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한 명이 자살했다. 매년 백여 명의 중고생이 자살한다. 자살은 학기 초에 많이 일어난다. 교실이 바뀌고, 급우가 바뀌고, 담임이 바뀌고, 분위기가 바뀌면, 스트레스 받고 눈빛이 살벌해진다. 학기 초는 남학생은 누가 싸움대장인지 알아보는 시즌이고, 여학생도 서열정리를 새롭게 하는 시즌이다. 동물의 서열행동과 다를 바 없다. 개를 키워도 서열싸움을 방치하면 안 된다. 서열 1위인 주인의 서열이 낮다고 느낄 때 강아지들이 불안해서 서로 싸우는 것이다. 강아지는 손님이 방문하거나 해서 뭔가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스트레스 받는다. 주인이 규칙을 정해주면 편안해한다. 학급당 학생수가 적을수록 압박의 강도는 높아진다. 정부는 더 많은 교사를 투입하여 더 많은 압박을 가하고 더 많은 학생의 자살을 유도한다. 학생이 너무 많아도 아는 친구가 없어서 곤란하지만 상황에 따라 조절되어야 한다. 요즘은 학부모의 참견도 많아지고 의논할 형제와 사촌이 없어 상대적인 고립이 심해졌다. 정글에 던져진 거다. 그 정글의 이름이 '보호'인 것이 아이러니다. 보호한다는 말은 학대한다는 말과 같다. 옛날부터 어른들은 ‘다 너 잘되라고’ 기술을 구사하여 어린이를 살해해 왔다. 잘되라는데 잘 안되면 죽어야 하나? 인간은 숨을 곳을 필요하다. 일단은 사람들 속에 숨어야 한다. 축제가 많은 나라는 자살이 적다. 사람들 사이에 낑겨 있으면 안전하다. 형제가 많고 사촌들이 많으면 압력이 분산된다. 뒤에 적당히 묻어가면 되는데 혼자 돌출되어 쳐다보는 시선의 화살세례를 받으면 죽는다. 부모도 잘못했고, 당사자도 잘못했고, 학교도 잘못했고, 언론도 잘못했고, 정부도 잘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집단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 무의식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계속 나빠진다. 음의 피드백을 양의 피드백으로 바꿔야 한다. 전 국민이 어리광 경쟁에 빠져서 내가 더 피해자다 이러고 있으니 악순환의 수렁에 탈출구가 없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거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대중에게 아부하는 자만 넘쳐나고 바른말 하는 어른이 없다. 인간에게는 두 종류의 비뚤어진 태도가 있다. 남을 건드리고 괴롭히고 왕따시켜서 되돌아오는 반응을 보고 의사결정하려는 태도와 반대로 자신을 해치고 피해망상, 조현병, 불안장애, 공황장애를 일으켜 타인으로 하여금 내게 관심을 기울이게 유도하는 전술이 있다. 남을 해치는 전술은 나쁘고 자신을 해치는 전술은 좋다는 건가? 방향을 그렇게 잡으면 안 된다. 둘 다 타인을 이용하려는 점에서 주체성의 부족이다. 5살 미만은 목청이 터져라 울어서 남이 자기를 돌아보도록 유도하고 5살이 넘으면 남을 괴롭혀서 돌아오는 반응을 보고 의사결정 한다. 남을 통해서 뭔가를 하려고 한다. 민주주의=어리광=피해자 전략으로 공식화 하는게 나쁜 것이다. 독재가 주먹을 휘둘러 남을 해치는 권위주의라면, 민주화는 내가 피해자라고 우기는 자해공갈단이냐? 거리의 노숙자부터 없애야 한다. 노숙자에게 밥 주는 사람이 가장 나쁘다. 사람을 집에서 키우지 왜 길에서 키우냐? 고양이를 길에서 키우는 행동도 선진국에서는 동물학대로 처벌된다. 고양이가 불쌍하면 자기 집으로 데려가라. 깨진 유리창 효과다. 유리창을 깨는 사람을 엄벌해야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길거리에 야한 전단지 뿌리는 사람이 가장 나쁘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종이 나눠주는 사람, 요즘은 행주를 주더만, 도를 아십니까 하고 남의 어깨를 잡는 성추행범도 흉악하다. 여성이 모르는 남성의 팔을 잡으면 되냐? 지하철에서 떠드는 노방전도사, 어리광을 봐주니까 끝도 없이 기어오른다. 비루테 갈디카스가 인도네시아 정글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하며 성공적으로 정착한 비결은 부족민을 칼같이 해고시키는 거였다. 넌 해고야!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단호한 어조로 망신을 줘버린다. 부족민은 해고되어야 감격한다. 해고된다는 것은 그런 권력이 주인에게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멋지잖아. 니들은 해고라도 한 번 당해나 봤니? 난 열세 번째 해고를 당했거든. 해고훈장 받아나 봤니? 다음날 울면서 매달리면 다시 고용해준다. 이 미친 짓을 무한반복 하고 있다. 애먹이려고 애를 먹이는 것이다. 인간은 권력이 눈에 보여야 만족한다. 해고쇼를 통해서 권력의 존재감을 느끼고 만족하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권력의 존재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혹은 권력을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왕따짓을 하는 자나 자해짓을 하는 자나 본심은 같다. 권력 만들기 행동이다. 그렇다면 권력을 보여줘야 한다. 조폭은 두목의 권력이 약해졌을까를 걱정한다. 깐죽거리며 매를 벌어서 줘터지고 난 다음에 아직 두목의 힘이 남아있구나 하고 만족한다. 개들은 무리의 세력이 약해졌을까 걱정한다. 우리 무리가 약해져서 이웃 무리가 우리 무리를 업신여기지 않을까 걱정한다. 우리가 강한 세력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해. 하울링이 필요해. 늑대가 일제히 울부짖는 이유다. 인간은 권력의 존재감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 때 남을 해치거나 자신을 해친다. 중고생의 서열확인 행동은 본능이다. 문제는 그게 본능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의식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상대가 뭔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천만에. 그냥 본능이다. 자기도 모르게 스트레스받은 거다. 의사결정과정이 매끄럽지 않아서 불편할 때는 긴장을 끌어올려야 한다. 싸움을 해서 긴장을 끌어올리고 심리적인 결속을 이룬다. 자신과 주변을 상호작용 게임에 동원하는 방식이다. 원래 사람이 많으면 스트레스 받는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대생 사건의 친구를 살인범으로 몰아 인간사냥을 벌인다. 왜? 공권력의 개입현장을 목도하고 싶기 때문에. 그러므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마녀사냥꾼은 감옥에 쳐넣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물리적 장벽이 발견될 때까지 폭주한다. 많은 범죄자들은 교도소에서 벽을 만난다. 벽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벽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벽 속에 가둬놓을밖에. 흑인의 범죄율이 높은 이유는 교도소 외에 자신을 붙잡아줄 물리적 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형이나 아버지나 사촌이 잡아주지 않았다. 백인은 더 많은 벽들을 소유하고 있다. 평판의 벽, 학벌의 벽, 체면의 벽, 재산의 벽, 출세의 벽, 의리의 벽이 그것이다. 백인은 벽을 독점하고 흑인에게는 감옥의 벽을 주었다. 인간은 벽을 만나야 멈춘다. 좋은 벽을 주지 않으므로 나쁜 벽으로 달려간다. 강력한 벽은 의리의 벽이다. 의리에서 멈추지 못하므로 감옥까지 떠밀린다. 인간은 별수 없는 동물이다. 말이 통하는 인간은 극소수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무의식과 호르몬과 스트레스에 지배된다. 음의 피드백을 양의 피드백으로 바꿀 때까지는 정부가 단호하게 개입해야 한다. 응석받이들을 혼내줘야 한다. 인간은 벽을 주지 않으면 벽까지 간다. 요즘은 성소수자의 벽, 정치적 올바름의 벽, 페미의 벽, 동물권의 벽이 새로 데뷔하고 있다. 권력 만들기 행동이다.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권력의 수요가 폭증한 것이다. 자신이 능동적으로 권력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가 뭔가 잘못 알고 있어서 내가 붙잡아 앉혀놓고 설명해줘야 한다고 여기는게 서로가 피곤해지는 원인이다. 넌 그냥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거야. 권력 좋잖아. 남자들의 마초권력에는 페미권력으로 맞대응을 해야지. 이게 맞는 거다. 인간은 자신을 멈춰 세울 더 많은 다양한 벽을 원한다. 벽을 떠밀어서 되돌아오는 힘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게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벽을 원하는 국민에게 벽을 주는 자가 리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