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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279 vote 0 2021.07.06 (13:59:25)

    정치는 권력으로 살고, 학계는 지식으로 살고, 종교는 믿음으로 살고, 문화계는 인기로 산다. 각자 밥을 챙겨 먹는 것이다. 어떻게든 시스템을 유지한다. 구조론은 다른 것이다. 정치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강단 중심의 학계와도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


    우리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학자는 아는 것을 말하면 된다. 사물은 눈에 보인다. 저거다 하고 가리키면 된다. 구조론은 사건을 탐구한다. 사건에는 실천이 따른다. 사물은 외부에서 관찰하지만 사건은 안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는 내면연기를 보여준다. 우리는 내 안의 의리를 보여줘야 한다.


    종교는 믿음으로 살고, 정치는 권력으로 살고, 학계는 지식으로 사는데 구조론은 의리로 산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합리적인 과학과 모순 투성이 정치와 비합리적인 종교의 공존이라니. 이게 가능해? 과학이 진실을 밝혀내면 정치에 반영되어야 한다. 종교는 과학에 밀려 사라져야 한다. 현실은 그럴 기미가 없다. 뭔가 수상하다. 세상이 왜 이 따위야? 앞뒤가 안 맞잖아.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다르잖아.


    초딩시절에는 공산주의자를 자처했다. 내가 생각한 공산주의는 간단히 과학의 성과를 현실에 반영하는 것이다. 과학에 정답이 있는데 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지? 왜 빈부차가 있지? 왜 진영을 갈라서 으르릉 대지? 그렇군. 사회가 과학의 성과를 따라잡지 못했어. 그렇다면 혁명이 답이지. 종교부터 없애야 해. 사찰과 교회를 폭파하고 무당을 잡아넣고 재벌을 타도해야지. 전 세계의 과학자를 불러다가 잠실 체육관 같은 곳에 가둬 놓으면 10년 안에 상온 핵융합 정도야 거뜬하겠지. 인류의 문제는 전부 해결 끝. 초딩생각이고 중2 때는 바뀌었다.


    4학년 때 내가 수학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학에 대한 판타지가 깨졌다. 과학이 종교를 대체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인류는 생각보다 멍청했다. 이것들은 도무지 답이 없잖아. 열일곱 때 구조론을 생각해내고 다시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또 다른 벽 앞에 섰다.


    과학은 약하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과학은 돌 속에서 은이나 금 따위 쓸만한 것을 찾아내곤 한다. 그것은 도구다. 주체인 인간이 바뀌어야 한다. 도구는 한계가 있다. 종교가 인간을 바꾼다. 그런데 잘못 바꾼다. 과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것은 철학이다. 철학은 실천을 요구한다. 지식만으로 부족하고 그 이상을 해야 한다. 공자의 의리가 필요하다.


    종교는 무지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에게 판단을 위임한다. 위태롭다. 종교를 직업으로 하는 교주와 목사가 멍청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싸워서 이기는 쪽을 따른다. 역시 위태롭다. 져야할 사람이 이기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페미니즘이다, 동물권이다, 성소수자다, 정치적 올바름이다 하며 다양한 사람 줄세우기 무기들이 권력시장에 출시된다. 먹히면 하고 먹히지 않으면 버린다. 난장판이다. 인류는 쓸데없이 헛심을 쓰고 기운을 낭비한다.


    지식은 배우는 것이고, 지혜는 써먹는 것이고, 지성은 실천하는 것이다. 지식은 외부의 것이고, 지혜는 내가 개입하여 이용하는 것이고, 지성은 주체인 내가 변하는 것이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혜는 맞서는 것이고, 지성은 이기는 것이다. 지식은 말과 사슴을 구분하고, 지혜는 말을 타고, 지성은 말을 이긴다. 지식은 배움에 의지하고, 지혜는 경험에 의지하고, 지성은 그 이상의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의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킨다. 두 사람이 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의리다. 그것은 사랑도 되고 믿음도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의리를 지키면 손해다. 그런데 이긴다. 두 사람이 하나처럼 행동하므로 몫이 반으로 줄어든다. 절반의 몫으로 일하므로 이긴다. 이기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 내 몫을 챙기다가 질 것인가, 잠시 손해보더라도 이기는 길을 갈 것인가? 실리와 명분이다. 명분은 이기고 실리는 챙긴다. 장단점이 있으므로 상황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 역사의 장면들에서 이기는 집단은 항상 의리를 지키는 집단이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 편이 이기는 길을 가야 한다. 그러려면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자원이 동원되어 집단을 이루고, 리더가 있어서 권력이 작동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어서 명령이 전달되어야 한다. 자유의지가 필요하고 주체성이 필요하다. 이성과 자유와 권리와 광장이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답을 알지만 그 길을 가지 않는다. 게임에 동원되는 과정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생각으로 안 되고 동료와 합을 맞추어야 한다. 인원을 동원하고, 리더를 세우고, 명령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는다. 지쳐버린다. 호르몬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낯선 사람을 경계하게 되어 있다. 찬성보다 반대가 의사결정을 하기 쉽다. 찬성하면 회비를 내야 하는데 반대하면 회비를 안 내도 된다. 결정하기 쉬운 길로 가다 보면 틀어져 있다.


    인간은 의리로 산다. 도원결의도 그냥 되는게 아니고 누가 주선해줘야 한다. 스승이 필요한 이유다. 공자는 학자가 아니라 스승이다. 그것은 다른 것이다. 그는 이기는 게임을 설계하고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는 게임을 이어받아야 한다. 인류단위의 거대한 연극무대에 올라 배역에 맞게 연기를 해야 한다. 지식만 주는 것과 미션을 주고, 포지션을 주고, 권력을 주고, 의리를 맺어주는 것은 다른 것이다. 무대 위로 이끌어주고 배역을 주고 대본을 줘야 진짜다.


[레벨:5]국궁진력

2021.07.07 (00:59:02)

"지혜는 경험에 의지하고 지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두번째 지혜는 [지성]으로 바뀌어야 할 듯 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1.07.07 (08:16:32)

감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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