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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063 vote 0 2009.05.04 (15: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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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과 원시인

현대인은 현대인으로 태어나고 원시인은 원시인으로 태어난다. 이는 음치가 음을 찾지 못하거나 길치가 길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숙명적이다. 완전히 다른 두 인간 유형이 있다. 상식인이라면 이런 -차별적인- 표현에는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현대성의 의미를 정확히 포착하기 위해서는 이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살바도르 달리는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었다. 그의 그림을 평론가들이 말하는 초현실주의 개념으로 제한시켜 보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평론가들은 이론으로 말하지만, 그리고 살바도르 자신은 정신분석학으로 풀어내려고 하지만 둘 다 아니다. 그는 아기 때의 꿈 장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꿈에서 실제로 본 것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그는 인상적인 장면을 한번 포착하면 결코 잊지 않는다. 그의 자서전에 묘사된 '메뚜기에 대한 그 의 공포'가 그 예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몇몇 이미지들에 대해 말하면 필자 역시 비슷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잘 알려진 '축 늘어진 시계' 그림은 시간개념에 대한 철학적 은유가 아니라 그가 실제로 시계를 보고 느낀 인상이다. 고착된 사물이 갑자기 꿈틀거리는 느낌 말이다. 평평한 벽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느낌 따위.

그가 엄마 자궁 속에 있던 때의 편안한 느낌을 말하는 것을 농담으로 치부해서 안 된다. 행간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것은 조작된 기억일 수 있으나 그러한 -아스라한 시원의 느낌, 그의 그림에 항상 들어가는- 인상의 지속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원래 그런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이론적으로 접근하면 한계가 있다. 예컨대 필자는 어떤 옷이 어울리는 옷인지에 대해서 장문의 글로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백화점에 데려다 놓고 옷을 고르라면 못 고른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옷은 잘 고르는 수가 있다. 물론 다들 하면 보는 것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따라하겠지만, 누구나 현대성에 익숙해질 수 있지만 피상적인 흉내일 뿐 본질에서 안 되는건 안 되는 거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문명인들이 얼마나 많이 이 부분에 익숙해져 있는지 모른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차이가 명백해진다. 문명이라는 울타리 바깥으로 나와서 생각해야 그 차이와 경계가 정확하게 보인다.

현대성은 공존의 동그라미 안에서 모드의 문제, 모럴의 문제를 고민함이다. 그것은 두 사람 이상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여성만 모여 있다면 아무래도 옷차림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관계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같은 공간 안에 공존할 수 없는 둘 이상의 물체나 이미지를 하나의 공간 안에 무리없이 공존하게 만드는 특이한 재주가 있다. 동양화라면 여백을 두거나 안개 따위로 처리하는 그것 말이다.

그는 원근효과나, 조명효과, 반복되는 패턴, 아스라한 시원의 느낌 따위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아마도 붓을 잡기도 전에 그러한 상상을 무수히 했을 것이다. 남에게는 초현실이 그에게는 일상적인 현실이다.

미묘한 관계의 변화, 그에 따른 공기의 변화, 분위기의 변화, 무드의 변화를 포착하는 능력이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에 둔감한 사람의 표현에는 -그가 뛰어난 이론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한계가 있다.

이런 표현-원래 다르다-은 많은 사람을 낙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인상주의 이후 현대회화는 극소수 몇 사람이 독점적으로 개척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개척의 여지는 매우 크다.

지금 잘 안되고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결정적인 난관'을 넘어서게 될 때 '비약적인 진보'가 가능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할 거 다했고 현대회화는 난해함의 매너리즘에 빠졌으며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

김기덕 영화를 해석적으로 보는 먹물 평론가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평론가들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어떤 더 높은 경지의 세계가 있음을 안다면.

김기덕은 원래 그런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기만 하면. 단지 제 눈에 그것이 안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원래 없다고 우기는 버릇을 고치기만 한다면.
 
우 리의 예술은,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삶은 비약적으로 진보할 수 있다. 진보주의는 다시 한번 르네상스를 구가할 수 있다. 수구세력을 벙찌게 만들 수 있다. 왜 마르크스 이후의 교착을 타개하지 못하는가?

발상의 전환이면 가능하다. 대안의 제시는 가능하다. 문화 방면으로의 출구는 열려 있다. 100년 동안 안 되던 것이 하루만에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문화사에는 아주 짧은 시간에 큰 진보가 일어나고 이후 긴 침체에 빠진 예가 무수히 많다.

그 이유는 극소수의 원래 되는 사람이 혜성같이 나타나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난관을 돌파하게 해 주는 사람은 언제나 한 명이다. 그 한 명이 숨쉴 공간을 제공하느냐로 그 사회의 경쟁력이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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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의 평등주의 원칙과 어긋나지 않느냐고 항의할 수 있다. 아니 그 반대다. '달리'는 우리 주변에 있다. 단지 "야 이 미친놈아." 하고 머리에 굴밤을 무수히 때렸기 때문에 그 정체를 숨기고 살 뿐이다.

그가 당당히 정체를 드러내게 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유로운 공기다. 한국의 공기는 답답하다. 한국의 달리는 질식해서 죽는다. 명함도 못내밀어보고 죽는다.현대성의 본질이 많은 교육과 상관없다.

달리는 교육받지 못한 장애인 중에, 교육받지 못한 흑인 중에, 오랫동안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여성 중에, 노인 중에, 모든 사회의 약자들 중에 숨어 있을 수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출현할 수 있다.

'사람은 다 똑같다'는 평등주의는 오히려 차별의 원인이 된다. 다 똑같다면 차이나게 하는 것은 오직 교육 뿐이며 교육의 기회는 강남, 기득권, 주류에 의해 독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되는 사람과 원래 안 되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겸허하게 타인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자신은 원래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타인과 협력하는 것이다. 자신도 된다고 믿으면 타인과 협력할 이유가 없다. 달리는 태어나는 것이지 결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달리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기득권의 울타리가 점점 견고해지는 것이다. 달리를 만들겠다고 강남의 학원가가 저리 번성하고 있다. 바보를 가르쳐 달리를 만들 생각을 버리고 원래 되는 달리를 발굴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유로운 공기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 손님이 귀한 이유는 손님은 나와 생각이 다르고 그 다름이 내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름을 존중해야 세상에 평화가 온다.

다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고 왕따, 이지메 등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남은 다 하는데 너는 왜 이걸 못하니? 남은 흰데 넌 왜 피부가 검니? 나는 되는데 너는 왜 못하니? 이게 폭력이다.

나는 못하는게 많다. 음치부터 시작해서 매우 많다. 그래서 겸허히 다른 사람의 협력을 구한다.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이 공간은 만들어놓고 있는 것이며, 협력을 구하기 위해 사람 만나기 싫어하는 천성에도 불구하고 만난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원정출산-미국유학-화려한 학벌과 연고, 기득권 철옹성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안 되는게 있다. 원래 그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원래 되는 사람은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그룹 안에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겸허해야 한다.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공존을 꾀해야 한다. 관용이 필요하다. 달리는 밑바닥 사람들 중에서 발견될 확률이 높다. 그것이 내가 밑바닥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는 이유다.

전후 미국 중심으로 일어난 상업미술을 배척하는 유럽의 분위기가 유럽미술의 퇴조로 이어졌다. 달리는 자유로운 공기를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자본의 전횡을 반대한다는 유럽의 분위기는 실상 먹물들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http://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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