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괜챦군."
점점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소린가. 첫 농사 아닌가. 그 정도면 좋지."
3가마니 나오는 땅을 넘기고 겨우 1가마니의 황무지로 바꾼 게 잘한 것입니까.
"......"
혜월 선사의 일화다. 혜월은 경허의 수제자다.
혜월은 개척가다.
작년에 3가마니..올해엔 1가마니..2가마 적자다.
3가마를 포기하고 1가마를 선택하면 바보다. 혜월은 바보다.
경허의 수제자 3명이 있다. 속칭 "세 명의 달" 이라 한다.
혜월,수월,만공이다. 만공의 원래 법명은 월면이다. 그래서 3개의 달이다.
경허가 말했다.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
지혜라서 혜월이다.그런데 바보라고?
3을 버리고 1을 선택하니 바보인 것인가.
혜월의 수학은 다르다.존재의 수학이다.
존재의 수학이란 인식의 산수와 다르다.
3이라는 것에 1을 또 개척했다. 존재가 더 풍성해졌다.
혜월은 말한다.
“두 가마 손해본 게 아니라 네 가마 득을 보았다.
판 논은 좋은 땅이라 누가 경작해도 세 가마의 소출은 얻을 것이다.
게다가 새로 산 땅에서 한가마를 얻었으니 어찌 손해라 하겠느냐.”
존재의 계산이 있고 인식의 계산이 있다. 각각 존재론과 인식론이다.
존재의 계산은 수학이고 인식의 계산은 산수다.
인식은 <나>에서 시작하므로 나의 이익으로 산수한다.
존재는 존재 그 자체의 합리로 시작해서 미학이라는 완성으로 수학이 된다.
인식은 산수이고 존재는 수학이다.
인식을 버리고 존재로 사는 것이 맞다.
아니,
존재의 방식으로 인식하라.
먹기위해 산다는 것는 무슨론 인가요?
혹 인식론인가요?
이유
1. 산다와 먹는다가 대칭이라서....
2. 산다와 먹는다에는 [나]라는 것이 개입되어서.
먹기위해 산다는 넘은 미친넘입니다.
무슨 론도 아니고 그냥 상태가 안 좋은 분입니다.
아니면 개그맨이거나.
노자가 천지불인..이라고 말했다.
그대는 그 말에 쓸쓸한가.
천지는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물에 공평하죠.
쓰나미가 사람은 살리고 건물만 집어 삼킨 것이 아니죠.
아제님의 여기에서 천지불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
천지불인.
해석: 천지는 인식론과 관계없다.
작은게 앞에 오면 한국말이 아니죠.
사는건 크고 먹는건 작으니
먹기 위하여는 한국말이 아니죠.
전체의 말은 충문하게 동렬님의 뜻은 이해하겠습니다.
다만 숨은 전재에 대한 개념이 구조론적이지 않다 보니 글을 읽다보면 수많은 엉뚱한 질문들이 머리를 맴돕니다.
예를 들어
위하여는 대상이 커야하는데 --- > 이런 규칙이 어디에 있지? 왜 작은면 안돼?
작은게 앞에 오면 한국말이 아니죠 ---> 그런 규정이 문법이 어디있는데?
사는 건 크고 먹는 건 작으니 ---> 삼일만 굶어봐! 담장 안넘는 놈 없슨께!
먹기 위하여는 한국말이 아니죠 ---> 그럼 for eat는 미국말이고 등등
이 글은 지혜의 글입니다.
즉, 지혜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지혜? 뭐죠?
잘 모르겠죠? 그래서 쓴 글입니다.
무득/
한번 패턴을 알려주면 그 다음부터는 본인이 헤쳐가야 합니다.
매번 설명을 해주면 어차피 패턴에 주목을 안할게 뻔한데
왜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 바보짓을 제가 합니까?
그래봤자 같은 상황이 되돌이표인데.
지금 상황은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상황이고
대화가 안 통하는 상황입니다.
말해봤자 입만 아픈 거죠.
더 이상 안 합니다.
위하여는 대상이 커야하는데 --- > 이런 규칙이 어디에 있지? 왜 작은면 안돼?
작은게 앞에 오면 한국말이 아니죠 ---> 그런 규정이 문법이 어디있는데?
사는 건 크고 먹는 건 작으니 ---> 삼일만 굶어봐! 담장 안넘는 놈 없슨께!
먹기 위하여는 한국말이 아니죠 ---> 그럼 for eat는 미국말이고 등등
지금 이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물론 무득님이 정치적으로 반대편이면 트집거리 잡았다고 덤빌 수 있죠.
근데 그렇다면 이 사이트 오면 안 되죠.
위하여가 대상이 작으면 '아래하여'(말하자면)지 어찌 위하여입니까?
for는 어원으로 앞세운다는 의미인데 그럼 back이라고 해야죠. behind나.
이걸 제가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 길이 아니면 저 길인거지
이 길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요?' 하면 제가 설명을 해요?
'위한다'는 말은 목표라는 뜻이고, 그건 더 낫다는 의미인데
더 나빠지는 쪽을 선택하면 '위하여'가 아니라 '조지려고'죠.
'나라를 위하여'가 아니라 '나라를 조지려고' 해야죠.
나라가 개인보다 크니까 나라를 위하여이며
나라가 개인을 위하여일 때의 위하여는 개인들의 집합이거나
개인이 공적을 세워 나라를 빛내거나 하여 맥락상 개인이 나라 앞에 왔을 때죠.
국민을 위한.. 국민이 높다는 뜻이죠.
대상이 작으면 국민을 위한이 아니라 '국민을 조지는' 이 맞잖아요.
근데 제가 이런 말을 왜 합니까?
패턴을 못 읽으면 나가셔야죠.
'국민을 조지는, 국민이 당하는, 국민치기 정치' 이게 맞잖아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는, 국민이 정부보다 높다는 말이잖아요.
국민을 위하여.. 근데 국민이 정부보다 낮다고? 그럼 말을 잘못한 거죠.
규칙? 규칙이라뇨? 지금 맥락 이야기하는데 왜 여기서 규칙입니까?
왜 그런 말이 나옵니까?
맥락을 못 알아드시는건데 무슨 규칙?
경찰서 잡아가시려고?
제가 법 위반했소?
어깃장으로 덤비면 저도 어깃장으로 대응합니다.
문법? 지금 여기서 맥락을 말하는거지 문법 강좌 합니까?
국어교실이에요?
한국말 못알아들을 정도로 말귀가 어둡다는 뜻인데
제 쉬운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시는 분이 영어는 왜 끌어들입니까?
싸우자는 거에요?
해보겠다는 거에요?
'먹기 위하여 산다'.. 이런걸 역설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거 모르는 한국인이 이 사이트에 온다는 말입니까?
제대로 된 사는 목표가 없다는 말이죠.
욕할 때 쓰는 말입니다.
"쟤는 먹기 위해서 사는 거 같어." 이거 욕입니다.
이건 잘못된 말이기 때문에 욕이 되는 겁니다.
먹기 위하여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먹는거 외에 목표가 없을 정도로 한심하다는 말이죠.
즉 이런 말은 비정상적인, 뭔가 잘못된 상태를 나타낸다는 거죠.
그니까 그게 잘못이라는 말을 이해 못한다는 사람은 한국어가 안 되는 사람이죠.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하는데도 말귀를 못 알아먹으니까.
살기 위해서 먹는다 인식론
배가 고파서 먹는다 존재론
이거 이해하기 전까지는 질문하지 마세요.
말귀를 못 알아먹는 사람과의 대화는 없습니다.
패턴을 알려주면 본인이 헤쳐가야 합니다.
사는 건 크고 먹는 건 작으니 ---> 삼일만 굶어봐! 담장 안넘는 놈 없슨께!
이거는 진짜 한국말이 안 되는 겁니다.
이거 이해 못하겠다면 이 사이트에 오면 안 됩니다.
제발 나가주세요.
사는건 인생이고 먹는건 지금 이순간의 한끼 식사를 말합니다.
근데 왜 삼일을 굶어? 누구 맘대로. 누가 3일 시한 정했소? 아예 3주일 굶은 걸로 하지 그러셔?
내가 한끼라고 고정시켰는데?
내가 말을 꺼낸 사람이고 내가 의미를 정했으며 내 말이 이해가 안된다면
이해가 되도록 의미를 맞춰야지(정치적 반대자가 공격하기 위해 일부러 트집잡아 씹는게 아니라면)
왜 멋대로 말을 지어냅니까?
이게 아니면 저거입니다.
사는건 크고 먹는건 작다/이 말이 이상하다면 이상하지 않도록 의미를 제한해야 합니다.
즉 '먹는건 작다'는 말은, '작은 먹기' 곧 '작은 한끼 식사'를 의미한다는 거고
'사는건 크다'는 말은 큰 삶, 곧 인생전체를 의미한다는 거고
인생전체와 한끼식사를 바꾸겠소?(다른 모든 조건은 동일하다는 전제는 자동으로 붙는 거고)
이런거 이해못한다면 이 사이트에 올 자격 없습니다.
진리는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건데 현실의 특수성을 끌어드리면 안 됩니다.
이건 수학시간에 1+1=1일 수 있다는 철학이야기로 어깃장 놓는 겁니다.
수학을 철학으로 막겠다는건 대들겠다는 거죠.
구조론은 이론이고 이론은
다른 모든 조건은 동일하다는 전제가 붙었는데 왜 사흘을 굶어?
사흘을 굶었다 치고 담장을 넘건 말건 그게 인생전체보다 크다는 근거가 어딨소?
이건 화자의 맥락을 무시하는 의도적인 반칙이고
애초에 구조론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증거 잡혔으니 오지 마세요.
구조론 모임에 나오는 분은 다 이해합니다.
게시판에서 이러니까 계속 대화가 어긋나는 거죠.
내가 맥락을 말하는데 문법으로 응수한다면 명백히 해보겠다는 거죠.
규칙타령은 뭐 법으로 해결보겠다는 말이죠?
즉 악의를 품은게 들켜버린 거죠.
악의를 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증했으니까 앞으로 무득님의 질문은 안 받겠습니다.
무득님께 한가지 팁을 드리죠.
구조론 사이트에서 동렬님이 쓴 모든 글을 5번씩만 읽으시면 이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글입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면 직접 물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위하여는 대상이 커야하는데 --- > 이런 규칙이 어디에 있지? 왜 작은면 안돼?
작은게 앞에 오면 한국말이 아니죠 ---> 그런 규정이 문법이 어디있는데?
천만원의 수입을 위하여 백만원을 지출하죠..
백만원의 수입을 위하여 천만원을 지출하시나요?
위하여가 작으면 그런걸 바보라고 합니다.
사는 건 크고 먹는 건 작으니 ---> 삼일만 굶어봐! 담장 안넘는 놈 없슨께!
먹기 위하여는 한국말이 아니죠 ---> 그럼 for eat는 미국말이고 등등
먹기위해 먹는 행동을 하는거죠.. 그건 사는게 아니죠.
삶 > 배고픔 > 담넘기..
먹기위해 사는 것은 거짓 표현이고, 먹기위해 넘는 겁니다. 그건 사는게 아닙니다.
-- 내가 사는게(내행동이) 사는게(내삶이) 아니야 --
앞에 사는 것과 뒤에 사는 것은 다른 뜻, 같은 단어입니다.
이게 되야 국어공부가 된 겁니다.
초딩도 아니고 다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거지요.
선방에 가면 입차문내 막존지혜(入此門內 莫存知解)라고 합니다.
이 문안에 들어서면 모든 알음알이는 버리라는 뜻이죠.
그러나 이게 쉽진 않아요.
새로운 이론을 들으면 자꾸만 과거에 알았던 것과 대비해서 의문이 가고
그걸로 반격(?)을 합니다.
예전에 어떤 스님 밑에서 공부하는 모임 있었는데 대부분 머리 좋다는
서울대 출신들이였죠. (저는 서울대 근처에도 못 간 사람이고...)
그 중 한 사람이 스님 말에 사사건건 반론을 재기하는겁니다.
그 반론이라는 것은 다른 스님한테 들은 말이거나 책에서 본거라던가
어떤 불교교리를 들고 나온다던가...
그런 외부에서 배웟던 잣대로 스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스님을 괴롭히려고 그런건 아닌것 같고, 새로운걸...
아니면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을 못 받아 들이는거 같았어요.(확실치는 않음)
자꾸 그러니까 스님이 하도 답답해서 하는말..
'그냥 억지로라도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스님 말이 맞다고 생각하세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맞고 스님 말이 틀렸을지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면 여긴 뭐하러
오냐'고 하시는 겁니다.
지금 상항이 그와 비슷한거 같습니다.
수십년동안 배우고 익혀온 자기 생각을 바꾼다는건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세상에 의문을 가지고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이해하는 것들이 내가 볼때는
어째 좀 이상하다거나 햇을땐 이런 다른 잣대(구조론)를 보면 팍 와 닿는데
그런게 아니고 저런것도 있네 하고 단지 흥미로 본다면 많이 어려울 겁니다.
그 서울대 딴지맨 지금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일단은 내가 세상보는 방법이 잘 못 됐다고 생각하시면 훨 빠릅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안 바뀌죠. 바꿀 필요가 없는 겁니다.
맞아요. 계속 아이템을 바꿔 가면서 똑같은 질문을 반복 하죠!
왜, 그런걸까...
옆에서 그런 사람을 쳐다보면, '습관성'이라고 밖에 안보이더군요.
몸 안에 어딘가, 세포들이 유연하지 못한걸지도...
구조론은 인류의 방대한 지혜가 모아지는 그릇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견해 봅니다.
무엇보다 " 구조론 아카데미가 가는 길"의 제시문에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포괄적이고도 총괄적인 선언을 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구조론은 자연의 완전성을 통하여 이상주의로 나가는 철학이고,
세상을 해석하는 경로를 제공한는 과학의 방법론이며
자연의 완전성을 삶의 양식으로 내면화하는 미학입니다.
신의 완전성과 소통하는 깨달음이며,
인류의 집단지능이라는 문명적 관점으로 보는 새로운 세계관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에 꾀어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는 총괄이론 입니다.
구조론 아카데미는 구조론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목입니다."
***
의문이 들 때는 이것을 먼저 상기하고 생각합니다. 깊고 넓은 뜻을 가졌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0.0001%만 오라는 것에 기죽고 들어간 것도 사실이고, 아이큐 테스트 안받고 받아들여진 것에
감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맥락을 이해 못할 때는 더욱 자퇴가 옳으 것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비 맥락자와 맥락자의 대화의 사이에 구조론의 더 큰 매력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구조는 사이이기에 말입니다...
강물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는건 인식론
바다가 뻗어서 강물이 된다는건 존재론
1+1=2 인식론
2-1=1 존재론
살기 위해서 먹는다 인식론
배가 고파서 먹는다 존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