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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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70 vote 0 2017.03.14 (22:33:47)

     

    칸트의 정언명령


    영화 이레셔널맨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이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 죽어가는 것은 영혼의 밑바닥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은 소통이다. 소통은 서로 긴밀해지는 것이다. 호응함으로써 인간은 긴밀해진다. 호응이라고 하면 또 오해하는 사람 있다.


    연예인 팬들처럼 남의 말에 대책없이 호응하라는 게 아니다. 대칭과 호응은 구조론 용어다. 정확히 말하면 에너지≫밸런스≫대칭≫호응≫데이터다. 에너지의 밸런스가 공간의 대칭으로 깨지고 그것을 시간의 호응으로 봉합할 때 행복이라는 측정가능한 데이터값이 주어진다.


    쉽게 말하면 상대방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소통이라는 말이다. 반대는 소외다. ‘넌 없어도 돼!’ ‘너 없어도 세상 잘 돌아가.’ 이건 소통이 아니다. 호응하지 않는 거다. 내가 거기에 가 있어야만 일이 되는게 소통이다. 즉 어떤 영화가 재미가 있기에 보는게 아니라


    내가 거기에 가 있어야만 그 영화가 완성되므로 볼 수밖에 없는 거다. 내가 홍대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은 거기서 무언가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내가 있어줘야 홍대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통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가 있어주는 것은 호응이다.


    내가 없으면 그 불은 촛불이 아니라 죽은 불이므로 내가 광화문에 가 있는 것이다.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다. 당신을 위하여가 아니라 당신에 의하여다. 그럴 때 에너지는 조달되어진다. 마음은 달뜨고, 손에는 땀이 차며, 숨은 가쁘고, 정신은 명료하다. 고도로 집중이 된다.


    신이 만든 세상은 통속적이고 지루하다. 아니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랑할 때는. 칸트의 정언명령이 '의하여'라면 가언명령은 '위하여'다. 가언명령이 행복을 위한 윤리라면 곧 행복이라는 조건이 걸려 있다면 정언명령은 무조건적인 윤리다. 조건이 없다. 위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윤리가 있는가? 없다. 그런게 어딨어? 미쳤나 봐. 이레셔널은 비이성이다. 비이성은 이성 위에 있다. 입자가 아닌 질로 보아야 한다. 윤리는 입자가 아니다. 에너지다. 사건이다. 정언명령의 윤리는 없지만 정언명령의 사건은 있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이어진다.


    기차가 궤도를 타면 종착역까지 계속 간다. 하나의 살인은 또다른 살인을 낳는다.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윤리를 멈출 수 없다. 타는 불길을 멈춰세울 수 없다. 기승전결로 이어가며 불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사건을 멈출 수 없으므로 윤리를 멈출 수 없다.


    에너지≫밸런스≫대칭≫호응≫데이터 때문이다. 계속 간다. 발동 걸리면 멈출 수 없다. 어린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다간 실패다. 형은 내게 거짓말을 가르쳤다. ‘엄마에겐 절대 우리 멱감으러 갔다고 말하지 마. 알았쥐.’ 그러나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우리 멱감으러 안갔데이.’


    하고 실토하고 말았다. 실패한다. 정언명령은 거짓말 하면 안 된다가 아니다. 거짓말은 박그네의 생쇼처럼 결국 실패한다는 것이다. 나치가 유태인을 잡으러 왔는데 ‘다락방에 유태인이 숨어있는가?’ 하고 물으면 ‘있다.’고 대답하는게 정언명령일까? 아니다. '없다.'고 말하라.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사건으로 보자. 나치에 대항하는게 윤리다. 거짓말을 했다고? 아니 말하지 않았다. 나치를 따돌린 것이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마다 ‘쌀들아 내가 너를 속였어. 사실은 너를 먹으려고 키운 거야. 미안해.’ 하고 고백하지는 않는다. 쌀과 대화하지 않는다.


    나치와는 대화하지 않는다. 나치는 타자이기 때문이다. 나치는 적이다. 적과의 대화는 없다. 사건해결이 있을 뿐이다. 영화로 들어가 보자. 홍상수와 김민희는 윤리를 위반했을까? 사건은 계속 간다. 두 사람은 서로 소통한다. 소통은 에너지를 준다. 홍상수가 발동이 걸렸다.


    어떻든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기승전결로 간 거다. 이레셔널맨으로 보자. 교수는 살인을 했다. 이레셔널은 비이성이다. 아니다. 에너지다. 에너지를 건드리면 폭발한다. 계속 가는 것이다. 멈추지 못한다. 교수는 멈추지 못했다. 뭐 중요하지 않다. 홍상수는 멈출 수가 있을까?


    이상과 비이성이 아니다. 통제가능성이다. 우리는 혼자라야 통제된다고 여긴다. 교수는 혼자였다.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 러시안룰렛으로 죽으려고 했다. 둘이 되었다. 에너지가 생겼다. 통제가능해졌다. 여기서 영화가 꼬였는데 그건 우디 앨런의 실패다. 이중영화가 되었다.


    하여간 둘이라야 통제가능해진다. 둘이 소통할 때 에너지가 격발되고 비로소 사건은 통제가능해지는 것이다. 교수는 에너지를 얻어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왔다. 여학생은 정언명령을 구사하여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야기가 꼬였지만 감독 잘못이고 정언명령은 계속 간다.


    이성과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와 통제가능성의 문제다. 우리는 이성으로 통제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칸트철학이다. 영화가 지적하듯이 개소리다. 이성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건에 대한 통제가능성이 없다. 자기 자신조차도 통제해내지 못한다.


    작당하여 넘지 말아야 할 금을 넘었을 때 둘이서 소통했을 때 에너지를 얻어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성과 감성으로 이분화하면 안 된다. 이분법은 개소리다. 구조론은 5분법이다. 계속 가는 것이다.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이 결이다. 사건은 결따라 간다. 5단계까지 진행한다.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이라는 방향으로 전진한다. 누구도 멈추지 못한다. 그것이 정언명령이다. 칸트 헛소리는 잊자. 인간은 정언명령을 따라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게 아니라, 인지의신예로 소통하여 강렬하게 호응해야 한다.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 칸트 – 이성의 정언명령이라는 윤리로 삶을 통제하자.
    ◎ 구조론 – 소통의 호응이라는 에너지로 사건을 통제하자.


    그리하여 더 이상 남이 아니게 될 때, 타자화와 대상화를 극복할 때 불타오른다. 누구도 그 불을 끄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정언명령이다. 그것은 칸트의 정언명령이 아니라 구조론의 정언명령이다. 사건은 에너지로만 통제된다. 에너지는 만남과 소통에 의해서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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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의 계산된 이성에 의해서 통제되는게 아니라 문재인 패권세력의 에너지에 의해서 사건은 통제됩니다. 통제하려면 불을 질러야 합니다. 불을 지르려면 성냥개비와 적린이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소통해야 합니다.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하여 어떻게 하는게 아니라 당신의 참여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 소통입니다. 소통疏通이 아니면 소외疏外입니다. 당신이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이 소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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