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을 수정했습니다. 유럽의 코로나19 방역실패는 EU 통합에 따라 다른 나라 눈치를 보며 경직된 자세를 고수하는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기레기는 진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EU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은? EU를 떠난 영국은? 관료주의 탓인건 맞다. 뭐든 잘못된 것은 이게 다 공무원들 때문이다 하고 남 탓하면 된다. 그게 말은 되는데 진실하지 않다. 서세동점의 시대가 다하고 동세서점의 시대가 열리려는 가운데 문명차원의 고찰이 필요하다. 답은 언제라도 의사결정구조의 차이에 있다. 아시아와 서구문명은 의사결정구조가 다르다. 각자 장단점이 있다. 18세기 청나라 전성시대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아시아 관료제가 강점을 보였고, 19세기 산업화 시대는 경쟁을 잘하는 서구 민주주의가 강점을 보였다.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는 다시 아시아가 강점을 보이고 있다. 남의 장점을 배우는 자가 이긴다. 그런데 한 번 기세를 타고 속도가 올라서 탄력을 받아버리면 배우려고 해도 배울 수 없다. 여기서 방향성이 결정된다.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서구는 볼테르의 계몽사상으로 아시아의 관료제를 배웠다. 왕이 면접 봐서 인재를 발탁하는 봉건방식으로 가면 아첨꾼만 모인다. 궁정에는 광대, 어용시인, 궁중악사, 궁중화가, 난쟁이 같은 이상한 사람이 실권을 쥔다. 사기꾼이 꼬이는 것은 당연하다. 춘추시대 중국도 그랬다. 관포지교의 관중과 포숙 덕분에 성공한 제환공이 말년에 역아, 수초, 개방과 같은 이상한 사람을 주변에 두다가 몰락한 것과 같다. 역아는 요리사 출신이고 수초는 스스로 거세한 자다. 아첨꾼이 실권을 쥐는게 서구가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한 원인이다. 제정 러시아를 몰락시킨 괴승 라스푸틴이 대표적이다. 최순실 비슷한 자가 권력을 쥐면 망한다. 계명구도의 맹상군을 떠올려도 좋다. 미담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게 미담이 아니다. 좀도둑이나 닭 울음소리 흉내내는 사람이 권력을 쥐면 망한다. 궁중음모가 난무하는 식객정치로 흘러간다. 윤석열이 점쟁이에 휘둘리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유럽은 관료제가 없어서 망했고 중국은 관료제 때문에 망했다. 본질은 의사결정구조다. 여기서 방향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주체성의 문화냐 타자성의 문화냐다. 첫 단추를 꿰면 그 방향으로 쭉 간다. 사건은 기세를 타고 일사천리로 흘러간다. 주체성은 공격이고 타자성은 방어다. 주체성은 전략이고 타자성은 전술이다. 일장일단이 있다. 공자의 길은 주체성의 길이다. 서구가 멸망하는 이유는 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보는 홉즈의 성악설에 기반을 두는 타자성의 문화가 극단화된 때문이다. 세상을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로 간주한다. 적절히 주체성의 문화로 갈아타지 않으면 유럽은 멸망을 피할 수 없다. 반대로 동양은 타자성의 부재 때문에 망한다. 성선설의 낭만주의적인 태도 역시 안이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그게 시골에서나 먹히는 시골인심이다. 뭐든 선의로 해석하는 성선설은 문명중독의 착시현상이다. 성선설은 배우는 학생에게 적용되고 성악설은 사회의 경쟁에 적용된다. 성선이 곧 성악이다. 둘은 같다. 성선은 교실에 모아놓아야 작동하고, 성악은 그 교실을 찾으려는 것이다. 교실이라는 장애물이 나타날 때까지 인간은 폭주한다. 유치원에서는 오줌을 싸서 보모를 골탕 먹이고, 중학생이 되면 월담을 해서 교사를 골탕 먹이고, 고등학생이 되면 왕따를 저질러 학부모를 소환한다. 내 앞을 가로막는 차단벽을 봐야 안심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타고난 노예이며 누가 자기를 가두어주기를 원한다. 전두환의 폭주나 히틀러의 침략이나 미국의 패권주의나 본질은 같다. '제발 나 좀 말려줘' 하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을 찾으려는 불쌍한 행동이다. 그들은 교실에 갇히고 싶은 것이다. 유럽은 EU에 가둬놓으니 얌전해 졌는데 영국은 결국 담치기를 하고 말았다. 인간은 가둬놓아야 얌전해 진다. 가둬놓지 않으면 제 발로 감옥에 기어들어 간다. 박근혜와 이명박처럼 말이다. 닭들은 닭장으로 들어가고, 소는 외양간으로 들어가고, 개는 개굴로 들어간다. 결혼이라는 감옥이나, 직업이라는 감옥이나, 체면이라는 감옥이나, 중독이라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어떻게든 자기만의 편안한 감옥을 찾아내고야 만다. 만인은 내게 적인가, 친구인가? 방향성의 문제다. 여기서 인생의 큰 방향이 결정된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세상을 적으로 간주하면 고립되어 죽고, 세상을 친구로 간주하면 사기당해 죽는다. 정답은 일단 적으로 간주하고 조금씩 친구를 늘려가는 것이다. 타자성 속에서 주체성을 건설하는 것이다. 결정론을 인정하고 그것을 타파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성선설이 맞고, 주체성이 옳고, 자유의지가 옳다. 게임의 판은 점차 커지며 한 방향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전략을 호출하기 때문이다. 전략이 전술에 앞선다. 주체성과 자유의지와 성선설은 전면전의 전략이고 타자성과 결정론과 성악설은 국지전의 전술이다.
주체성의 전략
타자성의 전술 인생은 타자성 속에서 주체성을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척력을 인력으로 바꾼다. 에너지의 확산을 수렴으로 바꾼다. 타자성은 남의 영토이고 주체성은 나의 영토다. 태어났을 때 세상은 모두 남의 땅이다. 내게는 요람이라는 반 평이 주어질 뿐이다. 친구를 사귀고 동료를 얻어서 점차 내 영역을 늘려간다. 자유의지는 주어지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도원결의 하는 의리로 가능하다. 의리를 모르면 아직 인생이라는 게임에 참여할 준비가 안 된 것이다. 타인은 적이지만 설득하여 내 편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삶의 의미다. 서구는 불신에 기초한 민주주의로 흥했고, 아시아는 신뢰에 기초한 전제정치로 망했다. 타자성이 주체성을 이겼다. 그러나 1라운드 게임이다. 최종 라운드는 신뢰가 불신을 이긴다. 의심하는 자는 속지 않으므로 1라운드를 이기지만, 신뢰하는 자는 사기꾼의 기술을 배워서 역으로 관광시킨다. 의심하는 자는 남의 기술을 배울 수 없다. 내 몫만 챙기려다가 게임판에 끼지 못한다. 누구든 도박판에 앉으려면 수업료를 내야 한다. 1라운드는 자발적 호구가 되어야 한다. 동양과 서구의 방향성 차이는 지정학적 구조 차이 때문이다. 중국처럼 가운데가 뻥 뚫려 있으면 의사결정이 힘들다. 너무 빠르게 양의 피드백이 일어나 금방 성장하고 금방 몰락한다. 순식간에 인구가 늘어나고 순식간에 전쟁으로 멸망한다. 태평천국의 난에 죽은 사람이 1차대전에 죽은 사람보다 많다. 인구가 늘고 있는 동안에는 모두 만족하므로 브레이크가 없다. 잘 되고 있는데 누가 멈춰 세우겠는가? 땅값이 오르면 모두 만족한다. 은행도 좋고, 투기꾼도 좋고, 집주인도 좋다. 거품경제를 멈춰 세울 주체가 없다. 한두 명이 브레이크를 걸지만 이미 다들 눈이 뒤집어져 있다. 돈을 봤거든. 폭주기관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개혁가는 노무현처럼 살해된다. 15억 중국인들은 잘못된 것을 알지만 이미 탄력을 받아버렸기 때문에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면 기차가 전복된다고 여긴다. 죽는 줄 알면서도 계속 간다. 중국은 이 짓을 3천 년 간 반복해 왔다. 중국사는 치세의 인구폭발과 난세에 대멸망의 무한반복이다. 조절장치가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간 나오토 총리가 방향전환을 시도하다가 순식간에 짤렸다. 폭주 검찰을 건드리면 단매에 죽는다. 죽어도 조국처럼 갈갈이 찢어져 죽는다. 타자성과 주체성의 균형이 문명의 조절장치다. 만인은 적이지만 우리는 도원결의하여 내 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가 있고, 종교가 있고,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래봤자 산업이 결정한다. 경쟁과 협력의 균형이 필요하다. 협력만 하면 한곳에 몰려서 죽고, 경쟁만 하면 흩어져서 각개격파로 죽는다. 소년은 협력해야 살고, 청년은 경쟁해야 살고, 노년은 다시 협력해야 산다. 인생 전체로는 2 대 1로 협력이 경쟁보다 크다. 51 대 49로 진보가 보수보다 크다. 전략이 전술에 앞선다. 성선이 성악보다 우위다. 자유의지가 결정론보다 우위다. 주체성이 타자성에 앞선다. 양의 피드백에 의해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 많도록 세상은 설계되어 있다. 나쁜 사람이 많으면? 출발선에 걸려서 시동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침몰한다. 불신만 하는 집단은 불신 위에 조금씩 신뢰를 만들어가는 집단을 이길 수 없다. 북한을 불신하는 국힘당은 불신의 전제 위에 신뢰를 쌓아가는 민주당을 이길 수 없다. 신뢰를 전제로 하는 정의당은 정신병자가 분명하므로 논외다. 정치는 타자성을 주체성으로 바꾸고,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것이며 정치게임의 대전제는 당연히 불신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다. 서로 믿고 패스를 하는 팀이 서로 의심하여 패스도 안 하는 팀을 이긴다. 서구문화와 동양문화에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서구문화와 동양문화의 장점을 합친 집단이 최종적으로 승리한다. 동양은 서양의 장점을 배우지만 서양은 동양의 장점을 배우지 않는다. 기세 때문이다. 배우려면 거함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그걸 못한다. 동양은 배가 자빠져서 속도가 0이므로 서구를 배울 수 있다. 자빠진 김에 신발끈을 고쳐맬 수 있다. 서구는 잘 나가고 있으므로 동양을 배우지 않는다. 뭐? 시진핑의 독재를 배우라고? 김정은에게 한 수 배우라고? 일본은 거품경제 꺼지고 30년 지났지만 여전히 반성할 기미가 없다. 일본이 한국을 배운다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청나라도 백 년 동안 추월해가는 서양을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했다. 망조가 들어도 백 년은 바꾸지 않는다. 그것이 방향성의 힘이다. 한번 정하면 못 바꾼다. 한국은? 어떻게든 배우지 않으면 죽는다. 중국 때문이다. 춘추시대 4천 개 나라가 있었는데 다 망하고 중국 하나가 남았다. 고려공사 3일이라는 말이 있다. 정책이 3일을 못 가고 바뀐다. 한국은 변덕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
동양 (싫은 일본)을 배워야한다는 이야기가 1960년대 있었습니다.
전 그 말이 이미 제 어릴적 (80년대부터) 역겨웠었죠.
영국은 청나라를 이기려고, 아편전쟁 100년전부터 준비를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c56KD_iBKs
동점서세를 이야기하지만, 영어는 모든 외교의 공식언어이며,
경제를 조정하는 모든 용어와 공식회의는 영어로 되어있습니다.
등소평의 말대로, 오래 기다리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쉽게 말해 생산력과 체제 (도덕성 포함)에서 완벽하게 압도해야합니다.
현재로서는, 남중국의 국제적 역량 (영어)과 남한의 과단성 (서구 민주주의에 이른)에 기대를 겁니다.
미약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범 서구에 대한 승기를 근 20년안에 잡아야합니다.
유럽은 맛이 갔지만, 독일은 아직 단단하고, 미국은 부자가 3대는 간다는 말을 잊어선 안됩니다. 아직 저쪽 금융은 서구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