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럼] 경험의 완성
다섯살 강토는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하면 누가 뭐래도 그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봐야 한다. 한번은 여러 모양의 나무블록을 쏟아놓았더니 달려들어 이것저것 흥미로운 모양을 찾아내느라 완전히 몰입한다. 나무를 쌓았다가 허물었다가 주욱 늘어놓기도 한다. 어느새 그것이 산이 되고 다리가 돼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더니 어디서 테이프를 가져와 자신이 골라낸 나무조각들을 붙여본다. 단순한 모양을 두세 가지 붙이고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자랑을 한다. "이건 강아지고 이건 강아지가 사는 집이에요!" 걸작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다.
강토의 이 무의미해 보이는 작업에는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완전한 사이클'로 완성시키려는 욕구가 담겨있다. 그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자신인 타인에게로 확장해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나선형의 성장 사이클이다.
마음의 이미지는 대상을 갖가지 형태로 조작하도록 부추긴다. 이것과 저것을 붙이자 흥미롭고도 새로운 형태가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감탄이 터져나오고, 그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 닿는다. 이렇게 세계와 접촉해 스스로 창조한 놀라운 경험이 타인에게 닿으면 사람의 경험이 온전해진다. 소통으로 완결된 경험은 다시 더 커다란 욕망이 돼 성장을 부추길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타인과 소통의 범위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 경험을 완성하려는 욕구도 커진다. 그 욕구는 아이가 열살이 되면 훨씬 복잡한 표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열다섯이 되면 학교에서 상을 타겠다는 목표를 이루게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잘 성장해 회사에 취직을 하면 남들이 상사로부터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바쁠 때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해 온갖 역경을 헤치고 그것을 완성해낼 것이다. 혹은 작가나 영화감독이 됐다면, 자신의 열정을 담은 결과물을 전시장에 펼치거나 영화관에 상영해 관객과 만나는 가슴 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해 마침내 그 열정은 한 사람이 문명의 정수와 대화를 하고 역사의 가장 내밀한 곳과 소통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부추기게 된다.
강토가 어린 시절 자신이 만들어 엄마에게 자랑한 강아지와 어른이 돼 영화관에서 수많은 관객에게 선보인 작품은 스케일은 다르지만 공통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해 소통으로 나아가는 완성된 사이클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경험이 완결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작은 사이클이라도 완결되지 않으면 다음 번 사이클로 상승하는 동력을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아이의 경험을 작고 미숙하게 생각해 함부로 개입하려 한다. 더 큰 것을 쥐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토의 작업과정에 개입해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지만, 개입한 만큼 강토의 경험이 빼앗긴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완결시키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작은 경험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는 편이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강토가 열살이 돼 이런 저런 과목을 배우느라 바쁜 사이에 열정의 싹은 점차 시들어간다. 강토는 아마 또래 아이들보다 영어단어도 더 많이 알고 수학문제도 더 많이 풀고 그림도 배운 대로 매끈하게 그려내게 됐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도전하는 열정은 거의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그럴수록 어른들은 점차 무기력해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 더욱 바빠진다. 남는 건 자신이 아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위안 뿐이다. 완전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이 바뀌기 전에는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첫걸음은 자신의 작은 창조에 놀라고, 그것을 부모와 공유하는데서 시작한다. 진짜 감탄이 계속 솟아나오면 그것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언젠가 세상을 놀래키게 될 것이다.
* 칼럼 쓸 여유가 없었던 관계로 예전 글 재탕 ㅋ
재탕도 좋아요
차는 두 번 우려먹어야 제맛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