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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906 vote 0 2009.05.09 (1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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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눈을 가림으로써 눈이 더 돋보이게 된다. 그것은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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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추구해야 할 것은 '관계'다.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애플의 '한 입 베어문 사과'로 대변될 수 있다. 그냥 사과가 아니라 한 입 베어문 사과다.
아아! 그것은 유혹이다. 그것은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것은 너(나)로 하여 나(너)가 더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너가 닮는 것이다. 그것
은 나와 너로 하여 제 3의 무엇을 낳고 또 낳아가게 하며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
가 아니라 둘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러면서 둘로 나누어져서 안 된다.

둘은 다가와야 한다. 다가서서 다정하게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로 합쳐지면 안 된다.
여전히 독립된 둘을 유지해야 한다. 그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있어야 한다. 그 둘은 부부로 하
나여서 안 되고 연인으로 하나여서 안 된다.

하나가 아니지만 하나가 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그것은 아슬아슬한 접속의 순간이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포즈다. 세상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것은 패션으로 양식
으로 디자인으로 발전하여 우리 곁에 자리잡는다. 끝내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세잔은 형태를, 고흐는 인상을, 쿠르베는 사실을, 피카소는 입체를, 달리는 중력을 그렸지만
충분하지 않다. 미개척지는 남아있다. 추사의 세한도가 걸작이라 하나 '나 잘났소'에 불과하
다. 나는 고고한 선비라는 우쭐대는 외침.

누가 물어봤냐고. 관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동파가 전범을 보였다. 서원아집도의 
인물군은 흩어져 있다. 한곳에 모여있지 않다. 그들은 회합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 혹은 그리
고 혹은 연주하고 혹은 설법하고 혹은 담화하지만 관계를 드러낼 뿐 주장하지 않는다.

도사와 스님과 화가와 악공과 선비와 시인을 한 공간에 모으는 그 자체에 의의를 둘 뿐 모여서
궐기대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 결정적으로 빠진 것 하나는-주체적인- 여인이다. 남자만
모여서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신윤복의 그림에는 여자가 비중있게 나오지만 그 관계는 너무 구체적이다. 관계가 구체화
되면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고 만다. 그 여인은 기생이거나 누군가의 연인이다. 그 관계
가 구체적인 관계일 때 인물은 장식품으로 될 수 있다.

주도적인 관계이기 위해서는 관계는 암시될 뿐이어야 한다. 관계가 전면화 되어서 안 된다.
그러므로 그림에는 관계를 맺는 둘이 있어야지만 그 둘이 너무 쉽게 찾아져서 안 된다. 그
둘을 잇는 제 3의 끈이 있어야 관계는 발전한다.

추사의 세한도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마찬가지로 주제가 너무 구체화되므로 거기서 이
야기가 끝나버린다. 달리처럼 허술하게 뭔가 좀 남겨놓아서 뒤에온 사람이 계승할 여지를
두어야 한다. 혼자서 다하기 없다.

관계는 또다른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그 제 3의 끈이 구체화 되면 2는 1로 축소
되고 만다. 퇴행하고 만다. 그 제 3의 끈은 은근한 시선으로, 동작의 방향성으로, 빛의 효과로,
중력의 느낌으로 은근하게 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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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나무를 향해 가고 있다. 나무와 여인은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 여인이 나무에게 볼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어서 든든한 나무처럼 믿음직한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다. 그것은 은근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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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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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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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인해서 다른 하나가 더 돋보이게 된다. 그것은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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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주인이기 위해서는 거리를 조정하여야 한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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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그냥 돌벽이 아니라 누군가를 초대하기 위하여 비워둔 벽이다. 그 누군가는 이 위치에서 더 돋보이게 된다. 그래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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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을 때 더 분명해진다. 그래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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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관계는 또다른 무수한 관계로 메아리되어 세상 모두를 낳는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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