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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545 vote 0 2021.07.07 (16:50:13)

    신통한게 뭐 없을까? 있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게 신통하다.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지만 그렇게 보일 때가 있다. 날벼락처럼 갑작스럽게 들이치는게 있다. 그것은 기세다. 그것은 사건의 숨은 플러스알파다. 잠복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므로 무에서 유가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적군이 대응할 수 없으므로 무조건 이기는 묘수가 된다.


    무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 없으니까. 유는 막으면 된다. 보이니까. 무에서 유가 기어나오면 곤란하다. 갑작스런 돌풍, 뜻밖의 흥행, 입소문의 대박, 선거판의 돌풍은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원래 없던 것이기 때문이다. 있으면 보고 대비하는데 없는 것은 대비할 수 없다. 숨은 플러스알파는 숨어 있으므로 대응할 수 없다.


    어디에 숨는가? 사건의 연결에 숨는다. 움직임의 속도에 숨는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부분의 합에는 없고 전체에는 있는 것은 기세다. 기세는 정지한 사물에 없고 움직이는 사건에 있다. 자동차 부품이나 조립된 자동차나 무게는 같다. 시동이 걸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는 달릴수록 잘나간다. 속도가 오르면 탄력이 붙는다.


    기세는 원래 없다가 일정한 조건에서 수학적으로 도출된다. 숫자가 없으면 기세도 없다. 혼자서는 질서가 없다. 둘이라도 질서가 없다. 하나는 외롭고 둘은 평등하다. 셋이면 뭔가 이야기가 시작된다. 2 대 1로 편 먹는다. 내부질서가 만들어진다. 둘이 대치하는데 세 번째 사람이 누구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하나는 외롭고, 둘이면 다투고, 셋이면 끈끈하다.


    진중권에게 없는 것이 김어준에게는 있다. 진중권은 혼자고 김어준은 팀이다. 링 위에서 일대일로 붙으면 엘리트가 이기는데 김어준이 어디서 쪽수를 만들어오면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기세가 생기고 방향이 생기고 힘이 생긴다. 김어준은 엘리트에게 없는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진중권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다. 일견 반칙처럼 보인다. 중권이들이 화를 내는 이유다.


    자연에서는 일정한 조건에서 저절로 기세가 만들어진다. 불의 기세가 그러하다. 우주선 안에서 성냥불을 켜면 어떻게 될까? 잠시 타다가 꺼진다. 불꽃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꽃은 심지 가운데 모여 있다. 내부의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지 않으므로 밖에서 산소가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서 뜨거운 연기의 가벼움으로 방향성을 부여하여 불을 피우는 것이다. 우주에서는 안 되는데 지구에서는 1초만에 된다. 뜨거운 공기가 가볍다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금방 방향을 찾아내지? 그게 기세의 무서움이다. 공기 중에 산소와 이산화탄소 분자가 한둘이 아닌데 순식간에 정렬해버려? 쪽수가 많을수록 더 잘 된다. 그게 기세의 무서움이다.


    엘리트와 김어준의 싸움은 우주선 안에서 불붙이기와 지구에서 불붙이기의 차이다. 보통은 쪽수가 많아서 의사결정을 못하는데 기세가 붙으면 쪽수가 많을수록 의사결정이 빠르다.


    우주에는 없고 지구에는 있는 것은 에너지의 방향이다. 진중권에게 없고 김어준에게 있는 것은 에너지의 입력부와 출력부 그리고 의사결정의 자궁이다. 일정한 숫자가 받쳐줘야 구조가 세팅된다. 한 번 구조가 세팅되면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된다. 사람들은 추상을 두려워 하지만 어려울 게 없다. 거대한 힘이 있다. 구체적인 존재는 하나씩 손봐야 하므로 시간이 걸리지만 추상적 사건은 잘 안 되다가 한 번 탄력이 붙으면 일사천리로 해결된다. 태도가 180도로 달라진다. 보통은 여기에 당하는 것이다.


    지구에서 불을 붙인다고 해서 반드시 잘 타는 것은 아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보면 안다. 마파람이 불면 조금 타다가 꺼져버린다. 연기가 빠져나갈 방향을 못 찾기 때문이다. 흐린 날에는 바람이 굴뚝에서 아궁이로 역류하여 불이 꺼진다. 로켓 스토브나 터보라이터를 보면 알 수 있다. 인위적으로 방향을 정해주면 맹렬하게 타오른다. 처음에는 아궁이 입구가 넓을수록 좋고 불이 붙으면 입구가 좁을수록 좋은데 그 애매한 갈림길에서 실패가 있다.


    불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타지 않고 자기가 타고 싶은 데로 탄다. 불은 가운데로 모이는 성질이 있다. 골고루 잘 타도록 불을 흩어놓으면 꺼진다. 불과 불이 싸워서 산소를 뺏어가기 때문이다. 산소는 한 방향으로 들어와야 하며 공기의 입구는 좁아야 한다. 베르누이 효과로 좁을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여기에 기세의 비밀이 있다. 유체는 길을 넓히기 보다 압력을 높이는게 낫다. 길이 넓은 것은 눈에 보인다. 압력차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허다한 엘리트 지식인이 오판하는 이유다. 배부른 사람에게 만 원을 주는 것보다 배고픈 사람에게 천 원을 주는게 낫다는 말이다.


    구조가 있다. 불이 잘 타는 구조가 갖추어지면 폭발적으로 연소된다. 이는 우리의 상식과 다르다. 초보 불목하니가 불을 꺼트리는 이유다.


    정치판에서도 그러하다. 덧셈정치 한다며 들어오는 입구를 넓히다가 망하는게 안철수 정치다. 입구가 넓을수록 기세는 감소하는데 엘리트는 반대로 생각한다. 중도는 입구가 넓어서 정치가 흥할 수 없다. 왼쪽에서 들어온 사람과 오른쪽에서 들어온 사람이 가운데서 교착되어 움쭉달싹 못한다. 정치의 불을 지피려면 입구를 좁게 하고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조금씩 옮겨가야 한다. 압력차이가 권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낮에 뜨거워진 공기의 대류현상이나, 메뚜기떼의 이동이나, 극장가의 흥행이나, 신곡의 유행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대중은 좋은 곡을 원하는 게 아니라 권력있는 곡을 원한다. 노래를 즐기는게 아니라 노래의 전파과정에서 동료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다. 입구가 좁고 한쪽에 치우쳐 있어야 권력이 생긴다.


    물이나 바람이나 불이나 대중이나 흥행이나 이윤이나 권력이나 혁신이나 모두 일정한 숫자가 되어야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와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자궁이 정해져서 시스템이 작동한다. 유체의 특징이 나타난다. 먼저 진입한 자에게 권력이 주어져야 가속적으로 흥행한다.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방향성이다. 기세는 그곳에 있다. 유체가 아닌 것을 움직여서 유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원래 없다가 갑자기 발생하므로 상대가 대응하지 못한다. 민중만 할 수 있고 엘리트는 할 수 없다. 적들이 한사코 노무현을 죽이려 드는 이유다. 자기네는 절대로 못 하는 것을 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요술을 부렸다고 생각한다. 야외에서 모닥불 몇 번만 피워봐도 아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화를 낸다.


    아는 사람은 기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불이 타들어가는 방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와 연소실이 보여야 한다. 유체가 아닌 것들의 움직임에서 유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조절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기세를 터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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