비됨.
인간이 시간이 맞지 않는 시계, 글자를 쓸 수 없는 볼펜, 전화를 걸 수 없는 전화기
따위 쓸데없는 것을 발명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뻘짓에 돈을 댈 인간이 없기 때문이죠.
돈은 효율성을 따라가고 효율성은 주로 의사결정의 효율성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번거러운 절차를 단축시키는 형태로 전개되고
그러한 절차의 단축은 다만 밸런스를 통한 모듈화에 의해 달성되고 그게 구조론이죠.
양의 밸런스는 운동으로 모듈화
운동의 밸런스는 힙으로 모듈화
힘의 밸런스는 입자로 모듈화
입자의 밸런스는 질(밀도)로 모듈화 한다는 것이 구조론입니다.
제 기본적인 자세 또한 '도대체 구조론이 무엇인가' 이해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냥 말 그대로는 말 따라 읽히기는 한데, 그 현실적 의미를 깨닫기는 어려워서 답답하고 곤란해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잘 모르는 정치, 사회적으로는 비슷하게 보이는데, 몇 가지 얘기에서 나오는 과학 관련 사례들에 대해서는)
'과학의 언어' 비판(?)에 관한 이 글에 대해서도, 제가 처음부터 한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김동렬님이 강조하신 자기 완결적인 구조의 과학 정립'만'이 반드시 의미있는 것은 아니라는 예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기초 논리학 외에 소위 과학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된 그 어떤 환원주의적 이론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만큼이나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강조한 것).
그리고 그 뒤에는 현재 과학적 사고관으로는 몇 가지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서 답변하였습니다.
제가 무슨 걸맞지도 않는 배척이나 잘난 체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다만 희망이 있다면,
예를 들자면, 구조론 아카데미 게시판 구조론 응용 쪽으로 다섯 가지 영역 중에서 진화학 부분을 열어놓으셨는데 (아직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진화학 관련 부분을 구조론 이론을 확장하는데 효율적이고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는 반증일 듯 싶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그 중요성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진화학 영역에서 구조론 이론을 확장하자면 어느 정도는 현재 진화학의 긍정적 성과 정도는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사자가 물로 들어가 고래가 되었다고 그게 물고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자의 원리를 물에서도 적용하려면 먼저 고래가 지느러미를 장착해야 하듯이, 김동렬님도 현재 진화학의 핵심 원리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타겟을 잡으셨으면 싶습니다. 참고로 신문 기사나 뉴톤같은 가십성 잡지의 신뢰도는 아예 바닥으로 보시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자들의 수준이 (원색적인 표현으로) 얼마나 '저열'한지는 경험하실만큼 하셨을터인데. 차라리 구글링으로 바늘 찾기하는 것이 낫지요.
진화학 영역은 제 전공과도 약간 관련있는 터라, 제 희망은 구조론식 방법론의 적용으로 진화학이라는 학문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현재 진화학으로부터 배울 부분은 구조론이 적극적으로 반영하였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말씀이나 큰 맥락에서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구조론이 시도하는 분야는 많고 그 중에 하나만 성과를 내도 나머지 분야도 다 받아들여질거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되면 조만간 제가 권위를 얻게 되고 피곤한 논쟁할 일이 없어질걸로 믿습니다.
하여간 구조론은
모듈화와 그 모듈화를 가능케 하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으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 모듈화가 어떤 시간적 순서와 공간적 방향으로 전개되는지 해명하는 이론입니다.
막연하게 모듈이 아니라
모듈이 뭔지 그 자체에 대한 명석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모듈이 그냥 덩어리가 아니에요.
거기에 구조적인 필연성이 있는 겁니다.
그 외의 모든 방향으로의 진출가능성이 다 차단되어 있다는 거죠.
길은 오직 외길입니다.
모듈화는 절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비가역성이 있다는 거죠.
어떤 상황에서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서울에서 부산 가는 길이 천가지 만가지 있을 거 같지만
비용 10만원으로 1시간 안에 가는 길은 비행기 타고 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굉장히 많은 코스가 있는데 이 코스로 가려면 사전에 뭐를 해야 하고
저 코스로 가려면 또 뭐를 해야하고 등등 전제조건이 있으므로
실제로는 길이 딱 하나 밖에 없어요.
그 효율성은 에너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모든 진화와 발전은 구조적 작동의 의사결정의 단계를 단축시켜서
에너지 작용의 효율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럼 그것이 구체적으로
생물의 진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생물학자가 알아서 연구할 일이고
'너는 용어를 모르잖냐'는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여기서 주인공은 구조론이니까
그런 지엽적인 문제는 구조론을 이해하면 저절로 해소됩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구조론의 모듈화 개념을 적용해서
인간이 처음부터 직립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다는 거죠.
제가 30년 전에 1초만에 알아낸 사실을 과학자들은 요즘 화석으로 증명하고 있죠.
근데 아직도 그걸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고.
그러므로 구조론의 효용성은 상당부분 이미 입증된 것이고
관심이 있으면 구조론을 공부해서 진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되는 거고.
제가 인간은 처음부터 직립했다고 30년 전부터 말해왔는데
'화석이나 파와서 큰소리치셔.' <- 이건 아니죠.(말하자면 그렇다는 식)
모든 위대한 업적들도 처음에는 변방에서의 작은 하나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습니다.
이게 다 제가 학자의 권위가 없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막 본궤도에 오르려고 하는 판인데
그 일이 성과를 내면 이런 피곤한 논쟁은 없어지겠죠.
하여간 생물학 분야는 그렇다 치고
저의 정치칼럼에 관심을 가졌다면 조금 말이 통하겠다 싶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정치이야기를 곧잘 하지만 뭐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거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정치에 관한 글을 쓰는데 들이는 에너지-10시간
제가 정치에 관한 글을 쓰는데 들이는 에너지 - 30분
제가 더 효율적이라는 거죠.
왜? 시간과 노력이 덜 드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효율성을 얻을 수 있는가?
인간들은 옳다/그르다로 판단하는게 아니고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불가능하다로 판단하며 제가 그것을 알기 때문이죠.
여당이 어떻게 하는지 야당이 어떻게 하는지 알아내려면
어느 쪽이 결정하기 쉬운가를 보면 1초만에 답이 나오는 겁니다.
유시민이 옳다/그르다 이거 판단하는데 드는 시간 10시간
옳든 그르든 당분간 태풍의 눈 유시민 중심으로 정국이 전개된다 이거 판단하는데 1초
이런 구조로 보면 답이 나온다는 거죠.
인간들은 단지 결정하기 쉬운 쪽으로 결정할 뿐입니다.
히틀러가 옳다가 아니라
히틀러가 옳은 것으로 쳐주자고 결정하기가 더 의사결정비용이 적게 들었다는 거죠.
생물의 진화도 마찬가지, 결정하기 쉬운 쪽으로 결정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위하여 진화한게 아니라 의하여.. 그 의하여는 에너지, 의사결정 에너지가 덜 드는 쪽으로 움직인 거.
유전적 설계가 효율적인 방향으로 모듈화 한 거.
설마 유전자들이 무슨 생각이라도 할 줄 알아서 피곤하고 안피곤하고를 따진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실테고, 도대체 유전자 발현의 효율성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성질들이 더 효율이 높다고 결정되고 걸려지는 것일까요? <- 구조론에 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비가역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거죠.
^^;..얘기를 하기가 조금은 뭐하기도 하지만...
인간도 발정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이 일년내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발정기 주기가 한달이나 한달이내 간격으로 짧은 기간에 연달아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여성의 경우 생리에 맞춰서 일어난다고 생각되고, 남자의 경우는 남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남자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것의 강도가 호르몬의 분비 때문에 더 세게 일어나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차이라고 생각되며,
또한 이것의 조율이 없이는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에 부적합하기에 스스로 통제라는 것을 한다는 것일거구요.
단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여성이 한달에 한 번 (사람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의 생리를 하는 경우는 그만큼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기도 하고, 확률을 높인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됩니다.
남성의 발정기가 일년내내라고 생각되는 것은 여성이 한달에 한번 생리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고, 그리고 운 좋으면 임신에 성공하기에 확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남성은 자신의 혹은 인간이라는 종족을 남기는 것에 주안점이 있다면, 여성은 우수한 종족을 보존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과 같아서, 남성은 발정기가 그렇게 세팅이 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인간 사회가 시스템화되다보니 어느정도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져 서로 차지할려고 전쟁을 하지는 않지만, 연애기간은 전쟁과도 같은 것이니 서로 눈에 들기 위해서 애를 쓴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구조론의 진화론에 관한 부분은 구조론에서 얘기하는 미학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한 구조론의 언어가 일반적인 언어의 의미와 다른 것이 아니지만, 그 언어의 본래의 의미, 생성의 의미를 따른다고 생각되므로, 언어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사고가 구조론 틀로 바뀌어야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이며, 또한 언어 자체는 자연이 움직이는 혹은 가는 형태를 본딴 것이라 생각되기에 여기에는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깨달음이 비과학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과학에서는 깨달음을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 역시 깨달음이라고 정의하는 것 같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결과가 보일 뿐일이기에, 인간은 인식을 통해서 결과를 먼저 접하고 존재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귀납의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사고를 연역적으로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은 인식하고 자연은 연역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인간의 인식함에 오류가 생기기 때문에 그 오류를 바로 잡으려면 자연과 같은 방식인 연역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를 인간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니까요. 시작에서부터 먼저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나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방향을 정하거나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구조론과 관계없이, 제가 들은 것들만 조금 얘기해보자면,
발정기의 행동학적 정의는 암컷의 가임 가능 기간의 표시입니다. 당연히 수컷과의 효율적인 교미를 위해서요. 인간의 경우는 여성의 생리 현상은 알 수 있어도 언제가 가임 최적 시기(배란기)인지는 남성의 입장에서는 판단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 사정과는 대조되는 것이 침팬지의 발정기입니다. 인간은 현존하는 침팬지와 거의 다를 바가 없는 동물에서 진화해나온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즉 침팬지는 인간이 진화하는 동안 그대로 밀림에 남아 몇백만년 동안 진화적으로 잘 보존된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침팬지 암컷은 가임 기간 동안 생식기가 크게 부풀어 오르고 붉게 표시됨으로서 같은 집단 내의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침팬지의 발정기와 너무나 대조되기 때문에 인간의 발정기(배란기)는 진화 과정에서 은폐되었다...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교미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위험한 일이므로 교미에 소모되는 자원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진화 전략들이 발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교미의 효율성 추구가 암컷이 유용한 수컷들을 골라내기 위한 전략들보다는 우선될 수 없고요. 때문에 많은 동물들은 특정 시기를 택해 교미를 하는 특정 교미 기간이 있거나, 집단 생활을 하는 동물 중 일부는 발정기라는 형태로 임신 가능 기간에 맞춰 위험한 교미를 재빨리 해치웁니다. 그런데 침팬지의 교미 혹은 섹스는 다른 동물의 교미와는 크게 달라서 임신만이 목적이 아니라는데 곤란함이 있습니다. 침팬지는 가임 기간 외에 평상시에도 유희와 사교를 위해 섹스를 하며, 먹이 등을 얻기 위한 보상을 위한 섹스도, 심지어 발정기가 아닐 때 젊은 남녀 커플 둘이서만 집단에서 떨어져나와 며칠씩 허니문 여행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암컷의 발정기가 되면 이 때 암컷과 교미할 수 있는 상대는 집단의 최고 권력자 수컷으로 한정됩니다 (최고 권력자 수컷은 발정기의 암컷을 따라다니며 그 기간 내내 집중관리합니다).
인간 여성의 발정기가 없어진 것에는 누구 표현대로 백 사람의 백 가지 가설이 있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많이 받아들여진 얘기는 남녀가 구분 생활을 하는 인간 집단에서 남성 동맹체(?)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거나, 혹은 자녀 양육을 위해 많은 부분을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발정기와 관계없는 섹스로서 남성을 묶어두기 위한 전략이라는, 다소 남성주의적 해석들이 있습니다. 반대편의 극단적인 여성주의적 주장들도 여럿 있으나 언급할만한 가치는 적습니다. 하지만 하나 의미있는 것은, 인간에게서 동거 남성과 다른 남성의 아이를 낳는 비율이 집단 생활을 하는 바다 새들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간 여성의 간통 전략으로 배란기가 은폐되었다...라는 참신한 해석도 있습니다 (배란 시기에 동거 남성의 집중적인 감시를 피해야 한다는 문제 외에도 간통 남성을 유혹해야 한다는 이유로도 배란기 은폐가 유리).
다른 종류의 해석으로, 인간 유아의 양육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고, 농경 사회 이전 인간 여성의 임신 터울이 3-5년으로 길다는 관측 결과와 함께, 배란기 은폐 문제는 결국 인간 유아의 효율적 양육을 위한 임신 주기 조절로 해석하는 것도 있습니다. 침팬지와 비교해볼 때 인간 남성의 성기는 크지만 정소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것도 한 근거입니다. 이런 침팬지와의 비교에서 좀 더 나아가, 침팬지의 발정기는 비슷한 위치의 다른 유인원류와 비교해서도 매우 두드러진 편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침팬지 암컷의 두드러진 발정기는 결국 집단 최고 권력자 수컷의 독점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자녀 양육을 위한) 일부일처제 조건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여성의 배란기 노출은 결국 일부일처제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이는 여성의 자녀 양육을 곤란하게 할 것입니다 (침팬지는 암컷이 혼자서도 충분히 새끼를 키우지만, 인간 여성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밖에도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보다 더 설득력 높은 해설들은 알지 못함.
도덕적인 문제를 피한다면, 남성 중심적 집단 형성과 느슨한 일부일처제 조건에서 인간 여성의 간통 전략으로서의 배란기 은폐는 가장 효율적인 진화 전략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고, 다른 동물의 예와도 비교한 결과가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녀 양육의 최적 조건(일부일처제 유지 등)을 위한 배란기 은폐 또한 충분한 가능성이 있지만, 간접적으로라도 증명해보이기 어려운 해석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 발정기/배란기 문제에 대한 진화학적 논의는 아마 이 정도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아직 거의 주먹구구식이죠.
^^;....
아마도 인간은 사회를 통해 형성된 것도 있겠지요.
간통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래는 합리화 하기 위해서가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에...
현재 사회는 짝이 정해져 있는 일부일처제 형식을 이루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또 다르다고 봅니다.그러나 이성으로 그것을 억제하기도 하구요.
그러므로 남자든 여자든 서로 이성에게 끌리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반드시 배우자에 한정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고, 단지 억제하는 것이라고 보구요. 그 억제제로서 심리적인 사랑의 감정과 이성으로 판단하는 도덕적 균형도 작용한다고 생각되구요. 교육을 받는 이유가 그것이고, 사회의 룰을 익히는 이유도 그것이겠지요.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혼선이 생기는 것이고, 일종의 인간사회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즉 폭주의 우려가 있는 것을 현대 사회에서 제동을 걸고 봉인을 해 놓은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반드시 현대사회에 맞춰서 그 원인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보입니다.
또한 여성은 신체나이에 따라서 가임 기간이 정해지지만, 남자는 태아를 뱃속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사냥질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구요. 남자라는 성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현상중에 하나라고 생각됩니다.ㅋㅋ
또한 가임기간에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상은 여성도 본능적으로 마음에 드는 혹은 종족보존에 적합한 대상을 찾아나서는 그 속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도 되구요. 결국 남자나 여자나 더 많은 더 나은 종족을 남기고자 하는 본능은 같다고 생각되고, 그것이 발정기간이 주기가 짧아서 계속되는 것이라고 보이며, 그것이 집단 사회속에서 유희로 발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결국 이것을 상업화하기도 하고, 인간이 그 점 때문에 조금은 존엄성을 상실하는 측면도 있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성에 대한 진화행동학적 해석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시다면,
한국말로 된 자료들 중에서는 다음 책들을 권합니다.
http://www.yes24.com/24/goods/37976 (악마 같은 남성)
http://www.yes24.com/24/goods/1817157?scode=032&OzSrank=1 (내 안의 유인원)
모두 번역서이고, 아래 책은 번역도 훌륭한 편입니다.
위 책(악마 같은 남성)은 유효기간이 거의 다 됐고, 아래 책(내 안의 유인원)은 앞으로 5년 정도는 거의 유효할 것입니다.
과학 서적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은 유인원류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면서 기존의 해석들도 새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 같은 남성"의 경우 (원제, demonic males: origin of human violence, 90년대 중반 출간), 현재 약 1/3 정도는 다시 써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다 됐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저자가 editing 판을 새로 낼 의사가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과학은 기본적으로 도그마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새로운 사실들의 발견이 축적되었을 때 이에 따른 변화에 큰 저항없이 수용하는 입장입니다.
그 옛날 다윈조차도 그가 죽을 때까지 '종의 기원'을 20번이 넘게 수정판을 출간하였습니다 (대중들이 새로운 수정판들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는 상관없이).
물론 모든 과학자들의 태도가 겸손하고 수용적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 과학자들의 총합인 과학계의 태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대중의 입장에서는 약간 화가 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도대체 과학이란 것이 왜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꾸는거야!),
소위 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의 발견에 책임을 다하는 것을 대중의 평균적 인식에 대해 책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후자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전자의 책임)을 다하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때문에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또한 수없이 많은 ( )를 양산하는 것과 함께 갑니다. of, by, for 중에서 하나, 혹은 둘이 빠진 결과들도 부지기수이고, 그나마 마지막 하나 남은 것도 '된다'가 아니고 '안된다'라는 내용인 것도 비일비재합니다.
소위 과학 논문들은 그 결과들을 적는 것 외에서 이 ( )들을 확실하게 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의무입니다.
때문에 과학 논문들은 원칙적으로 충분한 시간이 지났을 때 부족한 논문이 되는 것에 그치지만,
하지만 대중적 과학 서적은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대중적 해설까지 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잘못된 내용의 책이 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오류가 없는 과학 서적은 아직까지도 수학 정도뿐이라고 생각하시면 대강 맞을 것입니다.
하여간 구조론으로 보면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와 평지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지금처럼 발정기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먹이를 구하여 생존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침팬지는 천적을 만나면 나무 위로 피하면 되고, 고릴라는 덩치라도 크니 맞상대하면 되고, 인간은 가족의 협력없이 생존이 불가능 하지요. 영장류 조상은 원래 나무 위에서 생활하도록 세팅된 구조.. 나무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
고양이는 사냥능력이 있기 때문에 단독생활. 개는 사냥능력이 약하므로 집단사냥. 개는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심으로 집단생활을 하는데 인간은 그게 아니죠. 왜냐하면 인간은 채집경제이므로 구더기 개구리 올챙이 지렁이 잡아먹고 사는데 충성심 불필요. 각자 자기 먹거리 채집하는 거. 가족을 결속할 수단이 필요한 거죠.
이러한 인간의 생존방식은 나무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전반적으로 세팅된 것입니다. 그때 이미 털이 없어지고 뺨과 엉덩이와 가슴과 입술이 의태되고 동시에 일어난 거죠. 물론 미세한 조정은 있었겠지만. 그러한 거대한 진화가 어떻게 한 순간에 일어나느냐고 항변하겠지만, 구조의 모듈개념으로 보면 작은 진화가 여러번 일어나는게 더 이상합니다. 작은 진화가 잦으면 유전적 안정성이 떨어져서 기형아 탄생 등으로 죽습니다.
기존의 잘못된 과학 - 작은 진화가 축적되어 큰 진화가 되었다.
구조론으로 본 진화 - 큰 진화 이후 불안정한 종이 차츰 안정되어 갔다.(종의 안정화 과정을 학계는 진화로 착각함. 진화에 관한 다양한 설은 대부분 그 안정화 과정을 설명할 뿐.)
근데 상식적으로 봐도 작은 것을 모아서 큰것을 만들기는 어렵고 큰 것을 하기가 더 쉽습니다. 티끌모아 태산된 부자 없고 다들 부동산 투기 한 방으로 부자된 것입니다. 구조는 하나를 건드리면 연쇄적으로 다 탈이 나므로 진화는 드물게 큰거 한방으로 일어납니다.
최근 학계에서도 이런 말 있는거 같던데 생명이 약 오억년전부터 진화를 본격화 해서 몇 차례의 대진화와 그 중간의 소강상태가 있었다고. 화석을 발굴해보면 그렇게 나옵니다. 그리고 저는 30년 전부터 이렇게 말해왔고. 작은 진화가 계속 축적된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합니다. 종은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안정화 시키는게 중요한데 진화라고 말하는게 실제로는 안정화 과정이고 이러한 안정화는 진화와 모순되니까요. 즉 진화를 되도록 안하는게 가장 중요한 생존전략이라는 거죠.
컴퓨터 프로그램도 도스에서 윈도로 단번에 비약했지 도스에 패치가 붙어서 그게 축적되어 윈도가 된게 아니죠. 그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죠. 작은 진화를 축적하려면 밑돌을 빼야 하는데 한번 박힌 밑돌이 안빠져서 안 되거든요. 즉 기존의 진화가 새로운 진화를 방해한다는 거죠.
구조론으로 보면 혁명은 도리어 쉽고 개혁은 오히려 어렵습니다. 모듈단위로 일어나니까요. 개혁이 쉽다면 그건 이미 큰 줄거리에서의 방향성이 정해지고 난 다음입니다.
먼저 김동렬님의 이 글은 글 자체로 (일정 한계로 한정하여)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조금 다르게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리처드 도킨슨이라는 위대한 지성 덕분에 대중에게도 잘 소개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이다. (혹은 그런 목적으로 진화하였다.)
of와 by는 없고 for만 있습니다. 김동렬님 말씀대로 아직 과학(?)이 아니고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이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of와 by는 안하고 for만 증명합니다.
수컷 공작의 꼬리들을 일일이 측정해서 수치화시키고, 어떤 꼬리들이 얼마나 많은 암컷들과 교미하는지 관찰합니다. 관찰 개체수가 백 단위 정도를 넘어가면 통계적으로 분석합니다. 꼬리가 크고 화려한 수컷들이 평균적으로 더 많은 암컷들과의 교미에 성공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위 연구자들이 고개를 끄떡이고 증명된 관측 사실로 인정합니다. 과학적 연구 결과의 하나로 인정됩니다.
-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이다.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동렬님 말씀대로 이것의 확장 결과가 부족합니다.
모든 새들의 수컷은 화려한 외양으로 암컷을 유혹하는가?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암컷 유혹하는 전략이 꼭 화려한 외양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화려한 목소리(지저귐, mating song)는 어떤가? 사례를 찾아 증명합니다. 수컷, 암컷의 외양이 비슷하고 교미 기간 동안 열심히 지저궈대는 새를 찾아, mating song의 frequency와 magnitude를 분석합니다. 교미에 성공하는 패턴을 발견합니다. 과연 그렇다!
냄새는 어떤가? 둥지 만드는 능력은 어떤가? 인간이 보기에는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새들 사이에서는 주목할만한 특별한 신체적 특징들, 가령 새끼 발가락 길이나 휘어진 정도 따위는 어떤가? 사례들을 찾아 교미에 성공하는 정도와 각각의 냄새, 둥지 크기, 새끼 발가락 길이와 각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줍니다.
모두 for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들로 간주합니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다시 공작으로 돌아와서, 공작은 숲 속에 사는데 그렇게 큰 꼬리를 갖고 다니다가 잡혀먹히기 쉽지 않을까? 의심합니다. (다른 사례에서도, 목소리가 유난히 크면 솔개 등의 포식자에게 잡히기 쉽지 않을까? 열심히 울다가 기력이 다해서 중요한 교미할 체력까지 소모하면 어떡하지?)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왜 암컷들은 큰 꼬리의 수컷에 매력을 느낄까? 혹시 수컷의 큰 꼬리는 어쩌면 '나는 이렇게 큰 꼬리를 갖고도 숲 속에서 여우(?)에게 쫓기면서 안잡히고 잘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라는 것을 암컷들에게 과시해보이는 것은 아닐까? 일명 핸디캡 이론의 탄생입니다.
다시 검증해봅니다. 꼬리가 큰 수컷 공작의 신체적 능력들을 측정해봅니다.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내용을 다시 확장합니다.
왜 남자들은 쓸데없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무모한 점프를 해보이는가? 술 잘 마시고, 담배 많이 피워대고, 무모한 위험들을 즐겨도 여전히 쌩쌩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인기있는가? 값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해주는 남자에 매력을 느끼는 여자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흥청망청하고도 재산이 남아도는 남자의 부'를 계산하고 있는 것인가?
여전히 부족한 of와 by입니다.
(물론 genetic expression이라는 최소한의 of와 자연선택(구체적으로 성선택)이라는 최소한의 by는 이미 전제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서 리처드 도킨슨같은 지성은 다시 대중에게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for만을 남긴 방식으로 되풀이합니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이다." (하나의 비유 예입니다.)
많은 부족한 of와 by에도 불구하고 이 for들의 나열들은 모두 과학적 가설, 과학적 실험 검증과 사고 결과들로 받아들여집니다.
그것은 과학의 논리가 어떤 특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초등학생조차도 납득할 수 있는' 기초 논리에만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침술은 그 구체적 원인 과정들이 불명확해도 그 성과들에 의하여 의학의 한 분야로 받아들여집니다. (물론 발바닥 눈 자극점에 침을 찔러, 시신경이 접속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보여준 논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또한 그 침이 어떻게 특정 뇌 부위를 활성화시켰는지 그 과정은 여전히 모릅니다.)
ABO 혈액형과 성격 구분 사이의 뚜렷한 상관관계를 누군가 보여준다면, 그 of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해도 과학적 (통계학적) 사실로 간주됩니다.
한의학이 아직 과학이 아닌 가장 큰 이유는 오직 그 병증과 한의학적 치료 사이의 상관관계가 엄밀한 통계학적 의미로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한의학계의 필사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양의학은 대체로 과학적이라고 대중에게 어필되고 있죠? of가 생략된 의학 치료가 절반 이상입니다. 단순히 통계학적으로 의미있기 때문에, 즉 이걸 했더니, 뭔가를 먹였더니, 어떻게 되더라, 이게 과학적으로 받여들여지기 때문에 유효할 뿐입니다.
처음에는 다리를 떼고 소리를 질렀더니 메뚜기가 못 뛰더라, 메뚜기 귀는 다리에 있다...식의 엉터리로 밝혀지는 접근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통계학이라는 학문이 발달한 것이고, 각종 교차검증이라는 툴이 발달한 것이고, 기존의 의학 지식들을 접목시킨 이런저런 과학적 검증 방법들을 통해 최대한 걸려내보려고 합니다. 지난 몇백년동안 세계의 모든 지성들이 아이디어를 짜내었지만 100% 걸려내는 완벽한 툴은 어디에도 못 찾았습니다.
이렇게 아주 아주 초등학생적이고 기초적인 논리들만을 갖고, 어쩌면 사상누각같은 모래성의 과학을 쌓아서 현대 문명의 기초들을 받쳐왔습니다. 그래도 그 초보적인 논리들도 제법 쌓이다보니까 점점 더 스피드가 빨라져서, 이제는 학부 교양 수업따위는 어림도 없고, 소위 학계라는 것과 대중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심지어 전 세계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백여사람밖에 없다는 수학으로 우주선을 날리기도 하고, 이걸 이해하는 사람은 그걸 말했던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물리학을 증명하기 위해 몇조원이 소모되는 시설을 짓고도 있습니다.
of, by, for가 완벽한 이론이 하늘에서 떨어질까요? 그걸 완성해가는 과정조차도 scientific process라고 합니다.
길게 얘기했지만,
인류에게 있어 과학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어떤 계시같은 것이 아니라, 비록 아름답지 못한 누더기가 될 지라도 결국 만들어가고 쌓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모든 사전 전제조건을 제거하고 최소한의 기초 논리들만을 갖고 말입니다. ......기존에 확정된 지식들(과학적 결론들)마저 의존 조건임과 동시에 우선적인 배제 대상입니다.
그런데, 대중에게 인기있는 종교 및 각종 철학 등의 환원주의적 툴들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고려되었을 때보다 배제되었을 때 소위 과학의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것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기초 논리보다 현실적으로 더 효율적인 논리 체계는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과학에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때마나 그럴듯하게 보였던 것도 오직 맑스의 유물론이 유일했지만, 이나마도 엥겔스의 도그마로 거덜이 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