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상대어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은 과학가의 언어가 될 수 없다. 절대어로 표현하면 그것은 집단의 통제가능성이다. 선이든 악이든 집단의 통제방법이다. 사회에서 그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집단 내부의 긴장을 조절하는 장치다. 사회는 긴장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결속한다. 선은 집단에 권력을 생산하고 악은 권력을 소비한다. 사람은 일용할 양식에 의해 생존하고 집단은 일용할 권력에 의해 작동한다. 권력이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사실을 아는게 중요하다.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면 거기에 권력이 있다. 결정하는 자와 실행하는 자가 있다. 의사결정 중심이 있다. 심리적인 본부가 있다.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가 있다. 그것을 미리 정하면 안 되고 상황에 맞게 즉석에서 도출해야 한다. 그것이 권력이다. 권력을 만들면 선이고 권력을 휘두르면 악이다. 집단은 권력에 의해 유지되는데 권력이 소비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권력을 미리 정해놓으면 신분제다. 신분제는 권력을 약화시킨다. 집단이 계급에 따라 서로 등을 돌려서 느슨해진다. 환경의 변화에 맞게 권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가장 잘하는 자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정치의 역할이 그것이다. 집단은 협력에 의해 탄생한다. 협력하면 선이고 협력을 깨뜨리면 악이다. 집단은 언제라도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 통제가능성이 있는 상태, 환경변화에 맞대응할 수 있는 상태, 권력적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권력이 없으면 외력의 작용에 의해 깨진다. 친구가 깨지고, 가정이 깨지고, 사회가 파탄 나고, 국가가 멸망한다. 권력은 소비되어야 하지만 생산이 소비보다 많은 양의 피드백이 유지되어야 한다. 수돗물이 나오려면 수압이 걸려야 한다. 바람이 불려면 기압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사회에는 긴장의 형태로 압이 걸려야 하며 중앙과 변방 사이에 권력압의 차이가 조성되어야 집단이 한 방향으로 움직여서 내부의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어떤 의도나 목적이나 생각이 아니다. 그런 것은 그냥 지어낸 말이다. 진짜는 긴장의 조절이다. 집단 내부에서 권력압의 조절이다. 긴장이 풀리면 안 된다. 군대에서는 빵빠레 한 방으로 해결하지만 사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애를 먹인다. 애를 먹이려고 애를 먹이는 것이다. 배후는 호르몬이며 무의식이다. 긴장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집단을 묶어버린다. 긴장의 중심에 권력이 있다. 집단의 구성원이 긴장되어 있다면 거기에 권력이 있다. 군대 내무반에서 병사들에게 끝없이 긴장을 요구하는 이유다. 권력의 생산이다. 선은 자발적 긴장이다. 악은 타의에 의한 긴장이다. 길거리에 휴지가 떨어져 있다면 그것을 주울 것인가? 긴장한 사람은 무질서한 상태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쓰레기를 치운다. 착한 사람은 집단과 심리적으로 결속되어 있다. 긴장하지 않으면 일단 쓰레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악당은 무질서한 상태가 편하다. 집단을 긴장시키려면 피아간에 대결상태를 만들어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한다. 가상적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에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는 차별만큼 쉬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한다. 적을 차별해야 이기는데 아군을 차별하므로 진다. 차별이 없을 수는 없고 차별대상을 잘 찾아내야 한다. 적을 찾아내야 한다. 야만과 무지와 나태와 히스테리와 배신이 적이다. 적과 싸움을 걸어서 긴장을 조성해야 한다. 피부색이 다르므로 적이다. 말투가 다르므로 적이다. 성별이 다르므로 적이다. 이런 식의 편리한 피아구분은 동물적 본능이다. 갈등을 일으켜 주먹다짐을 하는 과정에 신체접촉을 통해 페로몬을 교환하려는 것이다. 너의 냄새를 줘. 나의 냄새를 줄게. 인간이 싸움을 벌이는 이유다. 개는 핥기를 쓰고, 고양이는 문지르기를 쓰고, 인간은 주먹다짐을 쓴다. 물론 교양된 인간은 악수나 키스를 쓴다. 허그나 하이파이브도 있다. 어떻게든 페로몬을 교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긴장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는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식도역류가 일어나거나 잇몸이 붓고 두통을 앓으면 긴장했다는 증거다. 맥이 탁 풀리면 그동안 긴장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다음날 몸살에 걸렸다면 그게 긴장했다는 증거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면 긴장한 것이다. 넌 끈이 떨어진 연이야. 끈을 연결해!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과 결속하라는 무의식의 명령이다. 남자의 어떤 행동이나 여자의 어떤 행동의 이유는 긴장조절이다. 여자에게 묻는다. 왜 그런 옷을 입었지?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아니다. 같은 여자들끼리만 모여있을 때도 그렇게 입나? 아니다. 그럼 목적이 뭐야? 모른다. 그것은 무의식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가 자신을 얕잡아보면 스트레스 받는다는 사실이다. 창피하면 안 되니까. 남자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의식적 생각은 없지만, 남자가 날 얕잡아보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는 무의식은 분명히 있다. 거기에 맞게 호르몬이 나온다. 화장을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더라. 화장을 하지 않았더니 본체만체 하더라. 이런 경험이 켜켜이 쌓여서 무의식을 만든다. 화장발을 세우면 집단 내부에서 영향력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다. 그게 굳어져서 마트에 갈 때도 화장하게 된다. 어떻게든 인간은 영향력이 있는 상태에 머무르려고 한다. 손님을 초대할 때는 방을 치운다. 손님에게 잘 보여서 점수 따려는 것은 아니다. 창피당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방을 치우지 않은 상태에 손님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지저분한 꼴을 봐버리면 스트레스 받는다.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기가 꺾인다. 누구든 상대를 심리적으로 제압하려는 의도와 제압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다. 쫄지 않으려는 것이다. 남자는 왜 관종 짓을 해서 매를 벌까? 역시 긴장조절이다. 집단을 자극하여 긴장시키려는 무의식이다. 자신을 집단의 중심과 단단히 결속하려는 것이다. 집단이 느슨해지면 스트레스 받기 때문이다.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에 서려는 것이다. 그것은 본능이고 무의식이고 호르몬이며 거기에 중독성이 있다. '위하여'는 가짜다. 의도나 목적은 없거나 혹은 억지 해석된 것이다. 의도나 목적이라는 것은 같은 짓을 반복하다가 '내가 왜 이러지?' 하고 변명거리를 생각해낸 것이다. 무의식 영역에서 방아쇠가 격발되면 호르몬이 나와서 긴장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업된 상태를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강적을 만나서 에너지를 끌어올리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고조된 상태를 즐긴다. 형편없는 적을 만나면 에너지가 줄어들고 스트레스만 남아서 신경질을 부리게 된다. 심리학 용어는 대개 거짓이다. 우월감이니 열등의식이니 자존심이니 명예심이니 하는 것은 다분히 거짓말이다. 내가 긴장하거나 혹은 집단에 긴장을 조성하거나다. 업되거나 다운되거나다. 흥분하거나 이완되거나다. 기세가 오르거나 위축되거나다. 우쭐하거나 쫄거나다. 집단과 결속하거나 멀어지거나다. 강적을 만났거나 찐따를 만났거나다. 주류에 가담하거나 소외되거나다.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거나 변방으로 떠밀리거나다. 호르몬이 나오거나 그렇지 않거나다. 중독되거나 그렇지 않거나다.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 어떤 환경에 머무르느냐, 어떤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호르몬이 정해진다.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방법으로 호르몬을 조절할 수 있다. 그것이 자유의지다. 내가 누구냐에 따라 게임의 상대가 결정되고 게임의 형태가 정해진다. 우리는 적절히 다른 게임으로 갈아타는 방법으로 호르몬을 조절할 수 있다. 큰 게임으로 갈아타야 한다. 문명단위, 진리단위, 역사단위의 큰 게임에 가담하면 큰 배를 탄 것과 같아서 작은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다. 신과 한배를 타면 태연할 수 있다. 남자가 여자 앞에서 껍죽대는 이유가 뭘까? 성욕 때문에? 꼬셔 볼려고? 아니다. 그런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이차적이고 해석된 것이다. 머리를 굴려서 이유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밑바닥의 진실은? 기분이 업되어서다. 업된 상태에 머무르려고 그러는 것이다. 술꾼은 알딸딸한 상태에 머무르려고 한다. 성범죄자는 얄궂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한다. 업된 상태에서 나가기 싫다. 그러다가 무리수를 저지른다. 그 짓을 반복하다가 이력이 나서 행동이 정형화된다.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나쁜 길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폭주를 멈추지 못한다. 누가 말려줘야 한다. 사회는 윤리와 도덕의 이름으로 폭주를 막는 안전장치를 둔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상대가 먼저 어떻게 했기 때문에라고 대꾸하지만 그냥 둘러대는 말이다. 아무말 대잔치다. 탐욕이든 욕망이든 야망이든 우월의식이든 열등의식이든 자존심이든 명예심이든 심리적 이유는 대개 거짓이다. 일단 그것은 과학의 언어가 아니다. 그런 맹랑한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쓰면 안 된다. 과학은 물리적 근거를 대야 한다. 절대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한다. 신체의 물리적 변화를 만드는 것은 호르몬이다. 호르몬이 나오면 근육이 긴장되고, 호흡이 교란되고, 두통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는게 이유다. 나와 집단과의 관계설정이 호르몬을 결정한다. 누가 적이냐가 중요하다. 살인자는 극도로 긴장한다. 거기에 중독성이 있다. 그 긴장상태를 재현하면 연쇄 살인범이다. 신체의 모든 감각이 칼날처럼 예민해진 극도의 긴장상태를 재현하려고 살인을 반복하는 것이다. 낚시꾼이 대물을 잡든, 등산가가 정상에 서든, 살인자가 피맛을 보든, 본질은 같은 것이며 남들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할 때는 자극이 두 배다. 내 집을 털어봤자 쾌감이 없고 남의 집을 털어야 스릴이 있다. 사회의 의사결정 중심을 흔들어 내가 사회와 결속된 상태인지 겉도는 상태인지 확인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뻘짓을 해서 관종도 되고, 명성을 얻어 영웅도 되고, 사람을 해쳐서 범죄자도 된다. 여자가 웃는 것은 남자의 경계심을 허물어 심리적인 결속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남자의 관종행동, 영웅심리, 범죄욕망과 본질은 같다. 어떤 의도나 목적이나 생각 때문이 아니라 호르몬 탓이다. 우월의식도 열등의식도 자존심도 명예심도 아니다. 어떤 행동을 반복하다가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계획적 행동이 된다. 그것을 의도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차적이다. 본질적 원인이 아니고 진행과정에 증폭되는 원인이다. 병에 걸린 원인이 아니고 병이 오래가는 원인이다. 인간의 행동은 집단과의 관계설정에 따른 무의식에 지배되며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의도를 만든다. 한 번 하면 이력이 나서 또 하게 되는데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의도다. 의도는 대부분 거짓말이고 사실은 하다보니 그것을 잘하게 되어 학습한 것을 써먹는 것이다. 그 짓을 잘하기 때문에 그 짓을 하는 것이다. 사기당한 사람이 사기를 친다. 기술을 배웠거든. 문제는 중독성이다. 긴장을 조성하고 이완하는데 중독성이 있다. 사회의 유행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유행이 사회를 긴장시킨다. 신곡이 매일 나와준다. 새로운 패션이 거리에 깔린다. 새로운 정치구호가 광장에 쏟아진다. 성소수자니 정치적 올바름이니 페미니 비건이니 동물권이니 하며 이전에 없던 것이 나온다. 그것이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새로운 긴장유발 행위 때문에 즐거워지는 사람은 진보, 그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은 보수다.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집단의 상호작용 총량, 권력의 총량은 증대되며 그것을 반영하는 새로운 권력이 꾸준히 등장해서 51 대 49의 권력압을 유지해야 사회가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