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명령의 수행에 있다. 명령은 사건의 연결이다. 바톤을 넘겨 사건을 다음 단계로 연결시키고 마침내 완성시키는 것이 명령이다. 개가 짖는 것은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대응이다. 인간이 먼저 개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개가 짖는 것이다. 인간을 향해 짖는 개는 오지 마! 저리 가! 하는 의사가 있다. 인간이 개의 의사를 따르기도 하지만 그게 명령은 아니다. 인간과 개 사이에는 동원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명령은 동원된 상태에서 성립한다. 핑퐁처럼 받은 것을 되돌리는 것은 명령의 수행이 아니다. 에너지의 방향성이 관건이다. 명령은 사건을 일방향으로 전개한다. 왼쪽에서 받은 것을 오른쪽으로 전달하여 목적지까지 도달하게 하는게 명령이다. 중간에 단계를 두고 간접통제하여 결과를 얻는다. 인간은 도구를 쓴다. 사람도 도구가 된다. 그것이 명령이다. 도구는 다듬어야 쓸 수 있다. 사회는 동원되어야 쓸 수 있다. 동원되어야 권력이 있다. 명령은 권력의 행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명령할 수 있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는 명령할 수 없다. 아들은 동원되어 있다. 동원되지 않으면 권력이 없는 것이다. 동물은 동원되지 않으므로 권력이 없고 따라서 명령할 수 없다. 권력은 기승전결로 이어가는 사건의 앞 단계에 서서 다음 단계를 통제한다. 다음 단계를 예상하고 결과로부터 되돌아오는 피드백을 조절하는 것이 권력이다. 물이 저절로 넘치는 것은 권력이 아니다.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하거나 호통을 치는 것은 물이 넘치는 것과 같아서 권력이 아니다. 물이 넘칠 것을 예상하고 조절하는 것이 권력이다. 조절능력이 없는 권력의 폭주는 사건을 파탄시킨다. 사건이 깨지면 명령을 따를 수 없다. 부당한 명령이면 수행할 수 없다. 조절장치가 있다. 집단 내부의 조절장치를 통제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명령이다. 명령하는 것이 이성이다. 이성이 주체성이고 자유의지다. 이성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고, 주체성이 있고, 권력이 있고, 명령을 해서 조절할 수 있으므로 인간다움이 있는 것이다. 핵심은 조절장치다. 과연 사회 안에 조절장치가 있는가? 사회성이 작동하고 있는가? 자원이 동원되어 있는가?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이 있는가? 코어가 만들어져 있는가? 의리가 있는가? 공론이 있는가? 기세가 있는가? 유행이 있는가? 관성이 작동하고 있는가? 숨은 플러스알파가 있는가? 트렌드가 있는가? 다들 중앙을 주목하고 있는가? 긴밀하게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가? 집중하고 있는가? 광장이 있는가? 자본은 시장기능에 의해 조절되고 민주는 광장기능에 의해 조절된다. 국민이 동원되어 있는 상태라야 한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어야 한다. 긴장이 걸려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동원된 상태이고 소집된 상태이며 그곳에는 보이지 않아도 권력이 있으며 명령이 수행되고 사건이 완성된다. 문명은 그곳에 있다. 좋은 사회는 동원된 사회, 권력에 의해 조절되는 상태다. 부족민은 족장이 없고 추장이 없다. 추장이니 족장이니 하는 것은 백인들이 갖다 붙인 말이다. 부족민은 지도자가 없으므로 의사결정을 못한다. 지도자가 있어도 권력이 없다. 평판과 명성에 의해 일시적으로 따를 뿐 전쟁을 하다가도 밥 먹으러 집에 가버린다. 동원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중되지 않고 긴장되지 않는다.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을 얻어야 한다. 이성과 주체성과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 소집되어야 한다. 가족이니 부족이니 국가니 하는 것은 소집의 단위다. 동원되려면 광장이 필요하다. 동원하려면 개인의 권리와 시민의 광장과 언론과 공론과 정당이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며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 명령이 전달된다. 독재로 가서 강제동원할 수도 있지만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에 먹힐 뿐 느슨해져서 건성으로 시늉할 뿐 동원되지 않는다.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 동원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려면 의리가 아니면 안 된다. 원래 세상은 먼저 배신하는 자가 이득을 보는 구조이므로 의리 지키면 나만 손해다. 손해를 감수하고 자발적으로 의리를 지키는 집단은 강력해진다. 천하를 오로지 할 수 있다. 집단은 구성원 사이에 톱니가 맞물리는 것이 동원이다. 그런데 맞물리면 손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물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은 모든 싸움에 이긴다. 이긴 다음에 이익을 나눠 가지면 모두에게 이롭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집단은 드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