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적인 야구
스포츠는 원래 전쟁에서 왔다. 스포츠가 어디까지 진화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스포츠 중에 가장 진보된, 현대적인 스포츠는 '야구' 다. 그 이유인 즉, 야구는 4차원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가장 기초적인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레이싱을 선의 스포츠라고 기준을 세운다면, 오늘날의 배구, 농구, 축구, 검도, 탁구, 테니스, 유도 등의 스포츠는 3차원의 공간에서의 스포츠라고 분류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빠른 스피드와 순발력을 이용한다.
내가 야구를 가장 현대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룰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스포츠 중에 하나라는 점도 있겠지만, 다른 스포츠에서는 없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야구는 던지고, 치고, 달리고의 반복된 과정이 모여서 하나의 게임을 만들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판단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 많은 스포츠 중에 '스피드'와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는 많지만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는 아마도 야구가 유일 할 것이다. 4차원의 '시간' 개념이 들어가서, 타이밍으로 승부를 내는 게임. 물론 격투기에서도 카운터를 날리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각종 구기종목에도 타이밍을 활용한 기술이 있지만, 미시적으로 봤을 때의 얘기고, 거시적으로 봤을 때의 기다림의 스포츠는 야구가 유일하다. 그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야구는 투수발판과 홈 플레이트간의 거리인 18.44m를 투수가 던져서, 투수가 세 번의 스트라이크를 판정받으면 타자가 아웃이되고, 세번의 아웃을 시키면 공격권의 바뀌고, 타자가 공을 쳐서 득점해서 최종적으로 더 높은 득점을 하는 팀이 이기는 게임. 실제로 투수가 공을 던지는 거리는 투수발판보다 1~2m 정도 발을 내딛으면서 던지고, 타자도 홈플레이트 보다 좀 더 앞에서 타격하기 때문에 그 거리는 더 짧다.
그리고 시속 140Km의 공을 던진다고 가정하면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할 때까지의 시간은 0.4초 정도라고 하니까, 타자는 0.3초 이내에 공이 들어올 방향을 예측해서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게다가 떨어지는 변화구, 옆으로 휘어나가는 변화구, 빠르게 오다가 갑자기 속도가 줄어드는 체인지 업, 솟아오르는 라이징 패스트 볼 등... 궤적이 서로다른 여러가지 구질이 있고, 같은 구질이라도 속도를 다르게 하는 완급조절까지 생각한다면, 타자가 공을 배트 중심에 맞춘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타자에게도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다림' 이다. 원하는 코스로 볼이 가지 않는다면 투수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축구에서의 페널티 킥과도 같은 것. 확률상 발로차는 공을 골키퍼가 눈으로 보고 반응하여 막는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되려 킥을 그르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야구는 조급한 사람이 무조건 지는 게임이다. 타자는 원하는 코스의 볼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감독은 1, 2점 뒤지고 있더라도 흐름이 바뀌길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막판에 기아가 역전한 것도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2. 변화구
박찬호는 공의 스피드가 마지막 순간에 공을 채는데서 나온다고 했다. 공을 빨리 던지는 것은 팔을 빨리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활처럼 튕기면서 던져야 힘도 덜 들어가고 스피드도 빨라진다. 그러니 몸 전체의 유연성과 왼발에서 오른발로, 혹은 오른발에서 왼발로의 체중이동과 그것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튼튼한 하체가 중요한 것이다. 80년대 선동열 선수의 투구를 보면 정말 몸 전체의 탄성으로 던지는 느낌이 난다.
투수의 무기는 다양한 변화구인데, 그 종류도 상당히 많아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위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와 옆으로 휘어나가는 변화구 라거나 혹은 속도는 느리지만 변화의 각이 큰 변화구와 속도가 빠르면서 각이 적은 변화구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변화구를 던지기 위하여 실밥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원리는 공의 회전이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지는가이다. 보통 직구는 공을 채면서 공이 위쪽으로 회전하고, 커브는 아랫쪽으로 회전하고, 슬라이더는 실밥을 긁어서 오른쪽으로 회전하게 만드는 것. 던질 때, 둥근 공의 특정부분에 순간적으로 밀도는 높여서 회전시키고, 그 공이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서 궤적이 굴절되는 현상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체로 오른손 투수는 왼손타자가 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른손 투수의 변화구는 타자입장에서는 공이 왼쪽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오른손 타자는 오른손 투수의 공이 등 뒤에서 날아오는 느낌을 받거나 공이 시야에 잘 안들어온다. 그래서 감독의 베팅오더가 전체적으로 아주 중요한 작전이 되는 것이다.
3. 엄지손가락
여기까지는 야구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째서 오른손 투수가 던진공은 대체로 (투수입장에서) 왼쪽으로 흘러갈까? 하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 것이다. 왜냐하면 오른팔로 던지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답이 되질 않는다.
나름 고민을 한 나의 결론은 오른팔로 던지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인간의 엄지손가락이 검지보다 짧기 때문이다. 엄지손가락이 굉장히 절묘한 위치에 있다. 만약에 인간의 엄지손가락이 손바닥 밑이나, 새끼 손가락 옆에 달려있다면 변화구의 공의 궤적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상은 하나마나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역회전을 하는 변화구도 있긴 하다.)
손은 뇌가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자극하는 곳이다. 수십개의 뼈가 있고, 근육이 있고, (손가락은) 각각 다른 신경이 지배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손을 사용할 줄 아는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의 유인원들은 인간처럼 물건을 집고, 도구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엄지손가락이 발달되지 못해서 사실상 네 개의 손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의 위치도 인간보다 더 윗쪽에 있어서 퇴화된것이나 마찬가지다.
우스개소리지만, 만약에 원숭이가 야구를 한다면 직구 밖에 못 던졌을 것이다. 아니, 원숭이의 손은 농구에는 적합할런지 모르지만, 야구는 절대로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야구가 가장 진보된 스포츠라고 하는 것이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4. 인류의 경쟁
인류학자들은 인간과 유인원의 엄지손가락의 비율의 차이는 직립보행을 하는가 안하는가의 차이에서 왔다고 한다. 만약에 고릴라의 엄지손가락이 인간과 같은 위치였다면, 손으로 땅을 걷는데에 무척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얘기다. 어째서 인간과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유인원마져도 엄지는 다른 것일까?
내가 상상하는 것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여러가지 인류가 있었고, 때로는 같은 시대에서 서로 경쟁을 하기도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엄지손가락의 위치 때문이 아니었을까? 네안데르탈인이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손가락 뼈의 모양을 비교한 자료가 없어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경우 두개골은 고릴라에 가깝고, 골반뼈는 현생인류에 가깝다고 하니,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엄지도 현생인류보다 윗쪽에 위치했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다.
현재 손가락의 활용으로 보면 엄지가 50%, 검지가 20% 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이 각각 10%씩 인데, 중지, 약지, 새끼 손가락의 활용이 검지보다 적은 이유는 엄지 손가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류의 진화가 작고 약하고 위에 위치한 엄지손가락이 점차 길어지고, 다른 네 개의 손가락에 점차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인간의 진화의 방향은 앞으로 엄지가 더 길어져서 중지, 약지, 새끼 손가락의 활용을 더욱 높이는 형태가 될것이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엄지손가락이 그 활용에 대하여 최적화 되어있지만, 훗날 어떻게든 현생인류가 좀 더 최적화된 엄지손가락이나 완전히 다른 기능에 적합한 엄지손가락을 갖게 된다면 또다시 경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인간의 엄지손가락은 컴퓨터 등의 활용을 통하여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중인지도 모른다. 인류 진화의 열쇠는 엄지손가락에 달린 셈이다.
P.S. 오래전에 김동렬 선생께서 인간의 엄지와 다른 네 개의 손가락에 대하여 구조론으로 설명했던 기억이 있는데, 대략 내용은 엄지와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이 균형을 이루고 손목이 제어를 하는, 말하자면 손목이 심이고 엄지와 네 개의 손가락이 날이라고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엄지가 발달하지 못한 유인원은 구조론으로 보자면 날 한쪽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여 생산이 원활하지 못하다, 혹은 불완전하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유인원의 엄지손가락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현생인류의 손가락의 위치를 진화와 더불어 구조론으로 설명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엄지는 밀고 나머지 손가락은 당기는데
엄지는 외부의 것을 자기에게로 가져오고 나머지 손가락은 이미 가져온 것을 사용하오.
엄지가 미는 이유는 외부의 것을 가져오려면 먼저 상대방을 특히 상대방의 무게중심을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오.
원숭이류는 외부의 것을 자기에게로 가져 오는 대신 발을 움직여 몸이 다가가는 것이오.
즉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질을 생략하고 혹은 몸으로 대신하게 하고 입자부터 운용하는 것이오.
사람은 몸은 고정시킨 채로 팔만 움직여서 혹은 손가락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지배하오.
그러므로 엄지의 역할이 커진 것이오.
손가락 순서대로
엄지 질- 외부의 것을 제압하여 가져온다.
검지 입자 -손가락 하나로 전체를 대표하고 나머지 손가락들을 통제한다.
중지 힘-힘의 강약을 조절한다.(타격시 손을 전후로 움직일때)
무명지-운동-운동의 거리를 조절한다.(손을 상하로 움직일 때)
소지-정확도를 미시조정한다.
물론 반드시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나 대략 이렇게 되오.
손가락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서라도 그렇게 되오.
미꾸라지를 잡는다면 엄지가 진로를 막고
검지가 미꾸라지를 눌러 신체를 장악하고
중지가 미꾸라지에 가해지는 손가락 힘의 크기를 지정하고
무명지가 미꾸라지의 길이(빠져나가려는 운동)에 따른 대응을 하고
소지가 최종적으로 미세조정(힘과 운동을 추가하거나 감소시킨다)을 하는 것이오.
원숭이들은 매달리는 한 가지 동작만 하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거나 상대방의 몸통을 장악하려 하지 않소.
그냥 힘의 크기만 조절할 뿐이오.
인간들도 손가락으로 자판만 치고 다른 동작을 하지 않는다면 엄지가 점점 약해질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