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미학이다 깨달음은 미학이다. 그들은 인생이라는 화폭에 그린다. 삶이라는 이름의 소설을 쓰고, 삶이라는 이름의 곡을 연주하고, 삶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렇게 실천한다. 행동한다. 그 방법으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깨달음의 대의는 ‘불립문자’에 있다. 선가(禪家)에서는 마음을 강조한다. 미학은 선가의 이심전심과 다르다. 교가(敎家)의 언어로도 속일 수 있고, 선가의 마음으로도 속일 수 있지만, 미학의 실천은 속일 수 없다. 교가의 언어는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며, 선가의 마음은 내 안에서 완성하는 것이고, 미학의 실천이 최종적인 것이다. 그것은 널리 소통하여 낳아내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종은 울음을 토하고 꽃은 향을 퍼뜨린다. 진정한 미는 아름다움을 넘어 완전성에 도달한다.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완전성을 유도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미학은 실천되는 것이며 그 행동과정에서 검증된다. 그 지점에서 근원의 완전성이 드러난다. 진정한 것은 과학성이다. 미에는 과학이 숨어 있다. 그래서 미학인 것이다. 깨달음은 완전성의 과학이다. 신(神)의 완전성에서 유도된 자연의 완전성을 포착하고, 그것을 내 안에서 찾아내어 행동으로 재현해 보이는 것이다. 미학에서는 사실주의가 강조된다. 사실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실천되는 것이며 실천과정에서 완전성이 검증되기 때문에 위대하다. 언어로는 속일 수 있지만 실천으로는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미학은 양식학이다. 양식은 행동의 양식이다. 행동은 일정한 포지션의 조합에 의해 가능하다. 그 포지션 조합의 실천과정에서 걸러진다. 가짜 금은 거래과정에서 탄로나고, 거짓 사랑은 결혼과정에서 탄로난다. 거짓 씨앗은 싹트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짓 사랑은 낳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짓 깨달음은 소통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것은 고립되고 만다. 계승되지 않는다. 생장하지 못한다. 발전이 없다. 양식은 체계가 있다. 체는 중심이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고, 계는 변방이 그 줄기로부터 가지쳐서 갈라져 나가면서도 중심으로부터의 흐름을 잇고 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거짓은 그 체계가 없다. 몸통도 없고 가지도 없다. 막연히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생각하지 않고, 꿈도 희망도 포기하고, 비위좋게, 유들유들하게, 뻔뻔하게 행동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은 미(美)가 아닐뿐더러 더욱 완전성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가짜에게는 제자가 없다. 왜?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학이 없기 때문이다. 양식이 없기 때문이다.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은 전부 하나로 이어져 호흡하고 있다. 가짜는 고립되어 있다. 모든 사이비 집단의 공통점은 무수한 분파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너무 빨리 배우고, 너무 빨리 깨닫고, 너무 빨리 독립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배우고 계승할 그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본 자는 탄성을 지른다. 그들은 언어를 얻는다. 말이 많아진다. 많이 본 자는 안으로부터 익는다. 숙성한다. 그들은 마음을 얻는다. 고요해진다. 진정한 이는 밖으로 촉수를 내민다. 그들은 무수히 낳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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