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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116 vote 0 2008.11.07 (12:01:23)

클래식에 대한 관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콩을 먹으면 똥이 난다.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이러한 비교는 무익하다. 어쨌든 농부는 콩을 심을 것이고 당신은 그 콩을 먹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가 콩이냐 팥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크게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콩과 팥의 구분차이가 아니라 콩을 심는 일과 콩을 먹는 일의 차이다. 콩과 팥 중에서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콩심기와 콩먹기 중에서는 택할 수 없다. 왜? 콩을 심지 않으면 콩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반드시 콩을 심어야 한다. 물론 콩이 넉넉하다면 먹을 수도 있다.

어쨌든 콩심기가 먼저다. 이 순서는 절대 그르칠 수 없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필자가 주문하는 클래식에 대한 관점의 획득이다. 클래식을 부정하고, 지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결국 이 공간의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다.

장교와 병은 명백히 차별이 있다. 사장과 직원도 차별이 있다. 운전수와 승객도 차별이 있다. 발견과 발명도 다르다. 학문과 상품도 다르다. 왜 빌 게이츠라는 자는 한국의 어떤 회사가 관리직 노동자 한 명을 고용할 때 마다 40만원씩 가져가느냐다.(지금은 액수가 달라졌겠지만 정품 윈도, 엑셀 등의 가격.) 그냥 남의 생살을 뜯어가는 거다. 왜?

어쨌든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은 운전수가 정한다. 승객이 항의하여 운전수를 재촉할 수는 있지만 단지 재촉할 수 있을 뿐이다. 운전기사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이러한 사실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교는 병이 없으면 죽는다. 사장은 직원이 없으면 망한다. 운전수는 승객이 없으면 못간다. 클래식은 대중음악이 없으면 죽는다. 클래식은 클래식대로 존재하고 대중음악은 대중음악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콩은 콩대로 팥은 팥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콩이 없으면 팥 먹으면 되고 팥이 없으면 콩 먹으면 되고, 클래식이 없으면 뽕짝 들으면 되고, 뽕짝이 없으면 클래식 들으면 되고? 천만에! 전혀 아니다.

대중음악이 있기 때문에 클래식이 있는 것이다. 콩을 먹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콩을 심는 농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콩을 먹는 소비자보다 그 콩을 심는 농부가 더 위대하냐고?

위대하다는 말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 화 내지 말라. 감정 삭이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라. 엄연한 진리에 눈을 떠라. 중요한 것은 어쨌든 당신은 그 콩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왜? 믿기 때문에. 그 콩에 독약이 들어있을지 어떻게 알어? 대중음악은 절대적으로 클래식을 믿는다.

이는 절대적이다. 병사가 장교를 믿지 않으면? 죽는다. 승객이 운전수를 믿지 않으면? 죽는다. 직원이 사장을 믿지 않으면 굶는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관계, 예술과 상품의 관계, 학문과 사회의 관계, 지성과 비지성의 관계는 이렇듯 생사여탈과 절대신뢰의 관계이다.

어긋나면? 죽는다. 지성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주변에 지성이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죽는다. 아기가 태연하게 노는 것은 주변에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엄마가 좋은 엄마든 나쁜 엄마든 상관없다. 그저 있기만 하면 된다. 엄마가 없으면? 놀지 못한다. 지성이 없으면 사회는 무너진다.

인간은 서로 개입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혼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위태롭기 짝이 없다. 반드시 서로를 해친다. 그러므로 지성이 필요하다.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사람이.

모든 사람이 지성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명은 파수를 보아야 한다. 한 명은 조정을 해야 한다. 한 명은 싸움을 말려야 한다. 한 명은 돌아가는 판 전체를 보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잠들었을 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홀로 깨어있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클래식은 스승과 제자로 계통이 이어지는 시스템 안에 있다. 클래식의 세계에서는 백만 명의 관객보다 한 명의 뛰어난 제자가 더 중요하다. 그것이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사적인 인맥의 고리는 아니다. 학문적 체계 안에 통이 있다. 계통이 있다. 좋은 음악, 좋은 소리, 좋은 연주가 목적의 전부는 아니다.

예술의 전당은 클래식을 들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키우기 위해 있는 것이다. 거기 가서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다면, 그냥 ‘곡이 좋더라 안좋더라’ 이런 말이나 할 관객이라면, 그 관객은 그곳에 갈 이유가 없다.

나는 그곳에 몇 번 가지 않았지만 그나마 배운 것이 있고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이렇게 쓰는 것이다. 일부지만 나는 예술의 전당이라는 클래식 시스템의 제자다. 그 시스템 안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버스에 탄 승객이 그곳이 버스 안이고 버스 안에서는 운전수가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느냐가 중요하다. 과연 인순이가 그곳이 버스고 자신이 승객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나는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혹시 자신이 운전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에 대한 답은 인순이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그것을 예술의 전당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예술의 전당이 하기 나름이다. 어쨌든 그 순간에도 시스템은 작동한다.

백화점 옆에 노점을 벌이면 백화점이 더 장사가 잘될까 아니면 망가질까? 백화점이 반값세일을 수시로 하면 이익일까 손해일까? 그것은 백화점 측이 알아서 할 일이다. 어쨌든 그런 구조는 여여하게 존재한다.

박물관에 가서 영감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수학여행이라며 가서 휙 둘러보고 온다. 아무 느낌도 못 받는다. 그런데 나는 왜 경주박물관에 뻔질 나게 갔을까? 왜 경주남산에 오백번 올랐을까? 뭔가 챙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지만, 스승과 제자의 구분이 없지만, 이 공간은 관객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제자를 위한 공간도 아니고, 스승을 위한 공간이다. 스승이 될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것이 클래식의 의미다.

누군가의 스승이 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클래식이 전혀 의미가 없다. 지식이든 예술이든 그러하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스승이 되기를 바란다. 강단의 스승이 아니라 학교의 스승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일깨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제자는 필요없다. 스승은 필요하다. 김기덕은 관객을 만들지 못했지만 감독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아마 독자를 만들지 못하겠지만 작가를 만들고 싶다. 선생을 배출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쓴다. 그것이 클래식이고 지성이다.

인순이가 만약.. "클래식 별거 아니다 대중음악이 더 낫다." 이런 주의라면 자격없다. 반대로 "나는 클래식에서 배웠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다." 이런 주의라면 자격있다. 그래서 묻는다. 그 자격을.

www.drki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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