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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에이지님의 시사리트윗글 http://gujoron.com/xe/664662 에서 표창원이 말한 회사후소繪事後素.
역사공부를 게을리 한 주자가 망쳐놨군요.
흰색이 먼저 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식이 나중에 온다는 의미입니다.
예로 시작하는게 아니라 예로 끝낸다는 뜻.
이렇게 보면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구조론으로 보면 일의 순서는 복제, 조합, 연출입니다.
복제는 주자의 입장과 같이 균일하게 판을 고르는 것입니다.
복제는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합은 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출은 禮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제는 출발선상에서 너와 내가 같아지는 것
의는 게임에 들어가서 너와 내가 한 팀을 이루고 팀플레이를 하는 것.
예는 미학적인 연출로 볼 수 있습니다.
구조론은 돈오스타일을 밀고 있습니다.
활력있는 만남으로 흐름을 만들어내고 결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돈오스타일의 좋은 연출
억지연출
같은 생각을 했구랴.
우리 함께 낚였소!
아무님이 안 낚여서 실패.
바탕소라는 이름이 회사후소에서 나온건 맞을 겁니다.
예전에 아무님에게 들은 적이 있어서.
정확한 내막은 저도 모르지만.
당시는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좀 아는 사람들의 유행처럼 삼았다는데,
詩經은 추상적 개념에 대한 유비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자는 그러한 표현법을 몰두해서 연구하다보니 시경을 편찬했겠죠.
하여간 그림을 좀 그려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바탕素을 마련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는 않습니다.
작품 제작의 물리적 환경을 세팅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캔바스를 짜기 위해 틀을 만들고 천을 고르고 바닥을 고르는 일, 물감을 마련하고 등등 모두 素에 해당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좋은 천을 구하고 쓸만한 물감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실은 대충 넘길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그런 바탕 작업입니다. 요즘은 돈을 주고 캔바스나 물감을 사서 쓰면 되지만 이것도 자신에게 맞는 캔바스와 물감 제품을 고르는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도, 흰 캔바스를 대면하고 있을 때의 그 상태가 딱 바탕素입니다. 작품에 대한 행위가 표출되지 않은, 아직 한 획을 긋지 않은, 무엇이 나올 지 알 수 없는 그 순수한 기대와 스트레스로 꽉 찬 그 상태가 바로 素입니다.
실제로 작품을 시작할 때의 그 압박은 여간 심하지 않은데, 그 압박으로부터 쏟아져나와야 제대로 작품이 나오는 거죠.
한 획을 그으면 거기서 작품이 시작된 것이고, 그 시작되기 전의 순수한 가능성의 상태가 바로 素입니다.
그래서 石濤는 그의 화론 첫 구절로 太樸不散이라고 했죠. 그릇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원 재료인 통나무 그 자체가 바로 素인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바탕소는 문제가 많아요.
하여간 바탕소는 그 바탕소랍니다. ㅋ
바탕소 문제라고 하셔서 저는 동렬님책을 출판하는 바탕소에 무슨 문제가 생긴줄 알았습니다.
그럼 출판사 바탕소 이름도 회사후소와 관련이 있는거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